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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의 다이어리 ㅣ 베스트 세계 걸작 그림책 56
엘런 델랑어 지음, 일라리아 차넬라토 그림, 김영진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1년 9월
평점 :
그림책을 읽고 잠시, 아니 꽤 한참 후회를 했다. 나도 일찍부터 다이어리를 꼼꼼하게 쓸 걸... 하고. '리시'의 다이어리가 무척 부러웠다. 여기서 '리시'는 둘 다(같은 이름으로 마주선 두 '리시'의 관계에도 주목하게 된다. 세대를 넘어서면서도 연결되어 있는 느낌! 이 세상에 홀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져있다는 따뜻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얼마나 안심되는 느낌인지...)!
할머니 '리시'의 책꽂이 선반에 꽂혀있는 일기장들이 이렇게나 부러울 수가. 빼곡하게 채워진 이야기들이, 곧 삶의 축적이라고 생각하니 뭉클하기도 했다. 그리고 '리시'가 첫 일기장에 첫 일기를 쓰는 그 시작에, 마음이 살짝 떨렸다. 나만의 공간에 꾹꾹 눌러 적는 이야기에는 '리시'가 앞으로 펼쳐내고 싶은 모든 것이 담길 테니까. 그 처음의 설렘이 얼마나 기분 좋을지, 상상만으로도 리시와 함께 첫 일기를 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기라는 것이 참 이렇게 묘하구나, 한번 더 생각했다. '리시'가 들고 있는 일기장에 걸려 있는 자물쇠와 열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만이 알고 싶은 이야기가 듬뿍 담길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일기장에 저 자그마한 자물쇠를 달아놓고,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추억. 그 일기장에는 웃고 울었던 일들, 나랑 누군가 사이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의 내 감정까지... 나만 알고 싶고 나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담겨 있었다(물론, 내 다이어리는 꾸준히 쓰지 못해 띄엄띄엄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담긴 초라한 일기장이 되었지만...).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새삼 느꼈다. 수많은 시간들이 흘러가고 그 시간들을 살면서 많은 일들이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우린 그 시간과 일들 속에서 나만의 역사를 선택하여 기록한다. 그렇게 기록은 쌓여 비로소 '나'가 완성되고, '나'를 오롯이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는데, 그것이 바로 일기장이다. 일기 속에서 '나'의 역사는 숨쉬고 살아 움직이며, 그 자체로 '나'가 될 수 있는 것. 우리가 매일 특별한 일들을 거치며 지금의 오늘을 맞이한 것이 아니듯, '나'라는 사람은 그동안의 별거 아닌 듯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쌓여 '나'가 된다. 뭔가 거창하고 대단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모두 사소하여 별거 아닌 이야기로 하찮게 여길 필요도 없다. 그저 그렇게 오늘의 하루하루가 누적되면, 그 자체로 의미는 충분한 거니까.
_ "좀 전에 읽어 준 이야기들은 내가 너만 했을 때 쓴 거야. 난 그 일기장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전부 모아 놨단다. 지금도 중요한 일들은 일기장에 다 서 놓지. 늘 기억하려고. 우리 리시도 일기 써 보고 싶니?"
과거의 일기장들을 잠시 꺼내보았다. 좋았던 일보단 그렇지 못했던 감정에 더 치우친 일기들이 대부분이지만(평소 농담삼아, '오늘 집에 가서 이불 뒤짚어쓰고 울 거야'라는 말 대신, '나 오늘 일기 쓸 거야'하는 느낌!), 그때의 솔직함을 오랜만에 대면하니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아, 일기가 이런 거였지, 심장이 소리없이 쿵! 했다. 할머니의 말씀처럼, 일기를 쓴다는 것은 늘 기억하겠다는 것. 그리고 늘 기억한다는 것은 그 어떤 순간들도 모두 소중히 여기겠다는 말이지 않을까.
몇년 전부터 매일 꾸준히 다이어리를 적어나가고 있다. 꼬박꼬박 써 내려간지 얼마 안 되었지만(많이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나의 생각과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리시' 할머니의 선반에 올려진 일기장들처럼 나의 일기장도 고스란히 내가 될 수 있도록.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모두 다 나의 이야기로 완성될 수 있도록 그렇게.
_나의 첫 일기장에게
오늘은......
덧-
속표지를 보고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쩜 이리도 다이어리 감성에 꼭 맞는 속표지를 갖고 있을까!
알록달록, 아기자기, 앙증맞은 일러스트들...
모두 다이어리 꾸미기에 최적화된 그림들!
당장에 다이어리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숨어 있었다.
아무래도, "<리시의 다이어리>+다이어리" 세트가 있어야 할 듯.
이때 다이어리는 꼭! 자물쇠가 달려 있어야 함!
*서평단에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그림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