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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시장
이경희 지음 / 강 / 2022년 1월
평점 :
시장이라 하면, 어린시절 엄마 포대기에 엎여다니던 순간부터 함께했던 시장이 있었다. 대학시절까지 동네에 살면서 자주 시장을 이용했다. 시장의 골목과 상인들, 어린 꼬맹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걸 보며 쉽게 말 걸어주던 어른들이 곳곳에 있던 추억의 장소였다. 지금은 그곳을 찾지 않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늘 시작이라고 하면 그곳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괜히 시장이라는 말만으로도 따뜻하고 포근한, 옛 기억을 되살리는, 그래서 언제라도 다시 그곳에 가고싶다는 생각을 늘 갖게 하는 곳이, 시장이었다.
실제 '모란시장'에 가본 적은 없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마치 눈에 시장 골목이 보이는 듯, 비릿한 냄새와 누린내가 나는 듯, 그곳을 '삽교'와 함께 걷고 뛰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저 골목을 지나 대도축산 뒷마당에서 경숙을 만날 것만 같은, 그리고 그 모든 시장의 모습을 대도빌딩 3층 창문에서 모두 지켜보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다.
요즘 들어 사람, 동물, 자연, 그리고 그 사이의 관계, 생명, 가치, 그 속에서 다시 사람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생각이 깊어지고 있다. 과연 우리라는 사람이 이 지구와 자연에 얼만큼이나 큰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함부로 생명을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인지에 강한 회의감을 느낀다. 심지어는 사람 목숨과 존엄마저도 한순간에 놓아버리고 마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 과연 나라는 인간은 얼마나 무섭고도 두려울 수 있는지를 다시 느끼고 있다.
반대편에 있는 동쪽의 수산물과 농산물 구역, 꽃을 파는 화훼 구역에 가는 걸 좋아한다.(...) 그 향기는 살아 있는 향기였고, 시장에서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생명의 냄새였다. 누군가를 위해서 이미 죽어 있거나 곧 죽을 처지들뿐인 이곳에서 꽃과 나무들만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향기를 풍겼다.(17쪽)
이 공간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쪽은 피비린내나는 잔인한 죽음의 공간이지만, 그 공간 반대편으로 살아있는,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삶의 공간이 존재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는 어디서든 사람이 존재하며, 그 사람에 의해 목숨과 생명도 부질없어질 수 있고, 또다시 삶의 희망을 품어볼 수도 있다. 그런 아이러니한 공간이 이곳, 모란시장이다.
"삽교야, 사람들은 자주 그런 말을 하더라. 어쩔 수 없었어,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 실수할 수도 있짆아, 라고.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좋지 않은 일들은 모두 제 뜻과는 상관없이 벌어졌다고 말하지."(100쪽)
하지만, 사람들이 하는 성의없는 변명일 뿐이고, 어느 것 하나 사람의 의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도움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려고 뛰쳐나온 송이의 눈에 삽교는 그저 사람이 다 되어가는 것으로밖에는 안 보일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그들은 물건만 좋으면 죽을 때까지 고기를 먹으려고 할 것이었다. 고기는 곧 돈이었다. 돈이 없으면 고기를 사 먹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고기를 사 먹기 위해서 돈을 벌고, 돈을 벌면 고기를 사 먹으려고 아우성이었다. 그는 그러니까 고기를 파는 사람이지 개를 죽이는 사람은 아니었다.(153쪽)
사람들의 끝없는 욕심과 탐욕이 소비를 만든다. 그 소비에 맞추기 위해 공급이 따라온다. 그 공급은 또 다른 소비를 만들고, 이 논리의 정점에서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사라지게 된다. 생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고기 덩어리로 보게 되는 것이다.
가끔 이런 질문을 던져볼 때가 있다. '소고기 국과 고양이 국은 다른가?' 이 질문을 받은 아이들의 반응은 우선, 고양이를 어찌 먹느냐며 소름돋는다가 첫번째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 돼지, 닭, 오리 등을 '고기'라는 이름을 붙이고 참 잘도 먹었고, 개와 고양이도 같은 '고기'로서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렇다면 다시금 사람의 입맛을 충족하기 위한 고기 섭취에 대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진다.
어디선가 삽교리 할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경숙이 앞치마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소리와 냄새를 오래 기억하는 따뜻한 개가 맞았다.(231쪽)
삽교리 할머니, 경숙이, 그리고 아빠에게서 삽교는 따뜻한 개로서의 삶을 살았다. 죽음의 공간 속에서 삶과 생명을 향했던 이들의 따뜻함이 그대로 삽교에게 전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랬기 때문에 그 사람들 곁에 오래도록 머물며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삽교가 제 스스로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을 맞이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덮었다.
분명 생각과 고민이 더 깊어지게 만드는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