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 우리가 시를 읽으며 나누는 마흔아홉 번의 대화
황인찬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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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어느 시인의 북토크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시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행사를 진행하고 이야기와 대화에서부터 노래 선정 및 마무리까지, 마치 DJ가 진행하는 라디오를 들은 기분이었다. 시인만의 감성과 관점, 배려와 공감이 마음 깊이 울려 섣불리 자리를 뜨지 못했던 기억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그 기억이 되살아나고, 그때의 감성과 느낌, '기분'이 들었다. 시인의 말처럼 '기분'. 그 기분이 뭐냐고 물으면, 음, 나 역시 쉽게 답하지 못하겠지만, 시인의 가만가만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소곤거리는 말장단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처럼 천천히 글 속에 나를 맡기게 되는, 바로 그런 기분. 나는 좋은 것은 '좋다'로 잘 말하는 사람이라, 이 책이 참 좋다.
왜 좋냐고 굳이 묻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뻔하지 않아서 좋다. 어찌보면 시는 내 전공분야에 속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런 전공분야의 뻔한 시들이 아니어서 좋았다. 그리고 시들에서 뻔한 이야기를 끌어와 억지로 시를 설명하려들지 않는 것이 좋았다.
가끔 미술관에 가면 미술 작품을 어찌 감상해야 하고, 도대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작품들 앞에서 심지어는 화가 날 때도 있다. 미술관 전체 작품 중 '무제'라는 제목의 작품은 어찌나 많은지. 이처럼 시도 그런 기분으로 시집 한 권을 읽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내 전공 분야인데도 난 왜 시를 읽지 못하는지에 대한 자괴감으로 머리를 쥐어짜며 억지로 읽어내려 안달을 내곤 하던 나를, 이 책은 조용히 다독여주었다. 그렇게 애써 억지로 읽어내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시인은 다정한 미소로 토닥여주었다. 그래, 이런게 시인데, 싶은 그런 '기분'.
책을 읽다 보면 중후반이 되면서, 빨리 읽어버리고 다른 책을 읽고싶어지는 책이 있는가 하면, 자꾸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쉬워서 더 속도를 줄여 읽게 되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후자여서 좋았다. 처음 표지의 '마흔아홉 번의 대화'라는 말에, 시가 마흔아홉 편이나 있다니, 싶은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던 솔직한 심정이, 마지막에는 왜 마흔아홉 편밖에 없을까 싶은 마음으로 바뀌었으니, 제대로 시인의 이야기에 반해버린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참 좋다.
그리고 시인의 솔직한 이야기 속에 시인의 선한 모습이 담겨 있어 읽으면서 마음이 편안했다. 자신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으려거나, 혹은 억지로 꾸며 자신을 포장하려는 마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담담하게 회상하고 서술하는 장면 하나하나가 마치 친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했고, 그 안에 담긴 시인의 마음이 너무도 착해서 좋았다. 시인은 '착하다'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난 착해서 좋다. 아무래도 이러다가 시인의 글을 몽땅 찾아 읽어버리겠다고 나설 듯싶어, 그것도 좋다.

조용히 누군가의 따뜻하고 다정한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싶은 기분이라면 이 책 추천이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괜히 가슴이 벅차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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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작은 가게에서 어른이 되는 중입니다 - 조금 일찍 세상에 나와 일하며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
박진숙 지음 / 사계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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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선택하면서 선택의 이유는 부제에 달려 있던 '조금 일찍 세상에 나'온 우리 아이들이었다. 학교에 있다보면 조금 일찍 사회에 나가겠다고 학교 밖을 선택하는 아이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소풍가는 고양이'를 거쳐간 많은 아이들만큼 다양한 이유를 접하며, 나는 여전히 옛날 어른의 생각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늘 고민하곤 했다. 여기서 옛날 어른이라함은 요즘 젊은 세대들의 말로라면 '꼰대' 정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불려지기 싫고,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때론 그런 모습을 보일 때도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늘 안고 있다.
아이들이 개인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경제적 활동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에 대한 물음표를 안고 책을 읽어 나갔다. 저자의 의문점과 유사하게, 과연 아이들을 성장하도록 이끌어야 하는 어른의 책임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경제적 돈벌이를 위한 가게를 책임져주고 유지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마지막 '자치'라는 과정 속에서 얻은 결론이 그 답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는 어른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기다림'이다. 참고 기다리고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다 해낼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내 아이를 키워본 부모의 입장이라면 더욱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의 손길이 보태지는 순간 일이 순조롭고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를 기다려주고 끈기있게 지켜봐주는 것이 매 순간 얼마나 힘든 싸움인지를.
하지만 '소풍가는 고양이'의 구성원은 이 모든 것을 꿋꿋하게 경험으로 이겨냈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은 많지만 그렇게 쉽게 가지 않으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결국 '사람'이 남았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버티는 자선사업은 아니지 않았나. 이 점이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닐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른의 세계, 어른들의 기업 세계는 아마도 사람보다는 이익과 경제 능력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곧 직업이나 일, 노동의 이유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사람'을 놓치고는 진정한 '일'의 의미는 없지 않을까.
어느 날 학교의 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선생님이란 직업이 좋으세요? 나는 이 말이 대답했다. 그럼! 난 이 직업이 참 좋아. 그리고 이렇게 수업 시간 교실에 들어와 너희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참 행복해. 그 다음 아이의 반응은 어이없다, 오글거린다, 그래서 말도 안 된다 였지만, 그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다른 아이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주고 있었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직업, 일, 노동에 대한 생각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아이들은 과연 바람직한 직업관에 대해, 자신의 사회 생활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 일을 선택하고 실행에 옮길 것인지, 과연 이것이 아이들의 '꿈'이라는 것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것이기는 맞는지 등.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에게 마치 지금부터 꿈을 찾고 키우고 성장시켜야만 하는 것처럼 대답을 강요할 필요가 없지 않나를 생각했다.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이 주어지고 기회가 마련되어 있기만 하다면, 그 안에서 충분히 자신만의 시간을 들여 길을 찾아 나갈 수 있을 테니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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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
최문자 지음 / 난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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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책이 있다.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주변을 고요하게 만들고 그 고요함 속에 잔잔하면서도 깊은 심연으로 끌어들이는. 그러면서도 그 깊숙한 곳 끝에 다다라 가만히 책과 나만 남겨져 오롯이 그 정막함과 정적 속에 있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 있다. 바로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느 페이지 어느 이야기를 읽어도 이런 기분이었다. 다른 어떤 소음과 생각, 불안과 고민으로부터 단절된 시공간 속에서, 책과 나만, 이야기와 나만 남겨진 느낌. 그 느낌이 너무도 편안하고 또 따뜻했다. 시인이 시어를 고르고 말을 잇는 느낌 그대로, 한 문장 한 문장 고르며 적어 나갔을 그 과정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이런 글을 접할 때, 또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이래서 시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그들의 시와 문장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괜찮아'라는 말의 질량이 전복되면 허위와 불행이 된다. '괜찮아'는 여유를 느끼게 하는 우아한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고통스러운 말이다.(44쪽_너 정말 괜찮으냐고 물었다)
_누군가들은 자주 '괜찮아?'라고 묻고, 당연하다는 듯 나는 '괜찮아'라고 답한다. 이 답 말고 다른 어떤 답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묻는지. 괜찮지 않다고 말할 용기는 없다. 늘 괜찮아야만 하는 사람인 듯, 지금까지 살아왔으니까. 그래서인지, 이제 나도 괜찮다는 대답을 그만 해야할 때가 된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밀어붙이는 행위로 다른 이를 깊은 삶의 물 속으로 빠뜨릴 권리란 누구에게도 없다.(147쪽_보랏빛 공포)
_누구에게도 없는 권리를 왜 이리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특권인 양 함부러 행사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은, 조절할 수 없는 힘을 쓰는 행위를 무척 싫어한다. 물리적인 힘의 세기가 관계에 끼어드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관계는 망가지고 만다. 그걸 너무도 잘 알고있기 떄문에, 내게 억지로 힘쓰는 사람이 싫다.

자리는 과거의 장소들이 지낸 공간의 역사이며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숙소이기도 하다. 우리가 늘 앉아 있는 자리에는 살아온 추억과 휴식과 습관의 온기가 남아 있기에 미묘하며, 이성적인 해석만으로 그 기능과 의미를 가늠할 수 없다.(175쪽_의자)
_'자리'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생각하고 좌절하고, 상처받고 속상해하며 지낸 시절이 있었다. 청춘의 시절이라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고 덮어둘 수도 있겠지만, 어른이 되고도 한첨 더 어른이 된,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에 갖게 되는 '자리'에 대한 생각은, 뒷맛이 씁쓸하기만 했다.

누구나 바라보고 싶은 대상이 있다. 거기에 닿고 싶어 하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걷고 멈추고 다시 걷는다.(194쪽_나무는 죽을 때 슬픈 쪽으로 쓰러진다)
_바라보고 싶은 대상을 향하고, 닿고 싶은 마음이란 이 세상 모든 만물이 다 같을 것이라는 마음이다.

끝도 없이 생각에 또 생각을 덧붙이며, 감히 내 멋대로 책을 내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고 싶어지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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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먹이 - 팍팍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간소한 먹거리 생활 쏠쏠 시리즈 2
들개이빨 지음 / 콜라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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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먹지 않거나 가볍게 비건 시리얼을 두유에 말아 먹는다. 점심은 급식을 신청하지 않고 두유에 선식을 타서 마시고 과일을 조금 곁들인다. 저녁은 가족들과 함께 일반식 식사를 한다. 물론 저녁의 식사가 좀 과하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하루 한 끼는 나의 생을 위해 조금 눈 감아주기로 한다.
먹는 거에 대한 욕심을 많지 않은 편이다. 고기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풀때기 채소와 과일이 더 좋다. 그렇다고 채식을 하겠다고 선언하거나 반드시 그러하겠다는 다짐을 하지는 않는다. 어느 책에서 읽은대로, 비건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마음으로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가 채식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책의 부제에도 있듯이 '나를 지키'기 위한 '간소한 먹거리 생활'을 하겠다는 그 마음이 나의 지금의 마음과 통한다는 생각이다. 굳이 나를 지탱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지도 잘 모르겠는 다른 생명을 기여이 내 몸속에 넣어줘야만 내가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여기서 진심으로 중요한 것은 '나를 지키'는 것! 그것을 위한 먹거리는 다른 생명이 아니어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흔히들 그런 질문을 서로 던지곤 한다.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꼭 답을 해야 한다면 나는 살기 위해 먹는 쪽.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약간 그런 기질이 있었다.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밥 먹는 거 대신 알약으로 해결되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했다가 엄마에게도 맞아보지 못한 등짝 스매싱을 당했던 기억이 있다. 먹는 게 그렇게 귀찮고 또 지치고 힘들었는데, 친구들은 어찌 먹는 즐거움을 모르냐며 나를 이끌고 분식집 투어를 시작했다. 아, 싫다고도 못하고 따라다녔던 그 시절이 있었구나, 새삼스레 감정이 떠오른다. 지금 이렇게 편하고 가볍게 먹고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고 좋다.

1. 자그마해서 손에 쏙 들고 다니기 편했다.
2. 한 편 한 편의 이야기가 짤막하면서도 위트와 유머가 적재적소에 들어있어 읽는 재미가 컸다.
3. 먹는 것에 온 신경을 다 쓰고 있는 듯하면서도 먹는 것에 큰 욕심없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을 지탱해가는 그 마음이 좋았다.
4. 다른 이를 눈치보거나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바대로 행동하고 실천한다는 것이 참 매력적이었다.
5. 글이 끝나가는 것이 아쉬웠다.
6. 그리고, 자꾸만 '나의 먹이'가 무엇이고 나의 식생활이 어떤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래서 이 책이 참 좋았다.
기꺼이 읽어보라고 추천! 진짜 진심으로 추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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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시장
이경희 지음 / 강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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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라 하면, 어린시절 엄마 포대기에 엎여다니던 순간부터 함께했던 시장이 있었다. 대학시절까지 동네에 살면서 자주 시장을 이용했다. 시장의 골목과 상인들, 어린 꼬맹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걸 보며 쉽게 말 걸어주던 어른들이 곳곳에 있던 추억의 장소였다. 지금은 그곳을 찾지 않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늘 시작이라고 하면 그곳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괜히 시장이라는 말만으로도 따뜻하고 포근한, 옛 기억을 되살리는, 그래서 언제라도 다시 그곳에 가고싶다는 생각을 늘 갖게 하는 곳이, 시장이었다.
실제 '모란시장'에 가본 적은 없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마치 눈에 시장 골목이 보이는 듯, 비릿한 냄새와 누린내가 나는 듯, 그곳을 '삽교'와 함께 걷고 뛰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저 골목을 지나 대도축산 뒷마당에서 경숙을 만날 것만 같은, 그리고 그 모든 시장의 모습을 대도빌딩 3층 창문에서 모두 지켜보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다.
요즘 들어 사람, 동물, 자연, 그리고 그 사이의 관계, 생명, 가치, 그 속에서 다시 사람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생각이 깊어지고 있다. 과연 우리라는 사람이 이 지구와 자연에 얼만큼이나 큰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함부로 생명을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인지에 강한 회의감을 느낀다. 심지어는 사람 목숨과 존엄마저도 한순간에 놓아버리고 마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 과연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무섭고도 두려울 수 있는지를 다시 느끼고 있다.

반대편에 있는 동쪽의 수산물과 농산물 구역, 꽃을 파는 화훼 구역에 가는 걸 좋아한다.(...) 그 향기는 살아 있는 향기였고, 시장에서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생명의 냄새였다. 누군가를 위해서 이미 죽어 있거나 곧 죽을 처지들뿐인 이곳에서 꽃과 나무들만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향기를 풍겼다.(17쪽)

이 공간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쪽은 피비린내나는 잔인한 죽음의 공간이지만, 그 공간 반대편으로 살아있는,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삶의 공간이 존재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는 어디서든 사람이 존재하며, 그 사람에 의해 목숨과 생명도 부질없어질 수 있고, 또다시 삶의 희망을 품어볼 수도 있다. 그런 아이러니한 공간이 이곳, 모란시장이다.

"삽교야, 사람들은 자주 그런 말을 하더라. 어쩔 수 없었어,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 실수할 수도 있짆아, 라고.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좋지 않은 일들은 모두 제 뜻과는 상관없이 벌어졌다고 말하지."(100쪽)

하지만, 사람들이 하는 성의없는 변명일 뿐이고, 어느 것 하나 사람의 의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도움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려고 뛰쳐나온 송이의 눈에 삽교는 그저 사람이 다 되어가는 것으로밖에는 안 보일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그들은 물건만 좋으면 죽을 때까지 고기를 먹으려고 할 것이었다. 고기는 곧 돈이었다. 돈이 없으면 고기를 사 먹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고기를 사 먹기 위해서 돈을 벌고, 돈을 벌면 고기를 사 먹으려고 아우성이었다. 그는 그러니까 고기를 파는 사람이지 개를 죽이는 사람은 아니었다.(153쪽)

사람들의 끝없는 욕심과 탐욕이 소비를 만든다. 그 소비에 맞추기 위해 공급이 따라온다. 그 공급은 또 다른 소비를 만들고, 이 논리의 정점에서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사라지게 된다. 생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고기 덩어리로 보게 되는 것이다.
가끔 이런 질문을 던져볼 때가 있다. '소고기 국과 고양이 국은 다른가?' 이 질문을 받은 아이들의 반응은 우선, 고양이를 어찌 먹느냐며 소름돋는다가 첫번째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 돼지, 닭, 오리 등을 '고기'라는 이름을 붙이고 참 잘도 먹었고, 개와 고양이도 같은 '고기'로서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렇다면 다시금 사람의 입맛을 충족하기 위한 고기 섭취에 대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진다.

어디선가 삽교리 할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경숙이 앞치마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소리와 냄새를 오래 기억하는 따뜻한 개가 맞았다.(231쪽)

삽교리 할머니, 경숙이, 그리고 아빠에게서 삽교는 따뜻한 개로서의 삶을 살았다. 죽음의 공간 속에서 삶과 생명을 향했던 이들의 따뜻함이 그대로 삽교에게 전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랬기 때문에 그 사람들 곁에 오래도록 머물며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삽교가 제 스스로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을 맞이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덮었다.
분명 생각과 고민이 더 깊어지게 만드는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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