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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평점 :

꿀벌과 천둥 - 온다 리쿠
(현대문학)
음악이 흐르는 소설.
취재만 11년을 했다는 온다 리쿠의 음악 소설.
마치 피아니스트가 작업한 스토리인가 싶을 정도로 그 생생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끊임없이 귓가에 음악이 울려 퍼지는 것 같은 느낌...
혹 평소 클래식이 어렵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이 소설은 어렵게 느낄 필요가 없다.
음악을 알지 못한다 해도 음악의 이미지를 글로 전달하는 작가의 재능 덕분에
어떤 음악인지도 모르는데 귓가에 선율이 스치는 듯한 느낌이 계속된다.
음악의 신에게 사랑받는 자. 선택받은 자는 누구일까?
그야말로 재능있는 자들이 모여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국제 피아노 콩쿠르 무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경쟁의 압박과 초조함 속에서 어긋난 질투나 시기심을 보여주기 보다는
서로의 연주를 통한 자극과 영향으로 알을 깨고 나와 프로의 모습을 찾아가는 연주자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실제 일본에서 3년마다 치뤄지는 하마마쓰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의 일화를 모티브로 집필했다는 이 소설은
작가가 실제 권위있는 콩쿠르에 등장한 여러 실력파 연주자들의 연주를 보고, 취재한 덕분인지
콩쿠르 진행부터 음악적 표현까지 너무나도 생생했다.
세계적 명성이 있는 콩쿠르 무대. 그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긴장감이 전해졌는데
거기에 천재, 신동의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그들의 연주와 서로 다른 환경의 인물들의 연결 고리에서
그 긴장과 감동을 몇 배로 키웠던 것 같다.
단지 그들의 연주를 기막히게 묘사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음악을 통해, 연주를 통해 각 인물들 자체를 그려냈다.
피아노 연주에 꿈이 있었고, 실력도 있었지만 가족을 위해 꿈을 접고 악기점 직원으로 일하던 다카시마 아카시.
실력 뿐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이미지를 통해 스타성까지 갖춘 줄리아드 음악원의 비밀 병기 마사루 카를로스 레비 아나톨.
천재소녀로 불리며 콩쿠르를 휩쓸다가 어머니의 죽음 이후 무대를 떠났던 에이덴 아야.
그리고 유지 폰 호프만을 사사했다는 이유로 큰 이슈가 된 꿀벌 왕자 가자마 진.
그들의 이야기는 연주 뿐 아니라 삶 자체가 각각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기에 충분했으며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그들의 음악에 담겨 있었다.
"
나는 폭탄을 설치해두었다네.
"
"
그를 진정한 '기프트'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재앙'으로 삼을 것인지는 여러분, 아니, 우리에게 달려 있다.
"
(본문 중에서...)
과연 그 폭탄은 기프트일까 재앙일까?!
꿀벌왕자가 전달한 천둥같은 충격은 음악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심사위원, 피아니스트, 관객 할 것 없이 모두를 혼란에 혹은 환희에 빠뜨린 가자마 진.
그의 연주에 대한 이미지는 내게도 많은 생각을 가져다 주었다.
그 뿐 아니라 곳곳에 숨어있는 작곡가들의 특색과 클래식 음악의 현주소.
그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온다 리쿠의 이 소설에 빠져들게 했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소설이었지만 한시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고,
한 편의 거대한 드라마를 연이어 시청하는 느낌이었다.
가자마 진이 음악을 세상으로 데리고 나가겠다는 꿈을 꾸었다면
온다 리쿠는 선율을 글로 옮겨 세상에 펼쳐냈다.
어떠한 한 분야에 대해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글을 쓰기란 당연히 쉽지 않다.
하지만 온다 리쿠는 그 깊이를 제대로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타악기처럼 두드리는 듯한 연주를 선보인 바르톡의 음악적 특색부터
대표적 비루투오소의 한 사람인 리스트의 어마어마한 기교가 담긴 피아노 소나타 B단조의 해석은
그것이 사실적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작가가 갖고 있는 음악적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랑랑은 한 명으로 족하다. 똑같은 타입이 한 명 더 있어봤자 무슨 소용일까.'라는 본문 내용과
즉흥연주 대신 이미 작곡된 것을 연주하여 카덴차의 의미를 훼손하는 현실을 꼬집는 부분에서도
작가가 얼마만큼 클래식에 관심이 있으며, 얼마나 오랫동안 깊이있게 취재를 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한 작가의 노력에 필력이 더해져 끊임없이 소설 속에 빠져들게 했다.
이미 읽어낸 소설을 다시 읽는 취미는 없는데
온다 리쿠의 소설 꿀벌과 천둥은 아마도 내게 몇 번을 반복해서 읽히게 될 것이라 장담한다.
읽으면서 많이 행복했던 소설이다.
"
체험, 이것은 실로 체험이었다. 그의 음악은 곧 '체험'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