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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는 혼자 진화하지 않는다 - 인류의 삶을 뒤바꾼 공진화의 힘
피터 J. 리처슨.로버트 보이드 지음, 김준홍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7월
평점 :
과학책인 줄 알았다. 읽으면서 계속 인문사회책이라는 생각으로 읽었다. 다 읽고 나서는 이게 융합인가 싶었다. 예전이나 이과와 문과를 구분하고, 명확하게 선을 그어 학문 분야를 선택했지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니까. 옛날사람의 기질이 아직도 남아 있어 이건 과학, 이건 사회의 구분을 해놓고 이 책을 읽으려 했던 것 같다. 시대착오적인 구분이었다. 그리고 제목에 현혹되면 안 되는 거였다. 유전자라니, 이건 너무 과학인데 싶어 내가 읽어도 되나 싶었다. 헌데 부제가 너무 궁금했다. '공진화의 힘'이란 말.
공진화라는 용어는 생물학자들이 두 개의 종이 서로 환경의 일부분이 되면서 한 종에서 진화적인 변화가 발생하게 되면 다른 종에도 진화적으로 변화가 발생하는 체계를 가리키기 위해서 만든 용어이다.(...) 인간 집단이 보유하고 있는 문화적 그리고 유전적 정보의 진화하는 풀에서 이 두 가지는 서로 비슷한 소용돌이의 왈츠를 추는 파트너이다.(316쪽)
지금껏 진화라는 말은 많이 들어왔다. 공진화라는 말도 주로 써왔겠지만 비전공자의 입장에서는 낯설었다. 과연 공진화라는 것을 우리 사회에 적용시킨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었다. 흔히 '진화'라고 하면 생물학적으로 유전자의 힘에 의해 당연히 그렇게 되어가는 성질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하지만 '유전자-문화 공진화'라고 했다. 유전자는 절대 혼자의 힘으로 지금의 우리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기저에는 '문화'가 '존재'했고 '적응' 혹은 '비적응'을 통해 축적되었으며, 결국 '공진화의 힘'으로 인류는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이 '협력'이라는 것. 이기적이고 작은 친족 집단에서나 보이던 특징이 더 거대한 집단이나 국가적 차원으로 확대되는 것까지. 결국 '통섭'의 개념을 생각해보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이 개념은 다윈이 좋아했던 것이기도 한데, 세상에서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현상도 실제로는 관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핵물리학은 사회과학과 과학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태양의 핵융합 반응은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의 원천이다. 또한 지구 내부에서 핵이 서서히 붕괴하면서 해저가 팽창하며, 이 팽창은 다시 지상의 생태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핵무기는 국제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원칙적으로 인간 종을 공부하는 데 관련이 없는 학문은 없는 셈이다.(383-4쪽)
결국 어느 것도 한 가지 분야로만 해석하고 설명할 수는 없다는 거다. 인간이란 종이 그렇게 복잡하고 다채로우면서도 예상 밖의 특징들을 골고루 갖고 있어 다른 종들과 다른 진화적 특징을 살피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그리고 이때 생각해야 하는 주요한 개념이 바로 '문화'.
책의 논리에 수긍이 간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환경과 문화적 특징, 세습되어 내려오는 전통이나 혹은 가깝게는 부모의 영향, 그리고 그 외에 종교나 교육, 기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축적되어온 습성이 지금 나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나의 유전자는 생물학적으로 부모로부터 그리고 그 부모의 부모의 부모로부터 왔지만, 이 유전자라는 것도 결국은 그 시대를 살았던 그 부모들이 문화적 적응 혹은 비적응의 과정을 겪으며 만들어 쌓아왔을 것이다. 결국 유전자는 꾸준히 문화와 상호 영향관계 속에서 진화해 현재까지 왔을 것이고 지금 현재 나도 그런 과정을 겪으며 다음 세대에 또 그 다음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그렇게 공진화를 통해 이 사회와 인류는 형성 유지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유지를 위한 방법들을 사람들은 또 만들어 나가곤 한다.
학창 시절 이런 질문에 답을 찾던 기억이 난다. '유전이냐, 환경이냐' 이제 이런 질문은 의미없는 이분법적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둘 중 한 가지만으로 인간을 설명하기에는 자꾸 다른 하나가 간섭을 하고, 그래서 생각이 이랬다 저랬다 갈피를 잡지 못해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하지 못하게 된다. 어느 한쪽에 손을 들어줄 수 없던 이 질문의 답을, 이제서야 이 책에서 찾은 듯하다.
이 책은 논문 모음이었다. 대학원 논문 쓸 때 알게 된 너무나 익숙한 느낌. 내용을 따라가기 쉽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못 읽을 정도는 아니었다. 전공 분야였다면 조금 더 잘 읽었겠지만 또 전공자들만을 위한 내용은 아니었다. 물론 여러모로 신경을 써서 읽어야 했던 책인 것만은 확실하다. 공부하는 느낌으로. 그만큼 읽는 데 시간도 오래 걸렸다. 깨알같은 글씨가 더 집중해서 읽도록 만들었다. 이번 여름 휴가는 이 책 한 권이 다 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