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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짜리입니까
6411의 목소리 지음, 노회찬재단 기획 / 창비 / 202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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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짜리, 라고 말하는 순간 돈의 개념으로 '나'의 존재를 계산하게 된다. 세상에서 나의 존재를 돈의 액수로 평가받아야 한다면, 그렇다면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까. 혹은 적은 돈을 받는 일은 그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말이 되는 걸까. 무엇이든 돈으로 환산하여 평가하게 되는 순간, 심한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숫자라는 것이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정확한 계산, 딱 떨어지는 숫자 안에서 크고 작음에 따른 비교가 가능해진다는 것. 뚜렷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다른 숫자와의 상대적인 비교를 하고 또 당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돈의 문제라면 더욱 그래진다는 것이, 씁쓸하다.
일, 노동이라는 말을 우린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나의 일과 타인의 노동을 구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람을 부린다는 것, 혹은 고용한다는 것은 노동력만을 취하겠다는 뜻이 아닌, 그런 노동을 하는 사람까지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을, 상식으로 여기는 사회가 되기에 우리 사회는 아직도 너무 먼 것인지.
그래서 나 이 말 꼭 하고 싶어요. 나, '메이드 인 베트남' 아니에요. 나는 '나'예요. 공짜로 돌릴 수 있는 기계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 잘 살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내 하루가, 내 삶이 '있는 그대로', 당신하고 똑같이 '잘 살고 싶은 사람'으로 대우받길 바라요.(126쪽)
나는 요즘 국회 앞 천막농성장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이 생활이 8년 째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고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노동삼권이 온전하게 보장될 수 있도록 싸울 것이다. 내가 일하던 일터로 다시 돌아갈 때까지.(240쪽)
온전하게 한 사람으로서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모두가 동일하게 갖고 있는 마음일 것이다. 자기효능감이라는 것이 결국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제대로 한 사람의 몫을 다 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이것이 기본적으로 갖춰졌을 때 자신을 자기가 결정할 수 있게 된다. 헌데 우리 사회는 타인의 효능감을 깎아내리고 그 자리에 자신의 이익을 집어넣는다. 이 책에 담긴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결코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데에 있지 않았다. 온전히 자신이 받았어야 하는 인정과 존중을 받지 못한, 지극히 당연한 것을 요구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과 힘을 쏟고 있었다.
사실, 지금 나는 끌어오르는 화를 참아가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온통 화가 나는 일들 투성이의 이 사회에 화가 나고, 온전히 제 몫의 당연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상황에 화가 난다. 웬만하면 살면서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요즘 들어 화가 나는 몇 지점들이 있는데, 이 책의 이야기들이 그런 지점들 중 하나이다. 흔히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면 좋겠다는 말을 종종 쓰게 되는데, 온통 상식이라고는 없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화가 안 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최종의 방식이 죽음이며, 이런 죽음 앞에서도 뻔뻔스러운 사회의 태도가 혐오스럽기도 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노동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생은 없다. 우리는 누구나 노동자다.' 양회동 열사 추모집회에서 그의 죽음에 관심을 호소하던 한 학생의 말입니다.(332-3쪽)
우린 모두 노동자다. 저 말에 동의한다. 어떤 것도 노동 없이 이 세상이 유지될 수 없다. 그 노동에 좋고 나쁨이나 가치가 있고 없음의 기준이란 없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너무 고전적인 명언이 있듯이, 어떤 노동도 그 노동의 의미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자칫 이 책을 읽기 전, 그렇다면 나는 얼마짜리일지에 대해 생각해볼 뻔했다. 이 사회의 논리에 아무 생각 없이 끌려갈 뻔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나의 노동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돈으로 판단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겨우 화를 누르고 도달한 결론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