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리커버) 을유세계문학전집 여성과 문학 리커버 에디션
에밀리 디킨슨 지음,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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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에 조예가 깊지 않다. 상대적으로 한국문학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세계문학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갖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살고 있는 익숙한 환경이 아닌 낯선, 그것도 오래 전의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을 때에는, 그 나라의 사회적 풍경과 문화, 역사적 사실 등이 잘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찾아보고 공부할 생각은 안 하고 그저 읽기 힘들다는 이유로 멀리한 것이 지금껏 온 핑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세계문학이라고 하면 자꾸 한발짝 뒤로 물러서려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하지만 세계문학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눈길이 가고 관심을 갖게 만드는 핵심 단어가 있다. 바로, 여성이다. 여성이라고 하면 자꾸만 기웃거리게 되고 뭐 하나라도 더 읽고 듣고 느끼고 싶어한다. 아무래도 같은 여성으로서, 그리고 과거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여성이란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지라, 그런 여성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삶의 여정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고스란히 글 안에 담아내고 있는지는 궁금해지곤 한다. 그래서 이번 '리커버 에디션'의 작품들이 더 눈에 띄었다._물론, 책의 표지 그림들이 한몫 한 것만은 틀림이 없다. 책의 제본 방식이며 특히 표지 그림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저 이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괜히 내가 더 뿌듯해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암튼, 그랬다.

그냥 시도 어려운데, 한국 시도 읽기 어려운 것들을 자주 마주치게 되는데, 외국 작가의 시는 오죽할까 싶어 용기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이 책의 시들을 읽으며 가장 두드러지게 느꼈던 느낌이, 우리나라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 였다. 그만큼 공감되는 지점이 많았다는 것. 자연스레 쓱 읽어내고 나서도 자연스레 전해지는 감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이 조금은 익숙한 듯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들과 '시'란 무엇인지를 얘기할 때 시는 느낌을 표현하는 거라고 주로 말한다. 느낌, 감정,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쓰는 글이고, 그래서 읽는 사람도 그 시를 통해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를 알아채면, 그것이 바로 시를 감상하는 것이 된다고, 낭만적으로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 또한 시를 통해 마음으로 전해지는 감정에 기대 읽었던 것 같다. 그저 마음 가는대로 읽어나갔다. 그리고 마음이 당기는 시를 옮겨 적었다. 나만의 시 감상법이 된 필사를 통해 조금 더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적 마음적 여유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그대가 가을에 온다면'을 읽으며 어머! 하고 깜짝 놀랐다. 여러번 반복해서 읽어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앞뒤로 다시 책을 뒤적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떠오르는 생각은 더 강해지고 확신까지 들었다. 바로, '잊었노라, 잊었노라'를 반복하는 시, 김소월의 <먼 후일>과 결이 비슷하다는 느낌. 무척 그리워하고 애달아하고 평생 사랑할 대상을 향해 마음을 접지 못하고 살아가는 화자의 심정이, 어쩜 이리도 닮아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래서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분명 놓치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았겠지만, 이번에 나는 시를 마음에 와닿는대로 그저 내 느낌으로만 읽었고 그 자체로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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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오래 산다 - 30년 문학전문기자 생애 첫 비평에세이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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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기자. 나의 삶에 이 선택지가 있었고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지금 나의 모습은 조금 달라져 있었을까, 살짝 기자님의 글들을 읽으며 떠올려봤다. 이 말은 부럽다는 뜻이기도 하다. 애초에 대학의 전공을 선택하고 그 전공을 그대로 살려 할 수 있는 일을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았다면, 어쩌면 비슷한 일들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20년 이상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또한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던 책이었다.
표지 그림의 저 공간과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든다. 물론 기자의 삶이 이리 평온하고 여유로웠을 리는 없다. 끊임없이 읽고 만나고 생각하고 썼어야만 했던 시간과 시간 사이의 간격은 매우 좁았을 것이고, 그 작은 시간의 틈에서 잠깐,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면 다행이겠지. 혹은 어쩌면, 30년이란 시간을 다 지나오고난 후,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바로 이 그림과 같지 않을까도 생각해봤다. 이 책에 자꾸 더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는 이유가 어쩌면, 우리가 지난 시간 동안 애쓰며 문학과 동행했던 그 누적의 기록이 꾹꾹 눌러담아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30년의 기록 안에는 나 또한 심취했었던 작가와 작품이 오롯이 들어가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대학 때 빠져들었던 김소진, 김연수, 이청준, 그리고 늘 곁에 존재할 듯했던 박완서, 너무 늦게 알아버린 황현산, 허수경, 그리고 최근에도 꾸준히 읽게 되는 송경동, 진은영, 이산하의 시들과 한강, 최은영, 김애란의 소설들. 신형철의 비평집은 책장 한쪽에 잘 꽂아놓고 읽을 틈을 찾고 있기도 하다. 이 책에 실려있는 작품들의 절반 이상은 이미 읽었고, 대부분의 작가(북의 작가 빼고)는 거의 알고 있으니 또한 건성으로 읽을 수도 없었다.
단순히 서평만을 모아놓은 책이라면 조금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_물론, 서평들을 읽으며 이렇게 서평을 써야겠다는 자극과 공부가 되기도 했지만._ 칼럼의 이야기들이나 특히 표절이나 노벨문학상과 관련한 내용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지점들이 있었다. 문학이라는 영역이 생각보다 환상적이거나 낭만적이지만은 않기도 하거니와 또한 깊이 들여다보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들이 분명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글들에 다시 화가 나기도 혹은 답답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이래서 결국 문학이구나.
왜 내가 문학을 전공하고 지금까지 그 언저리를 어슬렁거리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답을 이 책에서 찾았다. 이런 다양한 생각과 사고의 과정이 모두 고스란히 담겨질 수 있는 것이 문학이었고, 또한 30년은 족히 하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하고 넘치는 이야기가 곧 문학이었다. 그래서 문학을 삶의 저편으로 밀어놓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짝사랑을 계속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리고 결국 앞으로도 이런 문학 주변에 얼쩡거리며 어떤 소식 혹은 기사라도 발견하게 되면 반가워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_이렇게 말하니 꼭 뭐 대단한 문학을 하는 사람인 듯 보일 수도 있지만, 그저 단순한 독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저 문학에 대한 애정을 좀 더 과한 과장으로 꾸민 정도라고나할까.
마치, 오랜만에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도 들었다. 다른 걱정 없이 그저 문학을 읽고 쓰며 말할 수 있었던 그때의 추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이 책의 힘이 이 정도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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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블루칼라 여자 - 힘 좀 쓰는 언니들의 남초 직군 생존기
박정연 지음, 황지현 사진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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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어렸을 때 많이 직업군을 흔히 구분하는 방식이었다. 어느 정도 이상의 나이(나만큼)를 먹은 사람이라면(어쩌면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도 여전히) 셔츠의 색깔로 어떤 직업군인지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다는 느낌이다. 또한 여전히 이 두 칼라의 색깔에는 사회적 편견이 숨어있다는 느낌도 든다._솔직히 말하면, 칼라의 색깔에 담긴 그 편견의 시선이 조금은 불편하다.
어쨌든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언니들'은 우선, 용기있고 우직하게 제 힘을 다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인정받아 마땅하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흔히들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직업들의 전반적인 공통점은 여전히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여자와 남자에 대한 차별이 더욱 두드러지는 직업적 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니 이중, 삼중의 힘겨운 싸움을 해야만하는 것이다. 직업적으로도 싸워야하고, 남자들과도 싸워야하고, 주변의 시선과 색안경에도 단련되어야 하니, 그저 자신의 일이 좋아 뛰어든 것에 대한 대가가 너무 크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자신의 직업 선택 이후 더 많은 사회적 싸움을 해 나가야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 '언니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점들이 있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당당해져라, 그리고 남자들이 던지는 차별적 언행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라, 더 많은 연대의 힘을 모아 함께 나아가자.' 읽으면서 제일 강하게 느낀 건, 어쩌면 이 많은 남자들은 다양한 직업 내에서 이토록 비슷한 모습을 보일까. 어느 곳에서도 차별적 언행이 없었던 적이 없었고, 여전히 여자는 끊임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는 것,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한방에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여자로서, 내가 속해있는 집단에서는 또 어떤 편견이 깔려있을지도 생각해보기도 했다. 나도 이 언니들처럼 맞서 목소리를 높이고 당당하게 내 자리를 요구하며 맞서 싸울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그리고 다시 되짚어 생각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언니들', 좀 많이 멋진 듯. 아마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이들의 멋짐이 듬뿍 담겨있어서이지 않을까. 누가 등떠밀어 억지로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일 하기 싫어 몸을 이리저리 뒤트는 이들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자부심이며 긍지일 터였다. 누구도 이들을 막을 수 없다, 뭐 이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나같이 건강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때까지 건강하게 제 몫(이 책의 언니들에게 어쩌면 제일 중요한 일의 가치일 듯. 누군가가 배려한답시고 자신의 일을 더 해주려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언니들의 소신!)의 일을 다하고 싶다는 바람이, 이보다 더 멋질 수가 없었다.

이 '언니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에게 일에 잘하기 위해 하는 고민 외에 여자라는 이유로 더 해야하는 고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분위기와 한 만큼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 그리고, 우리 언니들, 건강하게 오래오래 지금의 당당함을 잃지 않고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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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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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공간으로 이주하는 삶은 생각보다 녹록하지가 않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긴장과 설렘보다는 예기치 못한 위기와 난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방인에 대한 경계의 눈빛이 더 강하다. 자신의 공간에 침범해 들어온 이 다르게 생긴 동물의 정체를 살피기 위해 호시탐탐 관찰하고 무시하고 협박하며, 절대 진입을 허락하지 않으며 거리를 둔다. 어쩌면 이것이 동물의 본능이진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 이야기들이 작품 속에 담겨 있었다.
절대 '나'의 나라에 '너'를 발붙이지 못하도록 각서를 강요하는 <입국 심사>, 이주민 안에서도 다시 경계를 나누고 같은 부류로 취급받지 않기 위해 냉정하면서 야멸찬 선긋기의 <캠벨타운 임대주택>, 어떻게든 살아남아보겠다고 아둥바둥 생명을 연장하려하지만 되레 다른 생명을 밟아 나아가려는 <골드러시>, 무엇을 향해 달려가려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뿌옇게 불타오르는 그 곳을 향하는 <졸업 여행>, 이주민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며 때에 따라 자신의 태도조차 자신의 것으로 삼지 못하는 <헬로 차이나>, 뿌리를 찾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지 어디서 살아갈 시민이어야 하는지 그 정체성이 궁금한 <한국인의 밤>, 편견과 선입견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마음껏 제 이름을 당당히 드러내며 살고싶어 했던 <외출 금지>, 함께하기 위한 간절함과 인연, 하지만 버리기와 갖기 사이에서의 마음 줄다리기하는 <배영>.

'노마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유목민, 유목 민족, 방랑자. 인간은 기본적으로 노마드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고, 자신이 뿌리내리고 싶은 공간을 탐색해나가는 과정이 곧 삶이지 않을까. 자신에게 최적의 공간이라 생각이 들면 과감하게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모두 내려놓고 그 새롭고 낯선 공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 또한 기본 장착되어 있는 것이 인간이지 않을까. 그러니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그 나머지를 기꺼이 감수하고서라도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을 마다하고 굳이 어려운 길을 찾아 떠날 필요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봤을 때, 인간은 결국 자신이 있어야할 곳을 찾아 방랑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바로 이 소설 속 인물들처럼.
그리고 그런 곳을 힘겹게 찾고나서는 자신이 무엇을 향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솔직한 민낯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목적 없이 도착하기 힘든 곳이었고, 험난한 과정 속에서 목표하고 있는 것마저 얻지 못한다면 굳이 지금의 어려움을 감수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어찌보면 무척 솔직하고 적나라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서는 이 낯선 곳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버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인물들 또한 그 역할에 충실했다고 본다. 눈치보지 않고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갈 수 있는 모습들을 보여주었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버리지 못했던 마음의 미련은 내내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래서 이 인물들에게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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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데부 - 이 광막한 우주에서 너와 내가 만나
김선우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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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새. 내가 알던 그 새가 맞나 싶어 검색해봤었다. '비둘기목 도도과의 멸종된 새'라는 설명으로 요약되어 설명되는 새. 천적이 없던 모리셔스에 살면서 나는 법을 잃은 새. 그러다 사람에 의해 멸종된 새, 도도새. 그런 도도새를 그리는 작가, 도도새 작가 김선우의 에세이를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든 전체적인 인상은, 따뜻한 시선과 마음이었다. 작가의 시선과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어디에 가 닿아 있는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선과 마음에 담긴 따뜻한 기운도 전달되었다.
아마도 진심이 담겨 있어서 가능한 것이겠지 싶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하고자 하는 일, 그리고 그 일이 향하고 있는 목표와 목적지에는 작가가 얼마나 꾸준히 그리고 성실하게, 그러면서도 열정을 다해 도달하고자 열망하고 있는가가 잘 드러나 있었다. 허름하고 열악했던 첫 작업실에서부터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해 12시간을 작업하는 지금 생활의 루틴까지. 작가가 지금까지 향해있는 관심의 지점이 무엇일지를 잘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일과 생활, 그리고 그 일에 쏟는 모든 생각과 행위에 군더더기란 없어 보였다. 아마도 이런 모든 것이 작품으로 발현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겠지, 싶었다.

그러나 작업적으로 비슷한 입장이 되고, 도도새를 고작 십 년 남짓 거쳐왔을 뿐인 저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지겨울 정도로 익숙해져버린 무언가에서 마침내 새로움을 찾아내 세상에 내어놓는 일이야말로 아예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에 비할 바 없이 어렵고 대단한 일이며, 인간만의 숭고한 일이라는 것을요.(205쪽)

예술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어쩌면 많은 새들 중 하필 도도새인가, 도도새를 이 정도 그렸으면 된 거 아닌가,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또한 쉽게 생각하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고작'인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할 말이 많고 더 해야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감동이었다. 'LABOREMUS' 라보레무스. 아마도 작가는 이렇게 스스로를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써 앞으로 밀어내는 것이겠지. '자, 일을 계속 하자'라는 의미의 저 단어를 매일 오고가는 작업실에 걸어두고, 익숙함에 새로움을 더하기 위한 힘을 스스로에게 불어넣어주는 작가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자신이 선택한 업이 가장 나다운 존재로 살아가게 해 준다면,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기꺼이 "라보레무스"라고 읊조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가장 나다운 수 있는 일에 생의 모든 시간을 쏟아내려는 작가의 다부진 모습이 그려졌다.

예술가라는 직업의 세계에서는 세간에 크게 알려지기 이전의 상태를 흔히 무명無名이라고 표현합니다. 생각해보면 참 잔인하면서도 냉정한 호칭입니다.(19쪽)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무명無名. '이름이 없거나 이름을 알 수 없음.' 혹은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음.'의 무명을 우리는 얼마나 쉽게 쓰고 있는 것일까. '없음'과 '않음' 사이에도 큰 간격이 존재해 보였고, 그 사이 어디에서도 이름을 갖지 못하는 많은 예술가들을 이름이라는 잣대로 보게 되는 사회의 시선도 씁쓸했다. 유명해지기 위함이 목표인가, 그 유명을 바탕으로 사람들과 그림을 통해 소통하려는 것이 목표인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가 닿기를 바라며 기울이는 노력과 그 노력의 결과가 예술분야에서는 '유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보지만, 여전히 '무명'이란 단어가 슬프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듯하다.
그래서 어쩌면, 작가의 'LABOREMUS'에 더 강한 다짐과 힘이 담겨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이 책을 읽고 이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을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어졌다. 그들이 향해가는 모든 길이 반짝일 수 있도록.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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