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움큼의 외로운 영혼들 - 세기전환기의 멜랑콜리
강덕구 지음 / 을유문화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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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가, 그동안 익히 잘 알고 있는 장르나 영역의 이야기가 아니어서 읽기 쉽지 않았다. 영화, 노래, 그리고 작가, 배우 등에 대해 저자가 갖고 있는 관심이 전문적인 수준이어서 단순히 호기심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그 수준이 깊었다. 그러면서도 각 부분의 이야기가 부제에도 달려 있는 것처럼, '멜링콜리'했다. 각 작품들의 내용과 주인공들의 삶은 어둡고 불행하기만 했다.

자기 파괴, 관조적 태도, 아이러니는 근사한 자아를 뽐내는 오늘날의 문화적 상상력과는 전연 다르다. 영웅주의는 악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는 우리 내면의 어둠을 받아들이고,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바깥의 어둠 및 그 안에 있는 공포와 맞서 싸우는 태도다. '우리는 외부에서 가하는 폭력과 내부에서 솟아오르는 자기 불신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까?' 나는 지나간 세기의 영웅주의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어둠을 대면하는 그들의 냉소적이고 어리숙한 태도에서.(61쪽)
이들은 영화가 언제나 끝나가고 있음을, 죽음이라는 종언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 있음을 의식한다. 그들은 각자 다른 영화적 비전을 보여 주었지만, 영화라는 매체를 향한 그들의 근심은 거의 일치한다.(...) 이러한 근심에 기반한 그들의 '멜랑콜리'는 지금의 영화 문화에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다.(148쪽)

파괴, 아니러니, 악, 어둠, 불확실성, 공포, 폭력, 불신, 냉소. 이 단어들만으로도 충분히 저자가 갖고 있는 우리의 영화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영화의 '끝'을 말하고 있었다. 영화를 통해 보여주던 아름다움은 더이상 찾을 수 없으며, 그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갈 뿐이라는 것. 이건 음악 또한 마찬가지.

이 노래들의 목소리는 삶을 바꿀 순 없으나 마취시킬 수는 있다는 어떤 체념에 깊이 사로잡혀 있다. 나는 세상의 즐거움과 슬픔을 함께 발견하는 이러한 체념에 얼마나 기룩한지 안다. 내가 팝 음악의 목소리에서 배운 것은 바로 이런 체념이다.(97쪽)

저자가 이런 예술에 대해 갖고 있는 전망과 감수성, 많은 비관적 판단과 근거를 통한 태도, 그리고 과거를 풍미했던 우리의 예술에 대한 향수 등이 어우러지며 저자의 삶을 관통했던 예술이 무엇이었고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그런 20세기의 영웅들.

그런데, 21세기의 영웅들은 과연? 소설가, 배우, 밴드, 그리고 영화가 보여주는 요즘의 이야기들은 과연? 한 시대가 지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등장한 그 영웅들의 면모와 그들을 평가하는 지금의 시선들은 어떠한지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이야기들. 저자가 각 인물들에 대해 하고 있는 판단과 태도가 무척 도전적이고 직설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거침이 없다는 것. 이런 판단을 가감없이 할 줄 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럴 수 있었던 배경은 저자가 갖고 있는 단단한 전문적 지식과 판단, 가치관, 그리고 폭넓은 안목과 시야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저자의 판단에 대해 우리도 함께 판단해볼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함께 했다.

20세기의 영웅들은 이 끝과 싸워 나가려 했던 인류의 발명품이었다. 이 불멸을 향한 충동은 현세의 영원성을 보장하려 했던 볼세비키 혁명처럼 20세기를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였다. 끝을 유예하려는 20세기의 충동들은 '허구'라는 방법으로 불멸을 가능케 했다. 이처럼 허구화한 불멸의 대표적 예시로 다양한 페르소나를 취사선택하며 끊임없이 변모하는 이미지를 창조한 보위를 떠올릴 수 있을 거다.(...) 그러나 그런 보위조차도 종국에는 필연을 막을 수 없음을 알았다. 끝은 언제나 오는 법이니까.(284쪽)

20세기와 21세기는 분명 다르고 그런 세기의 변화, 즉 세기전환기에서의 예술은 어떤 끝과 시작을 맞고 있는지를 저자는 충분한 숙고와 비판적 판단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솔직히 모든 이야기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이야기는 분명 아니었고, 또한 저자가 담아내고자 했던 비평들의 수준이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에 꼼꼼하게 하나씩 찾아 공부하듯 읽지 않고서는 그 많은 생각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어려웠고 깊이가 있는 이야기었다. 저자는 예술에 대한 담론을 지닌 평론이 아니라 비평적 에세이 정도라고 말했지만, 추가 설명 없이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많았다. 에세이에 대한 기준이 달랐다고나 할까. 다만 저자의 깊은 애정만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짜 비평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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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퍼와 꼬마 기관차 상상 동시집 31
권오삼 지음, 이한재 그림 / 상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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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를 읽을 때마다 느끼게 된다. 어쩜 이렇게 기발하고 명료하며, 재치있을 수 있을까. 늘 감탄하게 된다. <지퍼와 꼬마 기관차>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아, 그렇지! 그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 와, 이런 생각을 미처 못 해봤네! 하는 생각을 하며 동시를 읽어나갔다. 그리고 그 중 정말 인상적인 시 몇 편을 적었다. 역시! 시는 눈으로 읽을 때, 소리내서 읽을 때, 글로 쓸 때, 각각 느껴지는 느낌이 또 다르다. 글로 쓰면서 시를 천천히 읽다보면, 눈으로 봤을 때 놓쳤던 또 다른 재미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쓴소리도 보인다. 그러니 필사를 안 할 수가 없다.

'통도 여러 가지'(10쪽)에, '우체통', '필통', '쓰레기통', '저금통', '밥통', '물통'! 거기에, '먹통', '분통', '두통', '복통'까지! "통, 통, 통자로 끝나는 말은~" 하고 노래를 부르며 하나씩 노래에 맞춰 말해봐도 재밌을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먹통, 분통이라니! 지금의 심정을 딱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 정말, '꽉 막혔'고, 그래서 '속 터진다'는 말이 딱 맞다. 감탄이 절로 난다.

공책은 글자 씨앗을 심는 밭이랍니다/연필로 글자를 심을 때 또박또박 가지런히/(...) 함부로 낙서하면/그건 밭에다 잡초를 심는 거랍니다('공책' 중(37쪽))

얼마 전 아이들에게 강조했던 말이 여기 딱 나왔다. '또박또박'! 제발 시험 답안지에 글씨를 또박또박 써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결과는... 해독 수준의 글씨를 읽으며 탄식이 절로 나왔다. 아, 이를 어떡해 하면 좋을까, 싶었는데 이 시를 만났다. 아무래도 이 시를 '또박또박' 써보자고 아이들에게 내밀어봐야겠다. 잡초 말고 예쁜 글자 씨앗을 심어 보자고 말이다.

꼬마 기관차가/지퍼 철도 위를 달린다/주르르르르르르르르르('기차와 꼬마 기관차' 중(42쪽))

앗! 지퍼 철도였다. 와! 여기서도 감탄했다. 지퍼의 꼭지를 잡고 올릴 때의 모습과 소리를 이렇게 표현했구나 싶어,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너무나 일상적인 장면일 뿐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색다른 시로 표현하니 또 남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시를 필사할 때 '르'가 몇 번인지 꼼꼼하게 세어 적었다. '르'의 글자 수를 세고 있는 나도 재밌었다. 1연의 '르'는 9번, 2연의 '르'는 5번, 3연의 '르'는 3번, 다시 4연의 '르'는 9번. 헌데 르의 수에 따라 진짜 그 느낌이 모두 달랐다. 1연과 4연은 글자 수가 같았지만 속도는 또 달랐다. 이렇게 감각적으로 나타낼 수 있구나, 역시! 시인님의 감각은 완전 인정이다!

그리고, 진짜 깜짝 놀란 시 발견!

다 보고 난 뒤/꾹, 마침 버튼을 눌렀다/텔레비전 속/우리가 사는 세상이/퍽, 사라졌다//재밌고 신기한 것도 많았지만/화나고 슬픈 게 더 많았다('텔레비전 속 세상' 중(60쪽))

예전부터 의문이었던 점이 있었다. 왜 한결같이 뉴스에는 나쁜 소식이 훨씬 더 많을까. 좋은 소식이 5%라면 나쁜 소식이 95% 정도 된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특히 요즘은 더! 나쁜 소식들 투성이다. 정말, '화나고 슬픈 게' 너무 많은 우리 세상이니, 이런 세상이 문제일까 아니면 이런 이야기만 쏙쏙 놀라 보여주는 텔레비전이 문제일까. 아마 이 시를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교실이 시끌시끌해질 것 같다. 앗, 위험해질 수도!

동시의 재발견이다. 간혹 아이들 중 동시라고 소개해주면 자신들은 이제 동시 읽을 나이 지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 조용히 말해준다. 어른인 나는 아직도 동시가 좋아 자주 읽는다고. 이 동시집도 다시 꺼내읽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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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호빵 웅진 우리그림책 132
백유연 지음 / 웅진주니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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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덩달아 행복하고 따뜻해진다. 저 빨간 동백꽃 속으로 나도 슬며시 들어가보고 싶고, 한 입 베어물며 전해지는 따끈하고도 달콤한 맛을 느껴보고 싶다. 추운 계절 따뜻한 것이 그리워지는 이 시기에, 동백 호빵 하나면 추위가 사르르 녹아내릴 것만 같다. 이런 따뜻한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 거지? 이건 작가의 마음 또한 동백 호빵과 같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작가를 잘 알지 못해도 이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작가를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얼마나 따스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있는 작가일까.

몸집이 십여 센티 정도에 녹색과 노란색, 흰색의 깃털을 고루 가진 동박새는 겨우내 활동하는 우리나라의 흔한 텃새다. 동백나무는 이 동박새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마침 동박새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 많은 열량을 필요로 하기에 동백꽃에 담긴 달콤한 꿀을 빨아먹기로 하고, 동백나무의 수분 매개자가 되어 준다.(...) 춥고 고될수록, 주변의 환경이 나빠질수록, 그들은 더 끈끈히 유대한다. 마치 서로에게만 꼭 맞는 퍼즐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이것이 동백나무와 동박새, 그리고 겨울 숲의 생물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동백나무와 동박새의 공생' 중_2018.1.4.)

동백나무와 동박새의 유대, 겨울 숲 생물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말이 제대로 와 닿았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그런 것 같다. 어떤 생물도 겨울의 추위 속에서 여유롭거나 안전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이 겨울을 잘 지낼 수 있어야만 다시 올 봄을 맞을 수 있다. 봄이 되어 생명을 틔우고 삶을 이어갈 수 있기 위해서는 겨울을 잘 날 수 있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다. 이럴 때 제일 좋은 방법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하는 방법.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도 다같이 하면 가능한 법이니까.
이것을 제대로 할 줄 알았던 동물 친구들이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끝까지 돌볼 줄 아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돌봄이 단순히 자신의 가족이었어야만 가능했던 것도 아니다. 나에게도 어려움이라면 모두에게 다 어려움일 것이고, 그런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함께 극복할 수 있도록 마음을 나눌 줄 알았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줄 알았을까. 이 동물 친구들이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야겠다는 마음과 생각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마음이 무척 소중하다.

이를 통해 숲속 친구들은 또 하나의 소중한 관계를 얻었다. 겨울의 추운 숲속 생활을 어떻게 지내면 좋을지에 대한 방법을 찾았다. 이건 비단 숲속 친구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 그림책은 지금의 꽁꽁 얼어붙어버린 추운 겨울을 우리가 어떻게 지내야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다. 나만 따뜻한 집 안 훈훈한 공기 안에서 배불리 먹고 등 따뜻하게 지내고만 있다고 좋은 겨울을 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무엇에 마음을 보탤 줄 알고 또 어떤 마음을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지에 대한 답을 이 그림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건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책을 만난 것이 너무 다행이다.

<동백 호빵>. 동지인 오늘, 딱 어울리는 그림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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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동남아 - 24가지 요리로 배우는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현시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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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 목차를 둘어봤다. 내가 알고 있는 음식에 뭐가 있지? 열심히 훑어보았다. 아! 난 진짜 음식을 잘 모르나보다. 혹은 동남아에 대한 관심이 잘 없었나? 싶기도 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음식이 별로 없었다. 이렇게 무지했구나, 싶어 반성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어떤 음식들이길래, 그리고 내가 먹고 싶어질 음식, 그래서 덩달아 그 나라가 궁금해질 음식은 무엇일까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그나마 친숙하게 다가오는 나라의 음식들이 있다. 바로 베트남의 음식들. 우연한 인연으로 베트남에 잠시 살있다고 베트남의 음식들은 낯이 있었다. 반갑기도 했고. 그래서인가 베트남 음식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베트남 쌀국수 '퍼'나 쌀밥 '껌떰'은 주말 아침 자주 사 먹었던 식사였다. 집 앞에만 나가도 바로 먹을 수 있던 쌀국수 집과 껌떰 집이 있었다. 가서 먹거나 혹은 포장해와서 먹거나. 가끔 저녁으로 동료들이나 혹은 가족끼리 '반쎄오'도 종종 먹었다. 전을 쌈에 싸서 먹는다고? 싶어 신기했던 기억이. 나중에는 쌈 채소를 함께 겯들여 먹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졌던 베트남 음식들이었다.

산업화 정책에 따라 노동자들이 일자리가 있는 도시로 몰려들었고, 이들이 간편하면서도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들이 길거리 상인들에 의해 팔리기 시작했다.(251쪽)

이 말에 동의했다. 베트남음식은 어디에서든 간편하게 길거리 음식으로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베트남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느낄 것이다. 길거리 음식들의 다양함과 간편함을. 그리고 이것이 또한 그 나라를 알아가는 재미라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외국인이나 타지인을 혐오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문화적으로 개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도가도 같은 음식도 다양한 재료를 땅콩 소스로 버무리듯이 혼합성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46쪽)

인도네시아는 생소하다. 가본 적도 없고 그동안 관심을 기울여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이럴 때 참, 무지했구나 싶다. 사실, 채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샐러드에 관심이 제일 먼저 갔다. 어떤 샐러디가 각종 나라의 특징에 맞춰 발달되어 있을까 싶어 궁금하기도 했고. 인도네시아의 '가도가도'. 그 나라의 말을 잘 모르니 이름이 낯설지만 재밌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음식은 결국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구나 하는 생각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결코 그 나라의 방식으로만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 어떤 시간들과 과정을 겪으며 지금의 문화가 형성되었는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이 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다른 나라의 음식에 무엇이 있는가를 흥미롭게만 혹은 신기하게만 보고 지난칠 것은 않겠다는 생각. 우리나라의 음식도 그 나름의 사연이 모두 담겨 있듯이, 음식은 그 나라를 알아가는 좋은 시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을 그렇게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신기한 발견. 팟타이, 미고랭, 빤싯 등. 이 음식들은 사실 우리의 잡채와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사람 사는 곳의 음식이라는 것이 그리 다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재료와 어떤 향신료가 겯들여져 있는가만 다를 뿐, 각 나라의 음식 문화가 그리 동떨어져있는 것은 아닐 것 같았다. 이걸 보편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가끔 여행에서 돌아오면 사람들이 그 나라의 음식이 어땠는지를 물어보고, 사람들은 우리 입맛에 맞았어라는 얘기를 종종 한다. 이건, 우리에게 익숙해져있던 음식에 대한 생각이 그 나라에서도 비슷하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친숙해지는 느낌이었다.

각 나라를 여행한 기분이면서 그 음식들의 맛을 상상해본다. 다음 여행지를 떠올려보거나 길거리에 앉아 음식을 먹어보는 나를 그려보기도 한다. 여행을 즐겨하지 않아 당장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여행을 가게 되는 때 다시 이 책을 펼치고 그 나라의 음식들을 적어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먹어보고 함께 먹는 사람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이제 좀 안다고 아는 척 좀 해봐도 좋겠다는, 웃음이 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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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하우스
전지영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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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하우스 #전지영 #전지영소설집 #창비 #서평단 #서평 #책추천

어, 이 소설들 뭐지? 소설을 하나씩 읽어나가면서 독특하고 때론 괴기하기까지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섬뜩하기도 하고 또 무섭기도 했다. 평범하지 않았고 뭔가 이상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소설이 이렇게 끝난다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뭔가 해결되지 않은 찜찜함을 남긴 채 끝난다고? 그러면서도 자꾸 궁금해 다음 소설을 바로 연이어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집은 이런 식이구나. 사람 마음을 이렇게 끌어당기는구나, 싶었다.

"이유가 뭐든 그냥 버티시라고요."(...)
"할 수 없죠, 뭐. 모멸감도 견뎌보세요. 원장님이 망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잊을 거예요."(144-5쪽)

그리고 생각한 것이, 어쩌면 이것이 우리 세상에 대한 민낯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은 다 알고 있지만 모르는 것처럼, 마치 나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순진한 척을 하고, 사람들은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불편해지는 마음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소설들에는 편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모두들 한 가지 이상의 문제들을 떠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애써 그 문제들에 신경쓰고 있지 않은 것처럼 겉으로 뻔뻔스러운 모습까지 보인다. 하지만 알고보면 그 문제에서 누구 하나 자유롭지 못하다. 해결할 수 있는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견디고 살아내는 수밖에. 그러다 부딪히는 난관에서 결국 무너진다. 그리고 그 무너짐 안에서 다시 살아낼 궁리를 하는 것. 이게 어쩌면 이 소설에서 얘기하려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봤다.

제목이 <타운하우스>인 이유가 궁금했다. 보통의 소설집은 단편 소설의 제목 중 하나가 책의 제목이기 마련인데, 이 소설집은 어디에도 없는 제목을 새로 붙였다. '타운하우스'라고 하면, 저밀도 주택단지. 많은 사람들이 빼곡하게 살아가는 아파트와는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 소설들과 '타운하우스' 사이의 관계는 뭘까.

'타운하우스'가 안온함, 여유, 풍요로움을 상징한다면, 그 안에서 사는 나는 대척점에 존재하는 불안과 외롭게 싸워온 셈이다.(298쪽_'작가의 말' 중)

겉으로는 무척 평온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상류의 상징처럼 '타운하우스'가 비춰질 수 있지만, 그 안에 사는 삶이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사람 사는 건 누구나 비슷할 거니까. 좋고 넓은 집, 어느 정도 안정적인 경제적 사회적 위치, 웬만한 건 모두 갖추고 산다고 느껴지는 삶 속에서도 안고 가야 할 문제와 역경은 있기 나름이니까. 그리고 그게 어쩌면 진짜 우리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들을 읽으며 불안하고 인상이 써지며 무엇 하나 속시원히 해결되지도 않은 답답함이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미심쩍음이 다음 소설을 기대하게 되고 또 읽고 궁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전지영. 소설가의 이름을 기억해두어야겠다. 이 다음 소설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우리가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다. 이 소설집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면, 다음 소설을 찾아 읽지 않을 수 없으니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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