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짝홀짝 호로록 - 제1회 창비그림책상 대상 수상작
손소영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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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어와 의태어로 이야기 하나가 완성된다는 게 재밌다. 대충 짐작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잘 전달된다는, 오히려 더 잘 마음에 와닿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런 게 되는구나, 싶어 나도 따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의성어와 의태어로만 이야기를 만들어보라는 걸 할 것 같다.
강아지, 고양이, 오리. 한 접시에 머리를 밖고 물 마시는 모습이 예뻐보인다. 고양이의 실수를 감싸주려는 아이디어도 기가 막히게 찰떡이다. 이런 게 진짜 친구지, 싶어 나도 같이 '와하하하' 웃게 된다. 어른 없는 집에서의 아이들의 자유로움도 느껴지고, 대책없이 마냥 장난치고 놀기 좋아하는 장난꾸러기 모드 행동들도 천진난만함 그 자체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토닥토닥'. 이 아이들이 거리낌없이 지낼 수 있는 이유가 이 '토닥토닥'에 있겠지. 그 마음이 사랑스럽다.

가끔 아이들 중에는 친구라고 하면서도 진짜 친구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모르는 아이들이 있다. 어떤 행동이어도 다 받아주어야 친구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자칫, 친구관계를 잘못 만들어나가는 아이들이 있다. '친구니까'라는 말로 모든 것을 다 감내해야하는 그런 친구는 친구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게 될 때,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반성하게 된다. 진정한 친구의 관계란 어때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어른의 잘못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책의 아이들은 진짜 친구가 맞는 거 같다. 긴 말도 필요 없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엉뚱하게, 이 아이들은 3개 언어를 할 줄 아나? 서로 말이 통하는 게 맞나? 하지만 서로 쓰는 언어가 달라도 불편함이 전혀 없겠구나 싶어 웃음이 난다. 결국 말 없이도 충분히 친구가 될 수 있는, 아무렇지 않게 서로 어울려 뛰놀고 감싸줄 수 있는 관계는 말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배우게 된다.

아이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 없는 집에서 느끼는 해방감을 이토록 잘 보여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들이란 특별한 무엇을 하지 않아도 집에 어른이 없을 때 느끼는 자유로움과 흥분이 있는 법이다. 집 어느 곳에서도 어른을 마주치지 않을 수 있다는, 그래서 나를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아이들은 즐긴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만 아는 행동을 한다는 짜릿함. 그림책 속 아이들의 신난 표정이 실감났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른이라고 다른가. 나도, 가족이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있는 게 좋은데. 혼자 시간과 공간을 오롯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마음인 것이지. 이럴 때 그림책은 어른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또 한번 한다.
아이들은 뒤를 보지 않고 논다. 지금 현재의 감정과 생각에 충실하다. 이것도 마음에 든다. 내일을 생각하고 미리 걱정하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그 다음을 내다보려니, 지금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그렇게 즐기지 못하는 지금이 또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어찌보면 우리도 다 아이였던 때를 지나왔음에도 그런 마음을 이렇게 쉽게 잊었나 싶기도 하다. 어렵지도 않은데 말이다. 지금 감정에 솔직하기만 하면 되는 것을. 또 배운다.
마지막에 이 아이들을 다시 집안으로 들이는 어른의 모습이 보인다. 걱정하는 마음이 살짝 보이는 어른의 몸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이 그림책은 어쩜 이리도 따뜻함 투성이일까. 그리고 생각했다. 이 아이들에게 마시멜로 담긴 따뜻한 코코아와 온기 가득한 거실을 내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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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숲, 소쿠리 숲, 도둑 숲 동화는 내 친구 19
미야자와 겐지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이종미 그림 / 논장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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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한번 쯤은 읽어봤을 이야기에 <이솝 우화>가 있다. 뭔가 알쏭달쏭하면서도 짧은 이야기 속에 간명하고도 명쾌한 주제와 확실한 반전에 그 매력이 있다. 뻔한 듯한 교훈을 전달하는 수법이 예사롭지 않아 요즘에도 종종 수업 자료로 활용한다.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또 새롭게 볼 맛이 충분한 이야기가 우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우화가 떠올랐다. 꼭 동식물이 말하고 행동하며 사람처럼 움직이면서 사람을 콕 꼬집어 풍자하려는 의도가 아니어도, 우화에 담겨 있던 그 재미와 재치, 그리고 반전에 또 감동까지, 짧은 이야기 속에 깊은 울림이 담겨있는 듯해 매력적이었다. '동화집'이라고 붙어 있어 어찌보면 어린 아이들이나 볼 만하단 생각을 할 수도 있겠으나, 이 나이 먹은 어른이 나에게도 충분히 이야기가 빠져들만한 매력이 다분했다. 때론 별 거 아니게 툭 건내는 듯한 문장 하나에서도 여러번 반복해 읽게 만드는, 소중한 마음이 있다고나 할까. 그런 동화집이었다.

비 내리는 푸른 대숲을 보면 좋아서 눈을 깜박깜박하고, 푸른 하늘을 끝없이 날아가는 매를 발견하면 깡충거리며 손뼉을 쳐서 모두에게 알렸다.(8쪽)

이런 소중한 마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아이가, 혹시라도 지금도 있을까 싶기도 하다. 나 또한 이런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 어쩌면 우린 이런 마음의 저만치로 떨어져 살면서, 쓸데없는 것들로만 마음을 채우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런 의미에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동화집의 이야기들에는 우리가 쉽게 잊고 살아가는 소중한 무언가가 하나씩 콕콕 박혀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야기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 읽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밭을 일구어도 괜찮소오?"
"괜찮소오."(...)
"여기에 집을 지어도 괜찮소오?"
"괜찮소오."(...)
"여기에 불을 피워도 괜찮소오?"
"괜찮소오."(...)
"나무를 조금 가져가도 괜찮소오?"
"괜찮소오."
숲은 일제히 대답했습니다.(79-80쪽)

이런 일방적인 관계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숲은 늘 한결같이 사람들의 요구에 괜찮다는 대답 뿐, 어떤 부분에서도 사람을 거부하거나 경계를 세우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람들은 어떤가. 무조건 자기 쪽으로 더 많고 더 넓은 경계를 세우고 그 안에서 자신만을 들여다보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아닌가. 사람들에게 뭐든 내어줄 수 있을 만큼의 포용력의 소유자인 숲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배신하지 않을 것임이 틀림 없다. 오히려 배신은 사람들의 몫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니, 사람이 숲과 같은 자연을 어찌 보고 있는지는 길게 말 안 해도 뻔하다. 씁쓸하게도.

이처럼 이 동화집에 담긴 이야기들은 각각에 품고 있는 의미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들이었다. 흥미롭고 감동적이며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는 이야기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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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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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화가 나기도 또 무섭기도 또 연민이 느껴지기도, 그러다가 또 화가 나기도 했다. 이 복잡한 감정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소설을 읽으며 결말이 궁금하지 않았다. 어떤 결말을 향해 간다기 보다는 그저 원도 삶의 각 순간이 묵직하고 또 어렵게 느껴졌다. 원도의 삶을 이해하려는 쉽지 않았고 또 한편으로는 원도가 던지는 질문에 답해야 할 것만 같아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며칠을 끙끙거리며 겨우 다 읽어낸 느낌. 한번에 쉽게 읽어낼 수 없는 소설이었다.

삶과 죽음을 늘 곁에 끼고 사는 느낌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죽음 안에 담겨 있으면서 겨우 가느다란 시선을 삶에 던지며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쉽게 말해 언제 죽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삶이라고나 할까.

지금까지 원도의 기억을 쫓아온 당신도 한 번쯤은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이런 인물이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은가?(239쪽)

맞다. 어느 시기 어느 장소 또 어느 상황에서 원도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더라도,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이라며 마치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그런 마음의 다른 한켠에는 그럼에도, 원도가 잠시라도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만큼 원도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해졌다. 나라도 그 짐(어쩌면 원도는, 이 짐을 겉으로는 증오했으나 사실은 애지중지하며 소중히 끌어안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의 무게를 저 멀리 치워버리게 하고싶었다. 물론, 쉽지 않았지만.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나는 당신에게 무엇인가. 다시 시작된 질문.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148쪽)

선뜻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와 당신, 그리고 나와 나 자신 사이에서 끊임없이 집착하고 사유하며 던지는 질문의 끈적임이 온통 찝찝함으로 잔뜩 남아 어디서부터 닦아나가야 말끔해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막막함이다. 시종일관 내내 원도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생각이었으며, 평생을 이 질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결국 끝까지 끌어안고 가는 원도의 집요함을 오히려 칭찬이라도 해줘야 할 것인지. 질문에 질문을 던지고 또 제멋대로(이 단어를 쓰고, 이 단어만큼 적합한 단어가 또 없다는 생각도 해본다. 결국 누구든 자신의 삶은 자신이 살고싶은대로 사는 것이지 않을까. 원도도 나도.) 답을 구하기 위해 살았던 원도의 삶이어서,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며 화가 나고 또 무서웠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을 듯해서.

원도는 혼자였다. 철저히 혼자였다. 묻는 이도 대답하는 이도 하나뿐이었다.(228쪽)

진위를 따지려고 들었다면, 진짜 사실을 알고 싶었던 거라면 어쩌면 애초에 접근부터가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도는 내내 '혼자' 생각했고 '혼자' 질문했고 '혼자' 답했다. 어린 시절 자신의 기억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가며 자신이 알고 있는(알고 있다고, 그 기억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의 관계 속에서 '혼자' 살아내느라 힘겨웠다. 그리고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질문 앞에서 이후로도 내내, 힘든 삶을 꾸역꾸역 버텨내겠지. 이런 삶의 반복이 원도이지 않을까.

더럽고 병든 원도를 마뜩잖은 눈으로 쳐다보며 주인이 묻는다.
......나 혼자요.
원도가 대답한다.(241쪽)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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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203호 - 2024.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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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비평_203호 #창비 #서평단 #서평 #책추천

창작과 비평_203호(2024년 봄호)

여기서 각자위심(各自爲心)의 구경꾼이나 만들어낼 뿐인 '중립'이라면 그것은 이미 가짜다.(5쪽_'책머리에' 중)

각자위심. '각자의 마음이 제각각임. 각 사람이 다 마음을 다르게 먹음.' 이 말이 맞는 말이겠구나. 그리고 결국 우린 가짜로 만들어내는 사회의 한복판에 놓여 또한 가짜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올해 달력을 보며 휴일을 체크하는 직장인이다. 3월부터 쉴 새 없이 달려와 4월을 맞이하며 빼곡한 까만 숫자 중 눈에 띄는 빨간색의 '10' 숫자를 보면서 한숨을 쉰다. 다행의 한숨인지, 답답함의 한숨인지. 어쩌면 둘 다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거기 덧붙여 과연 우리 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과연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맞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물론, 길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이미 벌써, 회의적인 생각으로 더 이상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단정하는 수준까지 와 있으니까.
분명, 지금의 사회는 많은 문제 상황들이 여기저기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사회인 것만은 사실이고, 이런 문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인지를 직접적, 적극적으로 찾아야함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도 그 해결책을 강구하고 실천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늘 답답해하며 무기력함에 손 놓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는 우리의 최우선 당면과제가 '2기 촛불정부'를 만드는 일이고 다른 시국문제도 그 기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바야흐로 그 2024년을, 퇴진이 실현되지 않은 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301쪽_'대화-자료: 2024년 새해를 맞으며'(백낙청) 중)

그리고, 사회가 흔들리면 그만큼의 위기는 또다시 찾아오게 되어 있고, 그런 위기가 어떤 커다란 사건으로 벌어지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다시 사회를 휩쓸게 될 것만 같다. 그것이 기후 문제일지 남북 문제일지 또 어떤 정치적, 세계적 상황의 위기 상황있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와중에 시는 아름다웠고, 문학으로 잠시 숨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런 날이 있지/세상이 너무 미끈하게 질주를 해/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종일 은유 속을 오고 갈 때//그때 벽은 우리의 편,/ 회색의 편,/ 누군가의 편이 된다는 건 순전히 개인적이지만/회색의 고독이라는 게 맘에 들어(108-9쪽_'함께 운 적 없지만 울고 있었지'(이규리) 중)

검은색이거나 흰색이어야하지 않고 회색일 때, 회색인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음에 안전하단 생각을 하게 되곤 한다. 회색의 콘크리트, 노출 콘크리트가 안을 모두 내보이며 순수하게 접근할 수 있는 그 순간이면 충분하단 생각이 든다. 그러니, 그 벽 앞에서 사진을 찍고, 찍히고, 그 벽을 가만히 보며 마음을 다독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홉번의 겨울이 지나갔다고 했다//불을 끄고/이불을 덮으면/더 또렷해지는 지난 일 때문에//자야지, 불을 꺼야지,/이불을 덮어야지,/여기까지 오는 데/아홉번의 겨울을 보내야 했다는 너의 이야기를 듣다/나는/깜박 잠에 들었다(126쪽_'계속해서 겨울 이야기'(최지은) 중)

그리고, 올해가 세월호 10주기이다. 이제 곧 4월이고, 4월은 늘 언제나 잔인하고도 슬픈 달이다. 10년 동안 그랬고, 앞으로 또 10년 그리고 그 다음 10년 이후까지도 내내, 그런 달이 될 예정이다. 그리고 우린 세월호를 기억하며 이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지금까지 다 하지 못한 것들도 앞으로 계속 지속적으로 해 나갈 것이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반복적으로 외치고 또 외칠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보낸 10년이고, 앞으로 보낼 더 많은 시간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책무일 터이다.

어제의 우리가 아닌 오늘의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런 물음은 우리가 10년 전의 질문에 얼마나 성실하게 답해왔는가를 묻는 것과 같다.(...) 지금도 세월호는 질문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377-8쪽_'현장: 4.16운동 10년, 무엇을 바꾸었는가'(박래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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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전쟁 1939-1945 - 편지와 일기에 담긴 2차대전, 전쟁범죄와 폭격, 그리고 내면
니콜라스 스타가르트 지음, 김학이 옮김 / 교유서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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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책이었다. 처음 책을 받아들었을 때 무척 어리둥절해 한참 멍하기만 했다. 물론, 무거워서 들고 있을 수는 없었고 책상에 올려놓은 채 그저 쳐다만 봤었다. 이 거대하고도 대단한 책을 내가 과연 잘 읽어낼 수 있을까 겁도 났다. 며칠 사이로 다 읽을 수 있을 책은 아님을 직감했고, 하루에 얼마씩 천천히 천천히, 한 부분씩 읽어나가자고 마음 먹었고, 꼭 그렇게 읽어야만 하는 책이었다. 물론 그게 잘 안 되는 때도 종종 있었지만.

이미 <독일인의 전쟁>이란 제목과 '2차대전'이란 부제의 설명으로 충분히 짐작이 가는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전쟁'을 다루고 있으니 현재 진행형의 전쟁이 함께 떠오르며 이 전쟁의 이야기를 어떻게 감당해야할까 고민이 되기도 했다. '전쟁'은 그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힘들고도 어려운 숙제일 수밖에 없으니까.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감히 함부로 단정지어 말할 수조차 없는 것일 테고, 간접적으로 보더라도 쉽게 무어라 결론내리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주제인 것만은 사실이니까.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책에 대한 나의 관점을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제목을 다시 생각했다. 아, '독일인'의 전쟁이었구나!
2차대전이라고 하면 당연히 가해자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먼저 떠올이게 된다. 전쟁의 가장 참혹함은 죽음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이고, 이때의 가장 잔인함은 학살에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 책의 초점은 독일인에게 있었고, 이미 첫 시작부터 가해자의 독일인이냐 피해자의 독일인이냐를 이야기하고 있어서 놀랐다. 솔직히, 지금껏 당연히 독일과 독일인을 함께 묶어 생각했고, 그런 독일인을 무조건 가해자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부터 나의 생각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생각했다. 결국 어느 나라 사람이든, 전쟁을 벌인 사람과 전쟁으로 온전한 제 삶을 잃은 사람은 다르다는 것, 그리고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었구나. 누구 때문에를 떠나, 모두가 혹독한 전쟁의 소용돌이 안에 빠져나올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구나, 였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독일인들이 감당해야했던 6년 동안의 시간은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음은 분명해 보였다. 결국 편지와 일기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더라도 특별히 악의를 갖고 생각한다거나 뭔가 의도를 갖고 행동하려들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해 보였다.(물론, 어느정도 전쟁 상황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비인간적인 면은 있다. 전쟁 상황에서 도덕적인 결과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또 버리고, 전쟁의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이기에 전쟁의 책임을 이들에게 다 떠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전쟁은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이고 이 국가 간 관계 또는 이념 속에서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던 건 늘 국민이었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우리나라 고전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쟁 소설의 특징을 생각해 보면, 결국 사회적 문제로 개인의 삶이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경우라도 전쟁은, 한 순간도 겪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람의 같은 마음일 테니까.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본다면, 독인인들에게 있어서 2차대전은 특히나 더 직접적으로 겪은 전쟁이었고, 그 전쟁에서 본국의 결정과 행위, 과정과 결과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판단할 수 있어야하는 책임도 분명할 것이다. 제 아무리 전쟁의 한복판에서 개인의 삶을 포기하고 전쟁 속에 침투되어졌어야만 했다 하더라도, 전쟁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그에 따르는 결과에 대한 반성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전쟁 중에는 그렇다 쳐도, 전쟁 후에라도. 이건 어쩌면 늘 피해국이었던 우리나라의 처지가 반영된 생각일 수도 있겠다는, 그래서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유대인의 보복이란 생각이 과연 어떤 의도를 갖고 하는 말인지도 솔직히, 동의하기 어렵긴 하다.)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왜 읽어야할까를 생각해 봤다.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전쟁의 민낯을 보여주는 책들은 지금껏 여러 권 읽어 보았고 죽음이나 학살의 공포와 분노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지난 전쟁을 바라보던 기존의 관점에서 조금 각도를 달리 변형하여 그 이면을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은 아니었을까. 나부터도 지금껏 독일인들이 전쟁의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을차에 대해 딱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이런 하나의 역사적 사건 안에서 더 관심을 갖고 기억하게 되는 것은 피해자들일 테니까. 당연히 이들은 피해자에 속하지 않는다고 단정지었던 것이 사실이었고. 그러니 이 전쟁을 따라가며, 현재 진쟁중인 전쟁을 떠올리게 되고, 이때 우리가 놓치고 지나가는 면은 없는지 살피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에 대한 판단을 독자 스스로 내리기를 바라는 듯도 보였다.(이 책은 보여주기였다. 판단과 주장을 펼치고 있다기보단,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독일인'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았다.)

지금껏 긴 책을 읽었으니 이젠 더 긴 사유의 시간으로 넘어갈 차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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