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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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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동구처럼 착한 아이는 처음 보았어."(119쪽)
동구처럼 착한 아이는 아마 없겠지. 이렇게 속 깊은 아이가 또 있을까. 이렇게 심성이 아름다운 아이가 어디 또 있을까. 그래서 눈물나도록 맑고 투명한 이 아이를 속속들이 모두 다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아이의 상처와 슬픔까지 모두 나의 아픔인 것처럼 느낄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그래서 우리 동구가 어딘가에서 이 마음 그대로 할머니, 엄마, 아버지와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이 마음 어디 가지 않고 꼭 간직한 채로.
한 6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평소 소설을 잘 읽기 싫어하던 지인이 이 소설만은 꼭 읽어보면 좋겠다고 추천해준 소설이었다. 얼마나 좋으면 소설에 대해 관심 없던 사람이 추천까지 해줄까 싶어 얼른 책을 받아 읽었었다. 그때도 감동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한동안 잊고 있었다. 소설의 내용도 가물가물해졌고. 다시 개정판으로 나왔다 했을 때 얼른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어떤 감동이 나에게 남아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동구는 사랑이 가득한 아이다. 그 사랑을 충분히 표현할 줄도 아는 아이. 자신에게 소중한 이가 누구인가를 너무 잘 알고 있어, 그 소중함을 잃지 않게 위해 애쓰는 아이다.
엄마와 영주가 학교로 찾아왔던 그날. 선생님은 칠판에 예쁜 글씨를 쓰셨고 지저귀는 어린 새 같은 영주는 배에 힘을 주며 큰 소리로 그 글씨들을 읽었다. 아이들은 신나게 박수를 쳤고 엄마는 교실 문 앞에서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누르며 겸손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던 행복한 날이었다.(...) 지금 단 한 번만이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그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350-351쪽)
이 작은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힘들게 떠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 어떻게 하면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에 골몰하는 것이다. 이것을 그저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라고 넘겨짚으면 안 된다. 이 아이에게는 제 인생을 통틀어 매우 중요하고 다급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부로 말하지도 않는다. 말을 속으로 삼킨다. 진지하게 어른들보다 더 간절한 마음을 담는다. 그리고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데에는 다른 사람의 입장과 생각을 헤아려볼 줄 아는 마음에 있다. 동구는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처지를 생각하고 말과 행동의 이유를 찾는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과 역할을 잘 알고 먼저 움직인다. 그래서 이런 헤아림의 마음이 동구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한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는 미풍에 실려 긴 대각선으로 내 눈앞을 지나가던 벚꽃잎 하나를 가만히 쫓고 있었다. 꽃잎은 매끄럽지 않은 사선을 그리며 한들한들 바닥까지 내려와 마당 모퉁이를 두르고 있던 버드나무의 흰 소설과 노란 송홧가루의 품 속으로 파로들더니 오랜 동무라도 만난 듯 함께 구르고, 튀어 오르고, 아장거리다가 마침내 내 시야를 벗어났다.모처럼 유람을 떠나는 아씨마님들처럼 유유하고 평안한 모습이었다.(22쪽)
동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랬다. 가만히 움직이는 작고 소중한 것들에 금새 마음을 빼앗기고, 그 소중한 것의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할 줄 아는 아이. 그래서 이 아이에게 삼층집 정원은 무척 간절한 아름다움이었다.
삼층집의 아름다운 정원은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점만을 조심스럽게 모아둔 것 같은 공간이다.(...) 살아 있는 나뭇잎들과 한때 살았던 나뭇잎들이 서로 힘을 합쳐 매우 향긋한 공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이곳을 감도는 바람은 단술처럼 맛있다. 그리고 그 나무들 사이에 정말로 보기 좋은 여러 가지 새들이 살고 있다.(...) 사람의 입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삼층집의 정원은 오로지 건강함으로 그 뒤에 어린 세심함 돌봄의 손길을 짐작게 할 뿐이다.(17-18쪽)
이 아름다운 정원을 잠시나마 볼 수 있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조금이라도 문이 열려 있으면 그곳을 찾아 정원을 감상한다. 그 정원에서 마치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인받는 것처럼 정원의 아름다움에 취해 잠시 편안해지는 것이다.
차가운 철문을 힘주어 당기며 나는 아름다운 정원에 작별을 고했다. 안녕, 아름다운 정원. 안녕, 황금빛 곤줄박이.(369쪽)
그런 정원과의 이별. 아마도 동구는 이 정원과 이별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과도 이별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꽃을 피우고 날아올랐던 나무와 새들처럼 동구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라는 정원에서 마음껏 이리저리 뒹굴며 성장했다. 때론 누군가의 돌팔매질에 상처입은 곤줄박이처럼 다치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동구를 키우고 가꾸었던 각각의 동력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런 동력 없이도 충분히 동구는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 컸다. 또한 다른 이들을 함께 보듬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크기도 커졌다. 이제는 이 정원에서 나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 그러니, 안녕.
앞으로의 동구가 갈 길이 순탄하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크고 작은 돌부리에 넘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충분히 훌훌 털어낼 수 있을 정도로 동구는 단단해졌고, 더 단단해질 거니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