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 - 삶의 감각으로 이야기한 장애의 세계
앤드루 릴런드 지음, 송섬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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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멂'. 이 책을 읽으며 유독 이 단어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생각도 많이 한 것 같다. 어떤 의미일까, 어떤 느낌일까를 오래 되물었던 것 같다. 저자는 서서히 자신이 실명될 것이라는 사실을 품고 오랜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서서히 줄어드는 시야를 통해 자신에게 다가올 이후의 삶을 내내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과연 이건 저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걸까. 점점 시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을 사는 내내 인식하고 또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삶이 무척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경험해보지 못했고 또 잘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면 안 되지만, 내내 자신의 시력에 대해 한 순간도 벗어나지 못한 채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지, 그래서 어떤 기분과 느낌일 지에 대해 솔직히, 짐작도 어려웠다.

"낱알 하나에 또 낱알 하나." 클로브는 대사를 잇는다. "한 번에 하나씩, 그러다 어느 날, 별안간 무더기가 되는 거야." 이 대사가 암시하는 고대 그리스의 무더기라는 모순이 나로선 점진적 시력 상실이라는 모순적 경험을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되었다.(376쪽)

다만, 저자는 꽤 진지하고도 유연하게 자신의 시력에 대해 또 사랑과 가족에 대해, 그리고 장애에 대해 차분히 숙고하여 말할 수 있을 경지에 도달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무척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부터 책을 읽어나가면서 뭔가 다급하거나 무척 중요하니 꼭 알야아한다는 듯한 긴장감이 전혀 없었다. 그저 저자가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이것이 이 책을 천천히 읽어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할 것 같다. 무엇 때문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이 책을 천천히 한줄 한줄 읽어나가다보면 오히려 마음이 안정적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 애써 책을 열심히 읽어내겠다는 부담 없이도 스르륵 책장을 넘기게 되는 책이었다. 만약, 비장애인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입장의 마음을 고수하고 있었다면 내내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려는 마음이 생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보다는 오히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시각장애와 그 외 장애에 대한 생각을 곱씹게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장애를 한 사람의 삶에 나타난 특별한 현상이 아닌, 우리 삶에서 자연스럽게 녹여 생각해봐야 할 하나의 상황으로 인식이 되었다. 이게 바로 이 책이 갖고 있는 장점인 것 같다.

결국 나는 눈먼 이들의 세계와 시각 세계를 구분하는 것은 타고난 차이보다는 낙인과 오해로 이루어진, 대체로 피상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눈멂에 대해 가진 잘못된 인식, 즉 두려움, 폐소공포, 유아화, 근본적인 타자성의 장소라는 눈멂의 이미지를 없앨 수 있다면 우리 앞의 풍경은 무척이나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눈먼 자들은 우리의 세계에, 우리도 그들의 세계에 속한다. 그 세계는 하나이므로.(385쪽)

이 책을 다 읽고나서야 비로소 눈멂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노력이 나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눈멂이란 단어가 눈에 밟혔던 것은 어쩌면 이런 이미지에서 나는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한 권으로 우리의 세계가 하나라는 것을 실질적으로 체득할 수 있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책이 이런 인식을 만들어 낙인과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니 책 읽기를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계속 읽으며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잘못된 생각의 뿌리를 뽑을 수 있는 힘을 키워야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저자와 같은 단단한 마음이 필요하고 또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객관적 시야를 확보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함께 살아가면서 릴리가 서서히 사소하고 불편하지만 중요한 제스처를 하기 시작할 때 나는 이런 역동성이 릴리 안에서도 움트는 것을 본다.(...) 그 모든 것이 사랑의 행위다. 그리고 사랑이란 애초부터, 언제나, 자립을 내려놓는 행위였다.(267-268쪽)

사랑. 이 책을 종합하여 한 단어로 이야기한다면 결국 모든 것은 사랑의 행위로 귀결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 서로가 서로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줄 수 있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마음이 곧 사랑이지 않을까. 이건 꼭 장애라는 단서를 붙이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 그 자체에 모두 해당되는 부분이다. 그러니,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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