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보는 마음 - 우리 시대의 시인 8인에게 묻다
노지영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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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와 시인들의 만남. 시인들의 내밀하고 솔직한 시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없이 담아낸 두툼한 인터뷰집을 읽었다. 인터뷰집이어서 처음엔 마치 만담을 듣는 마음으로 가볍게 읽어나가도 좋겠다는, 감상자의 입장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그 마음을 접고, 각 잡고 앉아 읽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만큼의 묵직한 시인들의 철학이 무게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름 국문학을 전공하고 발뒤꿈치 정도는 문학에 담그고 있다고 어디 가서 이야기하기에도 이젠 부끄럽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삶 한 곁에 문학을 두고 오고가며 곁눈질하는 삶을 살고는 있는 나에게, 이 책은 또 한쪽 측면으로의 자극이 되었다.
이 책을 가만히 읽으며 떠오른 이미지가, 여전히 우리 시는 어렵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 있나보다 였다. 독자의 입장에서 어떤 시를 어떻게, 그리고 시인이라는 시를 이렇게 써야지, 하는 선배들의 조언이 아낌없이 담겼다고나 할까.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를 가운데 두고 오고가는 시인과 독자 사이의 대화, 그리고 그 거리감.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시론에 대한 생각을 각 시인에게 공통 질문으로 던지는 저자의 의도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시인의 특징이 그래도 묻어나는 대답들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그러면서, 시는 왜 어렵게만 다가오게 될까, 였다. 시를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장르가 시고, 나 또한 이젠 난해(이건 오로지, 전적으로, 나의 시 해독 능력의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해서 완벽하게 시의 이야기를 내 내면으로 끌어와 공감하기 못하는 시들이 많아지는 현실 앞에서 나를 깎아내리는 결론이 씁쓸하기도 했는데, 마지막 김기택 시인의 말에 시를 멀리하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겠다는 위로를 받았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독자들이 오독을 하는 건 크게 상관이 없어요. 시인이 쓴 것과 달리 독자는 엉뚱한 거 상상하면서 흥분하고 좋아하게 되는 것도 저는 굉장히 좋은 감상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얘기하는 생동감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내면의 운동, 즉 독자의 내면ㄴ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운동이자 정신적인 운동인 거죠. 그렇게 되면 독자가 시에 참여하는 것이고, 독자가 창작자가 되는 것이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고, 작품의 완성은 독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죠.(354쪽_'시인의 둘레길, 김기택' 중)

새로 알게 된, 특별한 대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인의 목소리로 직접 들었을 때 자괴감에 빠진 독자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법이니까. 그런 면에서 내내 인터뷰를 읽어오다가 마지막에 불편한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문학이든 예술이든 시민운동이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기존의 완강한 이야기를 흔드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라고 봅니다.(28쪽_'생명에의 옹호, 이문재' 중)
시인들은 다 약자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나요? 다치고 버려진 자들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기본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여기에 있는 말들로 다 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저 말을 쓰는 것이고요. 또 여기에 있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저기의 세계를 그리는 거잖아요.(123쪽_'시인은 그렇게 살겠지, 신용목' 중)
기본. 기본으로 돌아가야 해요. 뭐 하러 시를 쓰고 글을 씁니까. 끊임없이 달라져야 하는 거죠. 누가 나보고 변했다고 그럴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나는 야, 그렇게 변하려고 기를 쓰는데 사람 변하는 게 그렇게 힘들더라. 오히려 이렇게 답변해요. 그렇게 변하려고 기를 쓰는데도 못 변하는 게 큰 문제입니다. 시인이라면 어쨌거나 변하려고 기를 써야죠.(267쪽_'번역들, 김정환' 중)

시인들이 시를 쓰는 관점과 그 시를 통해 어떤 생각을 세상에 펼치고 나아가고자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뭔가 시만큼이나 심오하고 어려운 일이 시인의 시작 활동이라는 생각도 더불어 했다. 시를 써본 경험은 많지 않지만, 쓸 때마다 작위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다. 지나치게 나 자신을 옹호하고 과장되게 키우려는 심리도 강했고. 그러다보니 (시 다운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시가 시 답지 않다는 느낌이 들곤 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시는 겉핥기에 불과했구나, 반성이 됐다. 시인들이 부단히 구축해내려는 시 세계 속을 감히 함부로 다 안다고 말해도 안 되겠구나, 싶기도 했다. 뭔가 시인의 이야기 속에서 나를 또 들여다보게 되는 경험의 독서였다.

이제 남은 일은, 그동안 읽어보지 못했던 시인들의 시집을 다시 찾아 읽어보는 일. 그리고 시인들의 시 말고 산문들을 찾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을 시로만 읽으려는 마음은 이제 그만, 산문이 시가 되고 시를 향해 가는 시인들의 속내가 산문 속에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산문만큼 더 솔직한 이야기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특히 강은교 시인의 이야기에서 더 확실해졌다. 독서 숙제가 많아지는 행복한 고민으로 올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해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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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박물관 순례 1 - 선사시대에서 고구려까지 국토박물관 순례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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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할 곳들을 하나씩 정리해보는 재미가 있다. 정확히 알지 못했던 우리의 역사와 과거를 현재의 모습에서 살펴보는 맛이 있으니까. 그런 맛이 있으에도 지금껏 한 번도, 여행의 목적이 과거를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학창시절 다녀온 수학여행이 있기는 했지만, 내가 여행을 선택해 가고자 했던 목적이 없었으므로 제외!). 그만큼 나에게 여행과 역사는 하나로 뭉쳐지기 힘든 것이었나, 이제야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한다. 아마도 역사 혹은 지리 전공자들에게는 친숙한 여행(혹은 답사)이 될 테지만, 난 그 경우가 아니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책으로 찾아보는 여행기(혹은 답사기)는 흥미롭게 읽곤 했다. 아무래도 내 발을 움직여 직접 경험하는 쪽보다는 편안하게 자리 잡고 앉아 책으로 훑어보는 쪽을 더 선호하는 나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헌데 나이를 먹었는지, 이젠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이런 곳을 이렇게 돌아다니며 보고 느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책을 덮는 순간 생각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 지점까지는 여행의 계획을 세우고 절반 정도는 출발한 상태에 머물기도 한다. 이건 전적으로 유홍준 교수님의 힘이기도 하다. 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감정이기도 하니까. 다른 여행기와는 다르게 그런 느낌을 갖게 만든다. 직접 그 길을 따라 걸어야할 것만 같은 느낌. 그러니 시대 순서대로(혹은 가까운 순서대로) 찾아가봐도 좋겠다.

연천이 아무래도 가장 가까운 곳인 듯하다. 그레그 보엔이 발견한 주먹도끼도 봐야겠고, 멋드러지게 지어진 전곡선사박물관의 모습도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 연천 주상절리의 아름다운 모습은 어느 계절에 가야 어울릴까, 혼자 생각해볼 정도. 그러고보니 진짜 내가 여길 한 번도 안 다녀온 것이 맞나 싶기도 하다. '이 아름다운 강변 고을의 그윽한 정취를 맛보시라고 '강추'한다'(56쪽)고까지 하셨으니, 안 가볼 수가 있나. 여긴 날이 좀 따뜻해지면 강변에 한참 앉아 경치에 취해봐도 좋겠다.
부산은 지금껏 살면서 딱 한번 가 본 곳이다. 늘 가고싶다는 생각은 품고 있었는데 기회가 잘 되지 않았는데, 이제 부산에 아는 사람도 생겼고 얼마 전 딸의 수학여행지가 부산이기도 해, 이젠 더 미루지 말고 다시 다녀와야지 싶다. 제일 궁금한 건, 영도다리. 그리고 부산항대교의 그 아찔함이 어느 정도일지도 살짝 궁금하다. 예전 부산 방문 때도 택시 한 번 탔다가 부산 운전의 참맛을 느껴본 적이 있어 더 궁금하다. 동삼동패총전시관에서 패총도 보고, 빗살무늬토기도 구경해야지. '본래 선사시대 미술에서 통째로 벗긴 동물 가죽이나 살을 발라낸 생선뼈는 정복을 의미한다. 신석기인들의 식생활에 물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이 생선뼈무늬에는 주식의 풍요와 원활한 사냥을 기원하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101쪽)는 말에 아, 생선뼈였구나, 뭔가 지금까지 늘 역사책 첫 부분에서 열심히 외우기만 했던 토기에 더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울산. 언양이라고 하는 순간, 언양불고기? 하고 떠올렸는데, 진짜 맞았다. 물론 언양읍성이나 반닫이가 더 중요! 그리고 반구대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해 계속 좋은 방법을 모색해보는 그 과정도 인상적이었다. 그 나라의 의식 수준이나 가치를 추구하는 지표에 과거 문화재나 역사적 유물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가 포함될 수 있을 것인데, 그런 면에서 보존대책을 마련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괜히 뿌듯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암각화는 마주할 때마다 참 신기하단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떻게 바위에 새길 생각을 했을까, 어쩜 오랜 시간 속에서도 그 모습이 남아 있을 수 있을까(역시, 바위는 대단해!), 그리고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든 다들 같은 마음으로 바위에 무언가를 새겨놓았다는 것이 참 재미있는 것 같다. 오영수 문학관을 찾는 것도 잊지 말아야할 코스.

그리고 고민이 생겼다. 이 책을 읽으면서의 마음은 이곳들을 가보고 싶다, 였는데 과연, 만주까지 내가 찾아갈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교수님은 오히려 이 만주 지역에 힘을 실어 이 책을 쓰셨지만, 난 오히려 (그나마) 마음을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국내 지역에 더 마음이 끌린 것이 사실이다. 아, 만주라. 이 쯤부터 원래 나의 성향이 되살아났다. 편안하게 앉은 자리에서 책 속 여행 다녀오는 것으로 만족. 다만 고구려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드는 생각 하나, 이 광활한 공간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던 고구려라는 나라의 위상과 힘이다. 요즘 말로 정리하면, 완전 '스왜그(Swag)'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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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쓰기 나름이니까 - 세 명의 여행자, 세 가지 쓰기에 대하여
모도리.셔터맨.숑숑 지음 / 낯설여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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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고 하면 내 몸의 크기가 작아지는 느낌이다. 여행은 내 몫의 영역이 아니라고 늘 생각하고 사는 사람 중 하나니까. 그래서 더 낯설고 두려운 영역이다보니, 책을 읽어도 여행 관련 책을 잘 읽지 않게 된다. 관심이 잘 가지 않는다고나 할까.
하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왜 여행과 거리를 둔 삶을 살았을까, 하다 보면 여러 이유가 떠오르긴 한다. 어릴 적 부유 혹은 넉넉한 삶을 살지는 않았으니, 여행의 경험을 습득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것이 대학 시절까지 연결되었고, 졸업 때까지도 여행에 대한 꿈을 품어보지 않고 그럭저럭 시간을 쓰는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겠지만, 체질적으로 매우 집순이에 겁쟁이까지 장착하고 있어 어디를 어떻게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여행에 대한 경험이 희박할 수밖에.
지금 생각하면 참 답답한 삶을 살아온 것 같아 후회되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또 그 시간만큼 내가 채워갔을 삶의 궤적이 있을테니 너무 자책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혼자 여행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는 것. 여행의 묘미는 혼자 여행을 해봐야 알 수 있다는 얘기는 종종 듣지만 여태까지도 시도해보지는 않고 마음 속 아주 작은 주머니에 혼자 여행을 담고만 있는 정도. 이 나이가 되어서도 두렵고 눈치보는 삶이 더 익숙한 건 좀 씁쓸하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세 여행자의 여행기가 살짝 가슴을 설레게 했다. 어떤 여행지의 어느 부분이 마음이 들었다, 나도 이런 데 가보고 싶다 식의 감상이 아니라, 세 명의 여행자는 그저 '여행'이란 이 두 글자에 진심이었다는 것에 마음이 움직였다. 여행이 갖고 있는 좋은 의미들에 대해서 길게 열거하지도, 각 여행지의 특징이나 장점을 소개하지도, 그렇다고 여행에서 겪은 역경을 발판삼아 눈물바람 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여행을 되돌아보고 묵묵히 써 내려갔다고나 할까.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하려는 의도도, 또한 여행과 관련하여 추천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여행은 그랬다고, 그런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각 여행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었다. 그래서 덩달아 나도, 여행에 살짝,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딱인 것 같다. 정말 <여행은 쓰기 나름이니까> 각자 나름대로 쓴 여행 이야기. 세 여행자의 색깔이 분명해, 각 꼭지를 읽어나가면서 누구의 글일지 짐작하게 되고, 그 끝에서 짐작이 맞음을 확인하는 재미도 있었다. 각자가 갖고 있는 캐릭터도 분명했고.

책을 덮고 서걱서걱, 표지를 쓸어내면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앞뒤, 그리고 책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삽화에도 눈길이 멈춘다. 같이 받은 엽서를 책상 한쪽에 세워놓고 멍하니 보기도 한다. 예쁘다. 그리고 나도 나름의 여행, 나름의 쓰기를 해봐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언젠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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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저항하다 - 냉소주의의 시대, 저항의 감각을 키우는 철학 수업
다카쿠와 가즈미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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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저항' 두 단어를 연관지어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싶다. 두 단어가 어떤 면에서 연결될 수 있을까, 책을 읽기 전부터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철학'은 저자가 눈치채고 있던 것처럼, 기존의 철학자와 그 철학자의 사상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어렵고 알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철학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고. 우리가 윤리와 사상이라고 할 때의 그 사상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헌데 '저항'이라고 하면 조금 더 근대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방식 안에서 생각해야 하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어찌보면 '철학'은 과거를 들여다보고 '저항'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편견 정도. 그래서 두 단어가 어떻게 관련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이미 말했듯이, 저자의 말대로라면 철학은 철학자의 사상을 공부하는 것이 다가 아님을, 지금까지의 생각을 깨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이것부터가 '저항'의 시작이지 않을까.

철학이란 개념을 운운하는 것으로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갱신하는 지적인 저항이다.(23쪽)

저자가 내린 '철학'의 정의다. 철학의 정의에 이미 저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철학이란 지금의 삶 속에서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기존의 것에서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 현재의 현상을 다시 생각할 줄 아는 저항. 철학이 흔히 말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의 삶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철학은 우리의 삶의 있는 그대로라고.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그런 면에서, 나는 과연 철학하는 삶을 살고 있나를 돌아보게 됐다. 영화와 소설에 담겨 있는 그들의 세계와 같이 나 또한 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저항하는 표현과 행동을 하며 살고 있는지 말이다. 늘 이 지점에서 드는 생각을 이제 나도 정리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졌다. 과연 아는 것과 아는 것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의 간격을 어느 정도 좁힐 수 있을까.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고 그 아님을 내 말과 몸으로 보여줌으로써 나는 그 모든 것을 내 삶을 끌어들일 수 있는 어느 지점에 와 있는 걸까. 저자는 이 모든 것의 성공과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고 거듭 밝히고 있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내가 하고 있는 것의 결과에 또한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므로, 그 결과가 그 다음을 할 수 있게도 혹은 포기하게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결과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고, 나의 노력이 얼마만큼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을지에 관심을 두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가 계속 철학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스스로 고칠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을 통해 또한 사회의 변화를 꾀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시작이 결국 철학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철학이 그저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사상을 그대로 학습하여 아는 것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생활로 혹은 나를 둘러싼 거대한(내지는 아주 작은) 세계를 구성하는 것으로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래서 저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그 저항을 통해 이루어지는 많은 작고 소소한 철학을 작게든 크게든 가져가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저자는 성인 독자라면 학생의 입장에서 이 책을 바라보면 좋겠다고 했지만,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성인인 나에게도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이 조금 더 깨지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으니까. 다르게 생각해봐도 좋다는,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의 변화가 곧 철학이 될 수 있음을 알았으니까. 꼭 학생, 청소년의 입장에서만 바라보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의 작품과 영화, 혹은 삶의 현상과 문제 상황을 소재로 한 <철학으로 저항하다>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지금껏 자연 재해와 사회적 큰 이슈를 바탕으로 발견되는 저항의 철학이 있었다면, 이제 지금, 당장의 우리에게도 이 철학은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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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거기에 놓아두시면 돼요 - 2024 서울국제도서전 주관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
캉탱 쥐티옹 지음, 오승일 옮김 / 바람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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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잠시 인상을 쓰게 됐다. 몸에 찍혀 있는 이 점들이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해 몇 장을 연거푸 넘겨보며 확인했다. 그리고는 다시 조금, 더 인상이 써졌다. 죽은 이의 몸에 대한 표현이 이런 점이었구나, 싶어 마음이 가라앉았다.(꼭 죽은 이에 대한 표현으로만 볼 수는 없겠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이의 몸에 대한 변화, 시간의 변화, 혹은 다른 의미로, 몸에 나타나는 변화가 점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젠가부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읽어나가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곤 하는데, 여실히 이 책의 시작부터 마음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듯했다. 특히, 죽은 이를 옆에 두고 '하하하!' 웃는 그 웃음과 그 웃음 끝에, 할말을 잊은 듯 죽은 이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더 강한 슬픔을 느꼈다. 저 눈빛을 하고 누군가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싶어서.
아무리 고통스런 상황이라도 여러번 반복하다보면 익숙해질 수 있을까. 정말 아무렇지 않아지려면 얼마나 반복해야 가능할까. 과연 아무렇지 않아지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무덤덤해진다는 것은 감정을 잃는 것의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들이 반복적으로 마주하게될 수밖에 없는 죽음은, 언제까지고 괜찮을 수가 없는 모든 순간들이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죽은 이의 몸에 새겨지는 점들, 사실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인 듯 보였다. 그 몸에 작은 점들이 새겨지고, 그 점들이 점점 모여 퍼지면서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이들이라고 한다면, 이들의 몸에 새겨지는 점들은 그저 이들에게서 생명을 앗아가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이 지금껏 갖고 간직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몸에 아로새겨지는 것은 아닐지. 이 책의 겉표지를 넘기면 앞뒤로 화려한 꽃들이 잔뜩 들어차있는 속지를 볼 수 있다. 어쩌면, 죽음을 앞에 둔 이들의 몸에 그동안 살아오면서 간직하고 있는 꽃과 같은 이야기들이 몸에서 자라나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그 이야기가 점점 커지고 번져, 온몸을 감싸게되는 순간, 그 모든 순간들이 기억, 이야기가 하나가 되어 꽃처럼 피어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게 됐다. 그리고 이런 생각 끝에 다시 처음부터 책을 읽어나가면서, 더이상 이 점을 보며 인상을 쓰게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점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에스텔의 마음이 이상한 걸까. 내 눈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요양원의 환자와 간호사의 관계가 사무적으로, 딱 그만큼만의 거리를 갖고 있는 관계라 선을 긋고, 그 선 안에서 할 수 있는 것까지만 하면 된다는 게 더 이상해 보였다. 이유는, 상대가 사람이니까. 사람은 감정이 있고 체온이 있으며, 마음으로 이어져 있으니까. 다만 그 감정의 선이 서로에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며, 어떻게 발현되어 어떤 모습을 하게 되는지는 각자 다를 것이다. 그래서 그 다름을 알아채지 못하고 자신이 보고싶은대로만 판단하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그런 다른 모든 마음을 알아봐주고 보듬어주었던 사람이, 에스텔이었다. 그런 에스텔이었기에, 그 많은 죽음을 마음에 품어 스스로 그 슬픔을 몸에 새겨 안으며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솔직히 무너져내렸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슬픔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꽃으로 피어날 수 있었던 그 모든 기억들은 또한 아름다웠으니까. 그들의 모든 기억을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답게 피워낼 수 있는 에스텔의 삶은 그래서 그 자체로 소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게 된다. 함께 손을 맞잡고 최대한 서로의 몸을 밀착하고 있는 두 사람, 그리고 하나의 그림자. 이 그림이 이 책의 이야기를 말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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