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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칵테일 ㅣ 강석기의 과학카페 4
강석기 지음 / Mid(엠아이디) / 2015년 4월
평점 :

책이 출간되기 전 출판사 페이스북에서 진행한 표지 고르기 설문을 통해 알게 된 책입니다. 제목에서 '사이언스'만 가리면 마치 칵테일에 관한 책으로 생각할 만큼 세련된 표지가 멋진 책이기도 하죠.
이 책 이전에도 저자는 <과학 한잔하실래요?> <사이언스 소믈리에> <과학을 취하다 과학에 취하다>까지 매년 '강석기의 과학카페' 시리즈를 집필했는데요, 그 네 번째 책으로 2014년과 2015년 초에 걸친 과학 이슈를 다룬 교양과학 에세이입니다.
얼마 전에 수학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수학은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과 큰 연관이 없을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과학도 마찬가지죠. 과학은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자들과 연구실만이 아닌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는 학문입니다.

책에는 과학계 핫이슈, 건강/의학, 식품과학, 인류학/고생물학, 심리학/신경과학, 문학/영화, 물리학/화학, 생명과학까지 8가지 주제별로 5개씩, 총 40편의 에세이와 2014년에 타계한 과학자 18명의 삶과 업적을 담고 있습니다.
과학이라면 어려울 거라 지레짐작 할 수도 있지만 내용 중에는 '해장술은 정말 숙취해소 효과가 있을까?', '바나나 껍질을 밟으면 미끄러지는 이유', '수영장에서 쉬하지 마세요' , '제비가 인가(人家)에 집을 짓게 된 사연' 등 예전에 인기 있던 TV프로그램인 '호기심천국'을 연상케 하는 내용도 믾이 담겨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바나나 껍질을 밟으면 미끄러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있는데, 그 이유를 과학적으로 밝힌 건 2014년이라는 겁니다. 일본연구자들이 밝혀냈는데, 이 연구로 이그노벨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그노벨상은 “흉내낼 수 없거나 흉내내면 안 되는”(that cannot, or should not, be reproduced) 업적에 수여되는 노벨상 패러디 성격의 상으로, 매년 가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1~2주 전에 발표됩니다. 실제로 노벨상과 이그노벨상을 모두 수상한 과학자도 있고, <이그노벨상 이야기/살림출판사>라는 책도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정보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이 책만 잘 읽으셔도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실 때 박학다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이 책을 읽은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구요.
역시나 흥미로운 내용이 많이 담겨 있었습니다.
동면하는 동물을 연구해 골다공증이나 당뇨병 치료제를 개발 중이고, 환자의 피를 다 빼고 대신 차가운 식염수를 넣어 체온을 낮춘 후 진행되는 초저체온 수술 임상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 항생제의 사용이 키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내용도 흥미로웠고, 암모니아 합성을 다룬 부분에 소개되는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예전에 MBC ‘서프라이즈’ 프로그램에도 소개됐던 내용이 담겨 있어 익숙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개발한 범용 휴머노이드 소셜로봇 페퍼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며칠 전에 본 영화 <써로게이트> 외에도 <블레이드 러너>, <아이 로봇>, <에이 아이> 등 로봇을 다룬 많은 영화가 연상되면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로봇 페퍼는 올해 여름에 본격적으로 판매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의 감정을 읽게 설정돼 있고 자신의 감정도 표현할 수 있(다고 느끼게)게 개발되었다고 하니 지금까지의 로봇과는 차원이 다를 것 같습니다. 아래는 유튜브에서 찾은 페퍼 영상인데요, 정교함이 놀랍습니다.
동물 실험을 다룬 에세이에서는 실험자의 성별이 동물에 영향을 미쳐 실험결과도 달라지는 결과가 나온다는 내용이 흥미와 동시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동물 실험을 거쳤으면 우리가 사용해도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변수들이 존재하고 동물과 인간의 유전자가 100% 일치하지 않다보니 실제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는 책 중 ‘탐욕과 오만의 동물 실험 멈추어야한다’ 파트에서 동물 실험의 부작용을 접했는데, 이 책에서 그 책과는 또 다른 사례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덟 가지 주제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세 번째 파트인 식품과학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식탐은 없지만 음식 얘기는 늘 흥미롭게 읽거나 보는데요, 특히 ‘커피는 정말 피부의 적일까?’는 커피 애호가인 제 눈을 끄는 에세이였습니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이뇨작용이 활발해져 수분 보충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고, 얼마 전 한 TV프로그램에서도 물 대신 커피를 마시면 피로감을 느끼고 피부 트러블이 생긴다는 실험 내용을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커피의 이뇨 작용에 대한 논문은 두 건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카페인을 알약이나 캡슐 형태로 복용했을 때 결과를 분석한 것이라고 합니다. 영국 버밍엄대 연구자들은 하루에 커피 두세 잔을 마시는 게 정말 탈수를 일으키는가에 대한 정밀한 실험을 진행했는데, 커피를 마신 실험군과 같은 양의 물을 마신 실험군 간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도 하나의 실험 결과일 뿐이고 물을 전혀 마시지 않고 커피만 마시는 건 문제가 되겠지만, 오해의 대상이었던 커피에 대한 혐의가 어느정도는 풀린 것 같습니다.

저자는 주제와 관련된 사례, 자신의 경험, 영화나 뉴스, 역사적 사건 등과 함께 학술지에 소개된 연구내용과 논문을 잘 섞어 요점을 전달합니다. 책 제목처럼 많은 재료가 잘 섞여 맛있는 과학 칵테일이 만들어지죠.
2014년에 발생한 사건 위주로 책을 구성했지만, 과학과 관련된 여러가지가 갑자기 '뿅!'하고 나타나는 건 아니니 기존 시리즈 내용과 연관되는 내용도 많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저자의 이전 책들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한 에세이 당 평균 6~8페이지 정도 되니 조금씩 나눠읽기에 좋고, 순서대로 읽는 것도 좋지만 제목을 보신 후 호기심이 느껴지는 내용부터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복잡한 용어도 등장하고, 마치 학창시절 교과서를 읽는 느낌을 주는 에세이도 있지만 전공자가 아닌 이상 용어를 모두 알 필요도 없으니 이런 과학적 발견과 발전이 있다는 흐름만 파악하시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이런 책을 많이 접하다보면 차차 더 익숙해질테고, 과학 관련 뉴스도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접할 수 있겠죠.
책 뒷부분에는 2014년에 타계한 과학자가 소개되는데, 많은 과학자들의 노고가 있기에 우리 삶이 한층 발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리츠 하버'처럼 기술이 악용되는 사례도 있긴 하지만요.
과학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갖가지 재료가 섞여 맛을 내는 칵테일처럼 우리 주변을 둘러싼 갖가지 과학을 <사이언스 칵테일>에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숙취 해소가 필요 없는 맛있는 알코올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