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 킬러 킬러
이기호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킬러문항킬러킬러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9기 #서평단 #서평 #책추천
#이기호 #장강명 #이서수 #정아은 #박서련 #서윤빈 #정진영 #최영 #주원규 #지영 #염기원 #문경민 #서유미 #김현

살짝 방어기제가 작동했다. 책의 표지부터가 너무 낯이 익으니 더 그랬다. 이 책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 고민도 됐다. 자칫, 내가 20년 이상 몸담고 있는 영역에 대해 뭐라고 건들기라도 하면 당장이라도 공격해 주겠다는, 조금은 날 선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이내 그런 마음이 금방 사라지기는 했지만. 학교라는 공간. 그 공간의 주인공들인 학생, 교사, 학부모의 이야기였다. 너무도 잘 알고 또 익숙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긴장을 하게 된다. 너무 잘 알고 있어 더욱 적나라하게 그 내막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명할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다. 왜 이런 식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다만 너무 어둡고 아프게만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갖게 된다. 우리 사회라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문제만으로 채워져있는 것은 아니니까. 행복하고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도 얼마든지 많이 있으니까. 그런 여러 복잡한 마음들을 안고 이 책을 읽었다.

학교가, 학교가, 왜 이렇게 쉽게 학생을, 밖으로 내쫓는단 말인가. 학생을 소중히 여겨야지.......(26쪽_'학교를 사랑합니다:자퇴 전날' 중)

다시 생각이 많아졌다. 할 말도 많아졌다. 학교가 학생을 밖으로 내보내는 순간, 학교의 의미는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학생을 학교의 울타리 안에 두고 있어야 한다는, 어쩌면 옛날 방식의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생각이 변했다. 학교라는 공간이 지금의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있는 공간인가에 대한 약간의 회의감이 생길 때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아이들이 학교라는 공간 밖에 있을 때 더 자유롭고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학교가 학생을 억지로 제도 안에 묶어놓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상우와 같은 목적으로 학교 밖을 선택하는 경우라면, 고민이 된다.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아이. 더 효율적인 진학을 위해 과감히 자퇴를 선택했던 아이. 말려봤지만 말리는 나를 오히려 앞길을 막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경험이 떠올랐다. 이 문제에 대해 좋은 답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작년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 '대학 학과별 수능 점수 커트라인'이 교실마다 붙어 있었다. 친구가 걸음을 멈춘 곳은 1학년 5반 아니었다. 우리를 알아본 몇몇 96퍼센트가 인사를 했고, 누굴 찾아왔느냐며 교실 뒷문을 열어주었다. 열린 미닫이문 사이로 책상에 앉아 있는 윤이의 모습이 보였다. 윤이의 가슴팍에는 1학년들이 달고 있는 것과 같은 색의 명찰이 붙어 있었다.(95쪽_'소나기' 중)

예전 공포영화가 떠올랐다. 졸업하지 않고 계속 학교를 다니는 한 아이. 그 학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무엇이 두려워 졸업하지 못하고, 진급을 거부하는 것일까. 4퍼센트 안에 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무서운 것이길래,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만 하고 있는 것일까. 슬퍼졌다. 1학년 교실에서부터 벌써 대학 수능 커트라인 숫자가 걸리고, 숫자 안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있는 윤이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이래야만 하는 것일까, 이게 맞나 싶었다. 성공하지 못하면 아무도 못 나가는 답 없는 미로에 갖힌 듯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미로의 벽을 허물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나 더 반복해야 윤이는 이 미로의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만약에 실패하면 어쩌죠?"
"......다시 하면 되죠."
수가 숨을 들이켜더니 하얗게 변한 손을 굳게 쥐었다. 작고 작은 주먹이었다.(158쪽_'민수의 손을 잡아요' 중)

윤이에 비해 수는 미로의 출구를 찾았다. 그것도 제 스스로의 힘으로. 얼마나 다행인지. 물론 무제의 도움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순전히 선택은 수의 몫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었고, 다시 해보겠다고 각오를 다질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이 말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다시 하면 되죠'라는 말. 실패는 어느 누구나 한다. 실패 없는 나아감은 없다. 다만 그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실패했다고 주저앉는 것보다 이 실패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그 다음을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걸 알아채는 것도 쉽지 않다. 수는 이걸 알아챈 것이다. 굳게 쥔 작은 주먹에 함께 주먹을 불끈 쥐어 보여주고 싶다. 응원의 의미로,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힘을 보태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학교가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공간으로만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