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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점의 시작
치카노 아이 지음, 박재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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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루기 쉽지 않은 소재를 다룬 소설이란 생각을 했다. 어떻게 이 이야기를 읽어나가야 할까 고민이 됐던 것이 사실이다. 흔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성매매. 누군가는 불쾌하다며 책을 덮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호기심에 책을 읽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불쾌함이나 호기심 말고, 좀 궁금했다. 과연 이 이야기에서 달리는 것은 무엇일까. 이 소설 속 인물들의 삶과 생각을 어떻게 읽어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이들이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관계가 궁금했다.
성매매와 관련한 도덕성을 이야기하려 든다면, 사회의 질서나 윤리적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아마 비판 일색이어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소설을 읽은 것이지 사회면 뉴스 기사를 읽은 것이 아니니, 소설로 접근해서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매춘부의 아들이어도 괜찮아."(26쪽)
엄마가 장기 매매 전화번호를 적어 가지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엄마의 선택과 삶을 어디까지 존중해줄 수 있을까. 어디까지가 이해의 부분이고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에서의 충돌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걸까?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나는 평생 이 상태로 지낼까?(59쪽)
자신이 하는 선택과 다른 이의 삶에 대한 나의 영향, 그리고 서로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지켜야하는 것들, 그 관계 안에서 거부할 수 없는 것들 등을 모두 고려한다면, 이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이 한 가지의 이유만으로 선택되고 나아가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다양한 관계와 영향이 맞물려 돌아가는 복잡함 속에서 누군가의 인생을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닐지.
나는 그저 내가 후우카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성매매 여성을 성 도구로만 보는 다케 같은 놈들과 다르다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할수록 내가 하고 싶은 말과는 더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초조함에 떠밀려 후우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이 엉겁결에 입 밖으로 나왔다. 입을 열 때마다 혀가 말라서 건조한 말만 튀어나왔고, 정말 하고 싶은 말과는 점점 더 멀어졌다.(156-7쪽)
어쩌면 이해의 영역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르다며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해하지 못함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진짜 가능한 것이긴 할까. 어쩌면 평생, 이해할 수 없으면서 이해할 수 있다는 말로 오히려 타인을 괴롭히는 것은 아닐지.
아, 그렇구나. 나는 계속 구해달라고 말하고 싶었구나!
하지만 그 말을 할 자격이나 상대도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엄마를 구해주세요.(214-5쪽)
살고 싶어서, 살려달라고 세상에 매달리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세상을 향해 자신을 도와달라고, 구해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이들을 향해 어떤 관심이나 눈길, 손길도 주지 않는다. 그러니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떻게 말해야하는지도 모른 채 지금껏 이대로 살아왔던 것이다.
"뭔가 궁지에 몰려서 종이학을 펼칠 때, 거기에 있는 게 희망이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어요."
리코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내 손바닥에 있는 메모지를 바라볼 뿐이었다.(286-7쪽)
이 종이학이 '시작점의 시작'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는 평범한 희망의 메시지 말고, 딱 그 누군가의 한 사람에게만 도달할 수 있는 종이학이면,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