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함을 듣는 일 - Listen to Silence
김혜영 지음 / 오후의소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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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작가의 그림들을 책 한 권에서 다 볼 수 있어 행복하다. 그리고 고맙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다 봐도 되나? 싶을 정도의, 과분한 배려를 받은 느낌도 든다.
제목부터가 이 책을 함부로 아무데서나 펼치지 않고 싶게 만들었다. 괜히 환한 대낮, 사람소리 시끌시끌한 소음에서 벗어나는 시간과 장소를 찾고 싶었다. 그리고 책을 펼친 시간은 밤, 어둠 안에서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않을 장소, 작은 스탠드 불빛 안에서 조용히 책을 펼쳤다. 그리고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밝게도 보고 조금 어둡게도 보고 앉아서도 보고 누워서도. 오래 보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다.(16쪽)
_<나는 가만히 손을 뻗는다>, 2019. 천에 동양화 물감, 37X52cm.
: 오래 보려고 그려진 그림이라면, 오래 봐주고 싶다. 그럼, 오래 본다는 건 뭘까. 그림 속 그림과 그림 속 그림이 걸린 공간에서 내 시선은 여기에서 저기로, 또 다시 구석에서 가운데로 옮겨다니는 듯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 속에 잠식되어 내가 점점 사라진다고 느껴질 때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누구도 없는 공간에서 나 자신과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기를.(61쪽)
_<아무도 살지 않는 집>, 2020. 천에 동양화 물감, 유채, 97X138cm.
: 언젠가 숨고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의자를 한없이 내리고 어디에서도 나를 찾지 못하도록 숨고 감추려고 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누구의 시선과 관심조차 아팠던 그 때 필요했던 것이 이런 공간이었구나. 아무도 들이지 않으려 했던 내가 나를 만날 수 있을만한 곳. 이 집 역시 숨기 위한 방어막을 짙게 만들어놓았구나.

날 좋은 날,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밖으로 나간 날.(67쪽)
_<초록의 틈에 서>, 2020. 천에 동양화 물감, 72.7X91cm.
: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몸이 무겁고 기운이 나지 않는 날.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이다 한낮에 지쳐 의자에 파묻힌 날,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 좋아하는 서점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 꽃집에서 팔던 후리지아 한 단을 사올 걸, 후회했다. 다음엔 꼭 사와야지.

각기 다른 삶에서 나오는 것들이 다정한 겹을 만들어줄 듯했다. 벽에 그림을 걸고 한 발짝 뒤로 나온다. 팔을 X 자로 만들어 스스로를 안으며 생각한다.(83쪽)
_<고요한 상영회, 두 번째>, 2022. 천에 동양화 물감, 유채, 53X41cm.
_<뒷면에서 만나요>, 2022. 천에 동양화 물감, 유채, 53X40.9cm.
: 저 상영회에 초대받고 싶다. 뒷면에서 마주치게 되는 사적인 만남이 더 매력적이긴 하다. 어쩌면 상영되는 이야기 이면에 숨겨진 은밀한 비밀이 더 마음을 끌어당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반짝이는 결 따라 다른 삶이 어우러질 때, 이 이야기들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기도 한다. 뭐, 그런 느낌.

물결이 내는 소리는 조용하다. 주의를 기울여 조용함을 듣는 것은 다정한 관심의 방향이다. 사소하지만 부명하게 있는 이야기들을 만나고 싶다.(95쪽)
_<물결이 내는 소리>, 2021. 천에 동양화 물감, 유채, 91X91cm.
: 여행 중 아침 산책을 하다, 바다의 물결을 한참 바라보며 앉아있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물결을 향하고 있던 그 시간들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좋았는데. 조용함을 듣는다는 것이 참 역설적이지만, 잘 듣고싶어지는 매력적인 말이기도 하다. 조용함을 듣는 것, 조용함을 듣는 일. 작가의 조용함이 작품으로 내게 스미는 느낌이 좋다.

날씨가 크게 두 번 바뀌는 동안 많은 친구들이 그 낡은 의자에 기대 슬픈 날에는 울기도 하고 지친 날엔 짧은 잠을, 또 작은 한숨 같은 말들을 뱉고 가기도 했다.(130쪽)
_<기대 앉는 우리들>, 2021. 천에 동양화 물감, 유채, 90X42cm.
: 예전 사무실에 작은 1인용 소파가 있었다. 가끔 다리까지 올려 앉아서는 쿠션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기도 했었다. 지치고 피곤하고, 마음을 다치게 하던 순간들을 그 소파에서 위로받았었다. 그 소파가 그리워진다.

글그림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책이다. 어떻게 조용함을 듣을 수 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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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얼굴 사계절 1318 문고 139
조규미 지음 / 사계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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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글을 쓰면서 독자들의 최대 고민이 '친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174쪽_작가의 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이들에게 있어 가장 1순위는 언제나 친구다. 아마도 가족 관계 외에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시작이 친구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은 태어나서부터 당연하게 주어졌던 거라 특별한 노력 없이도 쉽게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면, 친구는 무언가 노력하지 않으면 관계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많은 시행착오, 어려움, 슬픔 등을 겪으며 스스로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는 게 쉬울 수가 없으니 어떤 목적 없이 자연스레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 관계를 위한 특별함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와 학교 아닌 곳에서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리고 그런 시도 속에 이 아이들이 있다.
최다영과 황가람, 차우현과 송미단, 오민준과 송원호, 은성과 희유, 그리고 나와 호빵, 슬지까지. 이 아이들은 모두 학교와 캠프에서 낯선 아이들과 친구가 된다. 물론 쉽게 친구가 된 건 아니다.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한 과정과 노력이 있었고, 그 안에서 만들어진 많은 오해와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지난 후 이 아이들은 친구가 된다. 그냥 말로만 '우리가 친군가? 친구겠지?' 정도가 아니라, '우린 친구야! 당연히 친구지!' 어떤 의심도 없이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친구. 뭐든 어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함께 지나온 후엔 진정한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게 되는 법이니까. 그런 과정을 이 아이들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이 아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다른 아이들과 쉽게 어울려 두루두루 친구를 만들어내는 부류의 아이들이 아니다. 교실 전체 구도 속에서 많은 아이들이 어울려 왁자지껄 떠드는 무리가 있다면, 그 무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는 듯 소리를 줄이는 부류의 아이들이다. 먼저 나서지도 따져 묻지도 않고, 그저 다른 아이들의 말과 공격을 그대로 받아안는 편의 아이들이라는 것에 내내 신경이 쓰였다. 꼭 이런 아이들만이 친구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친구들이 대체로 더 많이 친구 관계를 서먹하게 여기는 것만은 사실이니까. 그리고 이런 여러 과정들에서 아이들이 서서히 조금씩 거리를 좁히며 다른 아이들 사이에 자신을 놓을 줄 아는 법을 배우기도 하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뭔가 어른의 개입 없이도 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신의 자리와 친구의 자리를 잘 만들어 단단한 끈으로 이어놓을 수 있게 된 것 같아, 자신의 속마음과 지금의 상태를 스스로 확인해 알아채게 된 것 같아,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옳고 어떻게 하고싶은지의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드러낼 줄 알게 된 것 같아,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어른의 시선으로 이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게 다 커나가는 과정이지, 이런 과정을 겪으며 어른이 되는 거지, 하고 듣기싫은 소리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른인 내가 이런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지켜보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제 문제를 해결해나가려고 시도하고 노력하는 모습 자체가 참 기특하니, 이런 말을 안 할 수가 없지. 아이들이 이런 말들을 듣는다면 야유를 보내겠지만, 그 야유에 뒤이은 해맑은 웃음을 생각하면 백 번 천 번이라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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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둥이입니다만! -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오리
송 스튜디오 지음 / 북로망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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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거의 지나고 이제 봄이 조금씩 오려나보다. 막바지 추위도 조금은 꺾인 듯. 얼마 전 예쁜 단어이기도 한, 우수가 지났다. 이제 웅크리고 있던 기운, 우울하고 추웠던 마음도 서서히 풀려 녹아 흘러야 할 것만 같은 시기라는 뜻. 이때 '오둥이'를 만났다!
아, 나 이 오리 아는데. 이모티콘에서 자주 봤던 오리. 뭔가 무심한 듯도 하고 별 감정 없어 보이는 듯도 한 오리가 '오둥이'였구나, 이름을 드디어 알았다. 그리고는 가만히 오둥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분명 표정 변화 없는 얼굴인데 이상하게도 볼 때마다 또 여러 표정으로 보인다. 신기한 마음에 책을 다 읽고 다시 처음부터 책을 촤르르 넘겨봤다. 오둥이의 얼굴은 한결같다(다만 가끔 볼이 발그레해진다). 오둥이의 눈과 부리는 늘 변함이 없다. 근데 왜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아무래도 뭔가 비밀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오둥이는 혼자 있을 때도 매력적이지만, 삐둥이와 함께 있을 때가 더 잘 어울린다. 삐둥이와 이미 세트가 된 거다. 단짝의 단둘. 삐둥이를 위해 오리털 인형을 만들어줬을 때는 순간 헉! 하고 놀라기도 했지만, 그정도의 마음이라면 이 둘은 오래도록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둘은 어떤 것으로도(코 고는 소리가 너무 커도) 갈라놓을 수 없겠구나 싶었다.

일상에서 배려를 받으려면
나부터 상대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
너를 보고 다시 한번 깨달았어.

내가 나눠준 빵 한 조각을 잊지 않아줘서 고마워.
소중한 마음을 다시 나눠줘서 고마워.(176쪽)

오둥이는 뭐든 주고 싶어한다. 주면서 행복해한다. 가져서 행복한 게 아니라 나눠줄 수 있어 행복한 오둥이. 오둥이 곁에 있으면 뭐든 나누고 베푸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내가 다 먹지 않아도 배부를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오둥이다. 오둥이와 삐둥이가 주고받은 빵 조각들이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이 책 뭐지, 했다. 슥, 읽고도 다시 곰곰이 읽게 만든다. 가벼워보이지만 절대 가볍게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오둥이의 표정을 살피게 된다. 오둥이의 감정을 읽게 되고, 오둥이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물론 이 모든 건 다 내 표정, 감정, 마음이겠지. 왜 오둥이 얼굴은 변하지 않는데 변하는 것처럼 보였을까의 답을 찾았다.
오둥이를 보며 복잡하게 얽혀있던 실타래가 한올 한올 풀어져나오는 느낌도 받았다. 어찌보면 오둥이의 선택과 결심은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고 내리는 결론들이다. 그만큼 솔직하다는 거겠지. 그리고 계산하지 않고 느껴지는대로, 마음이 가는대로 하면 된다. 내가 더 할 수 있으면 더 하고, 덜하게 되어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하면 되는 건데. 우린 살면서 이런 단순하고도 분명한 세계를 너무 잊고 살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경계를 나누어 구역을 구분하고 서로가 가진 것을 비교하며 상대적인 삶(행복)의 척도를 스스로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도 너 덕분에 행복해.
앞으로도 같이 행복하자,
내 친구!(250쪽)

오둥이를 보면서, 행복하고 싶어졌다. 같이 행복하고 싶어졌다.

덧-
오둥이는 아무래도, 어떤 것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지닌 듯하다.
자주 깜짝 놀라고, 작은 일에도 마음을 졸이며, 겁이 나 자주 숨으려드는 나.
오둥이같은 마음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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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이 행성을 떠납니다 - 제3회 틴 스토리킹 수상작
최정원 지음 / 비룡소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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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기 전 제목에서 연상되는 이야기 구성이 있었다. 표지 그림과 연결시키면서, 이 아이들이 과연 이 행성을 떠나 가게 되는 다른 행성은 어디일까를 궁금해했다. 물론, 이 모든 짐작과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지만. 이미 초반부를 읽어나가면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에 더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인지, 읽기 시작한 그 자리에서 다 읽고 책을 덮었다. 그만큼 속도감도 있고 그 다음을 궁금해하게 만드는 묘미가 있었다.

그럼, 이들이 '이 행성'을 다시 떠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무지개라 불리는 외계인들은 자신들에게 허락된 공간 밖을 욕심부리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그들을 관심의 대상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찡가'같은, 그저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여기려는 사람들)의 간섭이 그들을 다시 떠나도록 부추겼을까. 혹은 이 행성도 그다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해의 조사과 연구 끝에 알게 되었는지. 어쩌면 이 둘이 모두 겹쳐지며 이 행성에서의 삶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지 우리가 살고있는 이 행성이 다시 정착해 살 수 없을 정도의 상황과 상태라는 것이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졌다.

어떤 경우라도 그들은 또다시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을만한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이미도 처음부터 그렇게해서 우리의 행성으로 이주해 정착했으니까. 그렇다면 남겨진 우리는? 우리는 이 행성을 지키고 유지하며 잘 살아내야 하는데(그거 말고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 그리 많지도 않고 굉장히 희박하기도 하고...), 남겨진 우리가 과연 이 행성에서 어떤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다들 자주 만나고 자주 이야기해 보면 좋을 텐데. 가까이서 지내 보면 알게 된단다. 외계인이나 지구인이나 결국 다 똑같고 사는 모습도 다 비슷하다는 걸 말이지. 하지만 다들 자기랑 조금만 달라도 거부감부터 가지니까......"(64쪽)
자신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의 평화를 깨야만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다.(114쪽)

그러니까 말이다. 결국 다르다는 것으로만 선을 그어놓고, 결국 자신의 생각으로만 세상을 움직이려는 사람들의 욕심이 그들을 쫓아냈던 첫번째 이유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원호'와 '나래'의 모험과 성장으로 조금은 나아진 미래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결국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을 우선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과 다르게, 무엇을 향해 소신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알고 있는 이들이 있으니까. 다들 중학생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을테지만, 여기 등장하는 우리 중학생들은 이미 확고한 판단력과 결정력을 갖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단함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이들이 만들어나갈 미래는 밝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혹은 꼭 이 이유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 행성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그들 종족이 살아나가기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면, 이 지점은 우리가 여지없이 반성해야하는 부분이 될 것이다. 세계의 무지개들이 모두 한순간에 이 행성을 떠났다는 것에서 결국은 대한민국이라는 우리사회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가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유가 분명히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결국 행복을 보장받지 못하는 삶이었음은 분명했다. 그리고 행복을 위해 '대피'해야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에서 여전히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약속은 깨졌고 이제 비밀은 의미가 없으니, 위협이 가까워 오는군요. 저희 종족은 언제나 행복을 위해 도망쳐야 한답니다. 저희는 그래서, '무지개'죠.(90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중학생들은 용감했다. 용감하게 지켰고, 그 과정에서 한뼘 자랐다. 그 과정은 원만하지도 않았고 쉽지도 않았다. 하지만 처음 겪어보는 낯선 상황들 속에서 씩씩하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서로의 힘이 합쳐지며 잘 이겨냈다. 그 과정에서 관계가 회복되었고, 회복된 관계에서 여전히 따뜻함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 아이들의 깨달음이 곧 우리가 앞으로도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가 될 것이다.

신중하다./이렇게 어려운 단어를 떠올리다니 원호는 자신이 좀 자랑스러워졌다. 나중에 말해 줘야지. 꼭./긴 한숨을 내쉰 나래가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안경 너머의 눈은 어떤 큰 결단이라도 내릴 듯 빛나고 있었다./"집에 가자. 우리도."/나래가 환하게 웃었다.(255쪽)

그래도 다행인 것은 '보보'가 아무래도 다시 돌아올 수 있겠다는 기대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아기였던 '보보'가 어른이 되어 돌아온 이 행성이 여전히 눈부시고 아름다우며 행복한 이들을 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 행성에서 다시 행복을 꿈꾸어도 좋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뒷이야기를 상상해본다.

*해당 후기는 비룡소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고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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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라진 날 당신을 위한 그림책, You
산드라 디크만 지음, 김명철 옮김 / 요요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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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어제까지 모든 시간을 함께했던 소중한 존재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그 충격과 상심은 어느 정도의 고통일까. 그것도 예상하지 못한 이별을 경험하게 될 때의 상실감은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과연 극복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남겨진 이의 마음은(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 것이다. 한순간에 세상은 밝은 빛에서 암흑으로 바뀔 것이며, 고통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온통 어둠만이 가득한 세상속을 헤매며 쉽게 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_"나, 내일은 저 별빛이 될 거야."
하지만 여우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늑대가 나쁘다는 생각을 했다. 남겨질 여우에게 알아듣지 못할 말만을 남기고 그렇게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별빛이 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늑대를 여우는 내내, 별빛을 볼 때마다 떠올리고 아파하게 될 테니까. 여우가 별빛을 따뜻하게 안아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늑대를 원망해보았다.

_"늑대는 하늘의 별빛이 될 거라고 했어.
그럼 지금 저 하늘 위에 있을지도 몰라!"

여우는 늑대를 찾겠다는, 늑대를 만나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늑대가 있을 것이라는 그곳이 어디든, 늑대를 찾으러 가겠다는 마음인 것이다. 하지만, 안다. 아무리 늑대를 찾아 그 꼭대기를 오르고 또 올라도, 늑대를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걸.

_여우는 손을 쭉 뻗어서
하늘에서 빛나던 별 담요를
끌어내려 버렸습니다.
세상이 온통
어둠으로
뒤덮였습니다.

하지만 여우는 알고 있었다. 세상을 어둠으로 만드는 것도, 다시 빛으로 만드는 것도 모두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는 것을. 반짝이는 별빛 속에서 자신이 다시 생기 넘치게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을. 환한 세상 안에서, 늑대와 함께했던 그 시간들만큼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_"삶은 정말 아름다워." 늑대가 말했습니다.
"맞아! 너랑 있으면 언제든 그래!" 여우가 대답했습니다.
"나에게 약속해 줄 게 있어." 늑대가 말했습니다.
"우리의 오늘을 언제까지나 기억해 줘."
여우는 행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죠.

떠나는 이가 남겨질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늑대가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바뀌지 않는 이상, 남겨진 이의 슬픔 또한 막을 수 없다. 다만 남겨진 이의 슬픔을 다독일 수 있기 위한 방법은, 그 슬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는 것. 늑대가 여우에게 남긴 말들 속에 그 해답이 숨어 있었다. 곁에서 옆구리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던 체온은 느낄 수 없어도, 그가 남겨놓은 기억의 따스함은 내내 몸속에서부터 온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늑대가 여우에게 몹쓸짓(여우가 별빛을 볼 때마다 슬퍼하게 만든 것)을 했다고 생각했던 처음의 생각을 반성했다. 오히려 별빛으로 여우의 삶이 여전히 늑대와의 기억으로 아름다울 수 있을 거라는 걸, 별빛을 통해 알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배려였다. 아, 이걸 느낀 순간, 뭉클했다.
책을 다 읽은 후 표지를 다시 봤다. 표지 속 여우의 표정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우가 늑대와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는 것도 잘 알 수 있었다. 소중한 존재와의 약속을 늘 간직하며, 소중한 존재를 마음속에 품고, 더 밝고 씩씩하게 살아갈 힘을 스스로 찾은 여우가 너무 대견했고, 감동적이었다. 표지의 여우의 모습을 한참 지그시 바라보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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