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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밤에
세실 엘마 로제 지음, 파니 뒤카세 그림, 김지희 옮김 / 오후의소묘 / 2023년 3월
평점 :
해가 지고 창밖에 짙은 어둠이 깔리는 시간을 골라 읽었다. 파타무아가 이끄는대로 세상 모든 밤을 다니고 돌아와 아침을 맞았다. 그렇게 맞은 아침은 어제와 달랐고, 기꺼이 세상으로 나가 모든 이를 만나겠다는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돌아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파타무아를 따라나설 도전과 용기가 생겨 얼마든지 세상을 돌아보고 올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아주 신나고 기똥찬 밤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 눈앞에 파타무아가 나타난다면.
'~한다면'의 가정이 가정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가정과 그 가정의 답으로 또 다른 가정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꼭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만 마음을 빼앗기는 건 아니니까. 현실과 동떨어져있거나 혹은 현실에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어도, 그런 가정을 머릿속에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구석구석이 살짝 붕 떠오르는 느낌이기도 하니까. 그런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세상 모든 밤'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상 속 '세상 모든 OO'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래서, 세상을 상대로 한 그 만약에, 나대로의 답을 해보았다.
_세상 모든 도시의 모든 집과 모든 건물의 모든 창문을 세어본다면,
: 똑같아보이는 창문 안에 사실 전혀 다른 사람들의 색깔과 냄새와 모양과 표정을 알아챌 수 있겠지. 그래서 종종 '내맘 같지 않은' 상황에 속상하기도, 시무룩해지기도 하겠지. 창문의 불빛이 하나 둘씩 꺼져가는 것을 세어보며 점점 고요해지는 도시의 침묵 속에서 나도 덩달아 마음 가라앉겠지. 그 와중에 마지막까지 밤과 새벽을 지키는 창문의 불빛을 발견하고는 마음을 담아 간절하게 빌겠지. 불빛이 꺼지지 않기를.
_세상 모든 길의 모든 그림자가 속삭이기 시작한다면,
: 그 속삭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들어 기억하려 하겠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어 모든 것을 다 주어담을 수 있는 커다른 마음 주머니를 준비하겠지. 그러고도 부족하면 친구와 친구, 또 친구의 주머니까지 빌려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모아 담겠지. 그리고 이 밤이 끝날 때까지 하나씩 또 하나씩 소중하게 꺼내보고 또 꺼내보겠지. 모든 그림자의 말에 귀기울이고 들어주는 내가 될 수 있을까.
_세상 모든 음악가가 세상 모든 음표를 동시에 연주한다면,
: 세상은 수많은 음표로 가득 차고, 음표로 가득찬 세상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음표가 들어가 한자리 차지하게 되겠지. 그럼 마음에 음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더 큰 자리를 만들어주고 더 많은 음표를 차지하기 위해 세상 모든 음악가를 찾아 나서겠지. 음악가의 음표 연주를 더 많이 듣고 싶어 안달이 나겠지. 그 조바심으로 세상이 들썩일 때까지.
_세상 모든 곳을 잎 가득 달린 나무들이 뒤덮는다면,
: 그 잎 사이사이 새어 들어오는 빛을 밟으며 나무들과 뒤엉켜 지내겠지. 그 나무와 나무의 잎이 내뿜는 향을 온몸에 묻혀 다니겠지. 세상의 모든 곳에서 나무를 만나고, 나무와 숨쉬고, 나무와 살며 나무의 삶을 곧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삶이 나무에게 닿을 수 있도록 나무 곁을 지키겠지. 잎 가득 달린 나무가 내가 되고, 내가 그 나무의 또 하나의 잎이 될 때까지, 그렇게 어우러질 수 있는 나무 그늘 안에서 포근하고 싶다.
_세상 모든 도시에 있는 모든 동물원의 모든 우리를 우리가 열 수 있다면,
: 당장 온 세상의 모든 도시를 다니며 동물원의 우리를 열어 줄 거야. 어떤 동물도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없으며, 그 동물들을 동물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에 가둘 권리란 어떤 인간에게도 없으니까. 그럼 동물들의 우리 주변으로 모여 다시 우리를 열러 가는 우리를 보호해 주겠지. 그 동물들로부터 동물들에게로 이어지는 연대의 힘을 우리도 함께 느끼며, 동물들과 우리가 함께 우리를 열러 다니는 여정을 끊임없이 이어 나가겠지. 그런 날이 꼭 왔으면.
_세상 모든 밤에 사람들이 저마다의 파타무아를 따라간다면
: 저마다의 꿈과 희망과 미래와 삶을 파타무아와 함께 누리고 경험해볼 수 있겠지. 미처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알아채는 순간이 오겠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세상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으로 삼겠지. 그 힘들이 쌓이고 쌓여 이 세상은 지금보다 더 크고 더 따뜻한 마음으로 가득 찰 수 있겠지. 그렇게 가득찬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다시 나를 지탱할 수 있는 기운을 얻을 수 있겠지. 그럼, 다음날 아침 사람들 모두 개운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의 시작을 받아들이겠지. 더 환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상상에 상상을 더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책장을 넘겨보게 만든다. 이게 무슨 일이야!
바깥 창문을 살짝 열어두고, 밤시간을 기다리고 싶어졌다.
파타무아가 나에게도 찾아와주기를 기다리고 싶어졌다.
그럼 나도 기꺼이 고양이 걸음으로 사뿐사뿐 '세상 모든 밤'으로 들어갈테다.
그리고 기분 좋게 아침을 맞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