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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보는 마음 - 우리 시대의 시인 8인에게 묻다
노지영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11월
평점 :
평론가와 시인들의 만남. 시인들의 내밀하고 솔직한 시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없이 담아낸 두툼한 인터뷰집을 읽었다. 인터뷰집이어서 처음엔 마치 만담을 듣는 마음으로 가볍게 읽어나가도 좋겠다는, 감상자의 입장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그 마음을 접고, 각 잡고 앉아 읽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만큼의 묵직한 시인들의 철학이 무게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름 국문학을 전공하고 발뒤꿈치 정도는 문학에 담그고 있다고 어디 가서 이야기하기에도 이젠 부끄럽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삶 한 곁에 문학을 두고 오고가며 곁눈질하는 삶을 살고는 있는 나에게, 이 책은 또 한쪽 측면으로의 자극이 되었다.
이 책을 가만히 읽으며 떠오른 이미지가, 여전히 우리 시는 어렵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 있나보다 였다. 독자의 입장에서 어떤 시를 어떻게, 그리고 시인이라는 시를 이렇게 써야지, 하는 선배들의 조언이 아낌없이 담겼다고나 할까.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를 가운데 두고 오고가는 시인과 독자 사이의 대화, 그리고 그 거리감.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시론에 대한 생각을 각 시인에게 공통 질문으로 던지는 저자의 의도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시인의 특징이 그래도 묻어나는 대답들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러면서, 시는 왜 어렵게만 다가오게 될까, 였다. 시를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장르가 시고, 나 또한 이젠 난해(이건 오로지, 전적으로, 나의 시 해독 능력의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해서 완벽하게 시의 이야기를 내 내면으로 끌어와 공감하기 못하는 시들이 많아지는 현실 앞에서 나를 깎아내리는 결론이 씁쓸하기도 했는데, 마지막 김기택 시인의 말에 시를 멀리하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겠다는 위로를 받았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독자들이 오독을 하는 건 크게 상관이 없어요. 시인이 쓴 것과 달리 독자는 엉뚱한 거 상상하면서 흥분하고 좋아하게 되는 것도 저는 굉장히 좋은 감상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얘기하는 생동감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내면의 운동, 즉 독자의 내면ㄴ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운동이자 정신적인 운동인 거죠. 그렇게 되면 독자가 시에 참여하는 것이고, 독자가 창작자가 되는 것이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고, 작품의 완성은 독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죠.(354쪽_'시인의 둘레길, 김기택' 중)
새로 알게 된, 특별한 대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인의 목소리로 직접 들었을 때 자괴감에 빠진 독자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법이니까. 그런 면에서 내내 인터뷰를 읽어오다가 마지막에 불편한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문학이든 예술이든 시민운동이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기존의 완강한 이야기를 흔드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라고 봅니다.(28쪽_'생명에의 옹호, 이문재' 중)
시인들은 다 약자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나요? 다치고 버려진 자들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기본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여기에 있는 말들로 다 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저 말을 쓰는 것이고요. 또 여기에 있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저기의 세계를 그리는 거잖아요.(123쪽_'시인은 그렇게 살겠지, 신용목' 중)
기본. 기본으로 돌아가야 해요. 뭐 하러 시를 쓰고 글을 씁니까. 끊임없이 달라져야 하는 거죠. 누가 나보고 변했다고 그럴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나는 야, 그렇게 변하려고 기를 쓰는데 사람 변하는 게 그렇게 힘들더라. 오히려 이렇게 답변해요. 그렇게 변하려고 기를 쓰는데도 못 변하는 게 큰 문제입니다. 시인이라면 어쨌거나 변하려고 기를 써야죠.(267쪽_'번역들, 김정환' 중)
시인들이 시를 쓰는 관점과 그 시를 통해 어떤 생각을 세상에 펼치고 나아가고자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뭔가 시만큼이나 심오하고 어려운 일이 시인의 시작 활동이라는 생각도 더불어 했다. 시를 써본 경험은 많지 않지만, 쓸 때마다 작위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다. 지나치게 나 자신을 옹호하고 과장되게 키우려는 심리도 강했고. 그러다보니 (시 다운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시가 시 답지 않다는 느낌이 들곤 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시는 겉핥기에 불과했구나, 반성이 됐다. 시인들이 부단히 구축해내려는 시 세계 속을 감히 함부로 다 안다고 말해도 안 되겠구나, 싶기도 했다. 뭔가 시인의 이야기 속에서 나를 또 들여다보게 되는 경험의 독서였다.
이제 남은 일은, 그동안 읽어보지 못했던 시인들의 시집을 다시 찾아 읽어보는 일. 그리고 시인들의 시 말고 산문들을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을 시로만 읽으려는 마음은 이제 그만, 산문이 시가 되고 시를 향해 가는 시인들의 속내가 산문 속에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산문만큼 더 솔직한 이야기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특히 강은교 시인의 이야기에서 더 확실해졌다. 독서 숙제가 많아지는 행복한 고민으로 올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해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