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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생각의 기술
박종하 지음 / 김영사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먼저 문제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4명이 다리를 건너야 한다. 1명은 다리를 건너는 데 1분이 걸리고 다른 사람들은 각각 2분, 5분, 10분씩 걸리다. 밤이라서 다리를 건널 때는 반드시 손전등을 들고 가야하고, 다리는 폭이 좁아서 기껏해야 한 번에 2명이 건널 수 있다. 그러니까 2명이 같이 다리를 건너서 1명을 바래다주고 다시 다리를 건너올 때는 혼자 손전등을 가지고 온다. 2명이 같이 다리를 건널 때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만큼 시간이 걸린다. 예를 들어 1분 걸리는 사람과 5분 걸리는 사람이 함께 다리를 건넌다면 5분의 시간이 걸린다. 17분 만에 4명이 모두 다리를 건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만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언뜻 생각하기엔 19분으로 계산하기 쉽습니다. 어떻게 17분이 가능한지는 이 글 끝에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학이라고 하면 내 삶과 별로 연관되지 않는 학문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예전에 <박경미의 수학콘서트>라는 책을 꽤 재미있게 읽었고, 역시 전에 읽었던 <틀을 깨라>의 저자인 박종하의 새로운 책이라 펼쳐보게 되었습니다. 그땐 저자 소개를 대충 읽어서 몰랐는데, 저자는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더군요. 그래서 이런 책도 쓸 수 있었나 봅니다.
수학을 전공하거나 직업에 수학이 필요한 사람이 아닐 경우 '수학은 왜 배우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셨을 겁니다. 일상에서 필요한 수학이라고 해도 사칙연산이 대부분이고, 복잡한 계산은 계산기나 컴퓨터가 해주니까요.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학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즐거운 과목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단지 문제를 푸는 과목으로만 경험하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 사실 문제 풀이는 수학의 본질이 아니다. 수학은 즐겁게 다양한 생각의 경험을 배우는 과목이다.(46p)"라고 말합니다.
또한 저자는 일상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합니다.
• 1단계 : 단순 암기 문제
• 2단계 : 일정한 절차를 밟으면 답이 나오는 문제
• 3단계 : 정답이 없는 문제
보통 2단계를 풀기 위해 필요한 게 수학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오히려 저자는 3단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수학적 사고라고 강조합니다. 수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가능성을 높여가는 것이 정답이 없는 문제를 대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거죠. 실리콘밸리나 월 스트리트의 회사에서도 직원을 채용할 때 수학적 사고력을 알아보는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수학적 사고에는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질서를 잡는다는 의미와 두뇌를 자극해 자유롭게 상상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수학적 사고를 배우는 것은 나에게 일어나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다 준다는 것이고, 정확한 논리를 가지고 생각을 확인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수학적 생각의 기술을 아래와 같이 7가지로 나눠 각각 한 파트씩 설명합니다.
1. 생각을 확인한다 Why thinking
2. 개념을 생각한다 What thinking
3. 생각을 연결한다 Dual thinking
4. 다양한 방향으로 생각한다 Indirect thinking
5. 패턴을 생각한다 Pattern thinking
6. 한 단계 위에서 생각한다 Meta thinking
7. 미지의 것을 생각한다 Paradox thinking

이러한 수학적 생각을 적용한 사례도 제시되고, 독자들도 수학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많은 생각 실험(위에 소개한 문제처럼)을 바탕으로 구성된 책이라 수학을 주제로 했음에도 흥미롭게 읽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아도 가급적 바로 설명을 보지 않고 직접 해결해 보려다보니 속도가 더디긴 했지만요.
저자는 위에서 제시한 일곱 가지 수학적 생각의 기술을 예술, 비즈니스 사례 등과 묶어 설명하며 많은 팁과 노하우를 전달합니다.

다른 많은 책에서도 강조된 내용이지만 질문을 강조한 부분은 역시 인상 깊었습니다. 문제의 해결과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질문은 문제의 발견이고 답을 찾는 것은 문제의 해결인데, 질문과 답 중 먼저 오는 것은 항상 질문입니다. 질문은 주도적이고 능동적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문제라고 인식하는 순간 새로운 기회는 시작되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역시 질문하는 힘입니다.
순서를 바꾸어 관점을 전환한다는 내용도 인상 깊었습니다. 간혹 우리는 관점을 바꾸면 해결방법이 너무나 간단한 문제를 지나치게 복잡하게 생각합니다. 아래처럼 반대로 생각하면 너무나 간단한 문제가 있습니다.
587명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자를 가리기 위해 필요한 경기수는?
답은 586경기입니다. 1명의 우승자를 가리려면 586명이 한 경기씩 져야 하기 때문이죠.
이것을 일반적인 관점에서 풀어보면,
587명에서 부전승 1명을 제외하고 586명이 293경기
293명과 부전승 1명을 더해 294명이 147경기
147명에서 부전승 1명 제외하고 146명이 73경기
73명에 부전승 1명을 더해 74명이 37경기
37명에서 부전승 1명을 제외하고 36명이 18경기
19명에서 부전승 1명을 제외하고 18명이 9경기
9명에 부전승 1명을 더해 10명이 5경기
5명에서 부전승 1명 제외하고 4명이 2경기
3명에서 부전승 1명 제외하고 2명이 1경기
최종 2명끼리 1경기... 이렇게 총 586경기가 됩니다. 복잡하죠.

이런 관점의 변화는 비즈니스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는데요, 책에서 소개하는 씨티은행의 한 직원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현금자동지급기, 한스-브링커 버짓 호텔 등의 사례 외에도 그라민은행, 태양의 서커스, 옐로테일 와인 등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이 외에 소개되는 내용도 마케팅이나 경영전략서를 많이 보신 분들은 많이 접한 내용일 수도 있는데, 이는 수학적으로 생각하는 게 그만큼 중요하고 많은 영역에 적용된다는 반증일 겁니다.
책을 읽다 나이팅게일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도 하나 배웠습니다. 우리가 간호사의 상징으로 알고 있는 나이팅게일은 병사들이 부상이 아닌 질병 때문에 죽어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수학 실력을 발휘해 정리했는데 이로 인해 전쟁에서 많은 병사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호기심이 생겨 자료를 더 찾아보니 나이팅게일은 ‘영국군의 건강, 능률, 병원 운영에 관한 견해’라는 책에서 야전병원 사망요인을 설명하는 데에 '폴라에어리어차트'를 사용했는데, 이 자료로 인해 육군성의 보건 관계자와 왕실이 움직였고, 군 당국은 의료교육기관과 통계부서를 신설했다고 합니다. ‘폴라에어리어차트’는 원형의 파이차트를 기본으로 하되 각 변수의 반지름과 색에 차이를 두는 것으로, 나이팅게일이 고안했다고 하네요.

책을 다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분은 철학책도 많이 찾아보실텐데요, 플라톤, 아르키메데스, 피타고라스, 탈레스, 데카르트, 파스칼, 뉴턴, 러셀 등은 철학자이자 수학자였습니다. 예전부터 수학은 단순히 계산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세상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생각 실험은 모두 어려운 문제이다. 이 책을 쓴 나조차 잘 풀지 못한 문제도 많았다. 이 문제들을 도전적으로 풀어보는 것도 좋지만 문제의 해설을 보면서 수학적 생각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수처럼 노래를 잘 부르지는 못해도 나름대로 듣고 부르며 즐기는 것처럼 말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고상한 정리도 처음에는 아주 구차하고 길게 시작하고, 누구도 처음 접하는 문제를 고상하고 쉽게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행여 문제를 풀다가 잘 안 풀린다고 해도 좌절하지 마시고 수학적 생각을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요즘 초등학교에는 스토리텔링 수학 교육이 도입됐다던데, 이것도 수학을 계산만으로 끝나는 과목이 되지 않게 하려는 의도일 겁니다. 아마 이 책의 독자 대부분은 '수학의 정석' 스타일의 수학교육을 받아왔겠죠. 수학적 사고를 글로 배울 순 없으니, 이 책에서 제시한 일곱 가지 수학적 생각의 기술을 생활의 많은 부분에 적용하며 연습해보는 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 덧붙이는 글 : 위에서 말씀드린 문제의 해답
1. 1과 2가 건너가서 2는 반대편에 남고 1만 돌아온다. 3분 소요 (2분+1분)
2. 5와 10이 같이 건너간다. 그리고 올 때는 2가 돌아온다. 12분 소요 (10분+2분)
3. 1과 2가 같이 건너간다. 2분 소요
총 17분이 소요됩니다.
사실 문제 풀이는 수학의 본질이 아니다. 수학은 즐겁게 다양한 생각의 경험을 배우는 과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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