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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유럽 나의 편력 - 젊은 날 내 영혼의 거장들
이광주 지음 / 한길사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어릴 적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이야기를 들으며 기사에 대한 로망을 가졌고, 중세 유럽에 대한 묘한 끌림으로 유럽여행에선 건물만 보고 다녀도 즐거웠습니다. 유럽을 더 알고 싶어 <중세유럽산책/한길사> <중세는 정말 암흑기였나/살림> <도시와 인간/책과함께> 등 책도 읽어봤지만 유럽을 이해하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언젠가 꼭 읽겠다는 마음으로 <유럽의 형성/한길사>도 책장에 고이 모셔뒀죠.

얼마 전 이광주 교수의 <담론의 탄생/한길사>을 읽었는데, 같은 시기에 출간된 이 책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두 책이 가진 공통점은 저자가 같고, 유럽에 대한 저자의 사랑이 느껴진다는 점. 반대로 <담론의 탄생>에 비해 <나의 유럽 나의 편력>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은 2005년에 출간된 <내 젊은 날의 마에스트로 편력>에 역사가 마이네케와 여배우 디트리히를 더한 개정증보판으로, 저자가 괴테에 이끌려 독일 지성사를 연구하기로 마음먹은 이후 때로는 저자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마에스트로이자 때로는 독서의 즐거움을 준 스승 열네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다보니 유럽을 여행하는 것만 좋아했지 역시나 지적인 앎은 극히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네명 중 모르는 인물도 많고, 에라스뮈스하면 곧 우신예찬, 몽테뉴하면 곧 수상록, 이렇게 단편적인 지식만 떠오르는 수준이었다고 할까요?

저자는 첫번째 거장으로 15세기 이탈리아의 수도사인 아벨라르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저자의 책 <담론의 탄생>에 이어 역시 담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벨라르에게 중세 르네상스의 가장 빛나는 인물이라는 큰 명성을 안겨준 것은 바로 비할 바 없는 담론의 정신이었다. 담론하는 아벨라르의 논리에는 이단도 정통도 없었다. 그러한 신념을 갖고 아벨라르는 시도 때도 없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담론하고 논쟁하였다." (70p)
몽테뉴도 마찬가지입니다.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우리의 정신을 단련하는 가장 유효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담론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담론하는 것이 인생의 다른 어떠한 행위보다도 유쾌하다."고 말합니다.
이와 함께 "몽테뉴는 인간을 일관되게 신뢰하고 모든 사상(事象)을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관찰하였으며 자신에게 불어닥친 시대의 종파적ㆍ이데올로기적 분열을 초월하였다."는 부분도 눈에 띕니다. 이런 점은 아벨라르에게서도 찾을 수 있고, 에라스뮈스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에라스뮈스와 같은 시대를 산 루터는 에라스뮈스를 애매주의의 왕이라 비꼬기도 했지만요.
"권력과 지위 그리고 그에 따라다니는 의무와 책임에 초연하여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 위치, 그러면서도 세상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비판의 펜을 놓지 않았던 지성과 교양, 그것이 바로 휴머니스트 에라스뮈스의 삶의 본질이었으며..." (96p)

얼마 전 읽은 책에서 고전을 대할 때는 저자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물론 고전은 시대를 초월한 작품이지만 저자의 사상과 시대상이 담기기 마련이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고전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저자들에 대해, 그리고 저서들이 나온 배경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 의미가 있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조금이나마'라는 건 제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지식에 기반해서 '조금'이라는 겁니다. 독자에 따라 얼마든지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을겁니다.
괴테 내용을 조금 살펴 볼까요?
파우스트 말미에 나오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은/우리를 끌어 올린다"는 부분은 괴테가 사랑과 숭배의 정념을 바친 슈타인 부인과의 만남과 연관되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진하는 자를 우리는 구제할 수 있다."는 부분은 귀족사회를 향한 시민 괴테의 자부심과 자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괴테는 한평생 자연에 대해 경외의 마음을 지녔다고 하는데, 파우스트는 자연과 그 질서에 대한 괴테의 신앙고백으로 가득차 있다고 합니다.
이미 눈치 채셨을수도 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열네명의 거장은 시대순으로 소개되고 있고, 각 거장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시기에 교집합이 있습니다. 즉, 거장 개개인에 대한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유럽의 역사적 흐름까지 살필 수 있게 쓰인 책입니다.
그러다보니 앞에 소개된 거장과 연이은 거장의 공통적이면서 약간 차이 나는 부분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져 이해의 폭을 넓혀줍니다. 예를 들면 하위징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그런데 이 고전적인 문화주의자(부르크하르트)에게도 문화는 결코 국가나 종교의 상위 개념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바로 이 점이 하위징아의 문화관과 다른 점이다. 두 특출난 문화사가에게서 나타나는 그러한 차이점은 부르크하르트가 유럽 문명에서 아직도 국가나 종교가 주요한 '힘'으로 행세한 19세기를 살았던 데 반해, 하위징아는 이미 그것들이 내리막을 걷고 있었던 세기말을 살았다는 점과 관련이 없지 않다고 할 것이다."라는 비교를 통해 앞선 시대를 살아간 부르크하르트와 하위징아를 비교합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조금 더 친숙한 거장들이 등장합니다. 열한번째로 소개되는 모리스는 이광주 교수의 책인 <아름다운 책 이야기>를 읽으신 분이라면 더욱 친숙할텐데요, 무엇보다 한길책박물관에 걸작 <제프리 초서 작품집>이 전시되어 있다는 내용은 애서가들이라면 무척 흥미로운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길책박물관에 가시면 커피 한잔 가격으로(입장료) 윌리엄 모리스의 작품 외에도 구스타프 도레의 작품집과 윌리엄 터너의 풍경화집도 있으니 방문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클림트, 디트리히에 이어 저자는 마지막 거장으로 베토벤을 소개합니다. 지금까지 시대순으로 거장을 소개한 것과는 다른 순서죠.
"베토벤. 갖가지 시련을 꿰뚫고 천상의 울림을 전 인류에게 베푼 천재. 그는 또한 근대적 자아의 상징이었다."
베토벤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보상받고 숭고한 것이 외면당하는 세계에 절망하고, 내면의 고독을 향합니다. 오직 자신의 내면 소리에만 귀 기울이는 음악가, 그의 음악은 사람들을 내적 긴장과 갈등으로부터 방면해주지 않으며 이것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베토벤론이 그치지 않는 이유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책을 소개하면, 아이패드 미니 사이즈(두껍긴 해도)의 아담한 책이지만 담긴 내용은 결코 미니가 아닌 책이랄까요? 독자의 사전지식에 따라 느낌은 많이 달라지겠지만요.
사실 얼마 전에 만난 분께 롤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쉽게 답할 수 없었습니다. 저자가 책에 담아낸 거장들은 저자의 지적 편력을 넘어 삶의 도정에서 큰 자리를 차지했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 격동의 난세 속에서도 어떠한 명분이나 교리, 이데올로기에 의해서도 흔들림이 없었던 자유로운 정신, 지성ㆍ교양인이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합니다.
제 영혼의 거장은 누구일까요. 물론 저자는 저자대로, 저는 저대로,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테고 반드시 유명인일 필요는 없지만 나만의 고전, 나만의 거장을 간직하고 사는 건 의미가 있겠죠. 물론 그러려면 제게도 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편력을 더 거친 후에 이 책도 한 번 더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