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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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고독사 워크숍>>을 읽었을 때도 느꼈지만, 박지영 작가님의 글쓰기 소재는 독특하다. 이 책은 현재 시점에서 우식의 이야기와 과거 시점에서 조기준의 이야기가 교차되다가 만난다. 현재의 우식은 '조기준'이라는 사람의 휴먼북-책의 내용은 그 사람의 인생인-을 읽는다. 휴먼북 속 과거의 조기준은 1983년에 우연한 계기로 '안나'와 격리생활을 이어간다. 안나는 자신과 기준이 있는 안전가옥 밖은 전쟁상황이며 기준은 전쟁 바이러스에 걸려 다른 사람과 만나면 그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거짓말을 한다. 기준은 불안과 공포로 안나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기준은 안전가옥을 벗어나지만......


안전 가옥에서 기준의 격리생활은 무려 10년이나 이어진다. 마침내 모종의 사건을 겪은 후 사회에 나온 기준의 이야기가 나오며, 그동안 일방적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를 아는 제3의 인물이 등장하고 그간의 이야기는 다른 관점에서 재형성된다.


소설 속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모순된 마음-들키고 싶지 않지만 들키고 싶은 마음 등-이 자주 등장한다. 일부분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닌 이야기들, 어쩌면 진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각자의 시각에서 왜곡되고 변형된다. 어쩌면 이 혼란스러움은 현실의 이야기들과 꼭 닮았다. 작가님은 한동안 이 소설을 세상에 내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내놓았다. 이 소설을 보며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묘한 위로와 힘을 받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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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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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를 통해 시작된 양씨 가족의 이야기.


스쳐지나듯 본 글 중에 '이모는 성정이 온화하고 침착한데, 고모는 항상 화가 나 있다.'라는 글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글의 댓글에는 아빠의 남매인 고모와 엄마의 자매인 이모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각자의 이야기가 있었고, 그 이야기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같았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양주연님이 자신의 첫 번째 장편 영화인 <양양>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옮긴 이 책을 보고 나니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감독님은 대학 졸업을 앞둔 2015년에 술취한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처음으로 가족 중에 '고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모의 이름을 묻는 감독님에게 아버지는 양씨 집안의 여자들은 다 불행했으니 너는 고모처럼 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감독님은 고모에 대해 알기 위해 가족들 및 고모 동창들의 이야기, 사적이거나 공적인 기록들을 접하면서 점점 많은 의문에 휩싸이게 되고, 가족 내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여성이 받아야 했던 차별과 아픔에 대해 알게된다.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 있지만, '해마다 돌아오는 조상들의 제사는 음력 일자까지 철저히 기억하면서 온 가족이 모이는데, 고모의 죽음은 기일조차 모르는, 애도될 수 없는 죽음으로 머물러 있었다.'는 구절에 마음이 아팠다. 같은 곳에서 선물을 사오면서도 누나인 고모에게는 색이 적은 크레파스를 사다주고 남동생인 아버지에게는 색이 많은 크레파스를 사다준 할아버지, 공부를 잘했지만 성인이 되어도 고향을 떠날 수 없다는 사실에 의욕이 꺾인 고모의 모습, 항상 중앙에 찍혀 있는 아버지와 그 옆에 있는 고모의 사진을 보면서 감독님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가늠해보았다.


이 책에는 태어나면서 누군가가 지어준 이름에 '세상', '근원' 등의 뜻을 가진 한자를 쓰는 사람과 풀이름, '예절' 등의 뜻을 가진 한자를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자신의 이야기가 특별하지 않다며 주인공이 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가족 묘지에 묻히는 것이 허용되지 않은 사람, 사망 일시와 장소가 호주에 의해 사실과 다르게 신고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출생과 죽음, 한 사람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것조차 평등하지 않다는 이 이야기는 비단 과거의 이야기가 아님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현재의 이야기일지언정 미래의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더 많이 살펴보고 행동해야겠다.


<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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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몸으로 살기 - 나를 다듬고 타자와 공명하는 어른의 글쓰기
김진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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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배우고 익힌다는 뜻의 한자어다. 이중 '습'은 숙달하다, 길들이다와 같은 뜻으로 습관에서의 습도 이 글자다. 이 글의 제목에 있는 '쓰는 몸'은 허리를 곧게 하고 의자에 깊숙이 앉는 등의 바른 자세 또는 형태를 뜻하기보다 꾸준히 쓰기 위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에 가깝다. 작가와 언어학자이면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기도 한 저자는 4부에 걸쳐서 주제와 글감을 잡는 접근법, 글을 구성하고 나만의 문장을 뽑아내는 법, 내가 본 장면과 감각을 독자에게 전하기 위해 단련해야 하는 것, 쓴다는 것과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글을 쓸 때 적용해 볼 수 있는 기술(?)을 풍부하게 소개한다.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주제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가 있는데, 독자의 힘을 뺄 수 있으므로 되도록 자제해야 하고, 글을 쓰고 나서 불필요하게 택한 건 없는지, 표현하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 중요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자동적으로 적어내려가지 말고 그 감각이나 감정을 어떤 문장으로 만들지 고민해야 하고, 감정 자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절제하기 위해 '객관적 상관물'을 쓰면 독자의 마음에 오래 남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기존의 상식에 반하는 발견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쓰기의 기술뿐 아니라 마음가짐과 관련된 이야기도 종종 등장한다. 글쓰기란 쓰고 나서 쓰지 않은 것이 있고, 다시 쓰지 않은 것을 찾아 쓰고 나서도 여전히 다 쓰지 못한게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의 삶과 경험이 갖는 유일성이기 때문에 글로 기존의 도덕에 도전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만약 자신이 감수성이 부족하다면 느껴지지 않는 것을 억지로 느끼려고하는 것보다 몸을 움직여 행동하는 것이 감수성 향상에 꽤 괜찮은 방법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저자는 대학에서 '기록하는 인간: 호모 비블로스'라는 강의를 한다고 하는데, 이 수업에서는 대상 하나를 정해 책 1권 분량의 글을 쓰고 스스로 편집과 출판까지 해야 한다고 한다. 한 명이 자기의 글을 큰 소리로 읽고 다른 학생들이 이 글에 대해 피드백을 주는데, 각각의 반응 속에서 가르침과 배움이 동시에 이뤄진다고 한다. 수업 내용 중에 10분동안 공책 1쪽을 꽉 채우는 분량으로 '눈뜨고 10분간 뭐했는지'에 대해 쓰기도 있고, 다 쓰면 이보다 더 어마어마한 과제를 내주기도 한다고......


지나간 것에 미련이 남아서일지는 몰라도 이 책에 나온 대학생들은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다닐때 전공 수업 말고 재미있는 교양을 열심히 찾아볼 걸. 이런 아쉬움을 가진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단 두 명만 있어도 글을 쓰고 읽고 피드백을 하는 모임이 가능하다고 한다. 결국 의지의 문제다. 쓰는 몸이라는 것은 계속 쓰겠다는 결연함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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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피플 - 개정판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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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님의 등단작인 <<표백>>에 이어 2012년에 출간된 <<뤼미에르 피플>>의 개정판으로 13년만에 감각적인 표지와 함께 돌아왔다. 신촌에 위치한 뤼미에르 빌딩에 거주하는 생물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여 있다. 거주하는 생물-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은 인간뿐 아니라 반인반서도 있으며, 각 이야기의 중심 인물은 뤼미에르 빌딩의 거주자뿐 아니라 뤼미에르 빌딩 인근의 생물도 있다. 808호의 반인반서가 사는 지하 공간, 802호의 남자가 처한 상황, 805호와 807호의 이야기에 나오는 인간의 폭력성 등 묘사가 소름끼치게 세부적이어서 찝찝한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가 담겨있어 자칫 피로해 질 수 있었는데, 책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 순서대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다단을 나눠서 양쪽의 이야기를 각각 전개해 나가는 편도 있어 끝까지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이야기는 810호의 이현수 이야기. 과거와 현재가 각각 흘러가는듯 하다가 중첩되면서 마무리되는 흐름이 좋았다. 그리고 가장 희망적인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고...복잡한 감상을 떠나서 그 시절 신촌을 다시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과거와 분리된 현재, 피할 수 없고 속도를 조절할 수도 없는 미래가 너무 두려웠다.'


'언젠가는 그 오케스트라에 인간도 필요할 터였다. 인간은 반응이 다채로운 멋진 관객이고, 과거를 기록하는 유일한 동물이니까. 기록과 재생이 가능하다면 강물이 마르고 섬이 사라진 다음에도 음악은 영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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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미술사 - ‘정설’을 깨뜨리고 다시 읽는 그림 이야기
박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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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이미 만들어지거나 그려진 미술품을 보고 감상한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미술품과 관련한 여러 정보들을 접하게 되는데, 이러한 정보들은 미술품에 대한 흥미를 더해준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정보가 사실이 아니라면? 미술품은 단지 후대 사람들이 감상하기 위해 제작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예상보다 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면? 우리가 알고 있던 미술가가 범죄자라거나 알고 있던 제목이 사실과 다르다면 어떨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진 기존 지식과 다른 사실을 알게되어 배신감을 느끼거나 실망감을 느낀게 아니라 미술작품에 대한 더 큰 흥미를 느꼈다.


책에 글과 더불어 여러 자료가 나오는데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살바도르 달리가 개미핥기를 산책시키는 모습이었다. 비유 혹은 다른 동물을 개미핥기처럼 분장시킨 것이 아니라 진짜 개미핥기를, 그것도 외진 곳이 아니라 파리의 한복판에서 산책시키는 모습을 보고 예술가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뭉크의 '절규'라는 작품이 원래 '자연의 절규'라는 제목이라는 것을 알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절규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바뀌면서 절규하는 사람은 절규를 듣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되어서 좋았다.


미술작품을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위해 사용하고, 살인을 저지른 화가를 사면해주려고 한 권력자들의 이야기는 비단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닌거 같아 씁쓸하다. 한편, 과거의 그림을 현대 기술을 사용해서 분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그들의 열정을 볼 수 있어 좋았고, 과학의 발전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붓질을 언제한 것인지까지 분석할 수 있고, 그것 기꺼이 분석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니! 다양함이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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