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붕붕어 인생그림책 35
권윤덕 지음 / 길벗어린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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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어는 행복할까.

이 그림책을 읽고 든 생각이다. '행복한' 붕붕어라고 했는데, 진짜 행복할까. 아니면 행복한 붕어빵이어서 '행복한 붕붕어'인 걸까. 붕붕어가 고된 훈련을 하고, 눈이 올 때를 기다려 찾아간 노점 주인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아픈 강물을 어루만지며 붕붕어를 살포시 안아 주었던 그 마음에 대한 보답으로 붕붕어가 하고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무엇일까. 이제 맑은 강물은 볼 수 없는데.
붕붕어의 탄생에 대해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작은 발이 돋아난 이유는 무엇일까. 어찌보면 붕붕어의 발은 기이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붕붕어빵을 선뜻 사람들이 잡으려 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발 달린 물고기. 그렇다면 왜 이런 기이한 모습으로 태어난 걸까. 그건 아픈 강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픈 강물은 더 이상 물고기들이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는 뜻일 거고, 그 강물에서 아픈 붕붕어가 태어났을 거다. 그렇다면 아픈 강물, 아픈 붕붕어가 태어난 이유는? 당연히 인간 때문일 거다. 인간은 그들이 사는 세상을 지금 이토록 아프게 만든 장본인이니까.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분명 우리가 지나온 전염병의 대혼란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고, 이것 또한 인간들에게서 그 원인과 이유가 있을 것으로 의심해볼 수 있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시대를 살 수밖에 없는 그 모든 원인은 인간들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 삶과 욕심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모든 자연의 현상을 다 바꿔버린 것이다. 점점 아프게.
내가 뿌린 씨앗은 다시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의 악영향은 기여이, 혹은 오히려 더 크게 더 나쁘게 나에게 돌아온다. 지금 우리가 그 돌아온 나쁜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쩌면 더 크고 나쁜 영향이 심해진 공간에서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살아가게 될 것이다. 끔찍하고도 무서운 상상이다. 그런데 그런 상상을 이 그림책에서는 '행복한'이란 수식어를 써서 이야기하고 있다. 반어인가?
환경에 관심이 많다. 우리 지구에 해를 끼치는 인간들의 무책임한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많이 느낀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 늘 생각하면 할수록 나 한 사람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에서 기운이 빠지곤 한다. 이대로 절대 괜찮지가 않은데 말이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붕붕어는 인간들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던 붕붕어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자신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자신의 모습을 봐달라는 호소이지 않았을까. 아픈 강물과 아픈 붕붕어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인간들이 알아야 한다는 것을 붕붕어가 온몸으로 말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고보니, 그림책 처음 시작할 때 강물의 모습이 나온다. 그 강물을 헤엄쳐 가는 붕붕어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때 강물은 누런 강물이다. 아! 누런 강물이었다. 그리고 붕붕어가 원하는 강물은 푸른 강물이었고. 이것이 붕붕어가 인간들을 찾아간 이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붕붕어의 모습과 행동을 통해 무엇을 알고 생각해야하는지, 그 답이 여기에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그림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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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슐츠 씨 -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
박상현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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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_옷과_주머니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이야기여서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이내 내 옷의 주머니가 어떤 크기와 모양인지를 떠올려봤다. 작았나? 적당했나? 가끔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었을 때 불편함이 느껴져 넣어다 뺐다를 반복하거나 결국 손에 들고 다니게 되는 때가 있었다. 그럴 때도 주머니 탓은 안 하고 휴대폰이 너무 크고 무겁다는 생각만 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에서 영희가 엄마에게 말하던 장면도 생각났다. 자기도 주머니 있는 옷을 입고 싶다고. 하지만 주머니 있는 옷은 잘 사는 아이들이나 가질 수 있는 옷이었다. 이게 이런 의미였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 주머니에 얽힌 이야기가 이토록 뿌리깊은 차별의 역사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상식적인_남자들
남자에게 당연하다면 여자에게도 당연하다는 것이 이토록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이구나 싶었다. 왜 매번 여자는 이 당연한 것들을 얻기 위해 힘들게 싸우고 노력하고 애써야만 하는 것일까 싶어 안타까웠다. <여성이 말한다>(이벤트 쿠퍼)를 읽으면서도 들었던 생각이었는데, 이렇게나 많은 시간과 삶 전체를 관통하면서 노력해야만 겨우 얻을 수 있는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여성으로서 화가 나기도 한다.

#친애하는_슐츠_씨께
그런 면에서 우리의 슐츠 씨가 참 멋지다. 아마도 그 당시 그 사회에서는 더 하기 힘들었던 선택과 방법이었을 수 있다. 특히나 그만큼의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될 것을 잘 알고 있다면 더욱 시도하는 것이 어려웠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슐츠 씨가 자신의 방식으로 그것을 잘 해냈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아무래도 <피너츠>를 찾아 읽어야겠다. 옛날 CD가 몇 개 있긴 한데, 어떻게 봐야하나. 다시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요새 자주 드는 생각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서 식상할 수도 있지만 자꾸 깨닫게 된다. 내가 이 세상의 일들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들이 많구나. 그래서 자꾸 읽고 공부해야한다는 것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을 알아나가야 한다고. 이 책에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내가 갖고 있는 편견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만큼 너무나 뿌리깊게 박혀있는 생각들. 그게 제일 무섭다. 나도 모르는 사이 세상을 내 중심으로만 생각하게 될까봐. 자꾸 경계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상식, 정상이란 단어를 그래서 잘 사용하지 않게 된다.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그 단어들에 나 스스로 선을 그어놓고 그런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나누어 판단하게 될 수 있다.
이런 책이 갖고 있는 장점이다. 일깨워주는 것,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것, 그리고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아무래도 이 책, 전체를 다 읽어보고 싶어졌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책의 일부)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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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소설Y
조은오 지음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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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랐다. 소설 속 시대는 지금의 우리를 들여다보게 하는 소설인가보다 싶었다. 특히 전염병의 시대를 거치면서 만들어놓았던 규칙이 이렇게 사람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사용될 줄은 미처 생각도 못했다. 이미 사람들의 삶을 제약했던 그 당시의 방역이 효과적이지 않았겠다는 생각을 한편으로 갖고 있는 지금으로서, 무척 무섭고도 끔찍한 설정이었다.

[오랜 연구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수 세기 전, 접촉 정도에 따라 단계를 나누어 생존을 도모했다는 흔적입니다. 우리는 이 방법에 다시 희망을 걸어 보기로 했습니다.](38쪽)

'중앙'과 '외곽'이라는 용어에서 보이는 반전도 한몫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중앙'이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아마도 그 효과를 통해 사람들을 더 쉽게 통제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의심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더 좋은 삶, 더 나은 삶을 꿈꾸고 그런 삶은 중심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에 대한 의심이지 싶다. 07이 온영이고 싶은, 한결이 126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판단과 가치관의 문제일 것이다. 철저히 개인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눈을 감도록 하는 중앙에서의 삶에서 온영은 의심했고 오히려 불편함을 느꼈다. 자신이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비정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스스로 알아낼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원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있는 울타리를 넘어서야 가능하다는 것, 선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은 쉬울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 선을 넘는 것은 많은 두려움과 압박을 이겨내야 가능한 것이다. 특히 강한 힘에 의해 강요받는 삶 안에서는 더욱 그 틀을 깨는 것이 어렵다. 그럼에도 온영과 친구들이 했던 선택과 행동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용기있는 모습이었다. 이들이 보여준 연대의 모습도.

외곽으로 거주지를 옮긴다고 해서 버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내 발걸음을 막는 진짜 버블보다는, 보이지 않는 버블이 더 위험해. 내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버블로 가득한 중앙에도 버블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지. 게다가......(...) 나는 이제 버블을 깨는 방법을 알고 있잖아.(276쪽)

'버블'은 과연 무엇일까. 통제와 감시, 사람들의 자유를 가로막는 강요된 규칙이나 질서, 혹은 거짓과 허위. 어떤 것으로 읽든 결국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버블은 위험하다. 그리고 이런 버블이 지금 현재 내 주변도 감싸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숙제가 남는다. 이런 버블을 어떻게 어떻게 깨면 좋을지,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온영처럼 친구들과 함께면 더 좋겠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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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알아주는 마음
김지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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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까. 얼만큼 알기 위해 노력하는지도 중요할 것이다. 알려고 하고 이해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이 매우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러려면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장애인을 만나야 한다.(75쪽)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공감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에서 한참을 지켜봤던 경험이 이 이야기들을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얼만큼 우리가 알고 경험해 보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러 아이들 중 일부 아이들의 경우를 나도 겪어봤다. 물론 내가 직접 개입하여 아이들을 도와주었다고 할 수 없지만, 내가 그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에서는 어떻게든지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적절한 방법이었는지는 다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긴 하지만. 그리고 이 책의 아이들에게 더 마음이 열릴 수 있었던 건 내가 그런 아이들과 지냈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니, 경험이 그만큼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이 아이들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어른이 곁에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이다. 기대로 싶고 보호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같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받아주고 지켜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어른은 우리 사회가 해주어야 할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먹고사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행복했던 순간을 반복하고 싶은 욕망은 우리 안에 심어져 우리를 지탱한다.(20쪽)
실수와 실패의 기억이 쌓여 망설이고 있는 별이에겐 차근차근 마음의 준비를 돕고 도전할 용기가 생길 때까지 지지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 누군가를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옆에서 길을 잃지 않게끔 도와주는 것이 나의 본분임을.(50쪽)

이건 꼭 언어치료사인 저자에게만 적용되는 본분은 아닐 것이다. 이 사회의 어른들이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그 책임을 다 해주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그 시기에 꼭 경험할 수 있어야 할 시간들을 만들어줄 책임을 우리 사회와 어른들이 함께 다해주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은 내가 상황을 과장하고 틀린 사실을 진짜처럼 말하면 웃으며 즐거워한다. 맞고 틀리고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 권력자인 어른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기 때문이다.(120쪽)

틀리고 실수하고 잘못할 수 있다. 이건 아이든 어른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틀려도 실수해도 괜찮다는 것을, 잘못한 것을 다시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한번 더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는 어른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마음을 이 아이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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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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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 일기'는 낯 익은 말이다. 이미 최승자의 <어떤 나무들은_아이오와 일기>를 접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이오와'라는 지명도 'IWP' 프로그램도 마치 내가 경험했던 것인양 친숙하다. 뭔가 나도 알고 있다는 반가움 내지는 아는 척하고 싶은 충동이 불쑥 튀어나오는 느낌이라고나할까. 시인이 묵은 낡은 호텔도 30년 전 그때와 연결되며 마치 과거의 시간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신비함을 제공한다. 어쩌면 문보영 시인이 그런 느낌으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 수도. 뭔가 아이오와에서는 무엇이든 과거와 연결될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새로운 곳에서 오히려 익숙한 것을 발견하는 편안함. 이것 역시 시인의 일기를 채우는 문장들의 결과 맞닿아있는 듯하다. 그래서 더 안정적인 느낌이다.
언어도 환경도 낯선 곳에서는 무엇이든 우왕좌왕하기 나름일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침착하고 차분하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도 공간에 적응하는 과정도, 심지어 불편함에 대처하는 자세까지도 모두 예상하고 있던 것을 하나씩 해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 면에서 시인이 아이오와와 참 잘 어울린다는,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시인의 시와 산문을 읽었고, 시인의 근황을 늘 지켜보고있는 팬으로서 시인이 자신의 공간을 이제서야 잘 찾아갔다는 느낌도 들 정도였다. 일기와 편지는 시인의 또다른 정체성을 테니까.

아이오와는 40도다.(...) 아이오와는 너무 따뜻해서 죽어버릴 것 같다. 이것이 아이오와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다.(25쪽)

아마 나라도 최승자 시인의 일기를 전적으로 믿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따뜻해 죽어버릴 것 같은 아이오와를 나도 겪어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아이오와의 겨울은 너무 겁을 주니 싫고, 딱 40도의 저 온도에 있어보고 싶다는 마음. 정말 너무 따뜻해 죽어버릴 것 같을지, 나를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길을 걷다가 종종 놀란다. '왜 빨리 걷고 있지?' 그리고 생각한다. '달팽이처럼 걸어야지.' 풀밭을 가로지르며 휙휙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을 구경한다.(70쪽)
고시원에 살던 시절에 나는 작은 공간에서도 풍부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많은 것이 바뀌었고, 넓은 공간에 살다 보니 부엌도 없는 작은 호텔방이 갑갑하게 느껴질 거라 걱정했다. 예상과 달리 나는 여전히 별거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다.(138쪽)

달팽이처럼 걷는 시간, 작은 공간에서도 별거 없이 잘 살 수 있는 시인의 모습이 좋다. 천천히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을 하루하루 채워나가고 있는 듯해 지켜보는 마음이 편안하다. 어쩌면 이 글이 '일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일기란 과거의 이야기이다보니, 기억은 미화된다고 하지 않나. 현장감은 떨어질 수밖에. 그러다보니 더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시인님, 아이오와 광인 같아요...
나는 왜 편안함을 느끼는 걸까? 글쎄. 사실 난 줏대 없는 인간이다. 거절에 약하고, 갈등이나 싸움의 조짐이 보이면 회피하거나 도망가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강해지는 것 외의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안다. 어떤 따뜻한 곳에서는 내가 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호구처럼 살아도 된다는 걸 안다.(...)
나는 강해지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변하지 않기로 한다.(208-9쪽)

시인이 아이오와에서 했던 경험들이 모두 의미있었겠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스스로 자신을 인정했다는 점이었다. 어떤 것이 자신의 모습인지를 제대로 확인했다는 것, 지금까지의 나와 앞으로의 나에 대해 생각했다는 것. 그래서 나도 그러고 싶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이 일기를 읽어야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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