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파란, 나폴리 작가의 작업 여행 1
정대건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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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참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이상, 나폴리는 파란색의 이미지와 함께 기억되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탈리아 여행을 가게 된다면, 주저하지 않고 나폴리를 가겠다고 결정할 것 같다. 그곳에서 마라도나를 만나고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맛있고 싼 피자를 먹어야지. 그리고 나와 어울리지 않게 바다에 퐁당 빠져 수영을 해보고 싶어졌다. 수영 후엔 햄은 빼고, 도톰한 파니니를 먹어야지. 마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그곳을 오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새로운 곳 새로운 경험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어딘가를 가더라도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여행을 좋아한다. 내가 있는 곳이 익숙해질 때까지 오래 나를 그곳에 놓아두는 것이, 관광객 모드가 아닌 생활자의 모드로 그곳을 내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더 안심이 되는 사람이다. 작가와 비슷하게 뼛속까지 집순이여서 어딜 쉽게 이동하지 않고 한곳에 틀어박혀 한 자세로 앉아있는 것을 참 잘한다. 그래서 작가의 이 작업여행에 나도 덩달아 긴장했다. 마치 내가 3개월간 그곳에 혼자 가야할 것만 같은 걱정이 앞섰다.
생각보다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는구나 싶었다. 생소하고 두려웠던 공간이 익숙하고 그리운 공간이 되는 데 90일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누군가를 알아가고 또 무언가를 해내고, 그 공간에 충분히 적셔지는 데는 사실, 90일까지도 필요 없다. 단 며칠만으로도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있을 곳인지 파니니를 알아보는 법이니까. 작가에게 나폴리는 있을 만한 공간, 자신을 풀어줄 수 있는 공간임을 직감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온갖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들까지도 다 받아들일 수 마음이 가능했을 것이다.

"90일간 지내는 시간을 선물처럼 생각하고 있어. 한국에서는 내가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내게 주어지는 이런 시간은 한 번뿐이라는 마음으로 내게도 더 관대해졌어. 내가 돌아가서도 선물처럼,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이전보다 행복하지 않을까."(53쪽)

작가에게 나폴리에서의 시간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시간이었다. 자신을 닦아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관대함을 배운 시간이었고, 자유롭게 무엇을 선택하든 그 선택의 끝에는 또 다른 행복의 시작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교훈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일고 있는 나도, 지인이 충고해주었던대로 경험주의자가 되어 새로운 공간에서 직접 몸으로 체득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간접적으로 말고 직접적으로, 생각만하지 말고 행동으로, 실패를 걱정하지 말고 해보는 즐거움을 느껴보는 것으로. 그럼 그 끝에는 작가의 말처럼 분명, 보상이 있을 거니까.

가 보자, 포기하지 말고.//
이 여정 끝에 보상이 있으리라는 낙관이 생겼다. 아니, 설령 날씨가 끝까지 좋지 않더라도 이대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뭔가를 얻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순간 내가 품은 낙관이 나도 놀랐다. 사람이 태도의 관성을 바꾼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최악의 하루가 예상치 못한 놀라운 행복으로 마무리되었던 어제의 경험으로 몸에 새겨진 좋은 감각 덕분이었다. 나는 앞도 보이지 않는 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153쪽)

기존의 나를 다른 나로 바꾸는 것이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우면서도 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을 깨는 일, 익숙한 것을 낯선 것으로 바꾸는 일은 자신을 자신이 어찌하지 못하는 부분까지를 포함하고 있어서, 쉽지 않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나를 바꾸는 건 어쩌면 마음먹기 나름이니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춰야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그럴 땐 우선은 바꿔보는 걸로, 해보는 걸로. 그럼 그 끝에 무언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있을 것이다.
작가의 여행기를 읽고 나의 생활의 태도를 점검하게 됐다. 다른 이의 생활기는 곧 나의 생활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특히 아름다운 도시 나폴리와 이탈리아의 지역들에 대한 여행기는 또한 상상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곳을 어떤 목적으로 방문하게 될 것이며 그 여행에서 무엇을 얻게 될 것인가를. 경험해보고 싶어졌다.

나폴리에는 '카페 소스페소' 문화가 있다. 소스페소(sospeso)란 '매달린', '걸려 있는', '미루어진'이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다. 즉 카페 소스페소란 '맡겨둔 커피'라는 뜻으로,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가난해서 마시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나누는 행위다.(58쪽)

이탈리아 남부의 문화 소스페소. 이탈리아 중에서도 나폴리를 더 경험해보고 싶은 이유 중 하나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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