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평점 :
#술꾼들의모국어 #권여선 #한겨레출판 #하니포터9기 #서평단 #서평 #책추천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술꾼들의 모국어라니. 모국어란, '자기 나라의 말. 주로 외국에 나가 있는 사람이 고국의 말을 이를 때에 쓴다.' 혹은 '여러 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거에서, 자기 민족의 언어를 국어 또는 외국어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술꾼들에게는 따로 술의 나라에서 쓰는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술의 민족만의 언어를 상대적으로 지칭하는 말이 있다는 뜻이었다. 아, 너무 궁금했다. 왕년에 '주당'이라 불렸던 나로서는 관심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었다. 술과 술자리, 그리고 안주에 대해서는 나도 나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작가에게 난 상대도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고수 앞에 하수도 안 되는. 안주에 대한 철학도 부족했고, 지금도 여전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작가 앞에 명함도 못 내밀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미 손 들어 항복한 채 작가의 고수의 자질을 따라가며 감탄만 할 따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작가만큼이나 먹는 것에 진심이지 않다. 무언가를 먹게 되면 먹는 것이고, 또 딱히 먹지 못할 경우라면 못 먹어도 하는 수 없다는 생각이 더 크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 같지만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나고, 현재는 그렇다. 그러니 작가의 음식(아니, 안주)에 대한 철학에 대해 그저 놀라며 따라 읽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느낀 것이 있는데, 난 작가만큼 먹는 것에 부지런하지 못하다. 솔직히 어느 시점 이후부터 먹는 것이 귀찮고 또한 먹는 것을 준비하는 것이 무척이나 귀찮아 최대한 조리법을 단순화하고 빠르고 간편하게 후딱 해치우는 방식으로 의식주의 '식'을 해결하고 있는 중이다.
공부와 음주의 공통점이 있다면 미리 미리 준비해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아니,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118쪽)
맞는 말이기도 하다. 뭐든 부지런히 미리 준비해야 결과가 좋아진다. 그래서 작가는 늘 언제나 술과 함께 할 안주를 상시 준비해놓는다. 말로는 별로 어렵지 않다고 한다. 마치 이 글대로만 하면 가볍게 뚝딱뚝딱 몇 번으로 훌륭한 안주가 짜잔, 하고 만들어진다는 거다. 하지만 안다. 이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실제 여러 번 해보면 쉬워질 수도 있지만, 당장에 그렇게 할 마음을 먹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마음을 먹지 않으면 뭐든 안 될 일인데, 하물며 이리도 귀찮은 안주 준비가 쉬울 리가 없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존경스러울 정도다.
마지막으로 게다리를 넣어 구수한 단맛이 도는 무된장국을 한술 떠먹는다. 그러면 내 혀는 단풍잎처럼 겸허한 행복으로 물든다.(152쪽)
누군가 지인이 말했다. 먹는 즐거움을 위해 사람은 사는 것이 아니겠냐고. 많이 먹으면 맛있지 않다고. 적게 먹으며 각 맛을 음미하는 즐거움이 있는 법이라고. 어쩌면 작가가 말하는 저 '행복'의 감정이 이런 먹는 즐거움과 비슷한 말이지 싶다. 먹는 것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어찌보면 참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어쩌면 매번 먹고 싶은 것이 딱딱 떠오르냐고. 그랬더니 상대 배우가 말했다. 악상 같은 거라고. 그때그때 먹고 싶은 것이 떠오른다고. 이 대사들을 들으며 재밌다고만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배우가 바로 이런 즐거움을 스스로 잘 만들어내는 사람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 매우 거창하지 않아도 되는 법인데. 이렇게 내가 가진 시간을 채우는 술과 안주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법인데. 음식과 행복 사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이 책의 음식(혹은 안주) 중 공감이 가는 음식이 있었다. 바로 '마른 오징어 튀김'. 이건 외할머니와 엄마로 이어지는, 대를 이은 추억의 음식이다. 작가와 달리 다행히 어린 시절 마당이 있는 집에서 자랐다. 늘 튀김 요리 장소는 마당이었다. 오징어를 충분히 물에 불리고 불은 오징어에 튀김옷을 입혀 한번, 또 한번을 튀겨내면 바삭아삭한 맛있는 튀김이 완성되었다. 주변에 기름이 튀는 부담 없이 마음껏 조리할 수 있었고, 그런 마당의 엄마 옆에 쭈그리고 앉아 튀김을 하나씩 미리 집어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느 날 큰 기름방울이 튀어 볼에 가벼운 화상을 입은 어머니는 그것을 핑계로 마른 오징어 튀기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다시 마른오징어를 구워 먹는 원시시대로 돌아갔다.(193쪽)
아쉬웠겠다. 마른 오징어 튀김을 먹어보면 그 매력에 금방 빠질 수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보통 귀찮은 것이 아니니, 나도 알고는 있지만 한번도 해본 적은 없는 음식이다. 물론 누가 해준다면 그 옆에서 날름날름 받아먹을 수는 있겠지만(물론, 지금은 그마저도 쉽지 않은 결심 중이기는 하지만).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해줬던 것처럼, 엄마가 우리에게 해줬던 것처럼,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기도 하다. 꼭 술과 함께가 아니어도 말이다.
가끔 질문을 받는다.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그럴 때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신없는 말투로 대답한다. 풀때기? 작가는 각 계절마다 분명한 좋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나는 그런 분명함이 없다. 자신도 없고 또 부지런할 생각도 없다. 그래서 이런 작가가 더 부러웠다. 어떤 음식을 그것도 술과 어떻게 함께해야 하는지에 소신이 분명했으니까.
술이 뭐 어때서? 개인적으로 작가가 술에 대한 사랑을 내내 작품에 써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다. 좋은 것이 있고 그 마음이 충분하다면, 그 충분한 마음을 담아 좋다고 써 주는 글을 읽고 싶어진다.
나도 월급날마다 먹는 좋아하는 음식 하나 정해봐야지. 그 음식의 맛과 기억으로 행복해질 수 있도록...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