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내가 원한 것
서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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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나 작가님은 이 책에서 여름이라는 시간을 묘사하는 것보다 여름의 상태로 산다는 것에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나에게 여름이란 건조함과 습기가 공존하는 계절이다. 글로 거리감을 유지할 때는 생명의 활기가 넘치고 모든 것이 선명한 계절이지만, 밖에 나가 조금이라도 걸으면 나의 활기는 곧 꺼질 것 같고, 날씨 어플의 현재 온도만이 선명하다.


이 에세이를 통해 알게 된 작가님은 책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의 아주 작은 부분에도 쉽게 반하고, 아주 오랜 시간 그 환상을 유지하는 귀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책 속에서 작가님은 사랑에 빠지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친 사람 같다. '그만큼 숱한 이별을 겪었으려나'라는 지점까지 생각이 닿으면 슬프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애틋했던 순간을 잘 떠올릴 수 있다니 정말 귀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책을 다 읽고나니 어떤 대상에게 마음을 열고 충분히 느꼈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책을 다 읽은 후 지나가는 여름이 아쉬워질까봐 애써 몸을 일으켜 저녁을 먹고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데, 한 무리의 아이들이 나무가 많은 곳에서 곤충을 잡고 있었다. 한동안 비가 쏟아져내리다가 다시 더워졌지만, 땀으로 머리가 젖을 정도는 아닌 저녁인데도 아이들의 머리는 흠뻑 젖어있었다. 보호자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퇴근을 한 후 공원으로 왔고, 아이들은 신이나서 잡은 곤충을 보호자에게 자랑했다. 아이들은 오늘도 공원에 모이고 오늘도 곤충을 자랑하려나? 내가 발견한 올해 여름은 반복과 새로운 즐거움이 공존하는 계절이다.


<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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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아신경외과 의사입니다 - 생사의 경계에 있는 아이들을 살리는 세계 최고 소아신경외과 의사 이야기
제이 웰론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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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어린이 수술은 어려운 일이다. 단지 해부학적으로 작아서, 아직 성장하는 과정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케이스의 부모 또는 양육자가 받는 스트레스가 손에 만져질 듯이 뚜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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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아주 정직한 책 제목에 나와있듯 소아신경외과 의사다. 다소 생소한 의학용어가 등장할 때도 있지만 큰 내용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저자 스스로 의학은 이야기로 가득하며 굳이 군더더기를 붙일 필요가 없다고 하는 만큼 많은 페이지 수에도 불구하고 중복되는 내용이 거의 없다. 저자는 아직 출생 전인 태아를 수술할 정도로 뛰어난 의술을 가진 의사인 동시에, 종양으로 가득한 뇌의 MRI영상을 찌그러진 손이 회색 뇌를 감싸 쥐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묘사하는 등 솜씨 좋은 작가이기도 하다.

인상 깊은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해 보면, 바이크 경기에서 뇌손상을 입은 자녀의 사례에서 환자를 응급실로 데려온 아버지의 바지에 회색 뇌질이 피, 머리카락, 흙, 풀과 함께 뒤섞여 있었다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환자인 자녀뿐 아니라 보호자가 어떤 심정이었을지에 대한 장면이 책 곳곳에 나온다. 사망한 환자의 보호자가 다른 과의 수술실에 무단으로 들어갔다가 경비원에게 끌려나가면서 "여기가 당신네들이 사람들 죽이는 곳이오?"라고 소리쳤다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트라이애슬론 경기를 하러 가다가 눈 앞에서 사고를 목격한 이야기를 보고, 통제되지 않은 환경에서 의사가 느끼는 심정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비슷한 책일거라 예상했으나, 많은 부분이 달랐다. 올리버 색스의 책이 신경학적 증상을 가진 환자들에 대한 내용이 주된 이야기라면, 이 책은 거기에 더해 저자 자신의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이 책의 저자인 제이 웰론스는 이 책을 쓴 큰 이유 중 하나가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가 보여준 은혜와 회복력이 우리 안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라고 한다.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는 점을 그가 만난 환자들과 그가 경험한 경이로운 순간들을 통해 전한다.

큰 실수를 하거나 환자를 잃었을 때 심상화 기법을 사용해서 안전지대를 설정한다던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상호 간에 치료적 이익을 얻는 장면은 정신적 외상 또는 이차적 외상 경험이 있는 독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다. 병원에 들어오기 불과 몇 시간 전 일상을 살고 있던 환자가 소아신경외과 의사인 자신을 만나고 수술을 통해 이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잘 느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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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일기
권남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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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스타벅스에서 다른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대체로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본 적은 없지만 간혹 어떤 관계인지 궁금한 사람들이 함께 앉아 있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번역가이자 에세이를 쓰는 작가인 권남희 님이 딸의 독립으로 '빈둥지증후군'을 겪으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다가 스타벅스 매장에서 작업을 하며 경험한 내용을 모아놓은 글이다. 책에는 친구의 남자친구를 욕하는 사람, 큰 소리로 육두문자를 날리며 통화하는 사람, 등산 모임의 구성원들, 아이돌의 영상을 보고 있는 딸과 어머니, 성인 만화책을 펴놓고 번역 작업을 하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스타벅스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노력과 위험(?)없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외로움,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다른 손님들, 어머니를 보살피는 것의 어려움이 곳곳에 담겨있지만 작가님 특유의 위트 넘치는 문장으로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겨울부터 봄까지 4부로 구성되어 있고 한 부에 15개 이상의 에피소드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그 날 마신 음료가 무엇인지, 맛이 어떠했는지 서두에 서술이 되어 있고-작가님이 맛을 풍부하게 표현하지 못해서 스타벅스 음료소개를 그대로 쓴 부분들도 있음-그 날 매장에서 겪은 일들이 쓰여있다. '일기'라는 제목에 걸맞게 분량이 그리 길지 않아 짜투리 시간에 틈틈이 읽을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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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 일기 쓰는 세 여자의 오늘을 자세히 사랑하는 법
천선란.윤혜은.윤소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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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1990년, 1993년, 1994년생인 저자들이 쓴 일기가 있고, 그 일기 후엔 세 저자들의 수다가 이어진다. 책 제목에서 엉망과 열심의 순서를 바꾸면 큰일이 난다고 위트 있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가족 혹은 일과 관련한 진지한 모습이 담겨있는 등 다양한 분위기와 무게를 가진 글들이 담겨있다. 어느 부분이든 세 저자의 티키타카가 조화를 이루며 글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최근에 직장에서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었는데, 지하철에서 할아버지의 욕을 에어팟 때문에 칭찬으로 듣고 엉뚱하게 반응한 에피소드, 난관에 처했을 때 자신을 게임이나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놓고 어떻게 이겨나가는지 거리를 두고보면 도움이 된다는 내용의 글이 정말 도움이 되었다. 책에 실리기는 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 자세히 쓰긴 어려운 천선란 작가님과 엄마의 케이크 에피소드를 읽으며 가족에게 느낄 수 밖에 없는 복잡한 감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도 했다.


팥빵 어플에서 '일기떨기'로 검색하면 생생한 육성으로 책에 실린 내용을 들을 수 있다. 일일히 대조해 본 것이 아니라 방송과 책 내용이 동일한지는 확실치 않다. 육성으로 들으니 생동감은 있는데 정리된 느낌보다 정말 함께 수다떠는 느낌이 들었고, 책으로 보니 혜은님과 소진님이 누군지 책날개를 계속 살펴야하는 번거로움이 약간 있었다. 천선란 작가님만 익숙한 내 탓이긴 하지만...이 책을 읽고 '작업책방 씀'을 가고 싶은 곳 리스트에 추가해뒀고, 유튜브 구독도 눌렀으니 다음에 읽었을 때는 변별이 확실히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을 기록해 둔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는 인간에 대한 편견이자 정의다. 나는 인간이 상상하고 꿈꿀 수 있기에 외롭다고 믿는다. 상상과 현실에는 간극이 있고, 그 간극 속에서 우리는 공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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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연금책 - 놀랍도록 허술한 연금 제도 고쳐쓰기
김태일 지음, 고려대학교 고령사회연구원 기획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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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얼마 전 은행에서 전화를 받았다. "고객님 퇴직연금에 디폴트 옵션이 적용되어서 확인하셔야 해요." 바쁘다고 전화를 끊은 후 인터넷에서 확인해 보니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급여형 퇴직연금 등등 모르는 용어가 속출한다. 대략 요약해보면, 내가 전에 있던 회사에서 퇴직할 때 퇴직금을 현금 지급하는 대신 연금상품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지급했고, 그게 은행에 의해서 계속 투자?되고 있다가 이번에 디폴트 옵션이라는 게 적용되어서 상품을 직접 선택해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장래에 받아야 할 연금인데도 너무 복잡하고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아 다 귀찮다고 느껴질 때 서평을 위해 제공받은 책이 바로 이 <불편한 연금책>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국민연금은 2040년 경까지는 적립금이 쌓이지만 이후 급격히 줄어서 2050년대 중반이면 모두 소진이 된다고 한다. "연금은 낸 만큼도 못 받는다."는 이야기와 달리 국민연금은 내는 것보다 많이 받는 구조여서 지속 가능성이 결여되어 있고 시간이 갈수록 미래 세대의 부담이 높아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한다. 현재 보험료 인상을 반대하는 젊은 세대가 많지만 하루빨리 인상을 해야 젊은 세대가 보는 손해가 적다고 한다. 


처음에 책을 읽었을 때는 현행 연금 제도를 설명하고 실태 조사를 제시하는 수준의 책일 것이라 생각했으나,  연금 전문가인 저자가 국내 연금 제도를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외국의 사례를 소개하고,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의 책이다. 현재 기초연금은 모든 노인이 받는 것이 아니라 소득인정액을 기준으로 약 70%가 수급자로 선정된다고 하는데, 저자는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는 것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70%에게 지급할 바에야 차라리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노후 소득 보장 강화 없이 보험료율만 인상하는 것은 국민 정서 상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연금 개혁은 보험료율 인상과 함께 가입 기간을 확충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한다. 가입 기간을 확충하기 위해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가입 상한 연령을 높이고, 군 복무 기간 전체를 인정해주고, 출산 크레딧을 확대하는 등의 방안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출산과 육아에 따른 직업 유지의 어려움으로 평균 가입 기간이 남성보다 10년 정도 적다고 한다. 즉, 국민연금에는 성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여성 뿐 아니라 수급에 필요한 최소 가입 연수가 10년이기 때문에 정규직 유지가 어려운 저소득층 사람들은 배제되기 쉽다고 한다. 


흔히 연금 개혁은 규모가 크고 이해관계가 단단히 뿌리내린 탓에 개혁이 쉽지 않아 '코끼리 옮기기'에 비유되지만, 국민연금의 재정적 지속 가능성 제고를 위해 보험료율을 매년 조금씩 올리고 이것만으로 안되면 일반 재정 투입도 사회보장세 신설의 방법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기금 운용을 적극적으로 해서 수익률을 높일 필요도 있다고 한다. 


언뜻보면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들을 저자는 각종 도표와 반복을 통해 쉽게 설명하려 노력한다. 이 책을 읽고나서 연금 전문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어디 가서 연금 이야기를 할 때 소외되지 않고 능숙하게 이야기를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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