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라스틱 지구를 생각한다 1
김성화.권수진 지음, 이명하 그림 / 만만한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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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나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9월이 되었음에도 전혀 선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구를, 우린 너무 생각하지 않고 있다. 정말, 지구를 좀 생각해야 하지 않나! 지구 좀 생각하며 살자!

인류의 발명품 중 플라스틱은 무척 획기적이었다. 이렇게나 편리하게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자유자재로 만들어낼 수 있다니. 얼마나 놀랍고도 훌륭한가. 인간의 능력은 가히 최고라고 할 만하다.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고 그 형태도 제각각이니 그저 감탄만이 나올 뿐. 이런 대단한 발명품을 우린 너무 쉽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니. 이건 플라스틱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아닌 것이다. 이토록 위대한 물질이라면, 그만큼의 대우를 해줘야 맞다!

"역사는 플라스틱 전 시대와 플라스틱 후 시대로 나눌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플라스틱이 없었을 때는 우리 지구가 이 정도는 아니였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었고 쓰레기로 몸살을 앓을 일도 없었다. 돌, 쇠, 유리와 나무만으로도 오래오래 두고두고 쓸 수 있는 물건들을 만들어 잘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플라스틱 후 시대란? 지금까지의 삶을 모두 부정해도 좋을 정도로 다른 재료는 플라스틱을 능가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플라스틱의 문제를 알고 있지만 쉽게 간과한다. 이유는? '나 하나 달라진다고 지구가 변할 것 같은가. 굳이 피곤하게 살 이유가 뭔가. 대충 편하게 살자.' 뭐 이런 것들. 그러면서 하루에도 몇 장씩 식당에서 식사 전 플라스틱 물티슈로 손을 닦고, 집에서 식사 후 식탁을 닦는다.

"화학자 나다니엘 와이어스씨를 소개합니다."

이 이름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화학자를 원망하고싶은 마음도 조금 있다. 이 정도의 문제가 지구상에 발생하게 될 것을 예상하고 만들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너무 많은 지구 환경에 해를 끼치고 있다면, 이 화학자의 이름 정도는 알아두고 싶어졌다. 나다니엘 와이어스.

"우리는 썩지 않는다고요.
다만 부스러질 뿐......"

"어떻게 알았겠어요?
사람들이 일 년에 페트병을 5000억 개 쓰고,
일 년에 비닐봉지를 9000조 개 쓰고,
'일회용'이 없으면 단 하루도 못 살 줄!"

플라스틱은 습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나쁜 습관. 이미 몸에 밴 나쁜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특히 우리 몸은 편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편한 쪽으로 자꾸 더 나빠진다. 분명, 우리 몸이 편한 쪽은 지구에 나쁘다. 우리가 불편해져야 지구에 좋다. 일회용 플라스틱은 분명 우리 몸을 편하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지구를 생각해야지! 지금도 사람들이 먹고 있는 미세 플라스틱이란 게 결국 우리가 편하자고 했던 행동들이 다시 우리 몸을 공격하는 것이지 않나. 그러니 우리 몸이 편해지면 편해질수록 점점 인간도 지구도 건강을 잃게 되는 것이다.

"지켜 주세요!
플라스틱 생존권!"

쉽게 버려질 거라는 전제로 플라스틱을 만든다. 다시 쓸 수 없는 일회용품을 계속 만들어내고 또 버린다. 이미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만으로도 앞으로 쓸 양은 충분하다. 이 지구에 더 이상의 새 플라스틱을 만들 이유가 없다. 버리지만 않으면. 하지만 우린 계속 버린다. 그리고 그 버린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계속 만들고 쓰고 또 버린다.

다시 처음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위대한 플라스틱이라면 그만큼의 대우를 해주자는 거다. 함부로 쓰고 버리는 하찮은 물건으로 치부하지 말자는 거다. 지금 우리에게 온 수많은 플라스틱들은 각자의 목적에 의해 소유하고 또 우리 손에 쥐어진 물건들이다. 그러니 그 쓰임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내내 함께하며, 그 플라스틱을 소중히 아낄 필요가 있다는 거다. 내 손의 것을 버리고 다른 새로운 플라스틱을 쥐려 하지 말고.

"반려 플라스틱이 되고 싶어요!"

지금 내 주변만 둘러봐도 굉장히 많은 플라스틱과 함께 살고 있다. 더 이상은 없어도 될 만큼.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니 플라스틱을 사지 말자. 플라스틱 분리배출이 필요 없어질 수 있도록.
나 하나가 변해도 지구는 달라질 수 있다. 나 하나가 우리 모두가 되면 그 힘은 더 커질 수 있다.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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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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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동구처럼 착한 아이는 처음 보았어."(119쪽)

동구처럼 착한 아이는 아마 없겠지. 이렇게 속 깊은 아이가 또 있을까. 이렇게 심성이 아름다운 아이가 어디 또 있을까. 그래서 눈물나도록 맑고 투명한 이 아이를 속속들이 모두 다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아이의 상처와 슬픔까지 모두 나의 아픔인 것처럼 느낄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그래서 우리 동구가 어딘가에서 이 마음 그대로 할머니, 엄마, 아버지와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이 마음 어디 가지 않고 꼭 간직한 채로.

한 6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평소 소설을 잘 읽기 싫어하던 지인이 이 소설만은 꼭 읽어보면 좋겠다고 추천해준 소설이었다. 얼마나 좋으면 소설에 대해 관심 없던 사람이 추천까지 해줄까 싶어 얼른 책을 받아 읽었었다. 그때도 감동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한동안 잊고 있었다. 소설의 내용도 가물가물해졌고. 다시 개정판으로 나왔다 했을 때 얼른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어떤 감동이 나에게 남아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동구는 사랑이 가득한 아이다. 그 사랑을 충분히 표현할 줄도 아는 아이. 자신에게 소중한 이가 누구인가를 너무 잘 알고 있어, 그 소중함을 잃지 않게 위해 애쓰는 아이다.

엄마와 영주가 학교로 찾아왔던 그날. 선생님은 칠판에 예쁜 글씨를 쓰셨고 지저귀는 어린 새 같은 영주는 배에 힘을 주며 큰 소리로 그 글씨들을 읽었다. 아이들은 신나게 박수를 쳤고 엄마는 교실 문 앞에서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누르며 겸손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던 행복한 날이었다.(...) 지금 단 한 번만이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그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350-351쪽)

이 작은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힘들게 떠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 어떻게 하면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에 골몰하는 것이다. 이것을 그저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라고 넘겨짚으면 안 된다. 이 아이에게는 제 인생을 통틀어 매우 중요하고 다급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부로 말하지도 않는다. 말을 속으로 삼킨다. 진지하게 어른들보다 더 간절한 마음을 담는다. 그리고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데에는 다른 사람의 입장과 생각을 헤아려볼 줄 아는 마음에 있다. 동구는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처지를 생각하고 말과 행동의 이유를 찾는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과 역할을 잘 알고 먼저 움직인다. 그래서 이런 헤아림의 마음이 동구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한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는 미풍에 실려 긴 대각선으로 내 눈앞을 지나가던 벚꽃잎 하나를 가만히 쫓고 있었다. 꽃잎은 매끄럽지 않은 사선을 그리며 한들한들 바닥까지 내려와 마당 모퉁이를 두르고 있던 버드나무의 흰 소설과 노란 송홧가루의 품 속으로 파로들더니 오랜 동무라도 만난 듯 함께 구르고, 튀어 오르고, 아장거리다가 마침내 내 시야를 벗어났다.모처럼 유람을 떠나는 아씨마님들처럼 유유하고 평안한 모습이었다.(22쪽)

동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랬다. 가만히 움직이는 작고 소중한 것들에 금새 마음을 빼앗기고, 그 소중한 것의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할 줄 아는 아이. 그래서 이 아이에게 삼층집 정원은 무척 간절한 아름다움이었다.

삼층집의 아름다운 정원은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점만을 조심스럽게 모아둔 것 같은 공간이다.(...) 살아 있는 나뭇잎들과 한때 살았던 나뭇잎들이 서로 힘을 합쳐 매우 향긋한 공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이곳을 감도는 바람은 단술처럼 맛있다. 그리고 그 나무들 사이에 정말로 보기 좋은 여러 가지 새들이 살고 있다.(...) 사람의 입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삼층집의 정원은 오로지 건강함으로 그 뒤에 어린 세심함 돌봄의 손길을 짐작게 할 뿐이다.(17-18쪽)

이 아름다운 정원을 잠시나마 볼 수 있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조금이라도 문이 열려 있으면 그곳을 찾아 정원을 감상한다. 그 정원에서 마치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인받는 것처럼 정원의 아름다움에 취해 잠시 편안해지는 것이다.

차가운 철문을 힘주어 당기며 나는 아름다운 정원에 작별을 고했다. 안녕, 아름다운 정원. 안녕, 황금빛 곤줄박이.(369쪽)

그런 정원과의 이별. 아마도 동구는 이 정원과 이별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과도 이별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꽃을 피우고 날아올랐던 나무와 새들처럼 동구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라는 정원에서 마음껏 이리저리 뒹굴며 성장했다. 때론 누군가의 돌팔매질에 상처입은 곤줄박이처럼 다치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동구를 키우고 가꾸었던 각각의 동력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런 동력 없이도 충분히 동구는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 컸다. 또한 다른 이들을 함께 보듬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크기도 커졌다. 이제는 이 정원에서 나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 그러니, 안녕.
앞으로의 동구가 갈 길이 순탄하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크고 작은 돌부리에 넘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충분히 훌훌 털어낼 수 있을 정도로 동구는 단단해졌고, 더 단단해질 거니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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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신여성은 어디로 갔을까 - 도시로 숨 쉬던 모던걸이 '스위트 홈'으로 돌아가기까지
김명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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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화가 많아졌다. 책을 읽으며 흐뭇하고 행복한 기분보다는 화가 날 때가 많아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건 순전히 책 문제다.
제목만 보고는 신여성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이 먼저 들었다. 사전에서도 '개화기 때에, 신식 교육을 받은 여자를 이르는 말.', '개화기 때에, 서양식 차림새를 한 여자를 이르던 말.'이라고 뜻풀이가 되어 있으니까. 신식 교육을 받았다면, 그런 여성이 여성의 지위 향상이나 권리 보장을 위해 앞장섰을 거라고 흔히 생각할 수 있으니까. 같은 한자를 사용하는 다른 단어의 뜻풀이에는 이렇게도 나와 있다. '1923년에 개벽사에서 발행한 여성 교양 잡지. 1920년대의 다른 여성 잡지와는 달리 개벽사의 정치적 노선을 그대로 반영하여 사회주의적인 색채를 띠었다.'라고. 당시의 사회주의적 색채라면 지금의 사회주의와 성격이 달랐으니, 이런 '신여성'이라면 믿어봐도 좋지 않을까, 혼자 막연히 착각했다. 정말, 말 그대로 착각이었지만.
화가 난다는 이야기로 다시 되돌아오면,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정말 이 시기에 신여성을 위한 잡지에 신여성은 옹호하고 여성의 온전한 삶을 있는 그대로 지지해주는 것이 가능한 분위기였을까), 이렇게 쉽게 아니었다는 것을, 오히려 더욱 여성을 옥죄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는 것에 배신감이 느껴졌다. 한치의 오차 없이 당시 여성들을 대하던 방식이 어쩜 이토록 한결같았을까, 싶은 답답함까지. 마치 기존의 여성과는 다른 구분으로 '신'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붙인 것이 그들의 삶과 생각을 옹호하려는 목적이 아닌 그 반대, 여성들의 삶을 더욱 구속하고 사회나 남성이 원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모습을 만들겠다는 음흉한 목적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에, 분노를 삼킬 수가 없었다. '신'이 더 붙은 신여성은 여성을 기존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더욱 원하는 대로 만들어내고 포장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러니 더 교묘하게 여성들을 새로운 여성상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도록 만들려는 검은 속내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이 책을 읽는 내내 기가 막힐 뿐이었다.

이로써 외양이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시대로의 본격적인 돌입, 그리고 부러움과 모방의 대상이자 유행의 선도자인 신여성에 탄생하게 된 것이다.(26쪽)

이렇게 신여성은 만들어놓고, 많은 여성들이 이런 신여성은 따라하도록 하고는 그런 신여성을 자기들 입맛대로 이렇게 저렇게 만들겠다는 그 속셈이 너무 괘씸한 것이다.

그러나 <신여성>의 사전란에는 낱말 풀이라기에는 이상한, 희화화된 설명이나 은어, 속어까지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런 낱말 풀이는 사전의 형식을 빌려 세대를 풍자, 조롱하는 것으로 권력의 또 다른 작동을 보여준다.(90-91쪽)
여성을 대상으로 한, 그러나 남성 지식인이 만든 여성 계몽 잡지 <신여성>은 신여성을 둘러싼 온갖 소문을 주워 담으며 그들을 비판하고 조롱함은 물론, 때로는 윽박지르고 겁주기도 했다. 동시에 '부적절한' 신여성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새로운 지침으로 신여성은 계도하고자 했다.(97쪽)

여성을 대상으로만 보고 그 여성을 깔보고 흉보며 성적 대상으로만 보려는 의도.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은 그저 함부로 다루어도 좋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담겨 있는 저속하고도 흉측한 내용들. 화가 안 날 수가 없다.

당시 <신여성>을 읽던 신여성들처럼 막힌 출구를 진정한 출구라고 믿으며 열심히 만들고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솔직히 두렵다. 그러나 출구를 만드는 일을 어찌 멈출 수 있겠는가. 우리가 만드는 출구는, 우리가 그러했듯이 뒤 세대들의 교훈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250쪽)

지금 왜 <신여성>을 다시 꺼내봐야했던 것일까, 생각해봤다. 결국, 우리가 만드는 출구를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은 아닐지. 우리가 출구라고 생각하고 행하던 모든 것들이 어쩌면 과거의 '신여성'들이 걷던 길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길은 것은 아닌지. 지금 우리의 출구가 어떤 출구인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신여성이라는 이름 하에 행해졌던 불순한 의도에 휘둘리는 여성의 삶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우리의 '출구를 만드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될 것 같다. 끊임없이 되돌아보면서. 막힌 출구가 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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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시 일상시화 4
유희경 지음 / 아침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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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있다'.(219쪽)

시인의 말이 내내 '시'였다. 사진에 대해, 아니 더 정확하게 카메라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했지만, 사실은 모두가 시였다. 시인이 시를 버리고 카메라를 찾았고, 다시 카메라를 버리고 시를 찾았다고 했지만, 사실 시인은 내내 시 안에 있었고 또한 사진 안에 있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듯 참으로 둥글고 환한 말이었다. 느닷없이 나는 감격하고 말았는데, 결단코 위기 때문은 아니었고, 달빛이 가진 공평함과 달빛 아래서 명백해지는 삶의 각양각색의 면모가 새삼 가까이 느껴져서도 아니었다. 그날의 달은 거대한 돌덩이였다.(...) "오늘도 달이 떠 있네." 나도 모르게 내뱉은 혼잣말에 옆에 있던 나의 친밀하고도 짓궂은 감시자가 웃음을 터뜨렸다.(138쪽)
어떤 사람들은 본다. 읽지 않는다./읽기와 보기는 그 행위의 형태로는 구분할 수 없다. 읽는(읽은) 이와 보는(본) 이는 구별되지 않는다.(150쪽)

시인은 읽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런 시 앞에서 혹여라도 보는 사람인 것은 아닌지. 내가 시인의 감시자였다면 나는 단연코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을 것이다. "그러게, 오늘도 달이 떠 있네."라고. 그렇다면 나도 덩달아 읽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시인이 카메라와 시에 진심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사진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시가 되는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진으로 찍어 내 것으로 갖고, 또 갖고 있는 사진을 다시 잃어버리고 또 버리는 과정 또한 시인에게는 시의 삶이고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는 시선이 곧 시를 바라보는 세상이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거기 무언가 있(었)음'이다. 기억은 '거기'를 지우고 '무언가'를 지우고 '있(었)음'을 남겨놓는다. 사진의 거짓은 '거기 무언가 있(었)음'을 존재한다. 기억의 거짓은 오직 '있(었)음'만을 상대한다. 사진은 한정하고 기억한 확장된다. 사진과 기억은 유사한 형식을 갖지만 비교의 대상은 아니다.(74쪽)

'있(었)음'에 '거기 무언가'를 보태 사진으로 남기든, 그 사진을 잃고 다시 '있(었)음'만을 남기든, 그것이 사진이어서 또한 기억이어서도 된다는 것이다. 한정하고 확장하는 그 사이에서 세상은 여전할 뿐이다.

거기서 사진 속의 '나'는, 다른 기억에 안착하여 새롭게 살기 시작한 '나'는 안녕할까. 여기의 '나'가 꽤 늙어버렸다는 사실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부디, 그곳에서 행복하길. 여기의 '나'보다 더 오래 이어져가기를.(244쪽)

사진 속의 '나'와 여기의 '나'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비교할 수 없는 각자의 몫만큼의 삶 속에서 오래 이어져갔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시인의 앞으로의 길을 따라가보고 싶어졌다. 어떤 나아가기를 마음 먹었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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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는
다비드 칼리 지음, 모니카 바렌고 그림, 정림(정한샘).하나 옮김 / 오후의소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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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상이, 그 사람을 떠나보낸 후에 쉽게 잊힐 리가 없다. 아마 함께 있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순간들이, 그 사람이 떠난 후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그리운 순간들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떠올리는 시간이 때로는 아프기도 또 때로는 따스하기도 해진다. 마음이라는 것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으니까. 늘 한결같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아픈 것도 따스한 것도 모두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마음이라는 것만은 같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빈 자리의 시간들이 그 사람과의 기억들과 얽히며 여러 감정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은 그 감정들을 고스란히 지금의 감정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게 된다.
잊어야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라는 이유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는 순간 더 생각날 것이고, 슬퍼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순간, 예상치 못한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마냥 덮어만 둔다고 감정이 희석되지는 않는 법. 희석시키기 위한 방법을 아무리 찾으려해도 쉽게 찾아질 수가 없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받아들이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상을 여전히 함께 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쌓아온 일상의 삶이 있다. 이 일상은 힘이 무척 세다. 함께 본 영화, 함께 다닌 카페, 함께 키운 강아지, 그리고 함께 생활한 집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다고 일상이 바뀔 리가 없다. 바꿔 살 수도 없다. 바꿀 수 없어서 일상인 거니까. 또한 공간과 시간과 기억을 한순간에 지우기란 불가능이다. 그 공간이 사라져 없어지지 않는 한, 설사 공간을 옮긴다고 해도 기억까지 옮길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그 일상을 이어나가는 도리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일상을 차곡차곡 계속 쌓아가며 다시 자연스레 혼자의 시간을 잘 견딜 수 있도록, 괜찮도록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당신은 알까? 여전히 나는 그곳에 가.
하루도 빠짐없이."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일상을 이어나가면 그것 또한 내내 이어지는 일상이 될 수 있으니까.
감정이란 것은 억지로 만들고 고치고 비튼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특히 사랑 혹은 그리움의 감정은 굳이 애써 포장하고 감추는 노력으로 바뀌지도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며 담담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차분해지고 고요해지고, 그리고 제일 중요한, 따뜻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이 한없이 슬프면서도 또한 아름다웠다. '당신'을 위해, 여전히 매일을 함께하고 있다는 그 마음이 뭉클하게 만들었다. 이 마음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슬퍼지는 날에도 늘 하던대로 함께하던 일상을 이어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어줄 거니까.

덧-
손목의 시계에 자꾸 시선이 갔다. 아마도, 이들의 시간이 어떻게 서로 이어져있고 연결되며, 앞으로도 어떻게 흘러가게 될 것인가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런 의미에서, 저 시계가 멈추지 않고 잘 움직여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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