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명은 비밀입니다 창비청소년문학 129
전수경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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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다 읽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있다. 과학, 최첨단, 기술, AI, 미래, 새로운 세상 등 우리가 흔히 요즘 많이 언급하게되는 사회의 변화 속에서도 단연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 사람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란 생각을 했다. 어떤 발전된 미래 과학 기술보다도 더 중요하고 값진 것이 사람이고 사람 간의 관계이고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생각. 이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뭉클하여 울컥한 장면이 있었다. 왜 이렇게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아마도 소중한 아이들이 다치는 것이 이젠 너무 싫은 개인적인 감정이 이 부분과 만나면서 나타난 반응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들이 다치고 상처받고 아픈 게 참 싫다. 정말 싫다. 아이들은 그저 제 양껏의 기분과 생각으로 충분히 이 시기를 만끽하며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나는 엎드려 기도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 해 보는 기도였다. 윤아를 살려주세요. 부탁입니다. 제발, 윤아를.(...)
"들었지? 윤아 숨 쉰다고. 아까 소방대원들도 그랬어. 윤아 살았다고. 그러니 정신 차려."
그제야 먹먹했던 귀가 서서히 뚫리며 주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벤치 앞 풍경도 흑백에서 천연색으로 바뀌고 상우의 움직임도 제 속도로 보였다. 윤아가 숨을 쉰다는 소식에 모든 감각 기관이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왔다.(162쪽)

먹먹해지며 눈앞이 뿌얘지는 경험을 했다. 아, 다행이다. 이 아이를, 이 아이들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속으로 되뇌었던 것 같다. 그리고나서 뒤에 생각해보니, 이 감사 인사는 소설가에게 하는 게 제일 맞겠다는 현실감각이 돌아오긴 했다.

희진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 아이가 살아가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남다른 가정사가 있고 어린 시절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으며 공부에 대한 강박도 있다. 어찌보면 어린 시절부터 어른스러워야만 했던 부담으로 내내 불면에 시달리고도 있다고 보여진다. 그럼에도 이 아이는 단단해 보였다. 어떤 부분에서 이런 단단함이 만들어진 것일까 궁금했다.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답은 명확했다. 바로 희진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 있었다. 텔레비전 앞을 벗어나지 않고 있기는 하지만 이 세상을 절대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분명한 엄마, 그런 엄마와 희진을 물질적으로 그리고 분명 심적으로도 보살펴주고 계신 할아버지, 공부 잘 하는 아이니 더 신경을 써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종종 쓴소리와 격려를 해주시는 선생님.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충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늘 희진이 옆을 지켜주는 상우와 수행평가와 성적을 과감히 포기하고서라도 지켜주고 싶은 윤아까지.
어떻게 보면 희진이는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주변 사람들이 희진이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며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덕분에 희진이는 지금의 단단한 모습과 생각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원동력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꿈이나 혹은 자신만의 철학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와 반드시 지키겠다고 한 약속이거나 타인의 기대로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이 또한 누군가의 삶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런 연결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가를 알고 세상을 형성해내가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에서는 희진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연결, 그리고 그런 연결이 또 다른 연결로 이어지고 그런 선한 영향력이 더 크게 확장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망이 만들어내는 효과는 무척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 것이기도 했다.

"제갈희진! 그만해. 네가 뭔데, 무슨 자격으로 엄마 일에 참견하고 함부로 그만두라는 거야. 네가 반대해도 어쩔 수 없어. 엄마는 일을 계속할 거고, 두 세계를 동시에 살 거야. 네가 일을 하든 말든 그건 나랑 상관없어."(169쪽)

하지만 절대 그런 연결망이 서로에 대한 구속이나 강요는 아니었다. 이 지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찌보면 엄마라는 딸에게 모든 것을 맞춰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는 살짝 통쾌함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관계란 이런 것이지 않을까. 서로 연결되어 안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그 안에서 좌우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관계에서 정말 중요한 점이지 않을까.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살아가며, 잠시 중요한 세계를 공유할 뿐이다.(...) 나는 누구의 세계나 딸이 아닌 오롯한 나이며, 언젠가는 엄마를 떠나 나만의 세계로 힘써 날아갈 것이다.(192쪽)

그래서 나는 엄마도 딸 희진이도 모두 응원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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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걸 은그루 웅진책마을 121
황지영 지음, 이수빈 그림 / 웅진주니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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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걸은그루 #황지영_글 #이수빈_그림 #웅진주니어 #웅진주니어티테이블 #서평 #책추천

나에게도 블랙홀이 생긴다면?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아마 나는 아영이와 같을 것 같다고 혼자 생각했다.

아이들이 너노나도 아연이에게 말을 걸고 칭찬을 늘어놓았다. 정작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아연이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갑자기 구름처럼 몰려든 아이들 때문에 겁을 먹은 듯했다.(170쪽)

딱 내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런 당황스러움에 놓이게 되지 않을까. 물론 시하와 같은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아이들에게는 블랙홀이 간절하게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고 그런 시선에 더 많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시하의 간절한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어야만 빛나는 것일까?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아야 하고 뽑혀야만 나를 증명해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이야기를 읽으며 제일 많이 하게 되는 생각인 것 같은데, 과연 그루는 시하에 비해 못난 아이인 것일까? 시하는 잘 하는 아이고 그루는 못 하는 아이라는 이분법적으로만 생각하고 결론내릴 수 있는 것일까? 이 또한 그렇지 않다. 이유는, 누구나 자신이 빛나는 지점은 분명 있는 법이니까. 설사 그 빛남이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아도, 자신 스스로가 그 지점을 잘 알고 있기만 하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것이니까.

"아닌데? 너, 오늘은 그냥 은그루잖아."
그냥 은그루? 그루는 화가 벌컥 났다.(...)
다음 수업 시간 내내 그루는 아까 왜 화가 났는지 곱씹었다. '그냥 은그루'는 욕도 아니고 나쁜 말도 아니었다. 그리는 그냥 은그루가 맞았다. 그런데도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나를 나라고 했는데 왜 기분이 나쁘지?'(99쪽)

어쩌면 평범하다는 말, 그냥이라는 말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남들과 달라야하고 돋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면 계속 남들의 시선에 맞는 기준을 만들어놓고 그 기준에 맞혀서만 살고자 아등바등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남의 시선에만 기준을 맞추고 살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하기는 할까 싶은 것이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자신만의 기준으로 남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어른이 된 나의 입장에서도 참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하며 아침 출근 준비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기도 하니까. 우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나 절대적으로 나의 잣대로만 나로 살아내기가 참 어렵다. 그러니 이런 그루의 마음이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했을 때 행복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가를 스스로 알아채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그루와 친구들은 자신들이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가를 잘 알아챈 것이고, 그 점이 이 친구들이 오히려 더 돋보이고 빛날 수 있었던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그만 떨어. 우리보다 춤 잘 추는 애들은 많아. 다 알고 있잖아? 하지만 우리 춤은 우리가 제일 잘 춰. 우리 춤이니까!"(152쪽)

라희가 참 멋진 아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말로 아이들에게 힘을 주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안내해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참 든든한 친구들이 함께 했기 때문에 울퉁불퉁의 춤 공연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그 상황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 잘 해내고 또 그렇게 해내면서 깨닫고 성장하게 되는 거구나 싶었다. 왜 아이들에게 많은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는지, 이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 알 수 있었다.

그루는 다시 무대에 올라가 응원을 받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일단 스스로를 응원하며 무대를 향해 차근차근 다가가 볼 생각이었다. 한 발 한 발 자기의 발걸음으로, 울퉁불퉁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198쪽)

아이들은 모든 능력을 다 갖고 있는 것 같다. 누가 시키거나 가르쳐주지 않아도 제 스스로 할 줄 아는 재능을 모두 갖고 있지만, 다만 그런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 보여주지 않을 뿐인 것이다.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모두 그루, 라희, 아연, 세완과 같이 자신이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이고 싶은지를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 마음 속 숙제를 하나 갖게 된 느낌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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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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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모국어 #권여선 #한겨레출판 #하니포터9기 #서평단 #서평 #책추천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술꾼들의 모국어라니. 모국어란, '자기 나라의 말. 주로 외국에 나가 있는 사람이 고국의 말을 이를 때에 쓴다.' 혹은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거에서, 자기 민족의 언어를 국어 또는 외국어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술꾼들에게는 따로 술의 나라에서 쓰는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술의 민족만의 언어를 상대적으로 지칭하는 말이 있다는 뜻이었다. 아, 너무 궁금했다. 왕년에 '주당'이라 불렸던 나로서는 관심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었다. 술과 술자리, 그리고 안주에 대해서는 나도 나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작가에게 난 상대도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고수 앞에 하수도 안 되는. 안주에 대한 철학도 부족했고, 지금도 여전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작가 앞에 명함도 못 내밀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미 손 들어 항복한 채 작가의 고수의 자질을 따라가며 감탄만 할 따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작가만큼이나 먹는 것에 진심이지 않다. 무언가를 먹게 되면 먹는 것이고, 또 딱히 먹지 못할 경우라면 못 먹어도 하는 수 없다는 생각이 더 크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 같지만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나고, 현재는 그렇다. 그러니 작가의 음식(아니, 안주)에 대한 철학에 대해 그저 놀라며 따라 읽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느낀 것이 있는데, 난 작가만큼 먹는 것에 부지런하지 못하다. 솔직히 어느 시점 이후부터 먹는 것이 귀찮고 또한 먹는 것을 준비하는 것이 무척이나 귀찮아 최대한 조리법을 단순화하고 빠르고 간편하게 후딱 해치우는 방식으로 의식주의 '식'을 해결하고 있는 중이다.

공부와 음주의 공통점이 있다면 미리 미리 준비해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아니,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118쪽)

맞는 말이기도 하다. 뭐든 부지런히 미리 준비해야 결과가 좋아진다. 그래서 작가는 늘 언제나 술과 함께 할 안주를 상시 준비해놓는다. 말로는 별로 어렵지 않다고 한다. 마치 이 글대로만 하면 가볍게 뚝딱뚝딱 몇 번으로 훌륭한 안주가 짜잔, 하고 만들어진다는 거다. 하지만 안다. 이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실제 여러 번 해보면 쉬워질 수도 있지만, 당장에 그렇게 할 마음을 먹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마음을 먹지 않으면 뭐든 안 될 일인데, 하물며 이리도 귀찮은 안주 준비가 쉬울 리가 없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존경스러울 정도다.

마지막으로 게다리를 넣어 구수한 단맛이 도는 무된장국을 한술 떠먹는다. 그러면 내 혀는 단풍잎처럼 겸허한 행복으로 물든다.(152쪽)

누군가 지인이 말했다. 먹는 즐거움을 위해 사람은 사는 것이 아니겠냐고. 많이 먹으면 맛있지 않다고. 적게 먹으며 각 맛을 음미하는 즐거움이 있는 법이라고. 어쩌면 작가가 말하는 저 '행복'의 감정이 이런 먹는 즐거움과 비슷한 말이지 싶다. 먹는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어찌보면 참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어쩌면 매번 먹고 싶은 것이 딱딱 떠오르냐고. 그랬더니 상대 배우가 말했다. 악상 같은 거라고. 그때그때 먹고 싶은 것이 떠오른다고. 이 대사들을 들으며 재밌다고만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배우가 바로 이런 즐거움을 스스로 잘 만들어내는 사람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 매우 거창하지 않아도 되는 법인데. 이렇게 내가 가진 시간을 채우는 술과 안주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법인데. 음식과 행복 사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이 책의 음식(혹은 안주) 중 공감이 가는 음식이 있었다. 바로 '마른 오징어 튀김'. 이건 외할머니와 엄마로 이어지는, 대를 이은 추억의 음식이다. 작가와 달리 다행히 어린 시절 마당이 있는 집에서 자랐다. 늘 튀김 요리 장소는 마당이었다. 오징어를 충분히 물에 불리고 불은 오징어에 튀김옷을 입혀 한번, 또 한번을 튀겨내면 바삭아삭한 맛있는 튀김이 완성되었다. 주변에 기름이 튀는 부담 없이 마음껏 조리할 수 있었고, 그런 마당의 엄마 옆에 쭈그리고 앉아 튀김을 하나씩 미리 집어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느 날 큰 기름방울이 튀어 볼에 가벼운 화상을 입은 어머니는 그것을 핑계로 마른 오징어 튀기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다시 마른오징어를 구워 먹는 원시시대로 돌아갔다.(193쪽)

아쉬웠겠다. 마른 오징어 튀김을 먹어보면 그 매력에 금방 빠질 수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보통 귀찮은 것이 아니니, 나도 알고는 있지만 한번도 해본 적은 없는 음식이다. 물론 누가 해준다면 그 옆에서 날름날름 받아먹을 수는 있겠지만(물론, 지금은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결심 중이기는 하지만).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해줬던 것처럼, 엄마가 우리에게 해줬던 것처럼,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기도 하다. 꼭 술과 함께가 아니어도 말이다.

가끔 질문을 받는다.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그럴 때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신없는 말투로 대답한다. 풀때기? 작가는 각 계절마다 분명한 좋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나는 그런 분명함이 없다. 자신도 없고 또 부지런할 생각도 없다. 그래서 이런 작가가 더 부러웠다. 어떤 음식을 그것도 술과 어떻게 함께해야 하는지에 소신이 분명했으니까.

술이 뭐 어때서? 개인적으로 작가가 술에 대한 사랑을 내내 작품에 써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다. 좋은 것이 있고 그 마음이 충분하다면, 그 충분한 마음을 담아 좋다고 써 주는 글을 읽고 싶어진다.
나도 월급날마다 먹는 좋아하는 음식 하나 정해봐야지. 그 음식의 맛과 기억으로 행복해질 수 있도록...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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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 소로 - 일하고, 돈 벌고, 삶을 꾸려 가는 이들을 위한 철학
존 캐그.조너선 반 벨 지음, 이다희 옮김 / 푸른숲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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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의소로 #월든 #헨리데이비드소로 #푸른숲 #존재가 #조너선반벨 #서평단 #서평 #책추천

우연히 최근 소로와 관련한 책을 연달이 두 권 읽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일터의 소로>. 다른 책에서도 소로와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쉽게 공감이 잘 가지는 않았던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좀 느낌이 달랐다. 소로에 대해 혹시라도 잘못 오해할 수도 있을 지점을 오히려 콕 집어주면서 소로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읽어나갈 수 있게 해 주는 책이었다. 가만히 읽으며 서로의 이야기 속에서 나의 일을 생각하게 만든다고나 할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소로를 비교하며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나는 과연 '나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같은.

소로는 일터에서 타성에 젖는 기분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정신이 멍해지는 일들을 워낙 많이 했기 때문은 아니다. 삶 내부의 리듬, 특히 자기 자신의 리듬에 거의 초자연적으로 민감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일과 삶이 그 산뜻함과 의미를 잃어 가기 시작할 때만큼은 민감하게 포착했다.(146쪽)
나의 삶에서 내가 하는 일의 주인이 되고 나의 직업 인생을 내 뜻대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요청은, 사무실에서 이기적이고 막되어 먹은 사람이 되어도 괜찮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내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229쪽)

'나'라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내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일에서의 의미와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 이런 책을 우리가 꾸준히 읽으며 정신을 다잡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타성이라는 것도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타성에 젖었다는 것은 오히려 지금의 일에 충분히 익숙해졌다는 뜻이니, 어쩌면 일이 쉬워지고 편안해졌음을 말하는 다른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타성을 경계하며 숲을 떠난 소로는 이런 익숙함을 쉽게 외면할 수 없는 우리에게 좋은 지적을 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또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는 얼마나 강한 타성에 이끌려 하루하루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의 타성을 무엇이며 그 타성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해야 할까, 혹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소로의 이웃은 정확히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이들은 미국 내 인종과 노동의 험난한 역사를 몸으로 보여 주는 사람들이었다.(...) 현대 사회의 풍요와 타락의 이면에는 늘 이런 사람들이 있다. 부도덕한 노동을 지독하게 하는 시스템의 부수적인 피해자들이다.(162-163쪽)

노예제에 반대하고 사회에 기꺼이 자신의 불복중을 선언하고 이를 실천하고 몸소 보여주기도 했던 소로다. 사회와 타협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소신과 의지를 지켜나가려는 의지를 아주 작은 개인의 모습으로나마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우리 사회에는 부당하고 부도덕적인 일들이 많고 그런 힘을 당하는 소수의 약자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런 이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일이라고 한다면, 사는 일이 사실은 가장 중대하고 어려우면서도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일 것이다. 그런 일에 있어서 자신의 소신을 지켜 나갈 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하고도 값진 것일까. 특히 그런 시선이 자신에게만 있지 않고 그 밖으로도 뻗어 있다면, 그야말로 제대로 자신의 삶을 사는 일에 노력 중인 것이란 생각을 했다.

단지 "생계를 유지"하는 삶과 자기 인생을 진정으로 살아가는 삶 사이에는 차이가, 확실한 간극이 있다.(...) 인간의 삶이 귀중한 이유는 덧없고 찰나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파상풍으로, 혹은 결핵으로, 혹은 독감으로, 혹은 팬데믹으로 죽을 수 있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끔찍하게 짧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좋다.(38쪽)

내 인생을 진정으로 살아가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이 짧은 삶의 시간 안에서 어떤 일들에 골몰해야 진정 나의 삶과 내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생각을 더듬어가고 나의 일과 삶을 고민하고 답을 찾으려는 나를 발견했다. 천천히 책을 음미하듯 각 부분에서 떠오르는 질문들에 잠시 멈춰 나의 생각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도 새삼 느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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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꽃 - 무작정 꽃집에 들어선 남자의 좌충우돌 플로리스트 도전기
이윤철 지음 / 문학수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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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스트. 지금까지 나도 꽃집 하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생각보다 꽤 많은 곳에서 꽃을 만났었는데, 그 꽃들을 다루는 누군가가 있었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이제서야 하게 됐다. 누군가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이 세상엔 무척 많고, 그 많은 일들 중 꽃은 결국 플로리스트의 손을 거쳐 우리 눈앞에 작품으로 펼쳐지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 이 책을 통해 플로리스트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다.

꽃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 때의 기분과 감정은 어떤 단어로도 명쾌하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7쪽)
'그래, 나 플로리스트지.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고 있는 거 맞지?' 하며 너무 익숙해져서 잊고 있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게 되는 것이다.(19쪽)

저자가 얼마나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보통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그것이 제일 큰 성공이지 않나. 자신의 시간 중 제일 많은 시간을 일을 하며 보내는 우리에게, 그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거니까. 특히 저자가 자신이 좋아하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과정을 "어쩌다 보니"로 설명했지만, 오히려 저자는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잘 알고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무척 당당하고 자신감있게.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것인지, 자신의 일을 갖고 있으면서도 내내 고민하고 답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저자는 굉장히 빠르게 자신을 잘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어쩌다 보니'라는 자세야말로 직업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원대한 목표나 절대적 목적으로 우리 모두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엔 너무나 많은 제약이 뒤따른다.(...) 사실 왜 그 선택을 했느냐가 아니라 선택한 이후 지금까지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왔는지가 중요한 게 아닌가?(78쪽)

이 말에 동의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의 직업을 어떻게 하다 갖게 되었냐고 물으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대답할 것이다. "어쩌다 보니"라고. 나에게도 물으면 그렇게 대답하기가 쉬울 것 같다. 정말 너무나 하고 싶어서 힘들여 노력하고 달성한 쾌감과 성취감을 갖고 내 일을 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어쩌면, 직업을 선택하게 되는 그 당시에는 분명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고,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필요가 있었겠지만, 수십년이 지나 과거의 나를 들여다보면 어쩌다 보니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되었다는 마음이 제일 먼저 들긴 하니까. 선택 이후의 그 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것이 맞는 것 같다.

플로리스트는 꽃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만난다. 화가 나거나 불쾌한 상태에서 꽃을 사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107쪽)

헌데, 이 문장을 읽으며 문득 생각했다. 화가 나거나 불쾌한 상태에서 꽃을 사볼까. 내 돈으로 직접 꽃을 사서 그 꽃을 보면, 화와 불쾌감을 좀 해소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목적으로 꽃을 이용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겠지. 뭔가 기분이 별로일 때 꽃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문득 해봤다.

그런데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았거나 줄기에 이파리가 달린 채 꽃병에 꽂힌 꽃을 보면 마음이 몹시 불편하다. 들어오는 입구에서부터 그 모습을 보고 나면 상대방과의 대화나 식사에 집중을 못 하고 마음은 온통 그 꽃에게로 다가가 있다.(149-150쪽)

이 장면에서 웃었다. 어쩔 수 없는 직업병. 나도 이와 비슷한 직업병을 갖고 있어서 이 마음을 잘 안다. 우리 눈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이 더 확대되어 잘 보이는 법이니까. 너무 잘 알아서 차마 그냥 넘길 수가 없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수정을 해야 마음이 편한. 이건 어쩔 수 없는 직업인으로서의 숙명이지 않을까 싶다.

필요 이상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에는 그만큼의 고통과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니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에겐 특별한 기쁨과 슬픔을 능숙하게 조절할 줄 아는 기술이 필요한 것 같다.(166쪽)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모든 것이 다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은 일이고, 특히 저자의 말대로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서는 쉽지 않은 고통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을 감수할 수 있어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쁨과 슬픔을 능숙하게 조절할 줄 아는 기술"이라는 말이 나에게도 필요한 말이지 않나 생각했다. 나도 내 일을 좋아하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으니까. 완급 조절의 노련미가 필요할 듯.

플로리스트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직업과 관련해서는 결국 직업인으로서 나의 직업을 대입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나의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일을 대하고 있는지, 과연 나는 나의 일에서 행복한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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