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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바느질 클럽 - 모쪼록 살려내도록 ㅣ 온(on) 시리즈 7
복태와 한군 지음 / 마티 / 2024년 6월
평점 :
제목이 신기했다. '죽음'이란 단어를 쓴 클럽이라니. 도대체 어떤 클럽인데 이렇게 비장할까. 헌데, 표지 그림은 재밌었다. 양말인데 여러 색색의 실로 수가 놓여진, 아니 더 정확하게는 기워진 사진. 분명 제목에도 '바느질'이란 단어가 있다. 바느질 이야기인 것만은 분명한데, 죽음의 바느질... 우아, 이거 목숨 걸고 해야 하는 바느질 이야기인가 싶었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온몸에 긴장감을 불어넣은 채 살아왔는데, 힘 꽉 주고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치앙마이 바느질을 통해 배웠다. 열심히 하는 것이 ,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이, 오래 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이러면 결과물은 빨리 만들어낼 수 있을지언정 금세 지쳤다.(...)
바느질을 '멈춤'에 특화된 장르다.(...) 바느질을 한다, 힘을 빼고. 힘들면 멈춘다. 나중에 이어서 하면 되니까. 바로 이것이 우리가 8년째 질리지 않고 여전히 즐겁게 바느질을 하는 비법이다. 적당히 멈추는 것. 더 하고 싶을 때 그만두는 것이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과정을 즐기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치앙마이 정신'이라고 부른다.(167쪽)
이 책을 읽으며 몇 가지 다짐하게 되는 게 있다. 우선, 치앙마이를 꼭 가봐야겠다는 결심(탄소발자국이 걱정이지만, 너무 궁금해서 안 가볼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전에도 궁금한 곳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더 궁금해졌다.). 그리고 다시 바느질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지 않고 고쳐쓰는 리페어에 대해 조금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바느질에 거부감은 없다. 어린 시절 엄마는 종종 집에서 재봉틀을 돌리셨다. 외할머니댁에 가면 더 큰 재봉틀이 있었고 할머니의 모든 옷은 손수 지어 입으신다고 하셨다. 학창시절 한번쯤 해봤던 저고리 치마 만들기 정도는 혼자 힘으로 뚝딱 만들었고, 결혼 후 아이들의 옷을 직접 만들어주고 싶어 제봉틀을 중고로 구매해 바지까지는 만들어 입혀봤다. 작은 것들은 손수 바느질을 해서 만들거나 혹은 수선했고, 그 솜씨가 대단하지는 않아도 불편함은 없는 정도였다. 소소하게 십자수 벽시계를 만들어 여럿에서 선물도 했었고.
하지만 양말은... 시도해보지 못했고 배겨나는 바느질의 흔적이 싫어 닳아 얇아진 양말을 버리지도 그렇다고 신지도 못한 채 방치해두곤 했다. 아,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안 되는 곳이 없구나. 비닐봉지와 벽돌에까지 바느질할 정도라면, 유 윈이었다.
"한군, 그만 좀 쉬어. 손목 아프다며." "멈출 수가 없어. 이 재미있는 걸 어떻게 멈춰?"(224쪽)
이 대목에서 안 웃은 사람이 있을까. 나도 손으로 꼼지락거리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마음이 어떤 마음인 줄 이해가 된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손가락 굳어오는데도 계속 손을 움직여대고 있는 나, 엉덩이가 아프고 허리가 뻐근해지면서도 여기까지만, 조금만 더를 외치며 한두 시간은 더 버티는 나이가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다시 그 마음이 타올랐다, 뭔가를 꼼지락거리고 싶은 마음.
옷을 사지 않기로 했다. 최대한 소비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했다. 이유는 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돈이 많은 부자로 잘 사는 삶 말고, 안전하고 깨끗해진 지구에서 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죽음의 바느질 클럽'은 내가 해나가야 할 또 하나의 숙제가 됐다.
헌데, 이 숙제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재밌을 것 같은 예감이다. 그래서 오히려 조금 들뜨고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