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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미래 - 인간은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가
미치오 가쿠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5년 4월
평점 :

뇌에 관한 책이 꽤 인기입니다. KAIST 김대식 교수는 한 일간지에 '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를 연재중이며 그 중 일부를 묶어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를 출간하기도 했고, 역시 KAIST 교수 세 명의 강의를 묶은 <1.4킬로그램의 우주, 뇌>라는 책은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가 선정한 2014 올해의 과학도서 10권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이 책 역시 뇌와 관련된 책입니다. 끈 이론, 평행우주론의 창시자이자 뉴욕시립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인 저자 미치오 카쿠는 인간의 마음과 뇌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500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이 책은 1부에서 뇌과학의 역사와 다양한 장비들의 기능과 작동원리를 설명하고, 인간의 의식이 무엇인지 짚어 봅니다. 2부에서는 기억을 저장하고, 생각을 읽고, 꿈을 촬영하고, 마음으로 물체를 움직이는 기술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책의 절반 가까운 분량을 책임지는 3부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의식, 두뇌 관련 질환과 전망,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추진하는 뇌 프로젝트 등을 다룹니다.

저자는 자연에 존재하는 가장 큰 미스터리 두 가지로 '우주'와 '인간의 정신'을 꼽으며 책을 시작합니다. 둘 다 과거에 비해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상당 부분이 미지로 남아 있다는 점 외에 옛날에는 우주와 정신 모두 미신과 마술의 대상이었다는 점,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심심치 않게 쓰인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이 순간 제 뇌는 '인터스텔라(우주)'와 '트랜센던스(인간의 정신)'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4년 말에 김대식 교수의 강연을 들은 바 있어 뇌과학의 역사를 다룬 부분은 약간이나마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는데요, 그 강의 PT 첫 화면이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가 쇠막대를 들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피니어스 게이지는 쇠막대가 머리를 관통하는 사고를 당했던 인물로, 당사자에겐 불행한 일이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과학자들은 인간의 두뇌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1부도 피니어스 게이지 사례를 소개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저자가 이론물리학자인만큼 이 책의 목적은 신경과학을 물리학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뇌과학과 관련한 기술적인 면을 살펴보는데요, MRI는 생체조직을 손상 없이 통과하는 전자기파를 이용한 장치입니다. 1990년대 중반에 ‘기능성 MRI(fMRI)'가 개발되면서 뇌를 촬영하는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했고 현재까지 꾸준히 수요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MRI를 거짓말탐지기로 활용하기도 하는데, 일부 연구에 의하면 신뢰도가 95%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뇌전도(EGG) 스캐너도 두뇌의 내부를 탐사하는 장비 중 하나입니다. EGG는 사용이 편리하고 값이 싸서, 머리에 EEG 센서를 부착하고 뇌파를 측정하는 실험은 고등학생도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다고 합니다. 아래 영상을 6분 30초 부분부터 재생하시면 EGG를 활용해서 실시간으로 뇌파를 읽는 장면이 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뇌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두뇌모형의 역사 또한 변화를 거칩니다. 뇌 속에 살면서 모든 결정을 내리는 작은 인간을 뜻하는 호문쿨루스 모형, 바퀴와 기어로 이루어진 시계 같은 기계장치라는 모형, 증기기관 두뇌 모형, 전화교환기와 비슷한 두뇌 모형, 컴퓨터에 기초한 두뇌모형을 거쳐 현재는 수입억 개의 컴퓨터를 하나로 연결한 인터넷 모형까지 등장한 상태입니다. 저자는 이에 더해 주식회사 모형으로 뇌의 작동 구조를 설명하는데요, 뇌는 아직도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는 만큼 틀린 부분 없이 설명이 가능한 모형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2부에서는 텔레파시, 염력, 기억, 지능과 관련한 신경과학 기술을 다룹니다. 텔레파시나 염력은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텔레파시는 전 세계 대학에서 중요한 연구과제로 떠오르고 있고, 앞으로는 마우스와 음성인식장치가 사라지고, 사람과 컴퓨터가 정신적으로 교류하게 될 거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최근 한 타이어제조사의 광고 '생각만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센서와 컴퓨터가 유선으로 연결되긴 했지만, 텔레파시와 같이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 유사한 이미지를 표시하기도 하고 전신이 마비된 환자가 생각하는 단어를 파악하는 기술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최근 개최된 무역박람회에서는 오스트리아의 회사에서 EEG(뇌전도)를 이용한 문자입력기를 선보였다고 하는데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언젠가는 속마음을 숨길 수 없는 시대가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현재도 방법은 있습니다. 금속막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으면 생각이 외부로 노출되는 걸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엑스맨에 나오는 매그니토처럼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죠. 기술적인 발전과 더불어 도덕적, 윤리적, 법률적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초능력의 하나로 여겨지는 염력도 다르지 않습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뇌파감지 센서’ 헬멧을 쓰고 생각만으로 로봇발을 작동시켜 개막식 시축을 했습니다. 그리고 워싱턴대학에서는 2013년에 인간의 뇌-뇌 통신을 구현해서 한사람의 뇌에서 발생한 신호를 다른 사람의 뇌로 전송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언젠가 전 세계 사람들이 '마음'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기억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철학적인 문제를 많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헨리 구스타프 몰레이슨(이하 HM) 이라는 간질병 환자는 수술 도중 해마 일부가 제거된 후 증세가 완화되었지만, 새로운 기억을 머릿속에 담아둘 수 없는 부작용이 생깁니다. 과거의 기억은 남아 있지만 새로 입력된 기억은 저장되지 않고 곧 사라집니다. HM은 매일 아침마다 수술을 받은 25살 때의 얼굴과 다른 얼굴을 보며 크게 놀라지만, 곧 놀랐다는 기억도 사라집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진정한 ‘나’일까요? 영화 ‘토탈리콜’에는 인공적인 기억을 주입시키는 회사가 나옵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경험을 진짜 기억이라 생각하고 살아가는 ‘나’는 진정한 ‘나’일까요?

영화 <매트릭스>에는 머리 뒤에 전극을 꽂고 다양한 능력을 다운로드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미국에서는 디지털 데이터를 인공해마에 다운로드하여 기억을 되살리는 연구를 진행 중인데, 이 연구의 후원자는 “기억을 인공적으로 주입하여 개인의 능력을 향상하는 것은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인공해마 기술이 완성된다면 뇌졸중과 치매, 알츠하이머 등 해마의 기능장애로 발생하는 질병을 치료하는데 분명 도움이 되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자녀들의 학업성적을 키우고 싶은 학부모들의 인기 상품이 될 것 같기도 하구요.
저자는 또한 미래에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수시로 저장하여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기록을 남기는 영혼도서관을 언급하며 그 기록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의 가치를 거론하기도 합니다. 2000년대 초반 한 카메라 광고에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카피가 생각나는 대목이기도 한데요, 인간의 기억이 모두 기록으로 남는 게 인간적인 측면에서 과연 좋기만 한 일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기억의 왜곡으로 발생하는 갈등이나 실수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영화 <빅 피쉬>처럼 약간은 부풀린 기억이 때로는 비할 바 없는 행복을 주기도 하니까요.
저자는 이어서 '천재성은 학습될 수 있는가?', '지능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우리도 서번트가 될 수 있을까?', '지능의 기원은 대체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통해 지능에 대해 분석합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서번트들의 뛰어난 능력은 뇌의 어떤 기능이 뛰어나서 생긴 능력이 아니라 '잊는 능력의 결핍'에 따른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인간의 뇌는 성인이 된 후에도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할 때마다 수시로 변하며, 학습을 통해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능'에 대한 부분은 앞서 소개된 '기억' 관련 내용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의 절반 가까이 할애된 3부에서는 인간의 다양한 의식을 먼저 다룹니다. 꿈을 스캔하고, 영화 <인셉션>처럼 다른 사람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방법 등 꿈에 대한 연구를 소개한 후, 다른 사람의 꿈을 바꿀 수 있다면 생각까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마음을 조종하는 연구를 소개합니다. 제시된 사례 중 MK-Ultra는 제가 즐겨듣는 Muse의 노래 제목이기도 해서 발표 당시 어떤 목적의 실험인지 찾아보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됐습니다.
이어서 정신질환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무엇보다 '균형'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저자는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는 피드백회로들이 서로 경쟁하다가 미묘한 균형이 무너졌을 때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뇌와 관련한 연구, 특히 앞에서 등장한 기억이나 지능과 관련한 연구가 자연적인 것을 거스르면서 미묘하게 균형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이 외에도 인공지능, 감정과 자아의식이 있는 로봇을 다룬 내용은 영화 <아이로봇>을, 육체 없는 의식을 다룬 부분은 영화 <서로게이트>를 연상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저는 장기적으로 볼 때 뇌과학은 세계경제와 현대문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합니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대규모 프로젝트도 그런 이유에서겠죠.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만으로도 참 대단하고, 분명 뇌 질환 치료 등에 기여한 바도 큽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뇌가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다보면 뇌를 해킹할 수도 있고, 지금은 예상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길수도 있겠죠. 물리학자의 시각에서 쓰인 책이고 아무래도 저자는 기술의 긍정적 측면에 더 많은 점수를 주는 것 같지만 중간 중간 부작용, 법적 문제, 윤리적 문제를 거론합니다. 어쩌면 가장 중점적으로 읽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맺음말 부분도 마찬가지구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한 가지 더 우려되는 부분은 뇌와 관련된 실험의 많은 부분이 동물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건 크나큰 윤리적 문제를 나을 것이고, 동물을 대상으로 무분별한 실험을 하는 것도 사실 문제입니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유전적으로 인간과 비슷한 동물을 대상으로 부작용이 없던 실험 결과가 나온다 해도, 인간을 대상으로 해서는 엄청난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 <탐욕과 오만의 동물실험>, <가면을 쓴 과학 동물실험> 등의 책들에서 동물실험의 문제점이 많이 제기되기도 했죠.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뇌와 마음을 탐험하기 위한 기술과 발전방향, 생각해 볼 문제를 두루 살필 수 있어 추천할만한 교양도서’이자 ‘다른 분들과 생각을 나누기에도 좋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두께와 주제에 비해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책이기도 하구요. 다가올 미래를 위해 미리 지적인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이 책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영화를 예로 들며 설명하는 부분이 많이 있는데요, 새삼 뇌와 연관된 영화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SF영화나 사이언스 픽션에 관심 있는 분들은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