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6
문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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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아픔, 그리고 마음에 상처가 난 사람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다시 살아내기 위해 가져야 했던 다짐은 무엇이었을까. 무너지지 않고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참아야했던 마음이 어떠했으며, 비어버린 이들의 마음을 다시 채우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들은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살아있음을 위해, 혹은 자신의 삶을 잃지 않기 위해 이들이 보냈던 신호들은 무엇이었으며, 그 신호들이 닿을 수 있었던 지점은 어디였을까. 그리고 그 신호들의 끝에서 돌아와 이들에게 닿은 인사는 어떤 의미였을까. 이들이 다시 숨쉴 수 있도록 도와준 것들, 사람들은 또 어디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을 다 읽고, 책을 덮고, 이 소설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보라고 하듯, 이 소설에 대한 질문을 떠올려봤다. 계속 해보라고 하면 조금 더 질문을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이 소설과 소설 속 이들의 모습이 만들어 내는 생각들이 많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그만큼 이들의 삶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많다는 뜻일 것이고. 이런 저런 생각들로 그 생각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만큼 인상적이라는 뜻.

지원, 주미, 재인, 영식, 쑤언. 이 다섯 이들이 품고 있는 마음은 혼자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던 듯하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떠받치고 있는 무게가 있기 나름이지만, 이들에게 얹혀진 무게는 자신의 무게 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감당이 쉽지 않다는 것. 그래서 혼자 힘으로 그 무게를 품고 한 걸음 걷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 하지만 이들은 모두 그 힘겨운 걸음을 꾸역꾸역-사실 이 단어가 갖고 있는 버거움의 느낌이 딱, 알맞은 표현인 듯 느껴진다- 내딛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그 힘듦을 오롯이 제 스스로의 힘만으로 짊어지고 나아가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불가능했지만.
불가능했던 게 맞는 것 같다. 사실, 이들은 처음부터 혼자 떠안기에는 너무도 큰 마음들을 안고 있었음에도, 어디에서 어떻게 그 마음들을 나누어야 할지, 내려놓아야 할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누군가 없이 혼자, 외롭게, 꿋꿋하게, 그러면서도 힘겹게 꾹꾹 눌러담기만 했을 뿐. 그러니, 이럴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런 이들이 결국 만났다. 그리고 연결되어있음으로 이들은, 마음의 무게를 조금씩 나눠가지며 가벼워지는 발걸음을 다시 내딛을 수 있었다.

서핑을 하면 딩 나는 건 당연한 거니까.(85쪽)
그건...... 내가 오늘도 파도에 뛰어들었다는 증거니까.(86쪽)

보드에 난 상처, 딩. 이 소설의 제목이 왜 <딩>일까를 생각해 봤다. 결국 상처라는 거.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상처가 날 수밖에 없다는 거. 그리고 그 상처는 내가 무언가 했을 때에만 생긴다는 거. 그러니, 상처는 당연하다는 거.

주미가 영식의 품에 안겼을 때, 영식이 쑤언과 함께 살기로 했을 때, 지원 아버지의 장례식에 주미가 찾아갔을 때, 쑤언이 계단에 귤을 내려놓았을 때, 지원이 주미에게 연락했을 때, 영식이 재인을 깍두기시켜 줬을 때, 그리고 주미가 재인을 보고 손을 흔들어 인사했을 때. 이 순간들이 이어지고 쌓여, 이들이 숨쉴 수 있게 되었다. 별 거 아닌 것 같은 이 작은 순간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심장을 뻐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괜히 뿌듯하기도 하고.

딩 나는 건 당연하다는 P의 말을 자꾸 곱씹게 된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처임을, 나 스스로 반복적으로 되뇌는 중.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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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가장 밝은 지붕
노나카 토모소 지음, 권남희 옮김 / 사계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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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어릴 적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 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어린 시절이 모두 기억나는 건 아니니 어느 순간 어떤 때 그런 생각을 잠깐이라도 해보지 않았을까, 막연하게 추측은 해본다. 다만, 기억에 남아있는 생각은 어릴적 살던 집 옥상에 올라 아래 마당을 내려다보며, 저 마당의 무성한 나무 위로 떨어지면 무척 폭신하고 포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은 분명 있다. 떨어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아마 어릴 때 보던 외화에서처럼, 빨간색 망토를 어깨에 메고 두 팔을 앞으로 뻗어 그대로 발을 구르면... 나도 별 할머니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 웃었다.
별 할머니가 츠바메 앞에 나타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츠바메가 별 할머니와 만나 시간을 보낸 그 봄에서 여름은, 아마 둘 모두에게 값진 시간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니까. 그리고 더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 그 만남을 위해 간절한 마음을 끌어안고 산다는 것, 그리고 특히 가족에 대한 기억과 생각을 늘 마음 한구석에 품고 살아간다는 것까지. 어쩌면 츠바메가 별 할머니고 별 할머니가 츠바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둘은 서로 닮아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니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거겠지.
그리고 그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별 할머니도, 츠바메도 그동안 마음에 안고 있던 숙제들을 하나씩 풀어낸다. 별 할머니에게는 딸과 마코토였고, 츠바메에게는 친엄마와 도오루였고. 이들이 풀어낼 수 있었던 건 결정적으로 서로가 곁에 있었기 때문. 서로가 돕겠다고 나섰기 때문이고, 그 마음이 진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들이 함께 보낸 그 시간은 결국 이들이 그들과의 관계를 다시 재정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마치 같은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는 것처럼,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고 서로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그 곁을 지켜주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알겠냐, 누구든 갖고 태어난 힘은 있다. 그 힘을 최대한 활용해서 살아가는 건 훌륭한 일이야. 하지만 말이다, 잊어선 안 되는 것은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아냐. 아무리 강한 힘으로도 이겨내지 못할 크고 무거운 시련이, 살아가는 동안에 반드시 굴러온다."(...)
"무게에 휘둘리지 마라. 같이 가라앉아도 좋으니 한 번 더 떠올라. 알겠냐, 슬픔도 기쁨도 구슬치기와 달라서 끝내기가 없어. 휩쓸리면 지는 거야."(225쪽)

별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 말을 여러번 반복해서 읽어본다. 누구나 갖고 있는 힘이 있다는 말, 무게에 휘둘리지 말고 한 번 더 떠오르라는 말. 결국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자신만의 힘으로 다시 떠오를 수 있도록, 슬픔과 기쁨이란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단단하면서도 유연해져야한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아. 어쩌면 내가 나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숨고 피한다고, 감정이란 것이 어느 순간 '이제 됐으니, 그만 끝!' 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거구나. 오히려 그 감정을 단단히 정비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단전에서부터 끌어모아 올려 띄워야한다는 거구나. 아... 이제 그만 비틀거리라는 말로 읽혔다.

아무래도 지나다니면서 지붕을 올려다보고 그 종류나 모양, 색깔을 눈여겨보게 될 것만 같다. 각 지붕의 모습을 통해 그 지붕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가늠해볼 것도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지붕도 유심히 보게 된다. 내 집 바로 위에 지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 많은 사람들을 품고 있는 그 꼭대기 지붕은 어떤 마음으로 이 모든 이들을 품고 있을까, 하고. 그리고 또 생각한다. 나중에는 지금처럼 허공에 떠 있는 집 말고, 땅과 최대한 가까이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 그때 집의 지붕은 어떤 지붕으로 할까. 지금부터 곰곰이 구상을 시작해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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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밤에
세실 엘마 로제 지음, 파니 뒤카세 그림, 김지희 옮김 / 오후의소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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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창밖에 짙은 어둠이 깔리는 시간을 골라 읽었다. 파타무아가 이끄는대로 세상 모든 밤을 다니고 돌아와 아침을 맞았다. 그렇게 맞은 아침은 어제와 달랐고, 기꺼이 세상으로 나가 모든 이를 만나겠다는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돌아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파타무아를 따라나설 도전과 용기가 생겨 얼마든지 세상을 돌아보고 올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아주 신나고 기똥찬 밤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 눈앞에 파타무아가 나타난다면.

'~한다면'의 가정이 가정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가정과 그 가정의 답으로 또 다른 가정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꼭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만 마음을 빼앗기는 건 아니니까. 현실과 동떨어져있거나 혹은 현실에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어도, 그런 가정을 머릿속에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구석구석이 살짝 붕 떠오르는 느낌이기도 하니까. 그런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세상 모든 밤'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상 속 '세상 모든 OO'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래서, 세상을 상대로 한 그 만약에, 나대로의 답을 해보았다.

_세상 모든 도시의 모든 집과 모든 건물의 모든 창문을 세어본다면,
: 똑같아보이는 창문 안에 사실 전혀 다른 사람들의 색깔과 냄새와 모양과 표정을 알아챌 수 있겠지. 그래서 종종 '내맘 같지 않은' 상황에 속상하기도, 시무룩해지기도 하겠지. 창문의 불빛이 하나 둘씩 꺼져가는 것을 세어보며 점점 고요해지는 도시의 침묵 속에서 나도 덩달아 마음 가라앉겠지. 그 와중에 마지막까지 밤과 새벽을 지키는 창문의 불빛을 발견하고는 마음을 담아 간절하게 빌겠지. 불빛이 꺼지지 않기를.

_세상 모든 길의 모든 그림자가 속삭이기 시작한다면,
: 그 속삭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들어 기억하려 하겠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어 모든 것을 다 주어담을 수 있는 커다른 마음 주머니를 준비하겠지. 그러고도 부족하면 친구와 친구, 또 친구의 주머니까지 빌려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모아 담겠지. 그리고 이 밤이 끝날 때까지 하나씩 또 하나씩 소중하게 꺼내보고 또 꺼내보겠지. 모든 그림자의 말에 귀기울이고 들어주는 내가 될 수 있을까.

_세상 모든 음악가가 세상 모든 음표를 동시에 연주한다면,
: 세상은 수많은 음표로 가득 차고, 음표로 가득찬 세상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음표가 들어가 한자리 차지하게 되겠지. 그럼 마음에 음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더 큰 자리를 만들어주고 더 많은 음표를 차지하기 위해 세상 모든 음악가를 찾아 나서겠지. 음악가의 음표 연주를 더 많이 듣고 싶어 안달이 나겠지. 그 조바심으로 세상이 들썩일 때까지.

_세상 모든 곳을 잎 가득 달린 나무들이 뒤덮는다면,
: 그 잎 사이사이 새어 들어오는 빛을 밟으며 나무들과 뒤엉켜 지내겠지. 그 나무와 나무의 잎이 내뿜는 향을 온몸에 묻혀 다니겠지. 세상의 모든 곳에서 나무를 만나고, 나무와 숨쉬고, 나무와 살며 나무의 삶을 곧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삶이 나무에게 닿을 수 있도록 나무 곁을 지키겠지. 잎 가득 달린 나무가 내가 되고, 내가 그 나무의 또 하나의 잎이 될 때까지, 그렇게 어우러질 수 있는 나무 그늘 안에서 포근하고 싶다.

_세상 모든 도시에 있는 모든 동물원의 모든 우리를 우리가 열 수 있다면,
: 당장 온 세상의 모든 도시를 다니며 동물원의 우리를 열어 줄 거야. 어떤 동물도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없으며, 그 동물들을 동물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에 가둘 권리란 어떤 인간에게도 없으니까. 그럼 동물들의 우리 주변으로 모여 다시 우리를 열러 가는 우리를 보호해 주겠지. 그 동물들로부터 동물들에게로 이어지는 연대의 힘을 우리도 함께 느끼며, 동물들과 우리가 함께 우리를 열러 다니는 여정을 끊임없이 이어 나가겠지. 그런 날이 꼭 왔으면.

_세상 모든 밤에 사람들이 저마다의 파타무아를 따라간다면
: 저마다의 꿈과 희망과 미래와 삶을 파타무아와 함께 누리고 경험해볼 수 있겠지. 미처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알아채는 순간이 오겠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세상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으로 삼겠지. 그 힘들이 쌓이고 쌓여 이 세상은 지금보다 더 크고 더 따뜻한 마음으로 가득 찰 수 있겠지. 그렇게 가득찬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다시 나를 지탱할 수 있는 기운을 얻을 수 있겠지. 그럼, 다음날 아침 사람들 모두 개운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의 시작을 받아들이겠지. 더 환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상상에 상상을 더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책장을 넘겨보게 만든다. 이게 무슨 일이야!

바깥 창문을 살짝 열어두고, 밤시간을 기다리고 싶어졌다.
파타무아가 나에게도 찾아와주기를 기다리고 싶어졌다.
그럼 나도 기꺼이 고양이 걸음으로 사뿐사뿐 '세상 모든 밤'으로 들어갈테다.
그리고 기분 좋게 아침을 맞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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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함을 듣는 일 - Listen to Silence
김혜영 지음 / 오후의소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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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작가의 그림들을 책 한 권에서 다 볼 수 있어 행복하다. 그리고 고맙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다 봐도 되나? 싶을 정도의, 과분한 배려를 받은 느낌도 든다.
제목부터가 이 책을 함부로 아무데서나 펼치지 않고 싶게 만들었다. 괜히 환한 대낮, 사람소리 시끌시끌한 소음에서 벗어나는 시간과 장소를 찾고 싶었다. 그리고 책을 펼친 시간은 밤, 어둠 안에서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않을 장소, 작은 스탠드 불빛 안에서 조용히 책을 펼쳤다. 그리고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밝게도 보고 조금 어둡게도 보고 앉아서도 보고 누워서도. 오래 보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다.(16쪽)
_<나는 가만히 손을 뻗는다>, 2019. 천에 동양화 물감, 37X52cm.
: 오래 보려고 그려진 그림이라면, 오래 봐주고 싶다. 그럼, 오래 본다는 건 뭘까. 그림 속 그림과 그림 속 그림이 걸린 공간에서 내 시선은 여기에서 저기로, 또 다시 구석에서 가운데로 옮겨다니는 듯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 속에 잠식되어 내가 점점 사라진다고 느껴질 때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누구도 없는 공간에서 나 자신과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기를.(61쪽)
_<아무도 살지 않는 집>, 2020. 천에 동양화 물감, 유채, 97X138cm.
: 언젠가 숨고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의자를 한없이 내리고 어디에서도 나를 찾지 못하도록 숨고 감추려고 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누구의 시선과 관심조차 아팠던 그 때 필요했던 것이 이런 공간이었구나. 아무도 들이지 않으려 했던 내가 나를 만날 수 있을만한 곳. 이 집 역시 숨기 위한 방어막을 짙게 만들어놓았구나.

날 좋은 날,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밖으로 나간 날.(67쪽)
_<초록의 틈에 서>, 2020. 천에 동양화 물감, 72.7X91cm.
: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몸이 무겁고 기운이 나지 않는 날.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이다 한낮에 지쳐 의자에 파묻힌 날,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 좋아하는 서점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 꽃집에서 팔던 후리지아 한 단을 사올 걸, 후회했다. 다음엔 꼭 사와야지.

각기 다른 삶에서 나오는 것들이 다정한 겹을 만들어줄 듯했다. 벽에 그림을 걸고 한 발짝 뒤로 나온다. 팔을 X 자로 만들어 스스로를 안으며 생각한다.(83쪽)
_<고요한 상영회, 두 번째>, 2022. 천에 동양화 물감, 유채, 53X41cm.
_<뒷면에서 만나요>, 2022. 천에 동양화 물감, 유채, 53X40.9cm.
: 저 상영회에 초대받고 싶다. 뒷면에서 마주치게 되는 사적인 만남이 더 매력적이긴 하다. 어쩌면 상영되는 이야기 이면에 숨겨진 은밀한 비밀이 더 마음을 끌어당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반짝이는 결 따라 다른 삶이 어우러질 때, 이 이야기들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기도 한다. 뭐, 그런 느낌.

물결이 내는 소리는 조용하다. 주의를 기울여 조용함을 듣는 것은 다정한 관심의 방향이다. 사소하지만 부명하게 있는 이야기들을 만나고 싶다.(95쪽)
_<물결이 내는 소리>, 2021. 천에 동양화 물감, 유채, 91X91cm.
: 여행 중 아침 산책을 하다, 바다의 물결을 한참 바라보며 앉아있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물결을 향하고 있던 그 시간들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좋았는데. 조용함을 듣는다는 것이 참 역설적이지만, 잘 듣고싶어지는 매력적인 말이기도 하다. 조용함을 듣는 것, 조용함을 듣는 일. 작가의 조용함이 작품으로 내게 스미는 느낌이 좋다.

날씨가 크게 두 번 바뀌는 동안 많은 친구들이 그 낡은 의자에 기대 슬픈 날에는 울기도 하고 지친 날엔 짧은 잠을, 또 작은 한숨 같은 말들을 뱉고 가기도 했다.(130쪽)
_<기대 앉는 우리들>, 2021. 천에 동양화 물감, 유채, 90X42cm.
: 예전 사무실에 작은 1인용 소파가 있었다. 가끔 다리까지 올려 앉아서는 쿠션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기도 했었다. 지치고 피곤하고, 마음을 다치게 하던 순간들을 그 소파에서 위로받았었다. 그 소파가 그리워진다.

글그림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책이다. 어떻게 조용함을 듣을 수 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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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얼굴 사계절 1318 문고 139
조규미 지음 / 사계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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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글을 쓰면서 독자들의 최대 고민이 '친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174쪽_작가의 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이들에게 있어 가장 1순위는 언제나 친구다. 아마도 가족 관계 외에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시작이 친구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은 태어나서부터 당연하게 주어졌던 거라 특별한 노력 없이도 쉽게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면, 친구는 무언가 노력하지 않으면 관계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많은 시행착오, 어려움, 슬픔 등을 겪으며 스스로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는 게 쉬울 수가 없으니 어떤 목적 없이 자연스레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 관계를 위한 특별함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와 학교 아닌 곳에서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리고 그런 시도 속에 이 아이들이 있다.
최다영과 황가람, 차우현과 송미단, 오민준과 송원호, 은성과 희유, 그리고 나와 호빵, 슬지까지. 이 아이들은 모두 학교와 캠프에서 낯선 아이들과 친구가 된다. 물론 쉽게 친구가 된 건 아니다.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한 과정과 노력이 있었고, 그 안에서 만들어진 많은 오해와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지난 후 이 아이들은 친구가 된다. 그냥 말로만 '우리가 친군가? 친구겠지?' 정도가 아니라, '우린 친구야! 당연히 친구지!' 어떤 의심도 없이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친구. 뭐든 어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함께 지나온 후엔 진정한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게 되는 법이니까. 그런 과정을 이 아이들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이 아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다른 아이들과 쉽게 어울려 두루두루 친구를 만들어내는 부류의 아이들이 아니다. 교실 전체 구도 속에서 많은 아이들이 어울려 왁자지껄 떠드는 무리가 있다면, 그 무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으려는 듯 소리를 줄이는 부류의 아이들이다. 먼저 나서지도 따져 묻지도 않고, 그저 다른 아이들의 말과 공격을 그대로 받아안는 편의 아이들이라는 것에 내내 신경이 쓰였다. 꼭 이런 아이들만이 친구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친구들이 대체로 더 많이 친구 관계를 서먹하게 여기는 것만은 사실이니까. 그리고 이런 여러 과정들에서 아이들이 서서히 조금씩 거리를 좁히며 다른 아이들 사이에 자신을 놓을 줄 아는 법을 배우기도 하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뭔가 어른의 개입 없이도 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신의 자리와 친구의 자리를 잘 만들어 단단한 끈으로 이어놓을 수 있게 된 것 같아, 자신의 속마음과 지금의 상태를 스스로 확인해 알아채게 된 것 같아,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옳고 어떻게 하고싶은지의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드러낼 줄 알게 된 것 같아,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어른의 시선으로 이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게 다 커나가는 과정이지, 이런 과정을 겪으며 어른이 되는 거지, 하고 듣기싫은 소리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른인 내가 이런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지켜보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제 문제를 해결해나가려고 시도하고 노력하는 모습 자체가 참 기특하니, 이런 말을 안 할 수가 없지. 아이들이 이런 말들을 듣는다면 야유를 보내겠지만, 그 야유에 뒤이은 해맑은 웃음을 생각하면 백 번 천 번이라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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