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왜 밖에 서 있을까
최문자 지음 / 난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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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책이 있다.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주변을 고요하게 만들고 그 고요함 속에 잔잔하면서도 깊은 심연으로 끌어들이는. 그러면서도 그 깊숙한 곳 끝에 다다라 가만히 책과 나만 남겨져 오롯이 그 정막함과 정적 속에 있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 있다. 바로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느 페이지 어느 이야기를 읽어도 이런 기분이었다. 다른 어떤 소음과 생각, 불안과 고민으로부터 단절된 시공간 속에서, 책과 나만, 이야기와 나만 남겨진 느낌. 그 느낌이 너무도 편안하고 또 따뜻했다. 시인이 시어를 고르고 말을 잇는 느낌 그대로, 한 문장 한 문장 고르며 적어 나갔을 그 과정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이런 글을 접할 때, 또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이래서 시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그들의 시와 문장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괜찮아'라는 말의 질량이 전복되면 허위와 불행이 된다. '괜찮아'는 여유를 느끼게 하는 우아한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고통스러운 말이다.(44쪽_너 정말 괜찮으냐고 물었다)
_누군가들은 자주 '괜찮아?'라고 묻고, 당연하다는 듯 나는 '괜찮아'라고 답한다. 이 답 말고 다른 어떤 답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묻는지. 괜찮지 않다고 말할 용기는 없다. 늘 괜찮아야만 하는 사람인 듯, 지금까지 살아왔으니까. 그래서인지, 이제 나도 괜찮다는 대답을 그만 해야할 때가 된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밀어붙이는 행위로 다른 이를 깊은 삶의 물 속으로 빠뜨릴 권리란 누구에게도 없다.(147쪽_보랏빛 공포)
_누구에게도 없는 권리를 왜 이리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특권인 양 함부러 행사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은, 조절할 수 없는 힘을 쓰는 행위를 무척 싫어한다. 물리적인 힘의 세기가 관계에 끼어드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관계는 망가지고 만다. 그걸 너무도 잘 알고있기 떄문에, 내게 억지로 힘쓰는 사람이 싫다.

자리는 과거의 장소들이 지낸 공간의 역사이며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숙소이기도 하다. 우리가 늘 앉아 있는 자리에는 살아온 추억과 휴식과 습관의 온기가 남아 있기에 미묘하며, 이성적인 해석만으로 그 기능과 의미를 가늠할 수 없다.(175쪽_의자)
_'자리'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생각하고 좌절하고, 상처받고 속상해하며 지낸 시절이 있었다. 청춘의 시절이라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고 덮어둘 수도 있겠지만, 어른이 되고도 한첨 더 어른이 된,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에 갖게 되는 '자리'에 대한 생각은, 뒷맛이 씁쓸하기만 했다.

누구나 바라보고 싶은 대상이 있다. 거기에 닿고 싶어 하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걷고 멈추고 다시 걷는다.(194쪽_나무는 죽을 때 슬픈 쪽으로 쓰러진다)
_바라보고 싶은 대상을 향하고, 닿고 싶은 마음이란 이 세상 모든 만물이 다 같을 것이라는 마음이다.

끝도 없이 생각에 또 생각을 덧붙이며, 감히 내 멋대로 책을 내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고 싶어지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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