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빛을 따라서
권여름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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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바구니에 담긴 채소와 물건들. 그 아래 종이 뭉치에는 '바라미'를 빨간색 펜으로 지우고 '바람이'라 적힌 종이뭉치가 있고, 연필 한 자루. 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표지. 소설을 다 읽고나니 더 표지를 들여다보게 된다. 이 표지에서 소설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모두 숨어있다는 느낌이 들어 더욱 자세히 보게 된다.

'필성슈퍼'. 그러고보니, 우리 동네에 슈퍼가 어디 있을까 머릿속으로 주변을 둘러보아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가게 이름을 '슈퍼'라 붙이고 있는 집이 거의 없어진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대체로 큰 마트(엉터리 마트, 쌤마트같은 마트도 여럿 있다. 점점 이런 마트의 규모도 커지는 듯)에서 장을 보거나 인터넷 쇼핑을 하기 때문에 더욱 동네 슈퍼를 이용하기도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동네만 해도 걸어서 갈 거리에 대형마트가 있고, 작은 가게들이란 거의 편의점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 '필성슈퍼'가 조금은 더 낯설면서도 애정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물건 담아올 가방을 들고 직접 가서 물건을 사온다. 특히 채소나 과일을 살 때는 꼭 그 가게에 가야지 싶은, 매번 찾게 되는 가게가 있다. 물론 대형마트에 비해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불편한 요소가 분명 있다. 하지만 그렇게 직접 가게에 걸어가 물건을 손으로 만져 찾아 담는 그 수고가 썩 나쁘지 않다. 특히 오히려 큰 매장에 바글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물건에 현혹되는 쇼핑엔 더욱 취미가 없다. 그러다보니, 우리집 앞에 '필성슈퍼'가 있으면 좋겠다. 특히 이런 가족이 운영하는 슈퍼라면 언제든 믿고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더 부럽다. 어쩌면 502호의 주인이 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바구니를 내리는 대신 난 직접 바구니에 물건을 담아오겠지만. 망하지 않을 슈퍼에서 오래도록 한결같이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문을 왜 닫냐?"
엄마는 사과 알맹이를 입에 넣고 사각사각 경쾌하게 씹었다.
"머리를 또 굴려봐야지."
(...)
'우리는 망한 적이 없다는 말.'
그 말을 들은 이루로 폐허 오은동은 자주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나도 망한 적 없다.'(243쪽)

학교에서 시험이 끝나면 쉬는 시간으로 제일 많이 들리는 말이 '망했어'라는 말이다. 시험을 생각보다 못 본 아이들이 속상해서 하는 말일 거라고 생각해 위로하려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체로 '하나 틀렸어요.', '100점을 못 맞았어요.'가 대부분이다. 아, 속으로 탄식을 내뱉게 된다. 물론 100점, 만점만을 향했던 아이들에게 그 하나의 차이는 클 수도 있지만,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그 하나로 인해 함께 망한 경우가 된다는 생각이 조금은 아찔하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아이들로 키우는 곳이 학교가 되는 건 아닐지, 시험 때마다 조금은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바뀌며, 새롭고 다양한 것들을 다채롭게, 그것도 대형으로 만들어 놓아야만 성공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어떨 때는 커져가는 세상의 크기에 압도당해, 작은 나는 갈 곳도 찾지 못해 허둥대기만 하지는 않을지 두려움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오히려 더 동네 가게들을 찾게 된다. 작은 동네 서점, 과일 가게, 떡집 등. 그리고 그런 작은 가게들이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망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나도 작은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런 마음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은동이도 황서은 할머니도, 그리고 '필성슈퍼'도. 망한 적 없다, 그래서 다른 궁리를 또 하려는 저 마음에 응원하는 마음을 보태고 싶어진다. 내 작은 힘과 또 누군가의 정성이 모이고, 그런 사람들의 응원이 쌓여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는 그 마음, 어떤 경우에도 망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리 없다는 마음이 커질 수 있도록 하는. 그러면 충분한 것 아닐까.

이 가족이 보여주는 마음이 너무도 솔직해, 다 들여다보인다는 것이 매력이다. 그래서 이들이 더욱 반짝일 수 있는 것일 테지. 뭐든 솔직하게 자신을 다 내보이는 사람은 이기지 못하니까. 숨김 없이 다 드러내놓은 이후엔 두말이 필요 없으니까. 그저 지금까지처럼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이니까. 다른 무엇에 눈치보지도 않고. 그게 참, 멋있는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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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후기 - 결국 책을 사랑하는 일
오경철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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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진한 남의 사랑 고백을 들은 기분이다. 헌데 몰래 들은 느낌이라기 보단, 대놓고 광고하듯 떠벌리는 이야기를 기분좋게, 그것도 아주 흐뭇하게 들은 느낌이다. 무슨 사랑 고백을 이렇게 대대적으로 하나 싶겠지만, 이 정도라면 더 크게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작가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에 제대로 사랑의 감정을 실을 줄 아는지, 확실하게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건 두말할 것도 없이, 책이었다.
나도 책이라면 무척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어떤 것보다도 책에 대한 욕심도 과하게 부린다. 책이라면 몸도 따라 움직일 정도. 헌데 그렇다고 내가 책과 아주 밀접한 관계자는 아니다. 늘 그것이 내 인생에 아쉬운 점 중 하나이긴 하다. 그래서 작가가 이정도로 대놓고 하고 있는 사랑 고백이 조금은 배가 아프다. 내 속이 좀 좁다.(물론, 지금 나의 일이 책과 아주 동떨어진 일은 아니지만, 난 책과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은 것이 오랜 꿈이며 로망이니, 그런 점에서는 이 작가가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처음부터 이 책에 마음이 쏠렸다. <편집 후기>라고 해서 책을 편집한 진짜 후기를 들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예전에 읽었던 <출판하는 마음>(은유)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고 싶었던 마음에는 책에 대한 궁금증보단, 책을 편집하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훨씬 더 컸다. 편집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 대한 선택은 옳았다.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몇 가지 느낌이 있다. 우선, 단호하고 확실했다. 작가의 뚜렷한 소신과 확고한 신념이 느껴졌다. 책에 대한 자신만의 고집이 있겠구나, 싶었다. 그만큼 문장에도 힘이 실려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관점이 분명하지 않으면 명료하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어려워진다. 쉽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 그대로 관철될 수 있는 당당함이 문장 전체적으로 느껴졌다. 아, 이 정도는 되어야 그 숱한 편집자로서의 길과 출판사에서의 우여곡절을 다 견디고 극복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참 한결같았다. 책에 있어서만큼은 과거나 현재, 어느 때에도 변함없이 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더이상 좋아질 수 없다고 하지만, 작가에게는 예외인 듯했다. 뭔가 지치고 힘들고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다고 하소연하고 있는 듯싶지만, 사실은 그 모든 이야기가 다 사랑하고 있다는 고백으로 들리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자신의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를 푸념처럼 계속 늘어놓고는 있지만, 정작 그 푸념이 누군가를 무척 사랑하고 있어 행복하다는 다른 표현임을 누구나 쉽게 눈치챌 수 있는 것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편집자가 된다. 편집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나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자기소개서는 선언 같기도 하고 고백 같기도 한 이런 문장으로 시작될 때가 많다.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표현은 달라도 골자는 같다.(25쪽)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독서를 좋아한다는 말로 알아들을 것이다. 하지만 독서는 책 애호의 ABC 같은 것이다. 책을 좋아하면서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26쪽)

시작부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보다 더한, 책에 대한 사랑 고백이 또 있을까. 너무나 단순하지만 정확한 말이었다. 나 역시 그러니까. 그러니 이 책에 시작부터 빠져들지 않을 재주가 없었다.
또한 책이란 물성이 갖고있는 신기한 매력을 편집자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어, 그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책을 사랑한다는 건 그 모든 시선과 관점을 통틀어 좋아한다는 것이구나, 싶었다. 이 정도라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지. 책을 좋아한다고. 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만큼의 책사랑의 마음가짐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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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는 유니버스 - 고전 마니아가 사랑한 세기의 여주인공들
송은주 지음 / ㅁ(미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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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독특했다. 드레스? 유니버스라고? 무슨 의미일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드레스가 제목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통의 평범성은 벗어난 내용일 것 같았다. 혹은 유치하거나. 헌데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고전, 그리고 그 고전 속 여주인공들이라고 했다.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이 책은 읽어봐야겠다, 마음먹게 된 결정타였다.
읽어나가면서 알았다. 드레스가 제목에 담겨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 우리의 여주인공들이 소설 속 안팎으로 메여있던 것이 상징적으로 드레스를 통해 전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세계에 대한 작가 나름의 해석과 평가. 여주인공들의 유니버스를 보여주는 중요한 안내를 하고 있었다.
물론,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모든 고전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다. 익히 제목과 내용을 알고 있으나 실제로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다짐하게 됐다. 여기 소개된 고전 작품들은 꼭 읽어봐야지. 작가가 친절하게 덧붙여 준 '여주인공 큐레이션'의 주인공들도 직접 읽어 만나봐야지. 그리고 나도 그 여주인공들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봐야지. 들어가보고나서 다시 작가의 이야기를 되짚어봐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각오일 수밖에 없는 것이, 고전은 부채감이 매우 크지만 선뜻 그 마음을 떨쳐버리기 위한 시도를 하지 못하게 되는, 가깝고도 먼 당신이다. 고전을 읽겠다는 각오를 지금껏 수없이 했지만 매번, 나약한 마음에 스르르 마음이 무너지곤 했다. 그러니, 각오를 새롭게 할 필요가 반드시 있다.)

어찌보면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는 고전에 대한 해석 혹은 주인공들에 대한 평론, 내지는 가벼운 서평 정도가 될 수도 있었던 시도라는 생각을 했다. 고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지금까지도 매우 많았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많을 테니까. 그저 소설의 내용을 소개하고 그 소설이 갖는 의미를 이야기하는 책이었다면 흥미가 훅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소설에 대해 알려주겠다는 마음보다는, 진심으로 소설의 '여주인공'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해석, 그리고 그들의 삶과 인생을 통틀어 설명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느껴졌다. 주인공이 아닌 '여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에서 당시 사회와 남성, 그리고 사람의 본질적인 특징과 욕망 등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속살의 이야기를 다 내보여도 될까, 생각이 들 정도. 그래서 더 흥미로웠던 것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 속에서 여성으로서의 생존과 살아내기 위한 처절한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싶으면서도 이렇게까지 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겠지, 싶어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어떻게 사회에서 내쳐지게 되는지를 보며 여전히 씁쓸해지기도 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욕구불만은 인류의 유구한 병이지만, 에마는 옆집 약국 오메 부인의 것이 아니라 그림속 떡을 탐낸다는 점에서 남다르다.(24쪽)
플로베르는 비소를 삼킨 에마가 긴 시간에 걸쳐 처절한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우리가 아무리 천상의 꿈을 꾸어도 지상에 묶인 존재임을 차갑게 드러낸다.(39쪽)
집안의 왕따 제인은 작은 몸에서 있는 힘을 다 쥐어짜내 자신의 유일한 무기인 말로 싸우는 쪽을 택한다.(51쪽)
오스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으로서, 냉혹하고 때로는 적대적인 이 세계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102쪽)
캐리는 지성은 부족했지만,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에 반응하는 풍부한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있었다.(142쪽)
뒤집어 말하면, 그들의 피라미드는 견고해 보이지만 실은 이질적인 존재 한 명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허약하고 협소하다. 따라서 그들은 뉴욕 사회의 동질성을 보존하기 위해 '이방인' 엘렌을 추방하는 쪽을 택한다.(182-183쪽)

결국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감정들과 생각들은, 곧 내가 같은 여자이면서 나를 이 여주인공들의 삶에 대입하여 생각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상황을 현재로 끌고 와 지금에 대입한 나의 감정과 판단이 동원되어 얽혔기 때문일 것이다. 아, 그렇구나 하고 가만히 읽어나가기만 할 수 없었던 나의 생각의 파장이 그물처럼 여러 상황들을 함께 얽어내니, 단순히 읽어나가는 것만 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마음에 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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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송골매 - 교유서가 소설
이경란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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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골매라는 말에, 진짜 그 송골매? 내가 알고 있는, 그 옛날 사람들, 그 밴드 송골매? 진짜 그 밴드에 대한 소설이라고? 살짝 의심하기도 했다.헌데 책 표지를 보고 와! 송골매에 진심이구나 싶었다. 송골매, 송골매, 송골매, 송골매, 송골매! 이 정도면 진짜다! 의심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진심으로 말하는 송골매는 과연 무엇일까, 이렇게까지나 강조하는 반짝임은 무엇일까, 나도 송골매에 진심을 담아보려는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알았다. 송골매에 진심인 이야기는 맞는데, 송골매에 진심인 이들의 이야기였다는 걸. 홍희, 미호, 은수, 기민. 그리고 그 가족과 주변인의 이야기가 섞여들어 결국 송골매로 귀결되는 이야기였다는 걸. 이들이 만들어갔던 과거와 기억들, 그리고 그 기억들을 가슴에 품고 긴 세월을 버티며 살아, 지금을 맞이하게 된 벅찬 이야기였다는 걸. 그래서 이들의 송골매에 대한 찐 마음이 감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는 걸.
만약 누군가 이 소설을 한 마디로 정리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송골매를 사랑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읽은 사람만은 알 것이다. 진짜 사랑한 것은, 그들 자신의 삶이었고, 그들 서로의 삶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도, 읽은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4명의 친구들을 하나로 묶어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들 각자의 삶이 있었고, 그 삶에서 각자의 생활과 인생이 있었고, 그 사이에서 그들이 놓지 않고 가려고 했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하나로 정의내릴 수도 없다. 그럴 때, 편히 할 수 있는 정의란 또 다시 결국, '송골매를 사랑하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
(헌데, 이렇게 쓰면서, 혼자 웃는다. 역시, '송골매'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소설이 맞구나 싶어서. 이 소설의 제목도, 표지도, 모든 이야기도 다, '송골매'로 이어진다는 것이, 갑자기 뭉클해지기도 해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어떤 음악에 사람의 마음과 삶을 장악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사는 한 가지 이상의 애틋함이 존재한 것이다. 그 애틋함을 다른 여러 말로 표현할 수 있을텐데. 예를 들면 송골매라든지, 혹은 송골매라든지, 아니면 송골매라든지. 그런, 마음 안에 잠들어 있었던 애틋함이 겉으로 발현되어 나타나게 되는 순간은 너무도 우연한 기회에 뜻하지 않은 때일 것이다. 가령 송골매 재결합 콘서트라든지. 그러니 사람이 어떤 순간에 어떻게 자신의 애틋함을 보여주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애틋함을 잃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는 것이 중요할 듯. 이 4명의 친구들은 그 마음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도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에, 다시 이들이 재결합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어느 누구라도 그 애틋함을 버리고 숨기며, 절대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면 이 재결합은 성사되기 어려웠을 듯. 그런 면에서, 송골매의 재결합보다, 이들 친구들의 재결합이 더 어려웠고 더 극적이다. 하지만, 이 또한 송골매가 없었다는 불가능했던 것. 그래서 또 결국 다시, 송골매다!
이 정도면 송골매에 대한 예찬론으로 이 소설을 읽어도 좋지 않을까. 혹시 이걸 진짜 송골매는 알까. 이걸 안다면, 그들의 삶이 지금껏 얼마나 사람들에게 의미있고 가치있었는지에 대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제목이 <디어 마이 송골매>인가보다 싶기도 하다. '친애하는 나의 송솔매여, 송골매에게 이 소설을 바칩니다!' 정도의 심정이어도 아깝지 않겠다는 마음이 든다.(마치 내 소설인 양 내 맘대로. 소설에 대한 느낌은 소설을 읽는 사람 마음이니까, 라고 소심한 변명도 덧붙여본다.)

아무래도 이 소설을 읽지 않고서는 못 버틸 지경. 사실, 이 소설에서 송골매의 직접 출연은 한 번도 없다. 절대 없다. 하지만 이야기는 온통 송골매인 이야기. 이 묘미가 있었다. 만약 송골매가 나왔다면, 이들과 또다른 인연으로 출연했다면 오히려 거기서 힘이 탁 빠졌을 듯. 우리가 알고 있듯, 송골매라는 대상은 존재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더이상의 역할은 필요 없다. 그저 그들을 향한 이 친구들의 마음이 모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
다 읽고, 다시 또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나도, 송골매의 노래를 찾아 들어야할 듯. 이 정도라면 송골매는 우리나라 최고의 밴드가 확실하니까. 송골매에 대한 반짝이는 마음이 나에게까지 전염되어 조금 들썩여진다. 기분 좋은 들썩임이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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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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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의 시선으로 서술되어 있고 진의 마음을 물어 들을 수 없어 확실하진 않겠지만, 진은 지금 마음이 무척 따뜻하지 않을까. 가끔 나의 죽음 이후 사람들은 나를 어떤 '나'로 기억할까에 대해 궁금해 해본 적이 있다. 나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 지에 대해서도,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 지에 대해서도. 그런 의미에서 진은 충분히,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진의 마음을 살짝 들여다본다면, 부모님과 혁, 그리고 수민과 해송 모두에게, 상대에게 어울리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지 않을까.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처음 소설을 읽으면서는 동생의 형에 대한 그리움, 혹은 상실감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13년 터울의 형과 오래 전 이별했고, 그 형이 다녔던 고등학교에 입학한 동생이 형의 흔적을 찾아가며, 그동안 형의 부재에서 느꼈던 빈 자리를 스스로 채워나가는, 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성장소설의 흐름일 거라 지레 짐작했었다. 물론, 기분 좋게도 그 짐작은 빗나갔지만. 물론, 자신의 모습에서 형의 모습을 찾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자신도 형에게 갖고 있던 마음을 여름의 귤을 통해 극복해낸 혁의 모습은 잘 담겨 있다. 하지만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자꾸 혁보다는 진에게 마음이 더 기울어갔다. 혁이 엄마 몰래 진을 복원해내지 않았어도 진의 존재감이 매우 크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보면 이 소설은 진을 위한 소설이겠구나 싶을 정도로.
진은 어느 고등학교 시절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났다. 한 순간 누군가를 잃고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도 크겠지만, 마지막 인사, 하고싶었던 말과 일들을 다 하지 못하고 급하게 떠나게 된 당사자의 당혹스러움과 슬픔은 얼마나 더 클까, 생각해봤다. 그렇다면 오히려 떠난 진이 남겨진 이들을 더 걱정하고 그리워하지 않을까. 헌데 그런 떠난 이를 남겨진 사람들이 금방 잊는다면 얼마나 더 마음이 아플까. 예전에 봤던 애니메이션 <코코>에서도 남겨진 가족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면 사후 세계에서도 사라지게 된다는 것에서도, 결국 사람들의 기억속에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어떻게 남겨질 것인가는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면, 주변 사랑하는 사람들이 진에 대한 기억을 각자의 시선으로 온전히 담아 간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은 흐뭇한 마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 각각에게는 모두 각자만의 진과의 경험과 추억에서 비롯된 진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는 것도 너무 이해가 갔다. 우린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니까. 누구와 함께 있는가에 따라 나라는 사람의 모습은 다양한 빛을 내게 되어 있고, 그 빛에 따라 각각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법. 그리고 그 빛을 오롯이 알아채주는 사람과 특별한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해송과 진은 서로의 빛을 오롯이 알아채주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더욱 해송이 진의 집을 지키고 가꾸어나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해송이 진에 대해 갖는 죄책감은 그리움의 크기보다 훨씬 작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혁이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에 대한 기억을 온전히 지켜주고자 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떻게 하는 것이 형을 있는 그대로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인지도 알고 있는 혁이었다. 오히려 길게 설명하지 않고 또한 형을 조용히 보내줄 줄 알았던 부분에서, 이 소설이 더 감동적이었다. 혁의 마음과 행동을 통해 주변 사람들이 진에 대해 갖고 있던 기억이 고스란히 다시 되살아나 여전히 그리워하며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상처를 토닥여 아물 수 있도록 해 주는 역할도 혁이 해주었다.
혁도 해송도 이제 다시 귤을 좋아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나도 마음이 흐뭇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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