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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 - 두 자연 생활자의 교환 편지
김미리.귀찮 지음 / 밝은세상 / 202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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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같이 새벽부터 비가 내린 날이면, 수풀집과 그리고다의 텃밭은 어떤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을지 궁금해지고 상상해보게 된다. 여러 작물의 생장도 궁금하지만 얼마나 잡초들이 무성해지고 또 강렬한 생명력으로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을지가 더 궁금해진다. 겉으로 보기만 할 때의 시골 단독 주택의 삶과 텃밭 가꾸기를 더 넘어서,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고충까지를 다 알고나니, 더 깊은 애정과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마치, 나도 두 자연 생활자의 삶에 초대받아 그 삶을 들여다보고 경험해본 듯한 착각까지 들 정도로 말이다. 괜히 흙을 찾아 나도 어딘가 발길을 옮겨야할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우선은, 부러움을 잔뜩 안고 편지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오랜 로망에 가까운 삶을 이 두 작가님들이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야트막한, 땅과 가깝게 생활하며 계절의 변화와 하늘의 움직임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삶을 꿈꾸어 왔다. 나의 공간 안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넣어두고, 자연에 나의 삶을 맡기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작은 텃밭에서 나고 자란 것을 취하며 사는 삶, 손에 흙을 쥐고 사는 삶의 로망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뽑아야지. 노상 뽑아야지, 뽑아서 없애야지."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온다는 걸 말하는 듯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였어요. 자연에, 사는 일에 순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293쪽)
누구나 이런 순응하는 삶을 꿈꾸고 있지 않을까. 다만 힘들어서 혹은 여의치 않아서 내지는 어쩔 수 없이, 그렇지 못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일 뿐. 그리고 가끔씩, 이런 이야기를 통해 잠시라도 숨 내쉴 수 있는 구멍을 찾으면서 말이다.
편지가 주는 편안함이 있다. 그 편안함에 두 작가님의 생활 밀착형 이야기가 더해져 더욱 생생히 전달되었던 것이, 이 책에 더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변기 화장실에 정화조 얘기까지, 아름답기만 할 것 같은 이야기의 환상을 바사삭 부숴주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런 이야기가 오히려 그들의 삶에 대한 친근감을 한껏 더 부풀렸다. 다르게 표현하면 제대로 날 것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있는 그대로는 보여주는 것에 더 나아가 엉뚱한 경험의 이야기를 상대방을 웃길 수 있을까 배틀이라도 하듯, 서로 귀여운 경쟁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두 작가님의 주고받는 편지를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그 편지를 통해 무엇을 공유하고 관계를 촘촘히 다져가고 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작가님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고 보살펴주고 있었다. 누군가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 물론, 공간적으로 떨어져 생활하고 둘 사이의 접점도 없어 보이지만, 그 가운데 추구하는 삶의 철학과 생활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알게모르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었다. 어떤 일에 있어서도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해내야한다는 것만큼 외롭고 힘든 경우가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그 다음은 일이 한결 수월하게 느껴진다. 같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에서 얻을 수 있는 힘인 것이다.
나와 같은 마음을 느끼는 한 사람이 여기 있구나. 그럼 우리 둘이니까, 둘이 한다면 셋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셋이 한다면 넷이, 그렇게 이 글을 쓰기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작은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76쪽)
이 생각은 다만 어떤 하나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같은 마음만 있다면 무엇이든 언제든 가능할 것이니까. 두 작가님의 계절을 지나 다시 같은 계절을 만날 만큼의 시간동안 쌓아온 이야기 속에서, 이미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셋이 된 기분이 들었고, 어쩌면 나와 같은 마음의 넷, 다섯이 같은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누군가가 정성들여 써 준 편지를 받아보는 기분으로 읽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고르는 모든 시간이 그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는 것처럼, 편지를 쓰는 모든 시간이 그 사람을 떠올리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는 게,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 편지가 끝나 아쉬우면서도 언젠가 이런 편지를 나 또한 누군가에게 써주고 싶어졌다. 같은 마음의 누군가에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