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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명은 비밀입니다 ㅣ 창비청소년문학 129
전수경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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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다 읽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있다. 과학, 최첨단, 기술, AI, 미래, 새로운 세상 등 우리가 흔히 요즘 많이 언급하게되는 사회의 변화 속에서도 단연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 사람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란 생각을 했다. 어떤 발전된 미래 과학 기술보다도 더 중요하고 값진 것이 사람이고 사람 간의 관계이고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생각. 이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뭉클하여 울컥한 장면이 있었다. 왜 이렇게 이 장면이 인상적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아마도 소중한 아이들이 다치는 것이 이젠 너무 싫은 개인적인 감정이 이 부분과 만나면서 나타난 반응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들이 다치고 상처받고 아픈 게 참 싫다. 정말 싫다. 아이들은 그저 제 양껏의 기분과 생각으로 충분히 이 시기를 만끽하며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나는 엎드려 기도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 해 보는 기도였다. 윤아를 살려주세요. 부탁입니다. 제발, 윤아를.(...)
"들었지? 윤아 숨 쉰다고. 아까 소방대원들도 그랬어. 윤아 살았다고. 그러니 정신 차려."
그제야 먹먹했던 귀가 서서히 뚫리며 주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벤치 앞 풍경도 흑백에서 천연색으로 바뀌고 상우의 움직임도 제 속도로 보였다. 윤아가 숨을 쉰다는 소식에 모든 감각 기관이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왔다.(162쪽)
먹먹해지며 눈앞이 뿌얘지는 경험을 했다. 아, 다행이다. 이 아이를, 이 아이들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속으로 되뇌었던 것 같다. 그리고나서 뒤에 생각해보니, 이 감사 인사는 소설가에게 하는 게 제일 맞겠다는 현실감각이 돌아오긴 했다.
희진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 아이가 살아가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남다른 가정사가 있고 어린 시절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으며 공부에 대한 강박도 있다. 어찌보면 어린 시절부터 어른스러워야만 했던 부담으로 내내 불면에 시달리고도 있다고 보여진다. 그럼에도 이 아이는 단단해 보였다. 어떤 부분에서 이런 단단함이 만들어진 것일까 궁금했다.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답은 명확했다. 바로 희진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 있었다. 텔레비전 앞을 벗어나지 않고 있기는 하지만 이 세상을 절대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분명한 엄마, 그런 엄마와 희진을 물질적으로 그리고 분명 심적으로도 보살펴주고 계신 할아버지, 공부 잘 하는 아이니 더 신경을 써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종종 쓴소리와 격려를 해주시는 선생님.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충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며 늘 희진이 옆을 지켜주는 상우와 수행평가와 성적을 과감히 포기하고서라도 지켜주고 싶은 윤아까지.
어떻게 보면 희진이는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주변 사람들이 희진이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며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덕분에 희진이는 지금의 단단한 모습과 생각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원동력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꿈이나 혹은 자신만의 철학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와 반드시 지키겠다고 한 약속이거나 타인의 기대로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이 또한 누군가의 삶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런 연결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가를 알고 세상을 형성해내가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에서는 희진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연결, 그리고 그런 연결이 또 다른 연결로 이어지고 그런 선한 영향력이 더 크게 확장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망이 만들어내는 효과는 무척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 것이기도 했다.
"제갈희진! 그만해. 네가 뭔데, 무슨 자격으로 엄마 일에 참견하고 함부로 그만두라는 거야. 네가 반대해도 어쩔 수 없어. 엄마는 일을 계속할 거고, 두 세계를 동시에 살 거야. 네가 일을 하든 말든 그건 나랑 상관없어."(169쪽)
하지만 절대 그런 연결망이 서로에 대한 구속이나 강요는 아니었다. 이 지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찌보면 엄마라는 딸에게 모든 것을 맞춰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는 살짝 통쾌함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관계란 이런 것이지 않을까. 서로 연결되어 안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그 안에서 좌우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관계에서 정말 중요한 점이지 않을까.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살아가며, 잠시 중요한 세계를 공유할 뿐이다.(...) 나는 누구의 세계나 딸이 아닌 오롯한 나이며, 언젠가는 엄마를 떠나 나만의 세계로 힘써 날아갈 것이다.(192쪽)
그래서 나는 엄마도 딸 희진이도 모두 응원해주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