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이슈 한국사 - 둘만 모여도 의견이 갈리는 현대사 쟁점
박태균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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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의이슈한국사 #박태균 #창비 #서평단 #서평 #책추천

'쟁점'은 '서로 다투는 중심이 되는 점'으로, '이슈'와 비슷한 단어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꼭지들은 역사적으로 자주 다루게 될 수밖에 없는 문제의 지점이라 봐도 좋을 것 같다. 처음 '책머리에' 부분을 읽으면서는 놀랐다. 뭐, 수능에서 한국사가 필수가 될 예정이라고? 이게 언제부터 있었던 일인데, 하며 이 책의 출판연도를 확인했다. 아, 2015년 초판의 책이었다. 그러면 인정. 10여 년 전이라면,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이 다소 부족해 의무적으로 한국사를 공부하도록 만들 법한 시절이긴 했다. 시험을 치뤄야하는 아이들에게는 부담이었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더 없을 것이기에, 한국사 시험의 의무 응시는 환영할 만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차례를 훑어보니, 우리가 자주 이야기하는 지점이 맞았다. 식민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를 관통하는 문제의 지점들을 다루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로부터 비롯된, 일본과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 망언 문제나 독도 문제, 식민지 근대화 문제. 625 전쟁으로 인한 분단, 정전협정, 그리고 햇볕정책까지. 그 안에서 미국과의 관계와 베트남전쟁,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향한 과정 등. 1900년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우리 현대사에서 다루어볼만한 주제가 쟁점별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어렵지 않았다. 다만 좀 답답하긴 했다. 역사라는 것이 각 부분별로 무언가의 답을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것은 아니고, 또한 역사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면, 꼭 이 책에서 속 시원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미 이 책에 쓰인 지 10여 년이 지났음에도 왜 이 문제들은 현재까지도 여전한 쟁점의 부분인 것일까에, 답답함을 느꼈다.
특히 우리나라의 역사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로 인한 것보다는 다른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굴곡이 크다는 생각을 한다. 늘 외침에 따른 전쟁 속에 사람들은 힘든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고, 강대국이라고 하는 나라에 약소국으로서 휘둘리며 끌려다녔던 것도 우리가 갖고 있는 역사의 한 부분일 것이다. 문제는 과거에 우리의 힘이 약했을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현재는 그 정도의 힘은 갖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여전히 이 문제들에서 우리가 주체적인 힘과 주도권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아쉬운 것이다. 식민지 문제만 하더라도, 이미 올해로 광복 79주년이 되었음에도 아직도 일본과의 관계는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가 되기도 한다. 물론 미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여전히 미국의 강한 힘이 우리는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도 이제 어느 정도의 경제 성장을 통해 오히려 개발도상국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위치와 역할을 분명히 할 필요도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불안하기만 한 듯 보이기도 한다.
분명, 우리가 역사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미래를 논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런 면에서라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쟁점을 지금 현재, 다시 볼 의미는 충분하다고 본다. 여전히 진행 중인 우리 사회의 문제, 특히 다른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과거를 통해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유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광복절을 지났다. 뭔가 차분하게 우리의 광복절을 기릴 수 있있다기 보단, 어수선하고 들썩이는 분위기가 더 주가 되었던 광복절이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분명해야한다. 이것이 어느 누구 혹은 어느 시기에 가볍게 바뀌고 달라지면 안 되는 것이다. 한 나라의 역사는 개인의 역사가 아니다. 국가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것이 우리가 방관하지 말아야 하는, 우리의 역사와 사회, 그리고 미래에 관심을 기울여야하는 이유일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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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짜리입니까
6411의 목소리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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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얼마짜리입니까 #6411의목소리 #창비 #서평단 #서평 #책추천

얼마짜리, 라고 말하는 순간 돈의 개념으로 '나'의 존재를 계산하게 된다. 세상에서 나의 존재를 돈의 액수로 평가받아야 한다면, 그렇다면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까. 혹은 적은 돈을 받는 일은 그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말이 되는 걸까. 무엇이든 돈으로 환산하여 평가하게 되는 순간, 심한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숫자라는 것이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정확한 계산, 딱 떨어지는 숫자 안에서 크고 작음에 따른 비교가 가능해진다는 것. 뚜렷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다른 숫자와의 상대적인 비교를 하고 또 당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돈의 문제라면 더욱 그래진다는 것이, 씁쓸하다.
일, 노동이라는 말을 우린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나의 일과 타인의 노동을 구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람을 부린다는 것, 혹은 고용한다는 것은 노동력만을 취하겠다는 뜻이 아닌, 그런 노동을 하는 사람까지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상식으로 여기는 사회가 되기에 우리 사회는 아직도 너무 먼 것인지.

그래서 나 이 말 꼭 하고 싶어요. 나, '메이드 인 베트남' 아니에요. 나는 '나'예요. 공짜로 돌릴 수 있는 기계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 잘 살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내 하루가, 내 삶이 '있는 그대로', 당신하고 똑같이 '잘 살고 싶은 사람'으로 대우받길 바라요.(126쪽)
나는 요즘 국회 앞 천막농성장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이 생활이 8년 째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고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노동삼권이 온전하게 보장될 수 있도록 싸울 것이다. 내가 일하던 일터로 다시 돌아갈 때까지.(240쪽)

온전하게 한 사람으로서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모두가 동일하게 갖고 있는 마음일 것이다. 자기효능감이라는 것이 결국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제대로 한 사람의 몫을 다 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이것이 기본적으로 갖춰졌을 때 자신을 자기가 결정할 수 있게 된다. 헌데 우리 사회는 타인의 효능감을 깎아내리고 그 자리에 자신의 이익을 집어넣는다. 이 책에 담긴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결코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데에 있지 않았다. 온전히 자신이 받았어야 하는 인정과 존중을 받지 못한, 지극히 당연한 것을 요구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과 힘을 쏟고 있었다.

사실, 지금 나는 끌어오르는 화를 참아가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온통 화가 나는 일들 투성이의 이 사회에 화가 나고, 온전히 제 몫의 당연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상황에 화가 난다. 웬만하면 살면서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요즘 들어 화가 나는 몇 지점들이 있는데, 이 책의 이야기들이 그런 지점들 중 하나이다. 흔히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면 좋겠다는 말을 종종 쓰게 되는데, 온통 상식이라고는 없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화가 안 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최종의 방식이 죽음이며, 이런 죽음 앞에서도 뻔뻔스러운 사회의 태도가 혐오스럽기도 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노동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생은 없다. 우리는 누구나 노동자다.' 양회동 열사 추모집회에서 그의 죽음에 관심을 호소하던 한 학생의 말입니다.(332-3쪽)

우린 모두 노동자다. 저 말에 동의한다. 어떤 것도 노동 없이 이 세상이 유지될 수 없다. 그 노동에 좋고 나쁨이나 가치가 있고 없음의 기준이란 없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너무 고전적인 명언이 있듯이, 어떤 노동도 그 노동의 의미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자칫 이 책을 읽기 전, 그렇다면 나는 얼마짜리일지에 대해 생각해볼 뻔했다. 이 사회의 논리에 아무 생각 없이 끌려갈 뻔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나의 노동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돈으로 판단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겨우 화를 누르고 도달한 결론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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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점의 시작
치카노 아이 지음, 박재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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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점의시작 #치카노아이 #책읽는수요일 #서평단 #서평 #책추천

다루기 쉽지 않은 소재를 다룬 소설이란 생각을 했다. 어떻게 이 이야기를 읽어나가야 할까 고민이 됐던 것이 사실이다. 흔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성매매. 누군가는 불쾌하다며 책을 덮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호기심에 책을 읽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불쾌함이나 호기심 말고, 좀 궁금했다. 과연 이 이야기에서 달리는 것은 무엇일까. 이 소설 속 인물들의 삶과 생각을 어떻게 읽어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이들이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관계가 궁금했다.

성매매와 관련한 도덕성을 이야기하려 든다면, 사회의 질서나 윤리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아마 비판 일색이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소설을 읽은 것이지 사회면 뉴스 기사를 읽은 것이 아니니, 소설로 접근해서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매춘부의 아들이어도 괜찮아."(26쪽)

엄마가 장기 매매 전화번호를 적어 가지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엄마의 선택과 삶을 어디까지 존중해줄 수 있을까. 어디까지가 이해의 부분이고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에서의 충돌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걸까?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나는 평생 이 상태로 지낼까?(59쪽)

자신이 하는 선택과 다른 이의 삶에 대한 나의 영향, 그리고 서로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지켜야하는 것들, 그 관계 안에서 거부할 수 없는 것들 등을 모두 고려한다면, 이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이 한 가지의 이유만으로 선택되고 나아가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다양한 관계와 영향이 맞물려 돌아가는 복잡함 속에서 누군가의 인생을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닐지.

나는 그저 내가 후우카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성매매 여성을 성 도구로만 보는 다케 같은 놈들과 다르다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할수록 내가 하고 싶은 말과는 더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초조함에 떠밀려 후우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이 엉겁결에 입 밖으로 나왔다. 입을 열 때마다 혀가 말라서 건조한 말만 튀어나왔고, 정말 하고 싶은 말과는 점점 더 멀어졌다.(156-7쪽)

어쩌면 이해의 영역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르다며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해하지 못함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진짜 가능한 것이긴 할까. 어쩌면 평생, 이해할 수 없으면서 이해할 수 있다는 말로 오히려 타인을 괴롭히는 것은 아닐지.

아, 그렇구나. 나는 계속 구해달라고 말하고 싶었구나!
하지만 그 말을 할 자격이나 상대도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엄마를 구해주세요.(214-5쪽)

살고 싶어서, 살려달라고 세상에 매달리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세상을 향해 자신을 도와달라고, 구해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이들을 향해 어떤 관심이나 눈길, 손길도 주지 않는다. 그러니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말해야하는지도 모른 채 지금껏 이대로 살아왔던 것이다.

"뭔가 궁지에 몰려서 종이학을 펼칠 때, 거기에 있는 게 희망이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어요."
리코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내 손바닥에 있는 메모지를 바라볼 뿐이었다.(286-7쪽)

이 종이학이 '시작점의 시작'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는 평범한 희망의 메시지 말고, 딱 그 누군가의 한 사람에게만 도달할 수 있는 종이학이면,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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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버리지 않는 빵집 - 환경에 진심인 제빵사의 도전기
이데 루미 지음, 아키쿠사 아이 그림, 강물결 옮김 / 다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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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버리지않는빵집 #이데루미_글 #아키쿠사아이_그림 #다무라요지_감수 #강물결_옮김 #다봄 #서평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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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버리는 지도 몰랐다. 하루가 지나고 팔리지 않은 빵을 버린다는 것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느 요식업이더라도 음식은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있고 그 안에 유통이 안 되면 폐기하는 것이 맞기도 하다. 그게 빵집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팔리지 않은 빵을 버리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듯도 보였다. 하지만, 버려진다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니까. 많은 분야에서 버려지는 쓰레기 문제는 우리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그러니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환경은 여러 면에서 경제적인 요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수요와 공급이 맞아야 하고, 소비가 있어야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욕심은 더 많은 빵을 만들어 파는 것에 목적을 둘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의 욕심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팔리지 않는 빵이 생기고, 또 남은 빵은 버려지고, 쓰레기는 쌓이고, 쌓인 쓰레기가 지구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이 악순환은 무한 반복될 것이다.
헌데 여기서 또 하나, 단순히 쓰레기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빵이라는 것도 결국은 '생명'을 먹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먹기 위해 생명을 이용하지만, 그 생명을 다 먹지 않고 다시 쓰레기로 버린다는 것은, 그 생명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행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에 대한 존중의 의미에서 또한 다 소비하지 않으면서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것이 된다. 이건, 단순히 쓰레기가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배가 부르면 남은 음식을 쉽게 버리는 일본인과 달리 유목민들은 자신들이 소중히 기른 양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우리가 먹는 것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유목민에게 먹는다는 것은 다른 '생명'을 얻는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니 어떻게 '생명'을 낭비할 수 있겠는가.(...) 대학에서 S 교수가 '환경 문제는 사람이 자신들의 욕망에 제동을 걸지 않는 한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무라는 '제동을 건다'는 말의 의미가 유목민의 이러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지, 이것이야말로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지속가능한 생활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55-6쪽)

몽골의 유목민들이 갖고 있는 생명에 대한 인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양으로 빵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엄연히 식물로 생물이고 그런 생물을 이용하여 사람의 먹거리를 마련하게 된다면, 그 생물 또한 생명으로서 함부로 버려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의 욕망'이 문제가 되고, 그 욕망을 제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환경 문제에 제대로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문제는 제대로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말을 종종 함께 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늘 발전을 향해 나아갔으며, 그 발전은 환경 문제와는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다. 환경을 위해서라면 지금 당장 발전을 멈춰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 사회는 이미 발전의 톱니바퀴에 올라가 있고, 그 바퀴를 멈추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발전은 그대로 하면서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까. 나는 부정적이다. 발전을 지속하면서 환경을 생각할 수는 없다. 답을 찾기 어려운 이 질문들만 쌓여가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다무라 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어쩌면 이것이 찾기 어려운 질문과 문제들의 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환경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생각만 할 뿐 그 다음이 없는 것이 문제일 듯.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실천하는 것.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행동하고 움직이는 것. 생각만 하지 말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
이 책을 읽으면 다시 다짐하게 된다. 멈추지 말자고.

덧-
환경에 진심인 빵집 투어,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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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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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여자의여덟가지인생 #이미리내 #위즈덤하우스 #서평단 #서평 #책추천

우리의 긴 역사의 서사를 읽은 기분이다. 한 여자의 삶이지만 이건 그냥 한 개인의 삶은 아니었다. 우리 역사가 만들어놓은 큰 굴곡이었고, 그 굴곡을 살아냈어야만 했던 한 인간의 삶이었고, 특히 여자였기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아픔의 시간들이었다. 긴 이야기였지만 단 한 순간도 허투루 읽어낼 수가 없었다. 읽는 내내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읽어냈어야 했고, 다 읽은 후 한참 이 소설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그냥 단순히 잘 읽었다, 하고 책을 덮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읽은 후에도 내내 남는 소설이었다.

"노예, 탈출 전문가, 살인자, 테러리스트, 스파이, 연인, 그리고 어머니."(31쪽)

이 일곱 단어에 마지막 여덟 번째 단어를 붙인다면 무엇이 적절할까. 이 모든 삶을 다 살아낸 후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는 여자의 삶을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그냥 그건 자기 자신이지 않을까. 온전히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나'의 삶을 살 수 있던 유일한, 아주 잠시의 시간이지 않았을까. 물론, 이 시간도 숨어 살아야만 했고,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위장했어야만 했던 삶이었지만, 그래도 삶의 마지막 순간,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회고할 수 있었고,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잠시는 오롯이 '나'로 살 수 있었던 시간이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자신의 뜻에 따라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과연, 이 여자의 삶은 끌려다닌 삶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이끌고간 삶이었을까. 우리의 역사 안에서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이 것만은 확실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우리의 역사가 그랬다. 지금 나는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때의 상황은 절대 쉽게 말할 수 없는,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살기 아니면 죽기의 순간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으며 생존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삶이었다. 우리의 역사가 평온했다면 이런 삶을 살 필요가 있었을까. 우리의 정치적 이념적 갈등이 첨예하지 않았다면, 이 여자의 삶이 이리도 험난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지만 늘 끌려다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대범하고도 강인한 선택을 했으며, 그 선택을 향해 나아가는 힘 또한 갖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도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정신 바짝 차리고 몸을 곧추 세웠던 인물이었고, 자신이 가야할 길이 어느 길인가를 스스로 알고 나갈 줄 도 안 여자였다. 누구에게 기대지도 않았다. 누굴 쉽게 믿을 수도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저 자기 자신만을 믿고 앞만 보고 나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니, 뒤를 볼 겨를 없이 계속 나아가는 것이 최선을 수밖에 없었던 인생이었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 바로 그런 삶을 살아야만 했던 '여자'였다는 거다. 우리 역사 앞에서 여자가 겪는 삶의 험난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여자의 삶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일들이 많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다 남자에 의해 이루어진 일들이라는 거다. 아버지로부터, 군인으로부터...... 우리에게 있어 여자의 삶은 늘 안전하지 못했고 보호받지 못했다. 함부로 하기 쉬웠고 각종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었으며, 또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항할 수 없었다. 그럴 힘이 없었다. 하지만 이 여자는 그 와중에 좀 달랐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냐고 물었더니 네 명이라고 대답했다.(...)
"세 명은 군인이었지. 한 명은 가족이고." 그녀가 '가족'이라는 단어에서 조금 머뭇거렸다.(343-4쪽)
"모두 전쟁 중에 일어난 일이야."(...)
"그자들은 전범이었어. 그자들은 거짓말을 했어. 여자들을 납치해서 노예로 삼았지. 너무 많은 어린 여자들이 죽었어. 난 여자들과 나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단 세 명의 군인을 죽였을 뿐이야."(345쪽)

선택해야했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스스로 선택했어야했다. 물러날 곳도 없었고 또한 멈출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스스로 자신을, 여자를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내 남편과 딸이 아는 이름을 알고 싶다고? 그건 용말이야. 하지만 그것도 내 진짜 이름은 아니야. 뭘 알고 싶은 건가? 나는 여러 이름으로 살았어. 영어 이름 데버라. 일본 이름 간요. 대체 뭘 기대한 건가?"(377쪽)

최 선생으로 불리고 묵 할머니로 살았던, 이 여자의 이름은 뭘까. 하지만 진짜 이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이 여자는 다른 이름으로 평생을 살았다. 그 평생의 다른 이름이 가짜라고 해서, 그 인생이 가짜가 되지 않을 거라면, 진짜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이미 이 여자의 인생은 다양한 많은 이름들로 채워져 있으며, 그 인생이 곧 이 여자의 진짜 삶이라면 이 모든 이름이 이 여자의 진짜 이름이기도 할 것이다. 또 다른 이름을 더 찾을 필요는 없을 듯. 이만큼으로도 충분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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