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
김달님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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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을 때면 드는 생각이 있다. '작가의 내밀한 부분을 이렇게나 내가 들여다봐도 괜찮을까.' 그리고 다시, '이런 내밀함에서 나와 닿아 있는 한 면을 발견하고, 그 한 면에 기대 마음의 안정을 찾는 거지.' 하고 안심한다. 이번 책도 그런 면에서 안심이 되는 책이었다.

책을 선택할 때 책의 제목에 의미 부여를 많이 하는 편이다. 뭐든 작품의 제목이란 건 그냥 허투루 만들어지지 않으니까. 제목에서 이 책이 담고 싶은 메시지가 함축되어 나타난다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제목도, 부제도 모두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라고 하니, 나도 이제 더 자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자랄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이 나이에도 더 자라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했고, 나도 모르는 사이 천천히 '조금씩' 우린 자라고 있겠지 싶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거기에 '살아갈 힘'이 되어 준다니, 그리고 '사랑의 말들'이라니 그 사랑의 말을 버팀목 삼아 살아갈 힘을 얻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보게 만들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자신을 사랑하도록 하는 따뜻한 말들이 가득한 책이었다. 여기서 쓰인 '사랑'의 방향이 다른 이를 향하면서도 사실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는 사랑의 말들이라 느껴졌다. 결국 나로 살아갈, 내가 살 수 있는, 다른 이와 함께 살아가게 만드는 그런 말들이라고나 할까. 스물 갓 넘은 어린 나이에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부진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놓을 줄 알았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도 자신도 있다는 걸 뜻할 테니까. 그만큼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 속에 그런 마음이 다부지게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마음이, 마음에 들었다.

한 세트라도 이기면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고, 경기에서 지면 바닥에 드러누워서 서럽게 울고, 그러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하면 금세 다시 웃고.(...) 지금 내가 아주 중요한 걸 지켜보고 있구나. 성장한다는 건 되게 멋진 일이구나.(65쪽)
_ 누군가가 힘들고 지쳐있을 때,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금세 다시 웃는 그 웃음을 볼 수 있도록. 슬며서 맛있는 간식을 슬쩍 건네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교실에서도 별 거 아닌 작은 간식을 슬며서 손에 쥐어주면 배시시 웃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는 방식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봐야겠다.

"너는 피아노를 배울 때 어렵지 않았어?"/"처음엔 저도 어려워서 많이 틀렸어요."/"틀리면 부끄럽지 않았어?"/"부끄럽지 않았어요."/"왜?"/"왜냐하면 저는 배우는 중이니까요. 원래 배울 때는요, 어려운 거예요."(97쪽)
_ 아, 하고 무릎을 쳤다. 원래 배울 땐 어려운 거지, 맞지, 했다. 부끄러움을 먼저 생각한다는 건 그만큼 주변에 더 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뜻일 터. 배움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감정이, 부끄러움이었을 것이다. 내가 배우고 있는 중이라는 걸 스스로 받아들인다면 어떤 것도 못할 것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배울 때는 어려운 거라면, 어려울 거라고 미리 짐작해서 시도하지 않는 선택은 하지 말아야겠다.

어쩔 수 없이 아이가 보는 앞에서 귤을 입에 넣었다. 맛있다는 듯이 꼭꼭 씹었다. 손에 쥐고 있던 귤은 미지근하고 달았다. 그제야 아이는 히 웃곤 사촌 언니에게로 뛰어 갔다. 조용히 울던 사람을 조용히 웃게 해주는 존재. 아이란 그런 존재일까.(185쪽)
_ 아이들이 어려서 뭘 모를 거라는 건 어른의 착각이다. 아이는 모든 걸 다 안다. 자신이 어떻게 했을 때 어른의 마음이 달라질 수 있는지까지도 모두 다 알고 있다. 아이들은 다 알고 있지만 어른에게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어른의 체면을 위해, 아이가 다 알고 있는 걸 어른이 모르면 체면이 서지 않을 테니까. 미지근하고 단 귤의 맛이 입 안에 도는 듯하다.

계속 하는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도 해볼 만하다는 걸 느낀다./그러니 다들 지금 그 자리에서 오래오래 '하던 거' 하며 살아가기를.(212-213쪽)
_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자꾸만 뭘 하려는 사람들과 매달 만나 책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려고 하고, 계속 한다. 가끔 서로 질문한다. 우린 왜 자꾸 하려고 할까? 이야기는 돌고 돌아, 우린 그런 사람이기 때문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런 사람들끼리라서 우린 서로를 알아보게 된 거라고. 지금까지처럼 쭉, '하던 거' 하면서 살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느낌이다.

시간이 지나도 내 안에서 어떤 부분이 끝내 변하지 않을지, 그런 것들을 차분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런 것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이 된다.(251쪽)
_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떠올리면 그 사람만의 특징과 성격이 분명해지는 지점이 있다. 그럴 때 내가 그 사람을 참 잘 알고 있구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누군가에게 나 또한 그런 사람이라면, 나는 그런 변하지 않는 부분들의 집합으로 '나'가 되었겠지. 그런 '나'가 좋고, 그렇게 '나'는 조금씩 자라는 거겠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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