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 많던 신여성은 어디로 갔을까 - 도시로 숨 쉬던 모던걸이 '스위트 홈'으로 돌아가기까지
김명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그많던신여성은어디로갔을까 #김명임 #김민숙 #김연숙 #문경연 #박지영 #손유경 #이희경 #전미경 #어보인 #한겨레출판 #하니포터9기 #서평단 #서평 #책추천
요즘 화가 많아졌다. 책을 읽으며 흐뭇하고 행복한 기분보다는 화가 날 때가 많아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건 순전히 책 문제다.
제목만 보고는 신여성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이 먼저 들었다. 사전에서도 '개화기 때에, 신식 교육을 받은 여자를 이르는 말.', '개화기 때에, 서양식 차림새를 한 여자를 이르던 말.'이라고 뜻풀이가 되어 있으니까. 신식 교육을 받았다면, 그런 여성이 여성의 지위 향상이나 권리 보장을 위해 앞장섰을 거라고 흔히 생각할 수 있으니까. 같은 한자를 사용하는 다른 단어의 뜻풀이에는 이렇게도 나와 있다. '1923년에 개벽사에서 발행한 여성 교양 잡지. 1920년대의 다른 여성 잡지와는 달리 개벽사의 정치적 노선을 그대로 반영하여 사회주의적인 색채를 띠었다.'라고. 당시의 사회주의적 색채라면 지금의 사회주의와 성격이 달랐으니, 이런 '신여성'이라면 믿어봐도 좋지 않을까, 혼자 막연히 착각했다. 정말, 말 그대로 착각이었지만.
화가 난다는 이야기로 다시 되돌아오면,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정말 이 시기에 신여성을 위한 잡지에 신여성은 옹호하고 여성의 온전한 삶을 있는 그대로 지지해주는 것이 가능한 분위기였을까), 이렇게 쉽게 아니었다는 것을, 오히려 더욱 여성을 옥죄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는 것에 배신감이 느껴졌다. 한치의 오차 없이 당시 여성들을 대하던 방식이 어쩜 이토록 한결같았을까, 싶은 답답함까지. 마치 기존의 여성과는 다른 구분으로 '신'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붙인 것이 그들의 삶과 생각을 옹호하려는 목적이 아닌 그 반대, 여성들의 삶을 더욱 구속하고 사회나 남성이 원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모습을 만들겠다는 음흉한 목적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에, 분노를 삼킬 수가 없었다. '신'이 더 붙은 신여성은 여성을 기존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더욱 원하는 대로 만들어내고 포장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러니 더 교묘하게 여성들을 새로운 여성상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도록 만들려는 검은 속내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이 책을 읽는 내내 기가 막힐 뿐이었다.
이로써 외양이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시대로의 본격적인 돌입, 그리고 부러움과 모방의 대상이자 유행의 선도자인 신여성에 탄생하게 된 것이다.(26쪽)
이렇게 신여성은 만들어놓고, 많은 여성들이 이런 신여성은 따라하도록 하고는 그런 신여성을 자기들 입맛대로 이렇게 저렇게 만들겠다는 그 속셈이 너무 괘씸한 것이다.
그러나 <신여성>의 사전란에는 낱말 풀이라기에는 이상한, 희화화된 설명이나 은어, 속어까지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런 낱말 풀이는 사전의 형식을 빌려 세대를 풍자, 조롱하는 것으로 권력의 또 다른 작동을 보여준다.(90-91쪽)
여성을 대상으로 한, 그러나 남성 지식인이 만든 여성 계몽 잡지 <신여성>은 신여성을 둘러싼 온갖 소문을 주워 담으며 그들을 비판하고 조롱함은 물론, 때로는 윽박지르고 겁주기도 했다. 동시에 '부적절한' 신여성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새로운 지침으로 신여성은 계도하고자 했다.(97쪽)
여성을 대상으로만 보고 그 여성을 깔보고 흉보며 성적 대상으로만 보려는 의도.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은 그저 함부로 다루어도 좋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담겨 있는 저속하고도 흉측한 내용들. 화가 안 날 수가 없다.
당시 <신여성>을 읽던 신여성들처럼 막힌 출구를 진정한 출구라고 믿으며 열심히 만들고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솔직히 두렵다. 그러나 출구를 만드는 일을 어찌 멈출 수 있겠는가. 우리가 만드는 출구는, 우리가 그러했듯이 뒤 세대들의 교훈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250쪽)
지금 왜 <신여성>을 다시 꺼내봐야했던 것일까, 생각해봤다. 결국, 우리가 만드는 출구를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은 아닐지. 우리가 출구라고 생각하고 행하던 모든 것들이 어쩌면 과거의 '신여성'들이 걷던 길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길은 것은 아닌지. 지금 우리의 출구가 어떤 출구인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신여성이라는 이름 하에 행해졌던 불순한 의도에 휘둘리는 여성의 삶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우리의 '출구를 만드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될 것 같다. 끊임없이 되돌아보면서. 막힌 출구가 되지 않기 위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