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미술사 - ‘정설’을 깨뜨리고 다시 읽는 그림 이야기
박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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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이미 만들어지거나 그려진 미술품을 보고 감상한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미술품과 관련한 여러 정보들을 접하게 되는데, 이러한 정보들은 미술품에 대한 흥미를 더해준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정보가 사실이 아니라면? 미술품은 단지 후대 사람들이 감상하기 위해 제작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예상보다 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면? 우리가 알고 있던 미술가가 범죄자라거나 알고 있던 제목이 사실과 다르다면 어떨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진 기존 지식과 다른 사실을 알게되어 배신감을 느끼거나 실망감을 느낀게 아니라 미술작품에 대한 더 큰 흥미를 느꼈다.


책에 글과 더불어 여러 자료가 나오는데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살바도르 달리가 개미핥기를 산책시키는 모습이었다. 비유 혹은 다른 동물을 개미핥기처럼 분장시킨 것이 아니라 진짜 개미핥기를, 그것도 외진 곳이 아니라 파리의 한복판에서 산책시키는 모습을 보고 예술가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뭉크의 '절규'라는 작품이 원래 '자연의 절규'라는 제목이라는 것을 알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절규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바뀌면서 절규하는 사람은 절규를 듣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되어서 좋았다.


미술작품을 자신의 정치적 이미지를 위해 사용하고, 살인을 저지른 화가를 사면해주려고 한 권력자들의 이야기는 비단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닌거 같아 씁쓸하다. 한편, 과거의 그림을 현대 기술을 사용해서 분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그들의 열정을 볼 수 있어 좋았고, 과학의 발전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붓질을 언제한 것인지까지 분석할 수 있고, 그것 기꺼이 분석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니! 다양함이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다.


<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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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세계 세계의 검찰 - 23개 질문으로 읽는 검찰 상식과 개혁의 길
박용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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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세계 각국의 검찰과 우리나라의 검찰이 어떻게 다른지 소개하고 있다. 미국은 검찰이 연방 검찰, 주검찰, 지방검찰로 되어 있고, 대배심 제도가 있어서 시민도 기소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 선거로 검사를 뽑는 제도가 있으며, 선출의 단점은 검사들이 여론의 주목을 받는 사건에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고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데 집착하는 점이 있다고 한다. 일본은 시민으로 구성된 검찰심사회가 있어서 불기소 처분이 타당한지 심사를 요청할 수 있다고 하며, 프랑스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가지고 있지만, 예심판사가 있어 기소를 할 때 협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영국은 경찰이 수사, 검찰이 기소와 공소유지를 전담하고 있고, 독일의 경우는 객관 의무에 의해 검찰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도 조사해서 제출하는 것이 의무라고 한다. 세계의 검찰 중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기관은 우리나라 검찰이 유일하다고 한다.

 

2부는 우리나라 검찰이 어떻게 정치 검찰이 되었는지 살펴본다. 검사동일체의 개념,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등 여러 정치적 개념을 톺아보고, 어떻게 검찰이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한 권력을 가진 기관이 되었는지 알려준다. 3부는 외국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검찰을 어떻게 개혁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재 정부는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는 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저자는 검찰 개혁을 넘어 사법 개혁을 주장한다.

 

많은 국민들의 눈이 검찰과 사법부를 주목하고 있는 지금 읽기 좋은 책이다. 한 권의 책에 많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 그럼에도 편집이 깔끔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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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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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이야기가 많지만 우선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소설은 재미있다. 그것도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다. 은행의 대출심사역인 장이 납치를 당하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직장의 파벌 싸움, 친구와의 기억 그리고 삶과 죽음이라는 실존적인 문제, 노동자의 착취 그리고 영문도 모른채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인들로 대표되는 사회 문제, 불륜(사실 아니다)까지 많은 사건들이 쉴 새 없이 몰아친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건들과 함께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보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말뚝이라는 초자연적인 사물까지 등장하면서 소설은 점점 흥미진진해진다.


이 소설에는 많은 독자들이 한국 소설을 읽는데 망설이게 만드는 여러가지 요소 중 두 가지가 없다. 하나는 이야기에 필요하지 않고 불쾌감만 주는 성적(sexual)인 묘사와 내용이 없다. 다른 하나는 자기 연민을 비롯한 감정 과잉이 없다. 많은 이야기가 동시에 전개되는데 깔끔하다.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좋은 작가를 한 명 더 알게 되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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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내가 원한 것
서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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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나 작가님은 이 책에서 여름이라는 시간을 묘사하는 것보다 여름의 상태로 산다는 것에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나에게 여름이란 건조함과 습기가 공존하는 계절이다. 글로 거리감을 유지할 때는 생명의 활기가 넘치고 모든 것이 선명한 계절이지만, 밖에 나가 조금이라도 걸으면 나의 활기는 곧 꺼질 것 같고, 날씨 어플의 현재 온도만이 선명하다.


이 에세이를 통해 알게 된 작가님은 책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의 아주 작은 부분에도 쉽게 반하고, 아주 오랜 시간 그 환상을 유지하는 귀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책 속에서 작가님은 사랑에 빠지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친 사람 같다. '그만큼 숱한 이별을 겪었으려나'라는 지점까지 생각이 닿으면 슬프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애틋했던 순간을 잘 떠올릴 수 있다니 정말 귀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책을 다 읽고나니 어떤 대상에게 마음을 열고 충분히 느꼈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책을 다 읽은 후 지나가는 여름이 아쉬워질까봐 애써 몸을 일으켜 저녁을 먹고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데, 한 무리의 아이들이 나무가 많은 곳에서 곤충을 잡고 있었다. 한동안 비가 쏟아져내리다가 다시 더워졌지만, 땀으로 머리가 젖을 정도는 아닌 저녁인데도 아이들의 머리는 흠뻑 젖어있었다. 보호자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퇴근을 한 후 공원으로 왔고, 아이들은 신이나서 잡은 곤충을 보호자에게 자랑했다. 아이들은 오늘도 공원에 모이고 오늘도 곤충을 자랑하려나? 내가 발견한 올해 여름은 반복과 새로운 즐거움이 공존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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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아신경외과 의사입니다 - 생사의 경계에 있는 아이들을 살리는 세계 최고 소아신경외과 의사 이야기
제이 웰론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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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작성을 위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 수술은 어려운 일이다. 단지 해부학적으로 작아서, 아직 성장하는 과정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케이스의 부모 또는 양육자가 받는 스트레스가 손에 만져질 듯이 뚜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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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아주 정직한 책 제목에 나와있듯 소아신경외과 의사다. 다소 생소한 의학용어가 등장할 때도 있지만 큰 내용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저자 스스로 의학은 이야기로 가득하며 굳이 군더더기를 붙일 필요가 없다고 하는 만큼 많은 페이지 수에도 불구하고 중복되는 내용이 거의 없다. 저자는 아직 출생 전인 태아를 수술할 정도로 뛰어난 의술을 가진 의사인 동시에, 종양으로 가득한 뇌의 MRI영상을 찌그러진 손이 회색 뇌를 감싸 쥐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묘사하는 등 솜씨 좋은 작가이기도 하다.

인상 깊은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해 보면, 바이크 경기에서 뇌손상을 입은 자녀의 사례에서 환자를 응급실로 데려온 아버지의 바지에 회색 뇌질이 피, 머리카락, 흙, 풀과 함께 뒤섞여 있었다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환자인 자녀뿐 아니라 보호자가 어떤 심정이었을지에 대한 장면이 책 곳곳에 나온다. 사망한 환자의 보호자가 다른 과의 수술실에 무단으로 들어갔다가 경비원에게 끌려나가면서 "여기가 당신네들이 사람들 죽이는 곳이오?"라고 소리쳤다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트라이애슬론 경기를 하러 가다가 눈 앞에서 사고를 목격한 이야기를 보고, 통제되지 않은 환경에서 의사가 느끼는 심정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비슷한 책일거라 예상했으나, 많은 부분이 달랐다. 올리버 색스의 책이 신경학적 증상을 가진 환자들에 대한 내용이 주된 이야기라면, 이 책은 거기에 더해 저자 자신의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이 책의 저자인 제이 웰론스는 이 책을 쓴 큰 이유 중 하나가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가 보여준 은혜와 회복력이 우리 안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라고 한다.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는 점을 그가 만난 환자들과 그가 경험한 경이로운 순간들을 통해 전한다.

큰 실수를 하거나 환자를 잃었을 때 심상화 기법을 사용해서 안전지대를 설정한다던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상호 간에 치료적 이익을 얻는 장면은 정신적 외상 또는 이차적 외상 경험이 있는 독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다. 병원에 들어오기 불과 몇 시간 전 일상을 살고 있던 환자가 소아신경외과 의사인 자신을 만나고 수술을 통해 이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잘 느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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