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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의 방
김그래 지음 / 유유히 / 2024년 7월
평점 :
"엄마가 해외로 일하러 나가면 어떨 것 같아?"(11쪽)
나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두 딸에게 말하며 나는 같이 가겠냐고 물었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흔쾌히 재밌을 것 같다며 가겠다고 동의했다. 해외 근무가 결정된 후 아이들 아빠까지 따라나서면서, 온 가족이 해외 생활을 시작했었다. 그곳도 베트남. <엄마만의 방>의 '엄마'에 더 마음이 쓰였던 이유일 것이다.
압도적으로 넓은 땅 위에 거대한 공장 여러 개가 늘어선 풍경을 보고 엄마는 생각했다.
'진짜 왔구나. 이제 돌이킬 수 없구나.'
'잘 견뎌보자.'(37쪽)
딱 그랬다. 정신없이 한국의 집과 짐을 정리하고 캐리어 몇 개만 끌고 도착한 베트남에서의 느낌이 딱 이거였다. 아, 내가 진짜 오긴 왔구나. 앞으로 해결해야할 일들이 많고, 특히 가족을 모두 데리고 왔으니 그에 대한 책임감이 무겁게 자리했었다. 낯선 나라와 환경, 날씨 앞에서 금방 지치고 걱정되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함께 이야기하고 해결할 가족이 있어 안심이 되기도 했던 시간들이었다. 아마 '엄마'는 나보다 더 막막하고 긴장되는 시간들이었지 않았을까.
혼자서는 여행한 적 없던 사람.
이제 모두가 과거가 됐다.
그는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졌다.
어쩌면 엄마는
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조금 더 용기 낸 사람이 된 걸까.(109-110쪽)
남들은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남들은 가고 싶어도 쉽게 갈 수 없는 좋은 기회라고도 했다. 그때 생각했다. 그저 나는 조금, 용기를 냈을 뿐이라고.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조금 더 확장하기 위해, 해보지 않은 것이 두려워 먼저 포기하고 뒷걸음치기보단, 해보고 후회하는 쪽을 택하기로 용기내는 마음을 조금 먹어본 것 뿐이었다. 그리고 해본 후에 알았다.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어려운 길은 아니었다고. 해볼 만했고, 또 용기내길 잘했다고.
"근데 H주임. 이제 베트남에서 한국 갈 때보다 한국에서 베트남 올 때 '집에 간다'고 느껴지지 않아?"
"음... 생각해보니 저도 그렇게 느낀 것 같아요."(195-196쪽)
그랬다. 한국은 잠시 다니러 오는 곳이었고, 베트남의 집으로 돌아갈 때는 훨씬 마음이 가벼웠다. 뭔가 일을 다 마치고 돌아간다는 홀가분함도 있었고, 또 편히 내 침대에 누워 쉴 수 있겠다는 마음도 가졌던 것 같다. 한국이 집이 아니라 베트남이 우리집이라는 생각. 오히려 베트남 집에 도착했을 때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역시, 매일 정들이고 생활하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아늑함은 그곳이 어느 나라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정을 붙여 생활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내가 살던 그 곳에 다시 간다면 집에 돌아왔다는 마음이 들 것 같다. 익숙하고 정들었던 곳에 대한 그리움이 아직 남아 있다.
수많은 역할을 내려두고
자신으로서 사는 삶.
그런 삶이 그에게 꼭 필요해 보였다.
누군가의 엄마.
혹은 아내.
혹은 딸이자 며느리.
그 속에서 행복한 시간도
분명 있었겠으나
그가 오롯이 혼자서 누리는 행복도
가져보았으면 했다.(249-250쪽)
너무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엄마'들에게 붙은 다양한 책임의 이름들. 그 이름들 속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온전히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간절히 필요한 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오롯이 혼자서 누리는 행복'을 얼마나 찾고 싶은지. 누군가는 무책임으로 몰아붙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누구나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할 자기 자신의 삶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그런 삶을 지켜주고 응원해주고 싶은 것이다.
'엄마'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누군가는 해외 생활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마냥 부러워하기도 하겠지만, 실제 생활이 매번 부러울 상황들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진짜 생활에서 부딪혀야하는 많은 것들을 혼자 묵묵히 잘 해내고 있을 '엄마'를 작가와 같은 마음으로 응원한다. 부디 건강하게 생활하시다 돌아오시라고. 그리고 지금의 이 시간들이 충분히 '엄마'만의 시간으로 만드시라고.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