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살아보자 - 풀꽃 시인 나태주의 작고 소중한 발견들
나태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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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길을 잃은 사람. 자기가 찾아가는 곳도 못 찾고 끝내는 자기가 떠나온 집에도 돌아갈 수 없어 그냥 길바닥에 서 있는 사람. 결국은 버려진 사람. 어쩌면 미래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오래 아뜩하고 답답했다.

우리말에 생활이란 말이 있고 생존이란 말이 있다. 생활이란 활기차게 사는 삶이고 생존이란 겨우 사는 삶이다. 지금 우리의 삶이야말로 생활이 아닌 생존의 날들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 판단이 진위에 있는 게 아니라 호오에 있는 것 같다.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기 전에 나한테 좋은가 싫은가부터 따진다.

오늘날 우리는 너나없이 성급하다. 기다릴 줄 모르고 참을 줄 모르고 물러날 줄 모른다. 그러니 나날이 고달프고 지치고 답답한 것이다. 목전의 유익이나 편리보다는 보다 먼 날의 성공을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다.

올해 나의 나이는 만으로 77세. 늙은 사람 가운데서도 늙은 사람. 하지만 지금도 나는 새로운 책을 산다. <중략> 그냥 새로운 책을 사는 것이 기쁘다. 새로운 책을 방 안에 두고 함께 지내는 것 자체가 기쁨이다.

그래 살아보는 거다. 우선 1년을 살아보는 거다. 그러다 보면 더 많은 날들을 살 수 있겠지. 올해도 좋은 일, 나쁜 일, 힘든 일들이 있을 거야. 그렇지만 그런 일들과 함께 잘 살아보아야지.

예전 어른들도 아이들이 잘못한 일이 있을 때, 화가 날 때면 그 자리에서 손이나 몸으로 체벌하지 않고 가서 벽장 위에 있는 매를 가져오라고 말씀하시거나, 밖으로 나가 울타리 가에서 회초리 하나 꺾어 오라고 말씀하시었다. <중략> 매를 가져오거나 회초리를 꺾어 오는 동안 어른도 화를 삭이는 시간을 갖고 아이도 제 잘못을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 아닌가. 회초리를 꺾으러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어른은 충분히 그 아이의 뒷모습에서 안쓰러움과 측은함을 느끼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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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포터 2기 활동으로 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나태주 시인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풀꽃’이란 시를 먼저 떠올릴 것 같다. 나도 학교라는 드라마에서 이종석 배우가 풀꽃을 낭송하는 것을 보고 나태주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늘 중절모를 쓰고 다니는 노시인, 그것이 내가 알고 있던 나태주 시인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시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1960년, 고등학교 때부터 시인이 되기를 마음먹었고, 등단한지 50년이 넘은 시인. 첫사랑에 실패한 후 시인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있는 시인. 이 책을 읽으며, 50대와 60대에 삶의 전환전을 맞이했다는 시인의 말을 보고 나의 남은 삶도 기대를 갖게 되었다. 시간은 절대적인 양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생각도 했다. 느긋한 1년이 있어 삶이 지루한 순간도 있는 반면 정신없이 지나가는 1년도 있지 않은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마음만 조급해지는 데 1년의 시작인 1월에 이러한 책을 만나서 반갑다.

‘내가 이렇게 대단하고 이렇게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야.’라는 말 대신, ‘나는 나 외의 많은 너 덕분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고, 시는 듣는 사람이 알 수 있게 쓰여야 한다.’는 사람. 나도 이 책을 읽고 내가 감사를 전할 대상이 얼마나 있는지 손꼽아보았다. 감사할 사람이 많을수록 더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젊은이들이 이렇다 저렇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지 않고, ‘젊은이들의 시선은 매우 정확하고 분명합니다.’라고 말하는 시인. 월남전에 참전했음에도 전쟁의 참혹함보다 더불어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시인이 참 단단하고 겸손하고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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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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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포터2기 활동으로 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이 소설들을 쓰는 내내 무척 어렵고 괴롭고 부끄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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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동 이야기>>는 <<씨티픽션,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십니까?>>에서 조남주 작가님의 단편을 읽었다면 익숙한 단편이 실려있다. <봄날아빠를 아세요?>라는 이 단편은 서영동의 동아아파트를 매수한 '봄날아빠'라는 닉네임의 회원이 서영동 친목 까페에 올린 게시물로부터 시작된다. 아파트 값이 저평가되고 있다며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회원으로 몇 명의 인물이 거론된다. 재작년에 이사오고 새봄이 아빠인 용근씨, 역시 재작년에 이사오고 서영동 사교육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는 찬이 엄마, 입주자대표 안승복씨. 과연 봄날아빠는 누구일까?


<경고맨>이라는 단편은 서영동에서 제일 비싼 '노블엔'에 사는 유정의 이야기다. 남편집안에 돈이 많아 비싼 아파트에 사는 유정, 어느날 유정은 엄마에게 아빠가 서영동 아파트 중 하나인 우성아파트에서 경비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경비원인 아버지에게 창피함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는 유정, 복잡한 심경을 남편에게 이야기할 수 없다. 그는 어릴적부터 부유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유정의 마음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우성아파트 주민들로부터 온갖 갑질을 당한 아버지, 그리고 경비원 갑질 기사가 붙은 엘레베이터 안에서 우성아파트 주민들은 갑질 아파트와 주민들 기사를 보며 분노한다.


<샐리 엄마 은주>는 키즈클럽에 아이를 보낸 용근씨의 아내 은주 이야기다. 키즈클럽에 다니는 엄마들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 그리고 모임의 중심인 케이엄마가 누구인지 기억해 낸 은주. 단지 자료조사를 한 것만으로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디테일한 묘사와 감정들이 실려있는 소설이다. 작가의 말처럼 어렵고 괴롭고 부끄러운 이야기, 그렇지만 우리 모두 그 중에 한명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서 상당히 몰입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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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 세계적 지성이 전하는 나이듦의 새로운 태도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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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1948년생인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자 파스칼 브뤼크네르가 쓴 책이다. 이 책은 '포기, 자리, 루틴, 시간, 욕망, 사랑, 기회, 한계, 죽음, 영원'을 각각 주제로 하여 50세 이후의 중간 시기를 살펴 본다. 세계적 지성으로 손꼽힌다는 저자답게 풍부한 인용과 통찰을 보여주며, 책의 끝에 주가 따로 있어서 참고문헌과 자세한 내용을 더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어린 블로거, 인플루언서, 인스타그래머, 유튜버가 세계적 명성과 부를 얻는 세태라던지 미성숙한 어른들의 이야기까지,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인가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 잘 읽을 수 있었다. 중고생들이 쓰는 말을 알아두되 실제로 쓰는 것은 삼가야 한다는 재미있는 부분도 있다. 과거의 격언이나 'ㅇㅇ세엔 ㅇㅇ을 해야한다'와 같은 이야기들은 수명이 짧았던 시대의 이야기라서 현대엔 맞지 않다는 이야기에서 위안을 받았다.


젊을 때 자유를 위해 도전하고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나이가 되고나니 비우는 것보다 많아야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비울수록 행복해진다던데 물건이든 역할이든 많아져야 현실에 발을 붙인 느낌이 든다. 나이가 불확실성을 줄인다는 것은 결국 할 수 없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이지 않을까? 삶에 초연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지가 줄어들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은 나이가 들어도 욕망은 변하지 않고 그것이 이상한 현상은 아니라고 한다. 사회가 나이 든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 욕구를 참고 절제하는 것이지만, 이런 강요를 거부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올해 읽은 샤샤 세이건의 책처럼 이 책의 저자도 인생이 가진 유한함의 아름다움과 유한하기 때문에 더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불멸의 권태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필멸이 가진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아직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포용하기보다 내가 가질 것을 먼저 생각하고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서 이 책에서 배울점이 많았다. '만족하라'는 말과 '더 원하라'는 말이 양립할 수 없는 말인 것 같다 생각했으나,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양립할 수 있을 것 같다. 50대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나 30대부터 읽어두면 더 좋을 것 같고, 30대, 40대, 50대에 읽는 느낌과 생각이 다 다를 것 같아 다음에 다시 읽을 때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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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
송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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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2007년 한겨레에 입사해 올해 15년차를 맞이한 송경화 기자가 기자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16가지의 에피소드가 모여있는데, 반전이 있는 이야기도 있고, 눈물이 나는 이야기,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어 몰입해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이지만, '이게 정말 소설일까?' 싶은 이유는 실제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디테일이 곳곳에 묻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평소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면 에피소드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의 실제 사건이 어떤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다. 소설의 마무리를 떠올려 보니, 언젠가 속편이 나올 것 같다. 책 표지가 청소년 소설같이 산뜻하고 장강명 작가의 추천사 중 '재미있다. 시트콤,' 이라는 부분이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는데, 다 읽고 나니 도저히 시트콤으로 만들 수는 없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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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뒤엉켜 있었다. 울음소리는 표류하지 않았다. 정확히 내 고막에 꽂혀 들어오며 이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고 말해주었다. 이 광경이 우주 끝처럼 저 멀리 있는 것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프로답지 못하게 뭐 하는 거야? 취재에 집중해!" 김성혁의 성난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문밖으로 옮겼다.


"제가 왜 탈북을 해야 하나요? 우리 집은 평양이고, 우리 가족들은 모두 다 거기에 있고, 그곳이 저의 조국인데요? 왜 떠나야 한다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습네다. 아, 가난하고 살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 조국이 부귀하지 못해 먹고살기가 힘들다고는 하지만....... 그런데 남조선이라고 다들 살기 좋고 행복한가요? 그것도 아니라고들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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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내 일 - 일 잘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내 직업을 발견했을까?
이다혜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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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기자이자 팟캐스트 진행자이자 작가인 이다혜가 일곱명의 여성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의 인터뷰이인 영화감독 윤가은, 배구선수 양효진, 바리스타 전주연, 작가 정세랑, 경영인 엄윤미, 고인류학자 이상희, 범죄심리학자 이수정은 모두 꾸준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각각 다른 직업과 나이의 여성들이지만, 자신을 믿고,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한 후에는 노력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이다. 인터뷰어 이다혜의 사려깊은 질문과 감각적인 편집이 어우러진 멋진 책이다.


뉴스를 통해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되는 이 시기에, 이 책을 읽으며 참어른에 대해 생각해봤다. 감독하고 총괄하는 위치에 있으면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지시만 하기 쉬운데 안되는 건 안되는 일이라고 인정하고 자신의 몫에 대해 생각하는 어른은 얼마나 멋진가, 자녀에게 네가 하고픈대로 하라고 하면서 방치하지 않고 책임감을 보이는 모습은 또 얼마나 어른스러운가. 전주연 바리스타가 9년만에 코리아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는 한 문장을 읽고, 그 이면에 얼마나 많은 고단함과 소소한 기쁨이 있었을지 생각해 보았다. 인류가 없어진 후의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고인류학자 이상희의 말은 충격적이면서도 고개가 끄덕어졌다. 


서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특히 청소년이 주 대상인 책이지만, 일에 대한 고민이 많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만한 책이다. 학교에 다니거나 성인 자녀를 둔 부모가 읽어도 좋은 책 같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 내가 위인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후에 재평가되는 일들도 있고, 오래 전 사람들이라 지금은 롤모델로 삼기 어려운 면도 있는데, 이 책에서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의 커리어는 현재 진행중이라서 생동감이 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이들의 행보를 검색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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