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진부한 표현일수도 있지만,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는 이야기입니다.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가진듯한 주인공 오베가 그려진 표지 이미지,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하기 위해 문을 세 번 잡아당기는 오베가 준 첫인상은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의 잭 니콜슨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작년과 제작년에 스웨덴 작가인 요나스 요나손이 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가 인기를 끌었는데요, 이 책도 스웨덴 작가의 작품입니다.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약 9백만명인 스웨덴에서 70만 부 이상 판매됐다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오베는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입니다. 오베가 가진 확고한 원칙은 때로 동네 빵집에서 잔돈을 잘못 거슬러줬다는 이유로 8년이 지나도록 그 빵집에 가는 걸 거부하는 확고함이 되기도 하고, 차는 사브(SAAB)라며 BMW를 운전하는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는 원칙이 되기도 합니다. 오베가 가진 원칙이 어느정도인고 하니, 사고를 당해 정신을 잃는 순간에도 차량통행이 금지된 거주자 구역에 구급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정도입니다. 오베라는 캐릭터가 어느 정도 짐작될 거라 생각합니다.



작가는 오베의 과거와 현재를 한 챕터씩 교차로 구성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소제목이 <오베라는 남자와...>로 시작하는 파트에서는 오베가 지금의 성격과 원칙을 갖추게 되는 과정과 아내 소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소냐의 죽음으로 이별에 이르는 과정이, 이어지는 <오베였던 남자와...>로 시작하는 파트에서는 현재를 살아가는 오베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베는 6개월 전 아내인 소냐가 죽은 후 매일 매일 아내를 그리워합니다. 오베가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라면, 소냐는 색깔이었고 오베가 가진 유일한 색깔일 만큼 둘은 특별했습니다. 결국 오베는 아내의 곁으로 가려고 결국 자살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번번이 우연한 사건으로 자살에 실패하는데요, 자살을 위해 천장에 고리를 걸 구멍을 뚫으려던 순간 앞집으로 이사 온 가족들로 인해 오베의 생활 많은 부분이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오베는 참 다양한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는데요, 첫 번째 시도로 목을 매달려던 순간에는 밧줄이 끊어져 실패합니다. 두 번째로 차 안에서 배기가스로 질식사 하려던 순간에는 앞 집 이웃인 파르바네의 등장으로 실패하구요, 세 번째로 승강장에서 뛰어내려 기차에 치여 죽으려던 순간에는 지병이 있어 정신을 잃고 먼저 떨어진 사람 때문에 실패합니다. 그 사람을 구한 덕분에 오베는 영웅으로 불리게 되죠. 네 번째로 약을 먹고 자살하려던 순간에는 역시나 우연한 일로 오베와 함께 살게 된 고양이와 마음에 안 드는 이웃의 개 때문에 실패하게 됩니다. 이 고양이는 세 번째 자살시도 실패 후 어쩔 수 없이 함께 살게 된 고양이니 세상일은 정말 알다가도 모릅니다. 결국 오베는 라이플 총으로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자살을 시도하지만 이 마저도 실패하게 되죠.


이 모든 순간에 얽히고설키는 이웃들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이 책을 읽는 내내 웃음 짓게 합니다. 능력을 발휘해 이웃들 집을 고쳐주고, 고양이를 돌봐주고, 파르바네에게 운전을 가르쳐주고, 페르바네의 딸들과 가까워지고, 소냐의 제자였던 청년을 만나 자전거 수리법을 가르쳐 주고, 오랜 기간 우정을 끊고 지낸 과거 절친 루네와 관계를 회복해 갑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결국 오베에게 행복으로 되돌아옵니다.


책 속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특히나 무척 오랫동안 틀린 채로 살아왔을 때는 더.” 이런 사실을 깨닫는 자체가 오베 스스로 변화를 인정하는 거겠죠. 우연이 겹치는, 어쩌면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구성이죠.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들지 않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되니, 이게 바로 작가의 힘이자 번역의 힘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웃음만이 아닌 깨달음도 있는 소설입니다. 등장인물 중 루네와 아니타 부부는 오베와 소냐가 이사 오던 날에 같이 이사를 와서 늘 친하게 지낸 이웃인데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차차 멀어지게 됩니다. 오베가 루네에게 관심을 갖지 않은 걸 후회하는 부분에서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나오는데 참 뜨끔한 문장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얼마나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시간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말할 시간이 넘쳐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나면,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만약과 같은 말들을 곱씹는다.” (380p)



책을 다 읽고 나서 곧바로 14장과 36장을 다시 읽었습니다.

14<오베였던 남자와 기차에 탄 여자>은 두 사람이 만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다른 많은 사랑이야기가 그렇듯 이 책에서 가장 설레는 마음으로 흐뭇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36<오베라는 남자와 위스키 한 잔>에는 소냐가 오베에게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문장이 참 아름답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직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서 살면 안 되는 사람이아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410~411p)


어쩌면 이 책은 소냐의 죽음 이후 오베가 작은 비밀들을 알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냐는 먼저 떠났지만 오베는 소냐가 원하던대로 작은 비밀들을 깨우쳤고 새로운 가족도 생겼으니까요.


우연한 사건이 이어지며 웃음을 만들어 내는 건 위에서 거론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했고, 여러 등장인물이 얽히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건 폴 오스터의 <브루클린 풍자극>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사 온 일본산 자동차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고집불통 할아버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몽골의 이민자 타오와 그 가족들에 의해 변해가는 모습을 담은 영화 <그랜토리노>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은 내내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이 책은 전 세계 30개국 이상 판권이 팔렸으며, 올해 말에 영화로 개봉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와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자, 마음에 남는 문장 또한 많은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이었습니다. “읽는 내내 깔깔거리며 웃다가,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는 울어버렸다.”는 외국 독자의 서평이 있던데요, 그 독자가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리고 생각난 또 한가지! <플레전트빌(Pleasantville)>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토비 맥과이어와 리즈 위더스푼이 나오는 영화인데요, 플레전트빌의 질서정연하고 조용한 흑백사람들이 감정을 깨닫게 되면서 빛깔을 발산하고 컬러로 변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영화죠. 다른 사람들의 원칙을 받아들이면서, 플레전트빌과 같던 오베가 빛깔을 발산하며 컬러로 변해가는 과정을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밑줄 그은 문장 몇 가지 소개해 드리며 마무리하겠습니다.


누군가를 잃게 되면 정말 별난 것들이 그리워진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 미소, 잘 때 돌아눕는 방식, 심지어는 방을 새로 칠하는 것까지도. (83p)


모든 어둠을 쫓아버리는 데는 빛줄기 하나면 돼요. (152p)


우린 사느라 바쁠 수도 있고 죽느라 바쁠 수도 있어요, 오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276p)


그가 관둔 건 어쩔 수 없이 사악해지는 것과 안 그래도 되는데 사악해지는 것 사이의 차이를 누군가 진작에 일깨워줬었다는 걸 기억했기 때문이다.(304p)


품위란, 다 큰 사람은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370~371p)


우리는 때가 올 때까지는 늘 낙관적이다.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나눌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387p)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시간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말할 시간이 넘쳐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나면,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만약’과 같은 말들을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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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 내가 준비하는 노후 대책 7
김동선 지음 / 나무생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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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서른 살이 되는 것에 많은 의미를 둡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주제곡 삼아서요. 그런데 물론 서른 살도 중요한 시작점이지만 마흔 살이야말로 인생의 분기점이 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이 남성은 78.5, 여성은 85.0세이니 마흔 살은 그 절반에 해당되는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2005년에 출간된 <마흔 살부터 준비해야 할 노후 대책 일곱 가지>의 개정판입니다. 저자는 쉽게 말하면 노년 전문가라 할 수 있는데요, 10년 전에 비해 사회적 상황도 달라졌고, 저자의 생각과 경험에도 변화가 있었겠죠. 그간의 변화와 연구로 자료를 보완한 책입니다.


표지에 쓰인 노란색 숫자 ‘7’이 무엇보다 눈에 띄는 책입니다. 이 책은 건강을 위한 준비, 경제적인 준비, 자녀와의 관계, 배우자와의 관계, 사회 참여, 취미생활, 죽음 준비까지 7개의 장으로 나누어 인생의 이모작을 위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보통 은퇴 이후의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건강과 경제력인데요, 이 책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건강에 대한 파트와 경제에 대한 파트입니다. 일단 건강과 경제력은 행복한 노후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볼 수 있고, 이 두 가지가 바탕이 될 때 나머지 다섯 가지 요소도 더욱 풍성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나머지 다섯 가지 요소가 잘 진행될 때 인생의 후반기가 단지 먹고 사는 문제를 고민하는 시간이 아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물론 저자가 전달하는 노후 대책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뻔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고, 너무 여유로운 사람들이 대상인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은 같죠. 저자가 지적하듯 수명이 늘어난 만큼 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또 그만큼 새로운 것을 이루어야만 오래 산 보람"이 있을테고, 흔한 표현이지만 장수가 저주가 아닌 축복이 되게 하려면 현실을 직시하고, 알고 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했던 부분을 다시한번 점검해야 할 겁니다. , 노후에 필요한 부분은 개괄한다는 목적으로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읽는 내내 불편한 진실을 많이 접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과거와는 확실히 다른 사회 변화상도 느껴지는 책입니다. 예를 들면 역모기지제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부양계약서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실제로 한 노인이 땅을 물려줄 때 부양을 약속한다는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패했다는 뉴스도 있습니다. 작년 한 드라마에서는 불효청구소송을 제기한 아버지와 삼남매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오기도 했구요.(드라마에 나온 불효청구소송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이에 가장 가까운 법률상 청구권은 부양청구권이라고 합니다.)


자녀 교육비로 노후 준비를 못하는 부모가 늘어가는 현실에서 <자녀와 노후 사이에서 합리적 균형을 찾아라>라는 파트는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더욱 깊게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어려운 문제겠지만요.



저자가 제시하는 여러 가지 내용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내용은 ‘10만 시간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은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요, 10만 시간의 법칙은 사람이 정년퇴직한 후 주어지는 자유시간이 모두 10만 시간인데서 명명된 겁니다. 저자는 당신에게 주어진 10만 시간은 축복이다고 하는데, 이 시간을 취미 생활이나 봉사 활동 등 의미 있는 시간으로 가져간다면 노년기 삶의 질이 확실히 올라갈 수 있습니다.


매슬로우는 욕구 5단계 이론 중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를 자아 실현의 욕구로 정의했는데요, 한창 사회활동을 하는 시기에 자아 실현을 한다 해도 은퇴 후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다면 삶의 만족도는 당연히 떨어질 겁니다. ‘자아 실현의 욕구를 지속하기 위해 틈틈이 취미 생활을 하고,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활동을 하고, 사람들과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겠죠.


그리고 책 곳곳에 내용과 맞물려 실천할 수 있거나 참고할 수 있는 Tip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Tip만 따로 모아서 틈날 때마다 다시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대상으로 전문가와 인터뷰 하는 걸 들었는데요, 우리나라 제도와 독일 제도를 비교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도 일본 사례와 함께 독일 사례가 자주 거론됩니다. 독일은 연금제도가 가장 먼저 생긴 나라라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도 노년층 증가에 따라 내 노후를 위해 스스로 준비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훨씬 암울하죠. 오늘은 살아가는 것에도 많은 에너지를 투여해야 하는데, 곧 다가올 현재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게 많으니까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책을 덮고 나니, 미국의 헤비메탈 그룹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Sad but True. 슬프지만 사실이니 더욱 철저히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저자는 늙은 포도나무에 대한 얘기를 들려줍니다. 늙은 포도나무는 젊은 포도나무에 비해 포도송이를 조금밖에 맺지 못하지만, 좋은 와인을 만드는 포도는 젊은 포도나무가 아닌 늙은 포도나무에서 구한다고 합니다. 늙은 포도나무는 열매를 적게 맺지만 열매가 아주 달고 맛도 풍부하기 때문이죠.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풍부한 경험과 식견을 가진 노년이라면 자신을 물론 주변에도 행복을 전파할 수 있겠죠. 여러모로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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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천의 문학 살롱
이환천 글.그림 / 넥서스BOOKS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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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체적으로 독서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시는 선뜻 손이 가는 장르는 아닙니다. 짧은 글에 많은 의미를 암축한 글이라 더 많이 곱씹어야하고 오히려 이해가 쉽지도 않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주로 지식 습득이나 재미를 위해 독서를 하기 미련이니 시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드는 게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이환천의 문학살롱>은 일반독자에게 시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어필하는 책입니다. 제 페이스북 친구가 공유한 글을 보고 이환천의 톡톡 튀는 시를 처음 접했는데요, 이미 하상욱의 <서울시>가 재치 있는 문장으로 한차례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죠. 이환천은 하상욱과는 또다른 촌철살인의 느낌을 전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책으로도 출간됐으니 진정한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 셈입니다. 물론 정통시인 입장에서는 말장난으로 보이기도 하겠죠. 그래서 이환천은 표지에서부터 이렇게 말합니다.


"시가 아니라고 한다면 순순히 인정하겠다"



그리고 책을 펼치면 네 가지 관전포인트가 나오는데 꼭 염두해두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다른 시집과는 다른 이환천의 문학살롱이니까요.


아무 생각없이 뇌를 스치듯 읽어라

시의 주인공을 주위에서 찾아라

읽고 직접 한번 써보자

이왕 돈 주고 산거 아까워 하지말자.


책은 총 6개 장에 166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는데, SNS에 공개되지 않은 시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장 취업전, 2장 퇴근전, 3장 이별전, 4장 하기전, 5장 죽기전, 6장 특별부록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처음부터 읽는 것도 좋지만 '시의 주인공을 주위에서 찾아라'라는 관전포인트에 따라 자신을 주인공 삼아 가장 밀접한 파트를 먼저 읽어도 재미가 있습니다.


'월요일'이라는 시는 많은 직장인이 공감하는 동시에 마음이 찔리는 시입니다.


토일요일

자기들이

미친듯이

놀아놓고


내가뭐를

어쨌길래

뭐만하면

내탓이고


'활기찬'이라는 시는 12글자만으로도 큰 공감을 줍니다.


출근을

하면서


퇴근을

생각해


이환천은 '작가의 말'에서 "요즘 세상에 전문가, 비전문가 따질 것 있나 싶다. 그냥 가볍게 웃고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언중유골, 깊은 속뜻이 담긴 시도 많습니다.



'허세'라는 시는 사람들의 SNS 사용에 대한 내용입니다. 시 옆에 있는 그림을 보면 바로 이해가 갈 겁니다.


사진에서

내얼굴이

주연이면


핸드백에

메이커는

씬스틸러

 

'말만'이라는 시와


그래그래

시간나면

한번보자


그래그래

조만간에

연락할게


'배우'라는 시도 뜨끔하게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거짓말을

할때보면


너나우리

할거없이


십팔년차

주연배우


너무 많은 시를 보여드리면 읽는 재미가 떨어질테니 이쯤 해야겠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담론의 탄생>이란 책은 '살롱'에서 시작된 유럽 각국의 담론 문화가 사회와 개인에 끼친 영향이 담겨 있습니다. 조금 다른 살롱이지만 이환천이 권하는 문학살롱도 우리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뒷표지에 있는 메시지입니다.


형님들은 룸살롱 대신 문학살롱

누님들은 헤어살롱 대신 문학살롱


고전도 좋고, 소설도 좋고 시도 좋습니다. 조금 버겁다면 이환천의 문학살롱부터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 문학에도 귀천은 없습니다. 어떤 방식이건 그저 우리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면 그만이겠죠. 이환천 특유의 손글씨,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문학살롱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해당 게시물은 넥서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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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칵테일 강석기의 과학카페 4
강석기 지음 / Mid(엠아이디)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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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출간되기 전 출판사 페이스북에서 진행한 표지 고르기 설문을 통해 알게 된 책입니다. 제목에서 '사이언스'만 가리면 마치 칵테일에 관한 책으로 생각할 만큼 세련된 표지가 멋진 책이기도 하죠.


이 책 이전에도 저자는 <과학 한잔하실래요?> <사이언스 소믈리에> <과학을 취하다 과학에 취하다>까지 매년 '강석기의 과학카페' 시리즈를 집필했는데요, 그 네 번째 책으로 2014년과 2015년 초에 걸친 과학 이슈를 다룬 교양과학 에세이입니다.


얼마 전에 수학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수학은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과 큰 연관이 없을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과학도 마찬가지죠. 과학은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자들과 연구실만이 아닌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는 학문입니다.



책에는 과학계 핫이슈, 건강/의학, 식품과학, 인류학/고생물학, 심리학/신경과학, 문학/영화, 물리학/화학, 생명과학까지 8가지 주제별로 5개씩, 40편의 에세이와 2014년에 타계한 과학자 18명의 삶과 업적을 담고 있습니다.


과학이라면 어려울 거라 지레짐작 할 수도 있지만 내용 중에는 '해장술은 정말 숙취해소 효과가 있을까?', '바나나 껍질을 밟으면 미끄러지는 이유', '수영장에서 쉬하지 마세요' , '제비가 인가(人家)에 집을 짓게 된 사연' 등 예전에 인기 있던 TV프로그램인 '호기심천국'을 연상케 하는 내용도 믾이 담겨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바나나 껍질을 밟으면 미끄러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있는데, 그 이유를 과학적으로 밝힌 건 2014년이라는 겁니다. 일본연구자들이 밝혀냈는데, 이 연구로 이그노벨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그노벨상은 흉내낼 수 없거나 흉내내면 안 되는”(that cannot, or should not, be reproduced) 업적에 수여되는 노벨상 패러디 성격의 상으로, 매년 가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1~2주 전에 발표됩니다. 실제로 노벨상과 이그노벨상을 모두 수상한 과학자도 있고, <이그노벨상 이야기/살림출판사>라는 책도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정보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이 책만 잘 읽으셔도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실 때 박학다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이 책을 읽은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구요.


역시나 흥미로운 내용이 많이 담겨 있었습니다.


동면하는 동물을 연구해 골다공증이나 당뇨병 치료제를 개발 중이고, 환자의 피를 다 빼고 대신 차가운 식염수를 넣어 체온을 낮춘 후 진행되는 초저체온 수술 임상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 항생제의 사용이 키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내용도 흥미로웠고, 암모니아 합성을 다룬 부분에 소개되는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예전에 MBC ‘서프라이즈프로그램에도 소개됐던 내용이 담겨 있어 익숙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개발한 범용 휴머노이드 소셜로봇 페퍼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며칠 전에 본 영화 <써로게이트> 외에도 <블레이드 러너>, <아이 로봇>, <에이 아이> 등 로봇을 다룬 많은 영화가 연상되면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로봇 페퍼는 올해 여름에 본격적으로 판매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의 감정을 읽게 설정돼 있고 자신의 감정도 표현할 수 있(다고 느끼게)게 개발되었다고 하니 지금까지의 로봇과는 차원이 다를 것 같습니다. 아래는 유튜브에서 찾은 페퍼 영상인데요, 정교함이 놀랍습니다.



동물 실험을 다룬 에세이에서는 실험자의 성별이 동물에 영향을 미쳐 실험결과도 달라지는 결과가 나온다는 내용이 흥미와 동시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동물 실험을 거쳤으면 우리가 사용해도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 존재하고 동물과 인간의 유전자가 100% 일치하지 않다보니 실제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는 책 중 탐욕과 오만의 동물 실험 멈추어야한다파트에서 동물 실험의 부작용을 접했는데, 이 책에서 그 책과는 또 다른 사례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덟 가지 주제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세 번째 파트인 식품과학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식탐은 없지만 음식 얘기는 늘 흥미롭게 읽거나 보는데요, 특히 커피는 정말 피부의 적일까?’는 커피 애호가인 제 눈을 끄는 에세이였습니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이뇨작용이 활발해져 수분 보충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고, 얼마 전 한 TV프로그램에서도 물 대신 커피를 마시면 피로감을 느끼고 피부 트러블이 생긴다는 실험 내용을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커피의 이뇨 작용에 대한 논문은 두 건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카페인을 알약이나 캡슐 형태로 복용했을 때 결과를 분석한 것이라고 합니다. 영국 버밍엄대 연구자들은 하루에 커피 두세 잔을 마시는 게 정말 탈수를 일으키는가에 대한 정밀한 실험을 진행했는데, 커피를 마신 실험군과 같은 양의 물을 마신 실험군 간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도 하나의 실험 결과일 뿐이고 물을 전혀 마시지 않고 커피만 마시는 건 문제가 되겠지만, 오해의 대상이었던 커피에 대한 혐의가 어느정도는 풀린 것 같습니다.



저자는 주제와 관련된 사례, 자신의 경험, 영화나 뉴스, 역사적 사건 등과 함께 학술지에 소개된 연구내용과 논문을 잘 섞어 요점을 전달합니다. 책 제목처럼 많은 재료가 잘 섞여 맛있는 과학 칵테일이 만들어지죠.


2014년에 발생한 사건 위주로 책을 구성했지만, 과학과 관련된 여러가지가 갑자기 '!'하고 나타나는 건 아니니 기존 시리즈 내용과 연관되는 내용도 많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저자의 이전 책들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한 에세이 당 평균 6~8페이지 정도 되니 조금씩 나눠읽기에 좋고, 순서대로 읽는 것도 좋지만 제목을 보신 후 호기심이 느껴지는 내용부터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복잡한 용어도 등장하고, 마치 학창시절 교과서를 읽는 느낌을 주는 에세이도 있지만 전공자가 아닌 이상 용어를 모두 알 필요도 없으니 이런 과학적 발견과 발전이 있다는 흐름만 파악하시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이런 책을 많이 접하다보면 차차 더 익숙해질테고, 과학 관련 뉴스도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접할 수 있겠죠.


책 뒷부분에는 2014년에 타계한 과학자가 소개되는데, 많은 과학자들의 노고가 있기에 우리 삶이 한층 발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리츠 하버'처럼 기술이 악용되는 사례도 있긴 하지만요.


과학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갖가지 재료가 섞여 맛을 내는 칵테일처럼 우리 주변을 둘러싼 갖가지 과학을 <사이언스 칵테일>에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숙취 해소가 필요 없는 맛있는 알코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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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생각의 기술
박종하 지음 / 김영사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먼저 문제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4명이 다리를 건너야 한다. 1명은 다리를 건너는 데 1분이 걸리고 다른 사람들은 각각 2, 5, 10분씩 걸리다. 밤이라서 다리를 건널 때는 반드시 손전등을 들고 가야하고, 다리는 폭이 좁아서 기껏해야 한 번에 2명이 건널 수 있다. 그러니까 2명이 같이 다리를 건너서 1명을 바래다주고 다시 다리를 건너올 때는 혼자 손전등을 가지고 온다. 2명이 같이 다리를 건널 때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만큼 시간이 걸린다. 예를 들어 1분 걸리는 사람과 5분 걸리는 사람이 함께 다리를 건넌다면 5분의 시간이 걸린다. 17분 만에 4명이 모두 다리를 건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만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언뜻 생각하기엔 19분으로 계산하기 쉽습니다. 어떻게 17분이 가능한지는 이 글 끝에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학이라고 하면 내 삶과 별로 연관되지 않는 학문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예전에 <박경미의 수학콘서트>라는 책을 꽤 재미있게 읽었고, 역시 전에 읽었던 <틀을 깨라>의 저자인 박종하의 새로운 책이라 펼쳐보게 되었습니다. 그땐 저자 소개를 대충 읽어서 몰랐는데, 저자는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더군요. 그래서 이런 책도 쓸 수 있었나 봅니다.

 

수학을 전공하거나 직업에 수학이 필요한 사람이 아닐 경우 '수학은 왜 배우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셨을 겁니다. 일상에서 필요한 수학이라고 해도 사칙연산이 대부분이고, 복잡한 계산은 계산기나 컴퓨터가 해주니까요.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학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즐거운 과목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단지 문제를 푸는 과목으로만 경험하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 사실 문제 풀이는 수학의 본질이 아니다. 수학은 즐겁게 다양한 생각의 경험을 배우는 과목이다.(46p)"라고 말합니다.

 

또한 저자는 일상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합니다.

1단계 : 단순 암기 문제

2단계 : 일정한 절차를 밟으면 답이 나오는 문제

3단계 : 정답이 없는 문제

 

보통 2단계를 풀기 위해 필요한 게 수학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오히려 저자는 3단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수학적 사고라고 강조합니다. 수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가능성을 높여가는 것이 정답이 없는 문제를 대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거죠. 실리콘밸리나 월 스트리트의 회사에서도 직원을 채용할 때 수학적 사고력을 알아보는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수학적 사고에는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질서를 잡는다는 의미와 두뇌를 자극해 자유롭게 상상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수학적 사고를 배우는 것은 나에게 일어나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다 준다는 것이고, 정확한 논리를 가지고 생각을 확인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수학적 생각의 기술을 아래와 같이 7가지로 나눠 각각 한 파트씩 설명합니다.

 

1. 생각을 확인한다 Why thinking

2. 개념을 생각한다 What thinking

3. 생각을 연결한다 Dual thinking

4. 다양한 방향으로 생각한다 Indirect thinking

5. 패턴을 생각한다 Pattern thinking

6. 한 단계 위에서 생각한다 Meta thinking

7. 미지의 것을 생각한다 Paradox thinking

 


이러한 수학적 생각을 적용한 사례도 제시되고, 독자들도 수학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많은 생각 실험(위에 소개한 문제처럼)을 바탕으로 구성된 책이라 수학을 주제로 했음에도 흥미롭게 읽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아도 가급적 바로 설명을 보지 않고 직접 해결해 보려다보니 속도가 더디긴 했지만요.

 

저자는 위에서 제시한 일곱 가지 수학적 생각의 기술을 예술, 비즈니스 사례 등과 묶어 설명하며 많은 팁과 노하우를 전달합니다.

 


다른 많은 책에서도 강조된 내용이지만 질문을 강조한 부분은 역시 인상 깊었습니다. 문제의 해결과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질문은 문제의 발견이고 답을 찾는 것은 문제의 해결인데, 질문과 답 중 먼저 오는 것은 항상 질문입니다. 질문은 주도적이고 능동적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문제라고 인식하는 순간 새로운 기회는 시작되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역시 질문하는 힘입니다.

 

순서를 바꾸어 관점을 전환한다는 내용도 인상 깊었습니다. 간혹 우리는 관점을 바꾸면 해결방법이 너무나 간단한 문제를 지나치게 복잡하게 생각합니다. 아래처럼 반대로 생각하면 너무나 간단한 문제가 있습니다.

 

587명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우승자를 가리기 위해 필요한 경기수는?

답은 586경기입니다. 1명의 우승자를 가리려면 586명이 한 경기씩 져야 하기 때문이죠.

 

이것을 일반적인 관점에서 풀어보면,

587명에서 부전승 1명을 제외하고 586명이 293경기

293명과 부전승 1명을 더해 294명이 147경기

147명에서 부전승 1명 제외하고 146명이 73경기

73명에 부전승 1명을 더해 74명이 37경기

37명에서 부전승 1명을 제외하고 36명이 18경기

19명에서 부전승 1명을 제외하고 18명이 9경기

9명에 부전승 1명을 더해 10명이 5경기

5명에서 부전승 1명 제외하고 4명이 2경기

3명에서 부전승 1명 제외하고 2명이 1경기

최종 2명끼리 1경기... 이렇게 총 586경기가 됩니다. 복잡하죠.

 


이런 관점의 변화는 비즈니스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는데요, 책에서 소개하는 씨티은행의 한 직원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현금자동지급기, 한스-브링커 버짓 호텔 등의 사례 외에도 그라민은행, 태양의 서커스, 옐로테일 와인 등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이 외에 소개되는 내용도 마케팅이나 경영전략서를 많이 보신 분들은 많이 접한 내용일 수도 있는데, 이는 수학적으로 생각하는 게 그만큼 중요하고 많은 영역에 적용된다는 반증일 겁니다.

 

책을 읽다 나이팅게일에 대한 재미있는 사실도 하나 배웠습니다. 우리가 간호사의 상징으로 알고 있는 나이팅게일은 병사들이 부상이 아닌 질병 때문에 죽어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수학 실력을 발휘해 정리했는데 이로 인해 전쟁에서 많은 병사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호기심이 생겨 자료를 더 찾아보니 나이팅게일은 영국군의 건강, 능률, 병원 운영에 관한 견해라는 책에서 야전병원 사망요인을 설명하는 데에 '폴라에어리어차트'를 사용했는데, 이 자료로 인해 육군성의 보건 관계자와 왕실이 움직였고, 군 당국은 의료교육기관과 통계부서를 신설했다고 합니다. ‘폴라에어리어차트는 원형의 파이차트를 기본으로 하되 각 변수의 반지름과 색에 차이를 두는 것으로, 나이팅게일이 고안했다고 하네요.

 


 

책을 다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분은 철학책도 많이 찾아보실텐데요, 플라톤, 아르키메데스, 피타고라스, 탈레스, 데카르트, 파스칼, 뉴턴, 러셀 등은 철학자이자 수학자였습니다. 예전부터 수학은 단순히 계산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세상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생각 실험은 모두 어려운 문제이다. 이 책을 쓴 나조차 잘 풀지 못한 문제도 많았다. 이 문제들을 도전적으로 풀어보는 것도 좋지만 문제의 해설을 보면서 수학적 생각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수처럼 노래를 잘 부르지는 못해도 나름대로 듣고 부르며 즐기는 것처럼 말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고상한 정리도 처음에는 아주 구차하고 길게 시작하고, 누구도 처음 접하는 문제를 고상하고 쉽게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행여 문제를 풀다가 잘 안 풀린다고 해도 좌절하지 마시고 수학적 생각을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요즘 초등학교에는 스토리텔링 수학 교육이 도입됐다던데, 이것도 수학을 계산만으로 끝나는 과목이 되지 않게 하려는 의도일 겁니다. 아마 이 책의 독자 대부분은 '수학의 정석' 스타일의 수학교육을 받아왔겠죠. 수학적 사고를 글로 배울 순 없으니, 이 책에서 제시한 일곱 가지 수학적 생각의 기술을 생활의 많은 부분에 적용하며 연습해보는 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위에서 말씀드린 문제의 해답

1. 12가 건너가서 2는 반대편에 남고 1만 돌아온다. 3분 소요 (2+1)

2. 510이 같이 건너간다. 그리고 올 때는 2가 돌아온다. 12분 소요 (10+2)

3. 12가 같이 건너간다. 2분 소요

17분이 소요됩니다.

사실 문제 풀이는 수학의 본질이 아니다. 수학은 즐겁게 다양한 생각의 경험을 배우는 과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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