드레스는 유니버스 - 고전 마니아가 사랑한 세기의 여주인공들
송은주 지음 / ㅁ(미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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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독특했다. 드레스? 유니버스라고? 무슨 의미일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드레스가 제목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통의 평범성은 벗어난 내용일 것 같았다. 혹은 유치하거나. 헌데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고전, 그리고 그 고전 속 여주인공들이라고 했다.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이 책은 읽어봐야겠다, 마음먹게 된 결정타였다.
읽어나가면서 알았다. 드레스가 제목에 담겨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 우리의 여주인공들이 소설 속 안팎으로 메여있던 것이 상징적으로 드레스를 통해 전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세계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석과 평가. 여주인공들의 유니버스를 보여주는 중요한 안내를 하고 있었다.
물론,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모든 고전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다. 익히 제목과 내용을 알고 있으나 실제로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다짐하게 됐다. 여기 소개된 고전 작품들은 꼭 읽어봐야지. 작가가 친절하게 덧붙여 준 '여주인공 큐레이션'의 주인공들도 직접 읽어 만나봐야지. 그리고 나도 그 여주인공들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봐야지. 들어가보고나서 다시 작가의 이야기를 되짚어봐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각오일 수밖에 없는 것이, 고전은 부채감이 매우 크지만 선뜻 그 마음을 떨쳐버리기 위한 시도를 하지 못하게 되는, 가깝고도 먼 당신이다. 고전을 읽겠다는 각오를 지금껏 수없이 했지만 매번, 나약한 마음에 스르르 마음이 무너지곤 했다. 그러니, 각오를 새롭게 할 필요가 반드시 있다.)

어찌보면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는 고전에 대한 해석 혹은 주인공들에 대한 평론, 내지는 가벼운 서평 정도가 될 수도 있었던 시도라는 생각을 했다. 고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지금까지도 매우 많았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많을 테니까. 그저 소설의 내용을 소개하고 그 소설이 갖는 의미를 이야기하는 책이었다면 흥미가 훅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소설에 대해 알려주겠다는 마음보다는, 진심으로 소설의 '여주인공'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해석, 그리고 그들의 삶과 인생을 통틀어 설명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느껴졌다. 주인공이 아닌 '여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에서 당시 사회와 남성, 그리고 사람의 본질적인 특징과 욕망 등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속살의 이야기를 다 내보여도 될까, 생각이 들 정도. 그래서 더 흥미로웠던 것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 속에서 여성으로서의 생존과 살아내기 위한 처절한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싶으면서도 이렇게까지 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겠지, 싶어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어떻게 사회에서 내쳐지게 되는지를 보며 여전히 씁쓸해지기도 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욕구불만은 인류의 유구한 병이지만, 에마는 옆집 약국 오메 부인의 것이 아니라 그림속 떡을 탐낸다는 점에서 남다르다.(24쪽)
플로베르는 비소를 삼킨 에마가 긴 시간에 걸쳐 처절한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아무리 천상의 꿈을 꾸어도 지상에 묶인 존재임을 차갑게 드러낸다.(39쪽)
집안의 왕따 제인은 작은 몸에서 있는 힘을 다 쥐어짜내 자신의 유일한 무기인 말로 싸우는 쪽을 택한다.(51쪽)
오스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으로서, 냉혹하고 때로는 적대적인 이 세계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102쪽)
캐리는 지성은 부족했지만,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에 반응하는 풍부한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있었다.(142쪽)
뒤집어 말하면, 그들의 피라미드는 견고해 보이지만 실은 이질적인 존재 한 명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허약하고 협소하다. 따라서 그들은 뉴욕 사회의 동질성을 보존하기 위해 '이방인' 엘렌을 추방하는 쪽을 택한다.(182-183쪽)

결국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감정들과 생각들은, 곧 내가 같은 여자이면서 나를 이 여주인공들의 삶에 대입하여 생각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상황을 현재로 끌고 와 지금에 대입한 나의 감정과 판단이 동원되어 얽혔기 때문일 것이다. 아, 그렇구나 하고 가만히 읽어나가기만 할 수 없었던 나의 생각의 파장이 그물처럼 여러 상황들을 함께 얽어내니, 단순히 읽어나가는 것만 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마음에 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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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송골매 - 교유서가 소설
이경란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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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골매라는 말에, 진짜 그 송골매? 내가 알고 있는, 그 옛날 사람들, 그 밴드 송골매? 진짜 그 밴드에 대한 소설이라고? 살짝 의심하기도 했다.헌데 책 표지를 보고 와! 송골매에 진심이구나 싶었다. 송골매, 송골매, 송골매, 송골매, 송골매! 이 정도면 진짜다! 의심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진심으로 말하는 송골매는 과연 무엇일까, 이렇게까지나 강조하는 반짝임은 무엇일까, 나도 송골매에 진심을 담아보려는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알았다. 송골매에 진심인 이야기는 맞는데, 송골매에 진심인 이들의 이야기였다는 걸. 홍희, 미호, 은수, 기민. 그리고 그 가족과 주변인의 이야기가 섞여들어 결국 송골매로 귀결되는 이야기였다는 걸. 이들이 만들어갔던 과거와 기억들, 그리고 그 기억들을 가슴에 품고 긴 세월을 버티며 살아, 지금을 맞이하게 된 벅찬 이야기였다는 걸. 그래서 이들의 송골매에 대한 찐 마음이 감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는 걸.
만약 누군가 이 소설을 한 마디로 정리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송골매를 사랑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읽은 사람만은 알 것이다. 진짜 사랑한 것은, 그들 자신의 삶이었고, 그들 서로의 삶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도, 읽은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4명의 친구들을 하나로 묶어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들 각자의 삶이 있었고, 그 삶에서 각자의 생활과 인생이 있었고, 그 사이에서 그들이 놓지 않고 가려고 했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하나로 정의내릴 수도 없다. 그럴 때, 편히 할 수 있는 정의란 또 다시 결국, '송골매를 사랑하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헌데, 이렇게 쓰면서, 혼자 웃는다. 역시, '송골매'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소설이 맞구나 싶어서. 이 소설의 제목도, 표지도, 모든 이야기도 다, '송골매'로 이어진다는 것이, 갑자기 뭉클해지기도 해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어떤 음악에 사람의 마음과 삶을 장악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사는 한 가지 이상의 애틋함이 존재한 것이다. 그 애틋함을 다른 여러 말로 표현할 수 있을텐데. 예를 들면 송골매라든지, 혹은 송골매라든지, 아니면 송골매라든지. 그런, 마음 안에 잠들어 있었던 애틋함이 겉으로 발현되어 나타나게 되는 순간은 너무도 우연한 기회에 뜻하지 않은 때일 것이다. 가령 송골매 재결합 콘서트라든지. 그러니 사람이 어떤 순간에 어떻게 자신의 애틋함을 보여주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애틋함을 잃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는 것이 중요할 듯. 이 4명의 친구들은 그 마음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도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에, 다시 이들이 재결합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어느 누구라도 그 애틋함을 버리고 숨기며, 절대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면 이 재결합은 성사되기 어려웠을 듯. 그런 면에서, 송골매의 재결합보다, 이들 친구들의 재결합이 더 어려웠고 더 극적이다. 하지만, 이 또한 송골매가 없었다는 불가능했던 것. 그래서 또 결국 다시, 송골매다!
이 정도면 송골매에 대한 예찬론으로 이 소설을 읽어도 좋지 않을까. 혹시 이걸 진짜 송골매는 알까. 이걸 안다면, 그들의 삶이 지금껏 얼마나 사람들에게 의미있고 가치있었는지에 대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제목이 <디어 마이 송골매>인가보다 싶기도 하다. '친애하는 나의 송솔매여, 송골매에게 이 소설을 바칩니다!' 정도의 심정이어도 아깝지 않겠다는 마음이 든다.(마치 내 소설인 양 내 맘대로. 소설에 대한 느낌은 소설을 읽는 사람 마음이니까, 라고 소심한 변명도 덧붙여본다.)

아무래도 이 소설을 읽지 않고서는 못 버틸 지경. 사실, 이 소설에서 송골매의 직접 출연은 한 번도 없다. 절대 없다. 하지만 이야기는 온통 송골매인 이야기. 이 묘미가 있었다. 만약 송골매가 나왔다면, 이들과 또다른 인연으로 출연했다면 오히려 거기서 힘이 탁 빠졌을 듯. 우리가 알고 있듯, 송골매라는 대상은 존재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더이상의 역할은 필요 없다. 그저 그들을 향한 이 친구들의 마음이 모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
다 읽고, 다시 또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나도, 송골매의 노래를 찾아 들어야할 듯. 이 정도라면 송골매는 우리나라 최고의 밴드가 확실하니까. 송골매에 대한 반짝이는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염되어 조금 들썩여진다. 기분 좋은 들썩임이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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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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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의 시선으로 서술되어 있고 진의 마음을 물어 들을 수 없어 확실하진 않겠지만, 진은 지금 마음이 무척 따뜻하지 않을까. 가끔 나의 죽음 이후 사람들은 나를 어떤 '나'로 기억할까에 대해 궁금해 해본 적이 있다. 나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 지에 대해서도,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 지에 대해서도. 그런 의미에서 진은 충분히,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진의 마음을 살짝 들여다본다면, 부모님과 혁, 그리고 수민과 해송 모두에게, 상대에게 어울리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지 않을까.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처음 소설을 읽으면서는 동생의 형에 대한 그리움, 혹은 상실감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13년 터울의 형과 오래 전 이별했고, 그 형이 다녔던 고등학교에 입학한 동생이 형의 흔적을 찾아가며, 그동안 형의 부재에서 느꼈던 빈 자리를 스스로 채워나가는, 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성장소설의 흐름일 거라 지레 짐작했었다. 물론, 기분 좋게도 그 짐작은 빗나갔지만. 물론, 자신의 모습에서 형의 모습을 찾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자신도 형에게 갖고 있던 마음을 여름의 귤을 통해 극복해낸 혁의 모습은 잘 담겨 있다. 하지만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자꾸 혁보다는 진에게 마음이 더 기울어갔다. 혁이 엄마 몰래 진을 복원해내지 않았어도 진의 존재감이 매우 크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보면 이 소설은 진을 위한 소설이겠구나 싶을 정도로.
진은 어느 고등학교 시절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났다. 한 순간 누군가를 잃고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도 크겠지만, 마지막 인사, 하고싶었던 말과 일들을 다 하지 못하고 급하게 떠나게 된 당사자의 당혹스러움과 슬픔은 얼마나 더 클까, 생각해봤다. 그렇다면 오히려 떠난 진이 남겨진 이들을 더 걱정하고 그리워하지 않을까. 헌데 그런 떠난 이를 남겨진 사람들이 금방 잊는다면 얼마나 더 마음이 아플까. 예전에 봤던 애니메이션 <코코>에서도 남겨진 가족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면 사후 세계에서도 사라지게 된다는 것에서도, 결국 사람들의 기억속에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어떻게 남겨질 것인가는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면, 주변 사랑하는 사람들이 진에 대한 기억을 각자의 시선으로 온전히 담아 간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은 흐뭇한 마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 각각에게는 모두 각자만의 진과의 경험과 추억에서 비롯된 진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는 것도 너무 이해가 갔다. 우린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니까. 누구와 함께 있는가에 따라 나라는 사람의 모습은 다양한 빛을 내게 되어 있고, 그 빛에 따라 각각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법. 그리고 그 빛을 오롯이 알아채주는 사람과 특별한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해송과 진은 서로의 빛을 오롯이 알아채주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더욱 해송이 진의 집을 지키고 가꾸어나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해송이 진에 대해 갖는 죄책감은 그리움의 크기보다 훨씬 작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혁이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에 대한 기억을 온전히 지켜주고자 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떻게 하는 것이 형을 있는 그대로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인지도 알고 있는 혁이었다. 오히려 길게 설명하지 않고 또한 형을 조용히 보내줄 줄 알았던 부분에서, 이 소설이 더 감동적이었다. 혁의 마음과 행동을 통해 주변 사람들이 진에 대해 갖고 있던 기억이 고스란히 다시 되살아나 여전히 그리워하며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상처를 토닥여 아물 수 있도록 해 주는 역할도 혁이 해주었다.
혁도 해송도 이제 다시 귤을 좋아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나도 마음이 흐뭇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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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문학동네 청소년 66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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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날 온 마을 사람들이 널 지켰던 것처럼 이제 내가 너 지켜 주겠다고. 이 말 하고 싶었어."(158쪽)

누군가를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누군가로부터 지켜주고 싶다는 말을 듣는 기분은 어떤 걸까.
유찬과 지오의 이 마음이 너무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말 그대로 참, 예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이건 순수하게 어른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에 대한 평가이겠지, 하면서도 이 평가를 거두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만큼 이 아이들이 기특하고 대견한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 이 아이들이 직접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어른의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분명히 하고 싶다. 아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한 길고도 힘든 시간을 거쳐야만 했다는 것이 썩 마음이 들지는 않았으니까. 아이들이기 때문에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을 지나와야만 한다는 건, 어른의 입장에서 보는 지나친 결과론적인 생각일 수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이 아름답게만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이 두 아이가 겪고 있는 아픔은 모두 이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어른들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물론 어떤 것도 어른이 의도해서 이 아이들을 지금의 고통에 버려둔 것은 아니지만, 의도하지 않은 어른의 선택들이 모이고 쌓여,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 홀로 놓인 것만은 사실이다. 어른들이 쉬쉬하고 감추려고 했던 진실이 유찬에게 고통스런 감각을 만들어 주었고, 어른들이 했던 이기적(?)인 선택과 결정이 지오의 생과 삶을 흔들었다.
유찬과 지오가 단단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 두 아이가 제대로 제 생각을 스스로 만들며 이 여름에 흔들리지 않고 잘 버텨줄 수 있었을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정말 다행하게도 이 두 아이가 딱 지금, 서로가 제일 힘든 이 순간에 만나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었으니, 어찌나 안심이 되는 우연이고 인연인지. 유찬이 새별에게, 그리고 지오가 아빠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 또한 서로의 특별함이 만들어 낸 선한 결과일 테니, 이만큼만으로도 이 두 아이가 함께 지나온 여름이 그저 싱그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유찬의 가슴 언저리 위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동그란 공이라도 잡은 듯 손을 감싸쥐었다. 그리고 그게 사과라도 된다는 듯 한 입 베어 먹는 시늉을 했다.(...) "보면 몰라? 방금 내가 네 여름 먹었잖아."(186쪽)

지오가 한 입 베어 먹은 유찬의 여름, 더 이상 뜨겁지 않기를. 그리고, 지오와 유찬에게 이 더운 여름이 조금 더 계속 되어도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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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
김달님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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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을 때면 드는 생각이 있다. '작가의 내밀한 부분을 이렇게나 내가 들여다봐도 괜찮을까.' 그리고 다시, '이런 내밀함에서 나와 닿아 있는 한 면을 발견하고, 그 한 면에 기대 마음의 안정을 찾는 거지.' 하고 안심한다. 이번 책도 그런 면에서 안심이 되는 책이었다.

책을 선택할 때 책의 제목에 의미 부여를 많이 하는 편이다. 뭐든 작품의 제목이란 건 그냥 허투루 만들어지지 않으니까. 제목에서 이 책이 담고 싶은 메시지가 함축되어 나타난다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제목도, 부제도 모두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라고 하니, 나도 이제 더 자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자랄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이 나이에도 더 자라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했고, 나도 모르는 사이 천천히 '조금씩' 우린 자라고 있겠지 싶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거기에 '살아갈 힘'이 되어 준다니, 그리고 '사랑의 말들'이라니 그 사랑의 말을 버팀목 삼아 살아갈 힘을 얻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보게 만들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자신을 사랑하도록 하는 따뜻한 말들이 가득한 책이었다. 여기서 쓰인 '사랑'의 방향이 다른 이를 향하면서도 사실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는 사랑의 말들이라 느껴졌다. 결국 나로 살아갈, 내가 살 수 있는, 다른 이와 함께 살아가게 만드는 그런 말들이라고나 할까. 스물 갓 넘은 어린 나이에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부진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놓을 줄 알았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도 자신도 있다는 걸 뜻할 테니까. 그만큼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 속에 그런 마음이 다부지게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마음이, 마음에 들었다.

한 세트라도 이기면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고, 경기에서 지면 바닥에 드러누워서 서럽게 울고, 그러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하면 금세 다시 웃고.(...) 지금 내가 아주 중요한 걸 지켜보고 있구나. 성장한다는 건 되게 멋진 일이구나.(65쪽)
_ 누군가가 힘들고 지쳐있을 때,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금세 다시 웃는 그 웃음을 볼 수 있도록. 슬며서 맛있는 간식을 슬쩍 건네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교실에서도 별 거 아닌 작은 간식을 슬며서 손에 쥐어주면 배시시 웃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는 방식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봐야겠다.

"너는 피아노를 배울 때 어렵지 않았어?"/"처음엔 저도 어려워서 많이 틀렸어요."/"틀리면 부끄럽지 않았어?"/"부끄럽지 않았어요."/"왜?"/"왜냐하면 저는 배우는 중이니까요. 원래 배울 때는요, 어려운 거예요."(97쪽)
_ 아, 하고 무릎을 쳤다. 원래 배울 땐 어려운 거지, 맞지, 했다. 부끄러움을 먼저 생각한다는 건 그만큼 주변에 더 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뜻일 터. 배움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감정이, 부끄러움이었을 것이다. 내가 배우고 있는 중이라는 걸 스스로 받아들인다면 어떤 것도 못할 것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배울 때는 어려운 거라면, 어려울 거라고 미리 짐작해서 시도하지 않는 선택은 하지 말아야겠다.

어쩔 수 없이 아이가 보는 앞에서 귤을 입에 넣었다. 맛있다는 듯이 꼭꼭 씹었다. 손에 쥐고 있던 귤은 미지근하고 달았다. 그제야 아이는 히 웃곤 사촌 언니에게로 뛰어 갔다. 조용히 울던 사람을 조용히 웃게 해주는 존재. 아이란 그런 존재일까.(185쪽)
_ 아이들이 어려서 뭘 모를 거라는 건 어른의 착각이다. 아이는 모든 걸 다 안다. 자신이 어떻게 했을 때 어른의 마음이 달라질 수 있는지까지도 모두 다 알고 있다. 아이들은 다 알고 있지만 어른에게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어른의 체면을 위해, 아이가 다 알고 있는 걸 어른이 모르면 체면이 서지 않을 테니까. 미지근하고 단 귤의 맛이 입 안에 도는 듯하다.

계속 하는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도 해볼 만하다는 걸 느낀다./그러니 다들 지금 그 자리에서 오래오래 '하던 거' 하며 살아가기를.(212-213쪽)
_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자꾸만 뭘 하려는 사람들과 매달 만나 책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려고 하고, 계속 한다. 가끔 서로 질문한다. 우린 왜 자꾸 하려고 할까? 이야기는 돌고 돌아, 우린 그런 사람이기 때문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런 사람들끼리라서 우린 서로를 알아보게 된 거라고. 지금까지처럼 쭉, '하던 거' 하면서 살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느낌이다.

시간이 지나도 내 안에서 어떤 부분이 끝내 변하지 않을지, 그런 것들을 차분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런 것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이 된다.(251쪽)
_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떠올리면 그 사람만의 특징과 성격이 분명해지는 지점이 있다. 그럴 때 내가 그 사람을 참 잘 알고 있구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누군가에게 나 또한 그런 사람이라면, 나는 그런 변하지 않는 부분들의 집합으로 '나'가 되었겠지. 그런 '나'가 좋고, 그렇게 '나'는 조금씩 자라는 거겠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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