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 - 딥페이크 성범죄부터 온라인 담론 투쟁까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언어들
한국여성학회 기획, 허윤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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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쉽게 사용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페미니즘의 '페'만 이야기를 해도 공격성 반응을 연달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점점 이야기를 하다보면 힘들고 지친다는 느낌이 강했다. 어디부터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할까, 막막할 때도 있었다. 말 그대로 혐오였기 때문에. 이런 감정을 되돌리기에 나 혼자의 힘은 미약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말을 아꼈다. 관련 책을 읽자고 말도 못 했다. 최대한 사회 현상들 중 페미니즘은 배제한 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나의 부족함이 사회적 반감과 만나면서 나타난 모양새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이유 없는 백러시가 만연해 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이유가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자본의 논리로, 그리고 폭력의 이름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두고 상품화하고 있음은 오래된 사실이지만,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얼마나 광범위하고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지, 무서울 정도였다. 반복적으로 보이는 일베라는 단어와 이를 중심으로 사라지지 않는 남성성, 혹은 가부장이란 말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계속 과거로의 회귀만을 갈망하는 사회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왜 우리는 여전히 이 단어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자본주의가 기반이 되고 정치가 끼어들면서 공정이나 평등이란 단어 마저도 폭력과 혐오를 전제로 한 힘의 논리를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주의라는 말로 차별을 포장하고 당연시 여기도록 종용하는 사회의 기득권 세력은 여전히 네티즌들의 호응와 인기만을 위한 거침없는 발언들을 서슴치 않는 모습들이있고, 여기까지라는 선과 구분에 대한 판단도 없이 그저 한 순간 이목을 집중시키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무차별 공격하는 것이었다.
특히 온라인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파급력은 훨씬 더 강력했다. 단순히 누군가의 입을 통해 나온 발언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발언은 또 다른 발언을 낳고 이 발언들은 급속도로 퍼지면서 마치 당연시하도록 만들어놓기 충분했다. 물론 대놓고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다양한 방식과 예상치 못한 형태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하려들지 않으면 알 수 없도록 포장되어 보여졌다. 그 중에서도 MZ 세대라 불리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변화는 기존의 반응을 넘어선 새로운 장르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럴 때 우리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

스마트폰의 보급 이후 디지털 미디어는 일상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이는 페미니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여성 혐오 발언에 대한 대항 발언도 온라인을 통해서 전파되었으며, 대항 행동 역시 온라인을 통해 조직되었다. 특히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아도 되며 빠른 속도로 전파가 가능하다는 디지털 미디어의 특징으로 인해 성폭력이나 불평든 등 불합리한 일을 고발할 수 있었다.(6쪽)

다시 처음 이야기로 가 보면, 나 혼자의 힘은 미약했다. 혼자 하는 대항 발언도 대항 행동도 힘들었다. 그래서 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 이제 나 혼자의 말과 행동이 아닌 온라인을 통한 디지털 미디어의 전파와 움직임은 기존에 다하지 못했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느꼈던 것처럼 이런 변화는 곧 디지털 시대여서 더 감수해야 할 부분들이 많아졌음을 뜻하기도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읽어 나가며 괴롭고 또 화가 나기도 했다. 심각해졌고 또 진지해졌다. 다양한 술수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기도 했다. 또한 여성 차별과 혐오, 불평등과 폭력 등이 얼마나 많은 미디어를 통해 감춰지고 둔갑되어 대중에게 전달되고 있는가에 두려움을 넘어 공포심이 느껴졌다. 특히 이런 미디어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와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는 것일지, 섬뜩했다. 헌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이 이야기들을 감정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치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떡해, 하는 말만 반복하고 있는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이 연구 결과들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단순한 감정만으로 대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만의 논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무엇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힘인지, 그런 힘에 쉽게 휘둘리지 않기 위한 단단한 바탕은 이런 연구 결과에서 나올 것이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알고 넘기면 안 된다. 정확한 판단력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올바로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학구열이 생겼다. 진심으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여성이란 이유로 당하지 않기 위해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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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문항 킬러 킬러
이기호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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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장강명 #이서수 #정아은 #박서련 #서윤빈 #정진영 #최영 #주원규 #지영 #염기원 #문경민 #서유미 #김현

살짝 방어기제가 작동했다. 책의 표지부터가 너무 낯이 익으니 더 그랬다. 이 책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고민도 됐다. 자칫, 내가 20년 이상 몸담고 있는 영역에 대해 뭐라고 건들기라도 하면 당장이라도 공격해 주겠다는, 조금은 날 선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이내 그런 마음이 금방 사라지기는 했지만. 학교라는 공간. 그 공간의 주인공들인 학생, 교사, 학부모의 이야기였다. 너무도 잘 알고 또 익숙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긴장을 하게 된다. 너무 잘 알고 있어 더욱 적나라하게 그 내막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명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다. 왜 이런 식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다만 너무 어둡고 아프게만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갖게 된다. 우리 사회라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문제만으로 채워져있는 것은 아니니까. 행복하고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도 얼마든지 많이 있으니까. 그런 여러 복잡한 마음들을 안고 이 책을 읽었다.

학교가, 학교가, 왜 이렇게 쉽게 학생을, 밖으로 내쫓는단 말인가. 학생을 소중히 여겨야지.......(26쪽_'학교를 사랑합니다:자퇴 전날' 중)

다시 생각이 많아졌다. 할 말도 많아졌다. 학교가 학생을 밖으로 내보내는 순간, 학교의 의미는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학생을 학교의 울타리 안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어쩌면 옛날 방식의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생각이 변했다. 학교라는 공간이 지금의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있는 공간인가에 대한 약간의 회의감이 생길 때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아이들이 학교라는 공간 밖에 있을 때 더 자유롭고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학교가 학생을 억지로 제도 안에 묶어놓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상우와 같은 목적으로 학교 밖을 선택하는 경우라면, 고민이 된다.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아이. 더 효율적인 진학을 위해 과감히 자퇴를 선택했던 아이. 말려봤지만 말리는 나를 오히려 앞길을 막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경험이 떠올랐다. 이 문제에 대해 좋은 답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작년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 '대학 학과별 수능 점수 커트라인'이 교실마다 붙어 있었다. 친구가 걸음을 멈춘 곳은 1학년 5반 아니었다. 우리를 알아본 몇몇 96퍼센트가 인사를 했고, 누굴 찾아왔느냐며 교실 뒷문을 열어주었다. 열린 미닫이문 사이로 책상에 앉아 있는 윤이의 모습이 보였다. 윤이의 가슴팍에는 1학년들이 달고 있는 것과 같은 색의 명찰이 붙어 있었다.(95쪽_'소나기' 중)

예전 공포영화가 떠올랐다. 졸업하지 않고 계속 학교를 다니는 한 아이. 그 학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무엇이 두려워 졸업하지 못하고, 진급을 거부하는 것일까. 4퍼센트 안에 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무서운 것이길래,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만 하고 있는 것일까. 슬퍼졌다. 1학년 교실에서부터 벌써 대학 수능 커트라인 숫자가 걸리고, 숫자 안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있는 윤이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이래야만 하는 것일까, 이게 맞나 싶었다. 성공하지 못하면 아무도 못 나가는 답 없는 미로에 갖힌 듯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미로의 벽을 허물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나 더 반복해야 윤이는 이 미로의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만약에 실패하면 어쩌죠?"
"......다시 하면 되죠."
수가 숨을 들이켜더니 하얗게 변한 손을 굳게 쥐었다. 작고 작은 주먹이었다.(158쪽_'민수의 손을 잡아요' 중)

윤이에 비해 수는 미로의 출구를 찾았다. 그것도 제 스스로의 힘으로. 얼마나 다행인지. 물론 무제의 도움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순전히 선택은 수의 몫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었고, 다시 해보겠다고 각오를 다질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이 말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다시 하면 되죠'라는 말. 실패는 어느 누구나 한다. 실패 없는 나아감은 없다. 다만 그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실패했다고 주저앉는 것보다 이 실패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그 다음을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걸 알아채는 것도 쉽지 않다. 수는 이걸 알아챈 것이다. 굳게 쥔 작은 주먹에 함께 주먹을 불끈 쥐어 보여주고 싶다. 응원의 의미로,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힘을 보태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학교가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공간으로만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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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초록빛 - 아끼고 고치고 키우고 나누는, 환경작가 박경화의 에코한 하루
박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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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생은초록빛 #박경화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9기 #서평단 #서평 #책추천

환경에 진심이다. 이 작가 말이다. 그런데 또 환경에 진심이다. 바로 나 말이다. 이런 저런 책들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어떤 삶이 올바른 삶인지에 대한 나 스스로의 기준이 세워진다. 다양한 사회 현상이나 문제 상황을 접할 때마다, 물론 내가 직접 뛰어들지 못하는 부끄러움이 강하게 밀려오고 하지만, 그래도 나의 의식과 생각만이라도 지금의 시대에서 물러나지는 않고 있음에 작게나마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 그런 위안 중 하나에 환경이 있었다. 내내 책으로만 환경을 배워오고 있었고, 머리로만 이해하고 마음으로 내내 불편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당장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다급함이 들었고, 그런 마음을 용기 내서 대놓고 겉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이 채식 선언. 벌써 채식 선언을 한 지 2년이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최대한 환경에 해가 가지 않는 생활을 하기 위한 고군분투를 곳곳에서 펼치고 있다. 어쩌면 나만 아는 노력을 수 있지만, 이건 우선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어서, 지금의 나의 결심과 실천이 마음에 든다.
어쩌면 저자도 이런 마음에서 에코한 삶을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환경에 진심인 이유는 마음이 불편해서다. 내가 이런 생활을 하지 않으면 너무 마음이 불편하다. 실천하지 않는 삶에 대한 죄의식이 느껴지고 나 스스로가 굉장히 힘들어진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하는 실천의 행동이 절대 아니다. 나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자고 하는 어쩌면 이기적인 행동들인 것이다. 이런 마음이 가장 처음의 마음이다.

환경에 해를 입히지 않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저자와 같이 많은 부분에서 행동하고 실천할 수 있다. 그 중에서 내가 실천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소비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소비하지 않으려는 것. 가장 첫번째가 옷이었고, 그 외의 물건들에도 욕심을 버리기 위한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 너무 많은 세상이 되었다. 살림살이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찬 집들이 많고, 행사장에선 공짜로 나눠주는 기념품들도 흔하다. 시장이나 마트에선 싼값에 살 수 있는 물건들이 유혹한다.(...) 이 물건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94쪽)

한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 만 개나 되다니. 헌데 이미도 내 책상 주변을 비롯해 집안을 대충 훑어만 봐도 만 개는 훌쩍 넘을 것 같은 기분이다. 어 이상 새로운 물건을 우리 집 안으로 들어지 말아야 하는데, 싶지만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노력해보고 있는 중이다. 그 중 하나가 꼭 필요하지 않는 선물이나 사은품은 거절하기이다. 예쁜 쓰레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이미도 많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거다. 더 이상 사소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말자는 거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바로 자급자족. 직접 내 땅을 스스로 읽궈 원하는 만큼의 얻어 생활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땅이다. 우리의 삶은 땅으로부터 비롯된 듯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땅에서 시작돼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우린 결국 그 돌아가야 할 땅을 통해 지금의 삶을 어떻게 지속해나갈 것인가를 곰곰이 잘 생각해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생산되고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햇빛과 바람, 흙과 물, 거름, 미생물 그리고 사람의 정성까지 농사일에는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163쪽)

환경 운동의 가장 최종 도달 지점은? 아마도, 환경을 보호하자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때이지 않을까. 환경 관련 행동이나 실천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그러다 이런 행동이나 실천조차 필요 없어질 정도로 모든 삶이 환경에 해를 입히지 않는 상태로 지속되는 꿈.

어떤 형식이든 곳곳에서 다양한 환경교육이 이루어지고 환경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환경책이 필요 없는 그날을 위해...!(244쪽)

나도 어느 하루를 정해놓고, 그 날은 저녁부터 집안을 모두 소등하고 싶다. 가만히 촛불을 켜놓고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나는 해마다 3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 되면 촛불을 켜놓고 조용한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171쪽)

아주 작고 사소한 행동이라도, 실천하는 것과 아닌 것 사이는 무척 크다. 그러니, 뭐라도 실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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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 드림 창비청소년문학 130
강은지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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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좀 무서웠다. 마치 누군가의 음모에 의해 사람들이, 그것도 어른들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는 게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특히 아이들에게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 유독 어른들에게서만 더 나타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보게 됐다. 뭔가 어른들에게만 반응하는 새로운 바이러스일까, 혹은 어른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문제 상황이 특정 시기에 한꺼번에 폭발해 겉으로 드러나게 된 것일까. 아이들과는 다른 어른들의 문제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어른들이 잠으로 빠져드는 것이, 그것도 자진해서 잠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도 어른이지만 확실하게 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런 면에서 아무래도 이 소설은 청소년 소설만은 아닌 듯싶다. 어른인 나에게도 질문을 던지는 소실이니 말이다.

"어른도 울어요? 어른이 되면, 다 쉬운 거 아니에요?"(...)
"강희야, 어른도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단다."(145쪽)

어른이라고 뭐든 뚝딱 잘 해낼 수 있는 거라면, 누구나 어른만 되면 걱정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니 쉬운 것도 없고 명확한 답을 찾기도 어려운 것이겠지.
이 소설을 곰곰이 다시 뜯어보니, 현실 세상에서 답을 찾지 못하는, 쉽게 일이 풀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꿈의 가짜 삶이 유혹을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결핍되고 해소되지 못하는 문제 상황에서 어느 것 하나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으니, 결국 현실의 도피처로 가짜의 꿈의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에서 영영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피로와 힘든 상황이 겹치고 결국 참아내기 어려운 고통 속에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어느새 잠 속으로 빠져들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어른도 또 이제 막 어른이 된 아이들까지도 모두 다. 어른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이 이만큼이나 어려운 삶의 역경을 거쳐야만 가능한 것이라면 마음 단단히 먹지 않으면 어느새 자신을 잃고 흔들릴 수밖에 없구나 싶기도 했다.

"아빠, 난 겁쟁이야. 비겁해. 엄마를 버린 건 나였어. 그랬으면서 항상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어."(...)
"버려질 것 같으면 먼저 버렸어. 그게 날 지킬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었어. ......근데 그건 비겁한 거잖아. 이제 더 이상 그러지 않을 거야."(210쪽)

어른도 상처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처받지 않기 위한 자기 방어 기제를 사용하여 보호하려할 것이다. 이게 이 소설에서는 잠, 꿈의 세계인 듯하다. 결국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아프기 싫어서, 누군가 혹은 외부의 상황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결국은 현실을 잊는 선택을 하는 것. 강희의 말처럼, 이건 참 비겁한 결정인 것이다. 나약함이란 단어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어리석은 선택인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그 선택이 현재의 고통을 잊을 수 있도록 하니, 편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찬미가 그랬고 홍주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결국 스스로 잠의 세계로의 선택을 하고 그 꿈으로 도망친 것이다. 잊기 위해.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 선택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걸 강희는 스스로 알아채고 다시 돌아왔다. 윤서는 더더욱 잘 알고 있어 더 이상 사람들을 깨우러 가지 않는다. 결국 이 사실을 깨닫고 어떻게 현실을 잘 살아낼 것인가를 고민할 줄 알게 된, 이제 막 어른이 된 아이들은 그동안의 막연한 기다림과 어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사람들을 기다릴 줄 알게 됐다. 또한 지금까지 수동적으로 세상에 끌러가던 생활에서 벗어나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찾아나갈 줄 아는, 진짜 어른이 되었다. 너무 혹독하게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관문을 통과한 듯하지만, 어쩌면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이제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하고 굳건한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잠 속으로 빠져들지 않는 어른이 될 것이다.

눈에 힘을 주게 된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반듯하게 앉아 똑바로 세상을 직시하게 된다. 섣불리 현실에 쫓겨 도망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짜 세상에서 나 자신을 잃고 시간을 보내는 어른이 되지는 말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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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 - 삶의 감각으로 이야기한 장애의 세계
앤드루 릴런드 지음, 송섬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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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멂'. 이 책을 읽으며 유독 이 단어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생각도 많이 한 것 같다. 어떤 의미일까, 어떤 느낌일까를 오래 되물었던 것 같다. 저자는 서서히 자신이 실명될 것이라는 사실을 품고 오랜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서서히 줄어드는 시야를 통해 자신에게 다가올 이후의 삶을 내내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과연 이건 저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걸까. 점점 시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을 사는 내내 인식하고 또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삶이 무척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경험해보지 못했고 또 잘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면 안 되지만, 내내 자신의 시력에 대해 한 순간도 벗어나지 못한 채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지, 그래서 어떤 기분과 느낌일 지에 대해 솔직히, 짐작도 어려웠다.

"낱알 하나에 또 낱알 하나." 클로브는 대사를 잇는다. "한 번에 하나씩, 그러다 어느 날, 별안간 무더기가 되는 거야." 이 대사가 암시하는 고대 그리스의 무더기라는 모순이 나로선 점진적 시력 상실이라는 모순적 경험을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되었다.(376쪽)

다만, 저자는 꽤 진지하고도 유연하게 자신의 시력에 대해 또 사랑과 가족에 대해, 그리고 장애에 대해 차분히 숙고하여 말할 수 있을 경지에 도달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무척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부터 책을 읽어나가면서 뭔가 다급하거나 무척 중요하니 꼭 알야아한다는 듯한 긴장감이 전혀 없었다. 그저 저자가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이것이 이 책을 천천히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할 것 같다. 무엇 때문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이 책을 천천히 한줄 한줄 읽어나가다보면 오히려 마음이 안정적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 애써 책을 열심히 읽어내겠다는 부담 없이도 스르륵 책장을 넘기게 되는 책이었다. 만약, 비장애인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입장의 마음을 고수하고 있었다면 내내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려는 마음이 생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보다는 오히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시각장애와 그 외 장애에 대한 생각을 곱씹게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장애를 한 사람의 삶에 나타난 특별한 현상이 아닌, 우리 삶에서 자연스럽게 녹여 생각해봐야 할 하나의 상황으로 인식이 되었다. 이게 바로 이 책이 갖고 있는 장점인 것 같다.

결국 나는 눈먼 이들의 세계와 시각 세계를 구분하는 것은 타고난 차이보다는 낙인과 오해로 이루어진, 대체로 피상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눈멂에 대해 가진 잘못된 인식, 즉 두려움, 폐소공포, 유아화, 근본적인 타자성의 장소라는 눈멂의 이미지를 없앨 수 있다면 우리 앞의 풍경은 무척이나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눈먼 자들은 우리의 세계에, 우리도 그들의 세계에 속한다. 그 세계는 하나이므로.(385쪽)

이 책을 다 읽고나서야 비로소 눈멂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노력이 나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눈멂이란 단어가 눈에 밟혔던 것은 어쩌면 이런 이미지에서 나는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한 권으로 우리의 세계가 하나라는 것을 실질적으로 체득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책이 이런 인식을 만들어 낙인과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니 책 읽기를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계속 읽으며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잘못된 생각의 뿌리를 뽑을 수 있는 힘을 키워야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저자와 같은 단단한 마음이 필요하고 또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객관적 시야를 확보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함께 살아가면서 릴리가 서서히 사소하고 불편하지만 중요한 제스처를 하기 시작할 때 나는 이런 역동성이 릴리 안에서도 움트는 것을 본다.(...) 그 모든 것이 사랑의 행위다. 그리고 사랑이란 애초부터, 언제나, 자립을 내려놓는 행위였다.(267-268쪽)

사랑. 이 책을 종합하여 한 단어로 이야기한다면 결국 모든 것은 사랑의 행위로 귀결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 서로가 서로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줄 수 있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마음이 곧 사랑이지 않을까. 이건 꼭 장애라는 단서를 붙이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 그 자체에 모두 해당되는 부분이다. 그러니,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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