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진부한 표현일수도 있지만,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는 이야기입니다.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가진듯한 주인공 오베가 그려진 표지 이미지,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하기 위해 문을 세 번 잡아당기는 오베가 준 첫인상은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의 잭 니콜슨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작년과 제작년에 스웨덴 작가인 요나스 요나손이 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가 인기를 끌었는데요, 이 책도 스웨덴 작가의 작품입니다.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약 9백만명인 스웨덴에서 70만 부 이상 판매됐다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오베는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입니다. 오베가 가진 확고한 원칙은 때로 동네 빵집에서 잔돈을 잘못 거슬러줬다는 이유로 8년이 지나도록 그 빵집에 가는 걸 거부하는 확고함이 되기도 하고, 차는 사브(SAAB)라며 BMW를 운전하는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는 원칙이 되기도 합니다. 오베가 가진 원칙이 어느정도인고 하니, 사고를 당해 정신을 잃는 순간에도 차량통행이 금지된 거주자 구역에 구급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정도입니다. 오베라는 캐릭터가 어느 정도 짐작될 거라 생각합니다.



작가는 오베의 과거와 현재를 한 챕터씩 교차로 구성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소제목이 <오베라는 남자와...>로 시작하는 파트에서는 오베가 지금의 성격과 원칙을 갖추게 되는 과정과 아내 소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소냐의 죽음으로 이별에 이르는 과정이, 이어지는 <오베였던 남자와...>로 시작하는 파트에서는 현재를 살아가는 오베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베는 6개월 전 아내인 소냐가 죽은 후 매일 매일 아내를 그리워합니다. 오베가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라면, 소냐는 색깔이었고 오베가 가진 유일한 색깔일 만큼 둘은 특별했습니다. 결국 오베는 아내의 곁으로 가려고 결국 자살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번번이 우연한 사건으로 자살에 실패하는데요, 자살을 위해 천장에 고리를 걸 구멍을 뚫으려던 순간 앞집으로 이사 온 가족들로 인해 오베의 생활 많은 부분이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오베는 참 다양한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는데요, 첫 번째 시도로 목을 매달려던 순간에는 밧줄이 끊어져 실패합니다. 두 번째로 차 안에서 배기가스로 질식사 하려던 순간에는 앞 집 이웃인 파르바네의 등장으로 실패하구요, 세 번째로 승강장에서 뛰어내려 기차에 치여 죽으려던 순간에는 지병이 있어 정신을 잃고 먼저 떨어진 사람 때문에 실패합니다. 그 사람을 구한 덕분에 오베는 영웅으로 불리게 되죠. 네 번째로 약을 먹고 자살하려던 순간에는 역시나 우연한 일로 오베와 함께 살게 된 고양이와 마음에 안 드는 이웃의 개 때문에 실패하게 됩니다. 이 고양이는 세 번째 자살시도 실패 후 어쩔 수 없이 함께 살게 된 고양이니 세상일은 정말 알다가도 모릅니다. 결국 오베는 라이플 총으로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자살을 시도하지만 이 마저도 실패하게 되죠.


이 모든 순간에 얽히고설키는 이웃들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이 책을 읽는 내내 웃음 짓게 합니다. 능력을 발휘해 이웃들 집을 고쳐주고, 고양이를 돌봐주고, 파르바네에게 운전을 가르쳐주고, 페르바네의 딸들과 가까워지고, 소냐의 제자였던 청년을 만나 자전거 수리법을 가르쳐 주고, 오랜 기간 우정을 끊고 지낸 과거 절친 루네와 관계를 회복해 갑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결국 오베에게 행복으로 되돌아옵니다.


책 속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특히나 무척 오랫동안 틀린 채로 살아왔을 때는 더.” 이런 사실을 깨닫는 자체가 오베 스스로 변화를 인정하는 거겠죠. 우연이 겹치는, 어쩌면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구성이죠. 하지만 그런 느낌이 들지 않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되니, 이게 바로 작가의 힘이자 번역의 힘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웃음만이 아닌 깨달음도 있는 소설입니다. 등장인물 중 루네와 아니타 부부는 오베와 소냐가 이사 오던 날에 같이 이사를 와서 늘 친하게 지낸 이웃인데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차차 멀어지게 됩니다. 오베가 루네에게 관심을 갖지 않은 걸 후회하는 부분에서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나오는데 참 뜨끔한 문장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얼마나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시간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말할 시간이 넘쳐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나면,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만약과 같은 말들을 곱씹는다.” (380p)



책을 다 읽고 나서 곧바로 14장과 36장을 다시 읽었습니다.

14<오베였던 남자와 기차에 탄 여자>은 두 사람이 만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다른 많은 사랑이야기가 그렇듯 이 책에서 가장 설레는 마음으로 흐뭇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36<오베라는 남자와 위스키 한 잔>에는 소냐가 오베에게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문장이 참 아름답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새 물건들 전부와 사랑에 빠져요. 매일 아침마다 이 모든 게 자기 거라는 사실에 경탄하지요. 마치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서 끔직한 실수가 벌어졌다고, 사실 당신은 이런 훌륭한 곳에서 살면 안 되는 사람이아고 말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바깥이 추울 때 열쇠가 자물쇠에 꽉 끼어버리는 상황을 피하는 법을 알아요.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옷장 문을 여는 법도 정확히 알죠.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410~411p)


어쩌면 이 책은 소냐의 죽음 이후 오베가 작은 비밀들을 알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냐는 먼저 떠났지만 오베는 소냐가 원하던대로 작은 비밀들을 깨우쳤고 새로운 가족도 생겼으니까요.


우연한 사건이 이어지며 웃음을 만들어 내는 건 위에서 거론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했고, 여러 등장인물이 얽히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건 폴 오스터의 <브루클린 풍자극>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사 온 일본산 자동차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고집불통 할아버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몽골의 이민자 타오와 그 가족들에 의해 변해가는 모습을 담은 영화 <그랜토리노>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은 내내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이 책은 전 세계 30개국 이상 판권이 팔렸으며, 올해 말에 영화로 개봉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와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자, 마음에 남는 문장 또한 많은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이었습니다. “읽는 내내 깔깔거리며 웃다가,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는 울어버렸다.”는 외국 독자의 서평이 있던데요, 그 독자가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리고 생각난 또 한가지! <플레전트빌(Pleasantville)>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토비 맥과이어와 리즈 위더스푼이 나오는 영화인데요, 플레전트빌의 질서정연하고 조용한 흑백사람들이 감정을 깨닫게 되면서 빛깔을 발산하고 컬러로 변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영화죠. 다른 사람들의 원칙을 받아들이면서, 플레전트빌과 같던 오베가 빛깔을 발산하며 컬러로 변해가는 과정을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밑줄 그은 문장 몇 가지 소개해 드리며 마무리하겠습니다.


누군가를 잃게 되면 정말 별난 것들이 그리워진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 미소, 잘 때 돌아눕는 방식, 심지어는 방을 새로 칠하는 것까지도. (83p)


모든 어둠을 쫓아버리는 데는 빛줄기 하나면 돼요. (152p)


우린 사느라 바쁠 수도 있고 죽느라 바쁠 수도 있어요, 오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276p)


그가 관둔 건 어쩔 수 없이 사악해지는 것과 안 그래도 되는데 사악해지는 것 사이의 차이를 누군가 진작에 일깨워줬었다는 걸 기억했기 때문이다.(304p)


품위란, 다 큰 사람은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370~371p)


우리는 때가 올 때까지는 늘 낙관적이다.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나눌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387p)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시간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말할 시간이 넘쳐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고 나면,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만약’과 같은 말들을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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