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미래 - 인간은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가
미치오 가쿠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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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 관한 책이 꽤 인기입니다. KAIST 김대식 교수는 한 일간지에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를 연재중이며 그 중 일부를 묶어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를 출간하기도 했고, 역시 KAIST 교수 세 명의 강의를 묶은 <1.4킬로그램의 우주, >라는 책은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가 선정한 2014 올해의 과학도서 10권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이 책 역시 뇌와 관련된 책입니다. 끈 이론, 평행우주론의 창시자이자 뉴욕시립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인 저자 미치오 카쿠는 인간의 마음과 뇌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500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이 책은 1부에서 뇌과학의 역사와 다양한 장비들의 기능과 작동원리를 설명하고, 인간의 의식이 무엇인지 짚어 봅니다. 2부에서는 기억을 저장하고, 생각을 읽고, 꿈을 촬영하고, 마음으로 물체를 움직이는 기술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책의 절반 가까운 분량을 책임지는 3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의식, 두뇌 관련 질환과 전망,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추진하는 뇌 프로젝트 등을 다룹니다.

 


저자는 자연에 존재하는 가장 큰 미스터리 두 가지로 '우주''인간의 정신'을 꼽으며 책을 시작합니다. 둘 다 과거에 비해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상당 부분이 미지로 남아 있다는 점 외에 옛날에는 우주와 정신 모두 미신과 마술의 대상이었다는 점,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심심치 않게 쓰인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이 순간 제 뇌는 '인터스텔라(우주)''트랜센던스(인간의 정신)'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4년 말에 김대식 교수의 강연을 들은 바 있어 뇌과학의 역사를 다룬 부분은 약간이나마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는데요, 그 강의 PT 첫 화면이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가 쇠막대를 들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피니어스 게이지는 쇠막대가 머리를 관통하는 사고를 당했던 인물로, 당사자에겐 불행한 일이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과학자들은 인간의 두뇌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1부도 피니어스 게이지 사례를 소개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저자가 이론물리학자인만큼 이 책의 목적은 신경과학을 물리학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뇌과학과 관련한 기술적인 면을 살펴보는데요, MRI는 생체조직을 손상 없이 통과하는 전자기파를 이용한 장치입니다. 1990년대 중반에 기능성 MRI(fMRI)'가 개발되면서 뇌를 촬영하는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했고 현재까지 꾸준히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MRI를 거짓말탐지기로 활용하기도 하는데, 일부 연구에 의하면 신뢰도가 95%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뇌전도(EGG) 스캐너도 두뇌의 내부를 탐사하는 장비 중 하나입니다. EGG는 사용이 편리하고 값이 싸서, 머리에 EEG 센서를 부착하고 뇌파를 측정하는 실험은 고등학생도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다고 합니다. 아래 영상을 630초 부분부터 재생하시면 EGG를 활용해서 실시간으로 뇌파를 읽는 장면이 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뇌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두뇌모형의 역사 또한 변화를 거칩니다. 뇌 속에 살면서 모든 결정을 내리는 작은 인간을 뜻하는 호문쿨루스 모형, 바퀴와 기어로 이루어진 시계 같은 기계장치라는 모형, 증기기관 두뇌 모형, 전화교환기와 비슷한 두뇌 모형, 컴퓨터에 기초한 두뇌모형을 거쳐 현재는 수입억 개의 컴퓨터를 하나로 연결한 인터넷 모형까지 등장한 상태입니다. 저자는 이에 더해 주식회사 모형으로 뇌의 작동 구조를 설명하는데요, 뇌는 아직도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는 만큼 틀린 부분 없이 설명이 가능한 모형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2부에서는 텔레파시, 염력, 기억, 지능과 관련한 신경과학 기술을 다룹니다. 텔레파시나 염력은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텔레파시는 전 세계 대학에서 중요한 연구과제로 떠오르고 있고, 앞으로는 마우스와 음성인식장치가 사라지고, 사람과 컴퓨터가 정신적으로 교류하게 될 거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최근 한 타이어제조사의 광고 '생각만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센서와 컴퓨터가 유선으로 연결되긴 했지만, 텔레파시와 같이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 유사한 이미지를 표시하기도 하고 전신이 마비된 환자가 생각하는 단어를 파악하는 기술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최근 개최된 무역박람회에서는 오스트리아의 회사에서 EEG(뇌전도)를 이용한 문자입력기를 선보였다고 하는데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언젠가는 속마음을 숨길 수 없는 시대가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현재도 방법은 있습니다. 금속막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으면 생각이 외부로 노출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엑스맨에 나오는 매그니토처럼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죠. 기술적인 발전과 더불어 도덕적, 윤리적, 법률적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초능력의 하나로 여겨지는 염력도 다르지 않습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뇌파감지 센서헬멧을 쓰고 생각만으로 로봇발을 작동시켜 개막식 시축을 했습니다. 그리고 워싱턴대학에서는 2013년에 인간의 뇌-뇌 통신을 구현해서 한사람의 뇌에서 발생한 신호를 다른 사람의 뇌로 전송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언젠가 전 세계 사람들이 '마음'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기억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철학적인 문제를 많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헨리 구스타프 몰레이슨(이하 HM) 이라는 간질병 환자는 수술 도중 해마 일부가 제거된 후 증세가 완화되었지만, 새로운 기억을 머릿속에 담아둘 수 없는 부작용이 생깁니다. 과거의 기억은 남아 있지만 새로 입력된 기억은 저장되지 않고 곧 사라집니다. HM은 매일 아침마다 수술을 받은 25살 때의 얼굴과 다른 얼굴을 보며 크게 놀라지만, 곧 놀랐다는 기억도 사라집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는 진정한 일까요? 영화 토탈리콜에는 인공적인 기억을 주입시키는 회사가 나옵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경험을 진짜 기억이라 생각하고 살아가는 는 진정한 일까요?

 


영화 <매트릭스>에는 머리 뒤에 전극을 꽂고 다양한 능력을 다운로드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미국에서는 디지털 데이터를 인공해마에 다운로드하여 기억을 되살리는 연구를 진행 중인데, 이 연구의 후원자는 기억을 인공적으로 주입하여 개인의 능력을 향상하는 것은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인공해마 기술이 완성된다면 뇌졸중과 치매, 알츠하이머 등 해마의 기능장애로 발생하는 질병을 치료하는데 분명 도움이 되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자녀들의 학업성적을 키우고 싶은 학부모들의 인기 상품이 될 것 같기도 하구요.

 

저자는 또한 미래에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수시로 저장하여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기록을 남기는 영혼도서관을 언급하며 그 기록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의 가치를 거론하기도 합니다. 2000년대 초반 한 카메라 광고에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카피가 생각나는 대목이기도 한데요, 인간의 기억이 모두 기록으로 남는 게 인간적인 측면에서 과연 좋기만 한 일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기억의 왜곡으로 발생하는 갈등이나 실수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영화 <빅 피쉬>처럼 약간은 부풀린 기억이 때로는 비할 바 없는 행복을 주기도 하니까요.

 

저자는 이어서 '천재성은 학습될 수 있는가?', '지능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우리도 서번트가 될 수 있을까?', '지능의 기원은 대체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통해 지능에 대해 분석합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서번트들의 뛰어난 능력은 뇌의 어떤 기능이 뛰어나서 생긴 능력이 아니라 '잊는 능력의 결핍'에 따른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인간의 뇌는 성인이 된 후에도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할 때마다 수시로 변하며, 학습을 통해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능'에 대한 부분은 앞서 소개된 '기억' 관련 내용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의 절반 가까이 할애된 3부에서는 인간의 다양한 의식을 먼저 다룹니다. 꿈을 스캔하고, 영화 <인셉션>처럼 다른 사람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방법 등 꿈에 대한 연구를 소개한 후, 다른 사람의 꿈을 바꿀 수 있다면 생각까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마음을 조종하는 연구를 소개합니다. 제시된 사례 중 MK-Ultra는 제가 즐겨듣는 Muse의 노래 제목이기도 해서 발표 당시 어떤 목적의 실험인지 찾아보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됐습니다.

 

이어서 정신질환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무엇보다 '균형'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저자는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는 피드백회로들이 서로 경쟁하다가 미묘한 균형이 무너졌을 때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뇌와 관련한 연구, 특히 앞에서 등장한 기억이나 지능과 관련한 연구가 자연적인 것을 거스르면서 미묘하게 균형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이 외에도 인공지능, 감정과 자아의식이 있는 로봇을 다룬 내용은 영화 <아이로봇>, 육체 없는 의식을 다룬 부분은 영화 <서로게이트>를 연상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저는 장기적으로 볼 때 뇌과학은 세계경제와 현대문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합니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대규모 프로젝트도 그런 이유에서겠죠.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만으로도 참 대단하고, 분명 뇌 질환 치료 등에 기여한 바도 큽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뇌가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다보면 뇌를 해킹할 수도 있고, 지금은 예상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길수도 있겠죠. 물리학자의 시각에서 쓰인 책이고 아무래도 저자는 기술의 긍정적 측면에 더 많은 점수를 주는 것 같지만 중간 중간 부작용, 법적 문제, 윤리적 문제를 거론합니다. 어쩌면 가장 중점적으로 읽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맺음말 부분도 마찬가지구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한 가지 더 우려되는 부분은 뇌와 관련된 실험의 많은 부분이 동물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건 크나큰 윤리적 문제를 나을 것이고, 동물을 대상으로 무분별한 실험을 하는 것도 사실 문제입니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유전적으로 인간과 비슷한 동물을 대상으로 부작용이 없던 실험 결과가 나온다 해도, 인간을 대상으로 해서는 엄청난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 <가면을 쓴 과학 동물실험> 등의 책들에서 동물실험의 문제점이 많이 제기되기도 했죠.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뇌와 마음을 탐험하기 위한 기술과 발전방향, 생각해 볼 문제를 두루 살필 수 있어 추천할만한 교양도서이자 다른 분들과 생각을 나누기에도 좋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두께와 주제에 비해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책이기도 하구요. 다가올 미래를 위해 미리 지적인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이 책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영화를 예로 들며 설명하는 부분이 많이 있는데요, 새삼 뇌와 연관된 영화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SF영화나 사이언스 픽션에 관심 있는 분들은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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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럽 나의 편력 - 젊은 날 내 영혼의 거장들
이광주 지음 / 한길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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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이야기를 들으며 기사에 대한 로망을 가졌고, 중세 유럽에 대한 묘한 끌림으로 유럽여행에선 건물만 보고 다녀도 즐거웠습니다. 유럽을 더 알고 싶어 <중세유럽산책/한길사> <중세는 정말 암흑기였나/살림> <도시와 인간/책과함께> 등 책도 읽어봤지만 유럽을 이해하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언젠가 꼭 읽겠다는 마음으로 <유럽의 형성/한길사>도 책장에 고이 모셔뒀죠.

 


얼마 전 이광주 교수의 <담론의 탄생/한길사>을 읽었는데, 같은 시기에 출간된 이 책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두 책이 가진 공통점은 저자가 같고, 유럽에 대한 저자의 사랑이 느껴진다는 점. 반대로 <담론의 탄생>에 비해 <나의 유럽 나의 편력>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은 2005년에 출간된 <내 젊은 날의 마에스트로 편력>에 역사가 마이네케와 여배우 디트리히를 더한 개정증보판으로, 저자가 괴테에 이끌려 독일 지성사를 연구하기로 마음먹은 이후 때로는 저자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마에스트로이자 때로는 독서의 즐거움을 준 스승 열네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다보니 유럽을 여행하는 것만 좋아했지 역시나 지적인 앎은 극히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네명 중 모르는 인물도 많고, 에라스뮈스하면 곧 우신예찬, 몽테뉴하면 곧 수상록, 이렇게 단편적인 지식만 떠오르는 수준이었다고 할까요?

 


저자는 첫번째 거장으로 15세기 이탈리아의 수도사인 아벨라르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저자의 책 <담론의 탄생>에 이어 역시 담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벨라르에게 중세 르네상스의 가장 빛나는 인물이라는 큰 명성을 안겨준 것은 바로 비할 바 없는 담론의 정신이었다. 담론하는 아벨라르의 논리에는 이단도 정통도 없었다. 그러한 신념을 갖고 아벨라르는 시도 때도 없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담론하고 논쟁하였다." (70p)

 

몽테뉴도 마찬가지입니다.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우리의 정신을 단련하는 가장 유효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담론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담론하는 것이 인생의 다른 어떠한 행위보다도 유쾌하다."고 말합니다.

 

이와 함께 "몽테뉴는 인간을 일관되게 신뢰하고 모든 사상(事象)을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관찰하였으며 자신에게 불어닥친 시대의 종파적이데올로기적 분열을 초월하였다."는 부분도 눈에 띕니다. 이런 점은 아벨라르에게서도 찾을 수 있고, 에라스뮈스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에라스뮈스와 같은 시대를 산 루터는 에라스뮈스를 애매주의의 왕이라 비꼬기도 했지만요.

 

"권력과 지위 그리고 그에 따라다니는 의무와 책임에 초연하여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 위치, 그러면서도 세상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비판의 펜을 놓지 않았던 지성과 교양, 그것이 바로 휴머니스트 에라스뮈스의 삶의 본질이었으며..." (96p)

 


얼마 전 읽은 책에서 고전을 대할 때는 저자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물론 고전은 시대를 초월한 작품이지만 저자의 사상과 시대상이 담기기 마련이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고전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저자들에 대해, 그리고 저서들이 나온 배경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 의미가 있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조금이나마'라는 건 제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지식에 기반해서 '조금'이라는 겁니다. 독자에 따라 얼마든지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을겁니다.

 

괴테 내용을 조금 살펴 볼까요?

파우스트 말미에 나오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은/우리를 끌어 올린다"는 부분은 괴테가 사랑과 숭배의 정념을 바친 슈타인 부인과의 만남과 연관되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진하는 자를 우리는 구제할 수 있다."는 부분은 귀족사회를 향한 시민 괴테의 자부심과 자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괴테는 한평생 자연에 대해 경외의 마음을 지녔다고 하는데, 파우스트는 자연과 그 질서에 대한 괴테의 신앙고백으로 가득차 있다고 합니다.

 

이미 눈치 채셨을수도 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열네명의 거장은 시대순으로 소개되고 있고, 각 거장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시기에 교집합이 있습니다. , 거장 개개인에 대한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유럽의 역사적 흐름까지 살필 수 있게 쓰인 책입니다.

 

그러다보니 앞에 소개된 거장과 연이은 거장의 공통적이면서 약간 차이 나는 부분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져 이해의 폭을 넓혀줍니다. 예를 들면 하위징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그런데 이 고전적인 문화주의자(부르크하르트)에게도 문화는 결코 국가나 종교의 상위 개념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바로 이 점이 하위징아의 문화관과 다른 점이다. 두 특출난 문화사가에게서 나타나는 그러한 차이점은 부르크하르트가 유럽 문명에서 아직도 국가나 종교가 주요한 ''으로 행세한 19세기를 살았던 데 반해, 하위징아는 이미 그것들이 내리막을 걷고 있었던 세기말을 살았다는 점과 관련이 없지 않다고 할 것이다."라는 비교를 통해 앞선 시대를 살아간 부르크하르트와 하위징아를 비교합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조금 더 친숙한 거장들이 등장합니다. 열한번째로 소개되는 모리스는 이광주 교수의 책인 <아름다운 책 이야기>를 읽으신 분이라면 더욱 친숙할텐데요, 무엇보다 한길책박물관에 걸작 <제프리 초서 작품집>이 전시되어 있다는 내용은 애서가들이라면 무척 흥미로운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길책박물관에 가시면 커피 한잔 가격으로(입장료) 윌리엄 모리스의 작품 외에도 구스타프 도레의 작품집과 윌리엄 터너의 풍경화집도 있으니 방문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클림트, 디트리히에 이어 저자는 마지막 거장으로 베토벤을 소개합니다. 지금까지 시대순으로 거장을 소개한 것과는 다른 순서죠.

 

"베토벤. 갖가지 시련을 꿰뚫고 천상의 울림을 전 인류에게 베푼 천재. 그는 또한 근대적 자아의 상징이었다."

 

베토벤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보상받고 숭고한 것이 외면당하는 세계에 절망하고, 내면의 고독을 향합니다. 오직 자신의 내면 소리에만 귀 기울이는 음악가, 그의 음악은 사람들을 내적 긴장과 갈등으로부터 방면해주지 않으며 이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베토벤론이 그치지 않는 이유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책을 소개하면, 아이패드 미니 사이즈(두껍긴 해도)의 아담한 책이지만 담긴 내용은 결코 미니가 아닌 책이랄까요? 독자의 사전지식에 따라 느낌은 많이 달라지겠지만요.

 

사실 얼마 전에 만난 분께 롤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쉽게 답할 수 없었습니다. 저자가 책에 담아낸 거장들은 저자의 지적 편력을 넘어 삶의 도정에서 큰 자리를 차지했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 격동의 난세 속에서도 어떠한 명분이나 교리, 이데올로기에 의해서도 흔들림이 없었던 자유로운 정신, 지성교양인이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합니다.

 

제 영혼의 거장은 누구일까요. 물론 저자는 저자대로, 저는 저대로,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테고 반드시 유명인일 필요는 없지만 나만의 고전, 나만의 거장을 간직하고 사는 건 의미가 있겠죠. 물론 그러려면 제게도 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편력을 더 거친 후에 이 책도 한 번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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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 - 카이스트 윤태성 교수가 말하는 나를 위한 다섯 가지 용기
윤태성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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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서 나 스스로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가장 믿어주는 사람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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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수업 천양희 : 첫 물음 작가수업 1
천양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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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인간이 만든 가장 훌륭한 발명품인 것 같다. 한 권의 책으로부터 한 사람, 나아가 시대와 인간을 읽는 것이다. 책 중에서도 고전(古典)은 책의 에베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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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게임 - 어떻게 최소의 위험과 비용으로 목적을 이룰 것인가?
다리오 마에스트리피에리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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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럴만하죠. 몸 크기에 비해 월등히 큰 뇌를 바탕으로 한 언어능력, 창조능력, 이제껏 인간이 구축해 온 문명을 생각하면 만물의 영장이라 할 만 합니다.


그럼 인간의 감정과 행동 체계도 다른 동물에 비해 월등히 뛰어날까요? 이 책은 'No!'라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례에서 인간의 행동과 다른 영장류의 행동 비교를 통해 그 유사점을 발견하고 새로운 이론을 제시합니다. 인간이 벌이는 많은 사회적 행동들이 다른 영장류 동물 사회에서도 발견되며, 이는 곧 인간과 다른 영장류들이 공동조상에서 물려받은 속성이라는 겁니다. 


요약하자면 우리의 사회적 행동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과 성선택(sex selection)과 같은 진화과정을 통해 규정되었다는거죠. 그리고 이런 사회적 행동을 진화생물학과 행동경제학에서 발전한 비용편익분석이나 게임이론 등 합리적 행동 모형으로 설명합니다. 


뭔가 상당히 복잡한 내용과 설명을 담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면 안심하셔도 됩니다. 

우리가 엘리베이터에서 흔히 하는 경험, 이메일을 이용한 상호 교류, 족벌주의(팔이 안으로 굽는 속성. 때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기도 하지만), 공유지의 비극, 브래드 피트와 제니퍼 애니스턴의 이혼 사례와 같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례와 영장류의 행동을 절묘하게 연결시켜 어렵지 않게 책장을 넘기게 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자신의 행동과도 많은 부분이 일치해 놀랄 때도 있고, (혹시나) 약간은 억지스럽다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인간의 본성이 존재하고, 본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라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다른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시간을 투자해 책을 읽는 게 전혀 아깝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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