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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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의 시선으로 서술되어 있고 진의 마음을 물어 들을 수 없어 확실하진 않겠지만, 진은 지금 마음이 무척 따뜻하지 않을까. 가끔 나의 죽음 이후 사람들은 나를 어떤 '나'로 기억할까에 대해 궁금해 해본 적이 있다. 나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 지에 대해서도,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 지에 대해서도. 그런 의미에서 진은 충분히,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진의 마음을 살짝 들여다본다면, 부모님과 혁, 그리고 수민과 해송 모두에게, 상대에게 어울리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지 않을까.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처음 소설을 읽으면서는 동생의 형에 대한 그리움, 혹은 상실감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13년 터울의 형과 오래 전 이별했고, 그 형이 다녔던 고등학교에 입학한 동생이 형의 흔적을 찾아가며, 그동안 형의 부재에서 느꼈던 빈 자리를 스스로 채워나가는, 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성장소설의 흐름일 거라 지레 짐작했었다. 물론, 기분 좋게도 그 짐작은 빗나갔지만. 물론, 자신의 모습에서 형의 모습을 찾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자신도 형에게 갖고 있던 마음을 여름의 귤을 통해 극복해낸 혁의 모습은 잘 담겨 있다. 하지만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자꾸 혁보다는 진에게 마음이 더 기울어갔다. 혁이 엄마 몰래 진을 복원해내지 않았어도 진의 존재감이 매우 크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보면 이 소설은 진을 위한 소설이겠구나 싶을 정도로.
진은 어느 고등학교 시절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났다. 한 순간 누군가를 잃고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도 크겠지만, 마지막 인사, 하고싶었던 말과 일들을 다 하지 못하고 급하게 떠나게 된 당사자의 당혹스러움과 슬픔은 얼마나 더 클까, 생각해봤다. 그렇다면 오히려 떠난 진이 남겨진 이들을 더 걱정하고 그리워하지 않을까. 헌데 그런 떠난 이를 남겨진 사람들이 금방 잊는다면 얼마나 더 마음이 아플까. 예전에 봤던 애니메이션 <코코>에서도 남겨진 가족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면 사후 세계에서도 사라지게 된다는 것에서도, 결국 사람들의 기억속에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어떻게 남겨질 것인가는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면, 주변 사랑하는 사람들이 진에 대한 기억을 각자의 시선으로 온전히 담아 간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은 흐뭇한 마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 각각에게는 모두 각자만의 진과의 경험과 추억에서 비롯된 진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는 것도 너무 이해가 갔다. 우린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니까. 누구와 함께 있는가에 따라 나라는 사람의 모습은 다양한 빛을 내게 되어 있고, 그 빛에 따라 각각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법. 그리고 그 빛을 오롯이 알아채주는 사람과 특별한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해송과 진은 서로의 빛을 오롯이 알아채주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더욱 해송이 진의 집을 지키고 가꾸어나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해송이 진에 대해 갖는 죄책감은 그리움의 크기보다 훨씬 작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혁이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에 대한 기억을 온전히 지켜주고자 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떻게 하는 것이 형을 있는 그대로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인지도 알고 있는 혁이었다. 오히려 길게 설명하지 않고 또한 형을 조용히 보내줄 줄 알았던 부분에서, 이 소설이 더 감동적이었다. 혁의 마음과 행동을 통해 주변 사람들이 진에 대해 갖고 있던 기억이 고스란히 다시 되살아나 여전히 그리워하며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상처를 토닥여 아물 수 있도록 해 주는 역할도 혁이 해주었다.
혁도 해송도 이제 다시 귤을 좋아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나도 마음이 흐뭇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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