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주제 9분 만에 끝내는 한국사 119 시리즈 7
이종관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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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9분이 만든 우리 집 역사 루틴으로 딸아이와 대화가 늘었다

— 『1일 1주제 9분 만에 끝내는 한국사』

■ 2013년의 조급함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다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뒤부터 시간이 참 이상하게 흘렀어요. 하루가 순식간에 사라지는데도 마음 한구석은 늘 조급했죠. “나중에 커서 필요하면 그때 하면 되지”라고 스스로를 달래도, 이상하게 역사만큼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역사책은 두껍고, 설명은 길고, 막상 아이가 질문을 던지면 부모인 내가 먼저 막힙니다. “왜 그때 그런 일이 일어났어?” “그 사람은 왜 그런 선택을 했어?” 딸아이 질문은 또 얼마나 날카로운지요. 그럴 때마다 ‘나도 제대로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데, 퇴근하고 집에 오면 에너지가 이미 바닥이잖아요.

■ 제목만으로도 숨이 트였다: “하루 1주제, 9분”

그래서 『1일 1주제 9분 만에 끝내는 한국사』를 처음 봤을 때, 진짜로 마음이 놓였어요. ‘9분’이라는 숫자가 주는 안정감이 있더라고요. 아이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부모도 부담 없이 같이 앉을 수 있는 시간.

저는 이 책이 ‘한국사 공부책’이라기보다, 우리 집에 역사 대화 루틴을 만들어주는 장치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늘은 딱 한 주제만.” 이 말이 가능하니까요. 30분, 1시간이 아니라 9분이라서 오히려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 우리 집에서의 사용법: ‘외우기’ 말고 ‘이야기’

저는 딸아이랑 이 책을 볼 때, 일부러 연도나 사건을 먼저 외우게 하지 않았어요. 대신 질문을 하나씩 던져봤습니다.

“만약 네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 것 같아?”

“그 사람은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아이가 갑자기 자기 경험을 끌어와요.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 관계, 억울했던 순간… 역사 속 선택이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가 되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저는 그게 너무 좋았어요. 『1일 1주제 9분 만에 끝내는 한국사』는 이런 대화가 가능하도록 부담을 확 낮춰줍니다.

■ 딸아이 반응이 제일 솔직했다

아이들은 재미없으면 바로 티 나잖아요. 그런데 “오늘은 뭐 읽어?”라고 묻는 날이 생기더라고요. 이게 되게 큰 변화였어요. 두꺼운 역사책을 꺼내면 표정이 먼저 굳던 아이가, 9분짜리 루틴에는 마음이 열려요.

무엇보다 ‘한국사는 어렵다’가 아니라 ‘한국사는 신기하다’가 남는 느낌. 저는 이 차이가 엄청 크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공부는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길게 가니까요.

■ 주관적으로 말하면, 이 책의 진짜 장점은 ‘엄마(아빠)도 같이 성장’한다는 것

아이와 책을 함께 읽으면 부모도 같이 드러나잖아요. 내가 어느 부분을 잘 모르는지, 어떤 설명을 못 하는지. 『1일 1주제 9분 만에 끝내는 한국사』를 하면서 저도 덕을 봤습니다. 아이 질문에 당황해서 얼버무리는 대신, “아빠도 오늘 같이 알아보자”라고 말할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그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부모도 함께 배우는구나”라는 경험으로 남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이게 제일 좋았습니다. 『1일 1주제 9분 만에 끝내는 한국사』는 지식을 주기도 하지만, 더 크게는 가족이 같이 배우는 방식을 만들어줍니다.

■ 마무리: 2013년의 평범한 하루가 ‘추억’이 되는 방식

제가 서평단 신청할 때 바랐던 건 거창한 성과가 아니었어요. 딸아이와 “잠깐 앉아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죠. 그 바람이 이 책에서는 꽤 현실적으로 가능했습니다.

하루 9분. 그 짧은 시간이 쌓이면, 언젠가 아이 마음속에 “역사는 외우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거였어” 같은 문장이 남을지도 모르잖아요. 저는 그걸 기대하면서, 오늘도 9분을 엽니다. 『1일 1주제 9분 만에 끝내는 한국사』는 그 작은 시작을 가능하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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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다림
김응상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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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마음을 돌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 『어떤 기다림』

■ 책을 펼치기 전: ‘기다림’이라는 단어의 무게

솔직히 말하면, 저는 ‘기다림’이라는 말이 예쁘게만 들리진 않아요. 직장 다니면서 기다림은 대체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구간”이거든요. 결재를 기다리고, 연락을 기다리고, 결과를 기다리고… 그렇게 하루가 흘러가면 괜히 내 시간만 증발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기다림』을 집어 들면서도 처음엔 “이 책이 나를 다독이려나, 아니면 더 조급하게 만들려나” 약간 경계부터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기다림』은 ‘기다림을 미화’하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기다림이 사람을 망가뜨리지 않게,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지’ 쪽으로 조용히 방향을 틀어줍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이 묘하게 풀렸어요.

■ 읽다가 멈춘 문장: 기다림은 결국 계절 같은 거더라

저는 회사에서 휴식시간에 책을 읽는 편인데, 유난히 피곤한 날엔 문장이 눈에 잘 안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어떤 기다림』에는 그런 날에도 툭, 걸리는 문장이 있어요.

p.12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꽃이 화려하고 열매는 가을에 충실하다.”

이 한 줄을 보고 괜히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사람도 비슷하잖아요. ‘화려한 순간’이 있고, ‘묵묵히 열매 맺는 시기’가 있고.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봄에 열매를 요구하고, 가을에 꽃을 찾는 실수를 반복하죠. 『어떤 기다림』을 읽으면서, 내가 내 계절을 자꾸 거꾸로 살고 있었나 싶었습니다.

■ ‘내가 겪은 기다림’과 겹치는 순간

책을 읽고 나니 제가 싫어했던 기다림이 사실은 “멈춤”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움직임”일 수도 있겠더라고요. 빨리 답을 받는 것만 해결이 아니고, 기다리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정리가 분명히 있잖아요. 책에서 말하는 텃밭 이야기도 저는 결국 ‘돌봄’ 이야기로 읽혔어요.

p.14의 “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 같은 문장은, 일로 치면 ‘현장’, 관계로 치면 ‘자주 들여다보기’에 대한 말처럼 들립니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자꾸 멀어지려는 마음을 붙잡아두는 문장 같았어요.

■ 마무리: 『어떤 기다림』이 남긴 것

『어떤 기다림』은 “기다리면 다 좋아진다”는 식의 달콤한 처방전이 아니라, 기다리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식을 알려주는 책에 가깝습니다. 조급한 날, 마음이 거칠어진 날, 저는 다시 『어떤 기다림』을 펼칠 것 같아요. 기다림을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기다림을 살아내는 사람 쪽으로요. 『어떤 기다림』이라는 제목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습니다. 『어떤 기다림』은 읽고 나면, 내 일상 속 기다림의 얼굴이 조금 달라져요.

#어떤기다림 #김응상 #바른북스 #에세이추천 #힐링에세이 #기다림의미 #일상기록 #출근길독서 #책리뷰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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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누이, 다경
서미애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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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족이라는 안전지대에 ‘낯선 누이’가 들어오면

: 여우누이, 다경이 만든 균열

“설화 기반”이라고 해서, 뻔할 줄 알았거든

처음에 여우누이, 다경을 집어 들 때는 솔직히 ‘설화 변주면 분위기만 기괴하고 내용은 예상 가능하겠지’ 싶었어요. 근데 막상 읽어보니 이건 공포로 밀어붙이기보다, 가족이라는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아주 현실적인 말투로 보여주더라고요. 친구 부부의 사고 이후, 남겨진 아이 ‘다경’을 정환의 집으로 데려오면서 시작되는 설정 자체가 이미 “거절하기 어려운 선의”를 깔고 가잖아요. 그 선의가 칼날이 되는 순간이 이 소설의 재미였습니다.

첫 장부터 공기가 이상하다

저는 소설 첫 문장들이 “이 책을 계속 읽게 만들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여기선 초반부터 분위기가 묘합니다.

(p.9) “기척도 없이 문이 열렸다.”

별 문장 아닌 것 같은데, 이 한 줄이 딱 “내 영역이 침범당했다”는 감각을 먼저 심어줘요. 그래서 바로 이어지는 말도 더 날카롭게 들리고요.

(p.10) “아, 진짜 노크 좀 하라고!”

이거… 집에서 한 번쯤 튀어나오는 말인데, 왜 이렇게 심장이 철렁하죠. 그냥 사춘기 투정이 아니라, 이미 가족 안에 ‘경계선’이 그어져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어요.

다경이 무서운 건, ‘악’이라서가 아니라 ‘모호’해서

이 책의 좋았던 지점은, 다경을 처음부터 한 단어로 규정하게 두지 않는다는 거예요. 불쌍한 아이 같다가도, 순간순간 “어?” 하게 만들고, 그 “어?”가 쌓이면서 집 안의 온도가 바뀌죠. 그리고 그 온도 변화가 사건보다 더 무섭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특히 이런 문장, 전형적인 ‘불길함 예고’인데도 되게 생활감 있게 박힙니다.

(p.12) “표정이 심상치 않다. 뭔가 일이 있구나.”

저는 이 문장 읽으면서, 예전에 가족 모임에서 누군가의 표정 하나로 “오늘 뭔가 터지겠다” 감지되던 순간이 떠올랐어요. 별일 아닌 척 웃고 있는데, 공기만은 이미 알고 있는 그 느낌. 여우누이, 다경은 그 공기를 아주 잘 잡습니다.

시점이 바뀔수록, ‘진짜’가 더 흐려진다

목차를 보면 큰아들/둘째/엄마/아빠/누이(다경) 이렇게 시점이 계속 바뀌잖아요.

이게 읽는 재미를 확 올려요. 누구 한 명의 말이 정답이 아니라, 다들 각자의 이유로 진실을 비껴가거든요. 그래서 읽는 내내 “다경이 이상한 걸까, 아니면 이 집이 원래 금 가 있었던 걸까?” 이 질문이 계속 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심리 스릴러가 제일 무서워요. 귀신보다 ‘사람 마음’이 더 예측 불가능해서요.)

다 읽고 나면 남는 감정: 통쾌함보다 ‘찝찝함’

이 작품은 끝까지 가면 속도가 붙는 타입인데, 신기하게도 덮고 나서 마음이 개운하진 않더라고요. 오히려 “가족이면 다 안다”는 믿음이 얼마나 허술한지, 그 허술함 때문에 누가든 다칠 수 있다는 생각이 남아요. 실제로 책 소개/독자 반응에서도 ‘설화의 틀을 현대적으로 비틀면서, 소녀를 그저 연약한 피해자로만 두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저는 그 지점이 이 소설을 더 오래 붙잡게 만든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분께 추천

  • “사건”보다 관계의 균열이 무서운 심리 스릴러 좋아하는 분

  • 설화 모티프를 좋아하지만, 뻔한 권선징악 말고 현대적인 변주를 보고 싶은 분

  • 짧게 읽히는데, 읽고 나서 기분이 오래 남는 소설을 찾는 분

저는 여우누이, 다경을 ‘무서운 이야기’라기보다 ‘가족이 무너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어요. 그래서 더 현실 같고, 그래서 더 묘하게 소름 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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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프네를 죽여줘
플로랑스 멘데즈 지음, 임명주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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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서, 일단은 경계부터 했다

책 고를 때 제목이 너무 세면 오히려 한 번 더 의심하게 되잖아. 다프네를 죽여줘는 딱 그랬다. “자극만 남는 책이면 어쩌지?” 싶어서, 처음엔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앞쪽만 살짝 훑어보자는 마음으로 펼쳤다. 근데 웃기게도, 앞부분 몇 장 넘기는 순간부터 ‘이건 센 척하는 문장’이 아니라 ‘지금 당장 숨을 쉬고 싶은 사람의 말’처럼 들리기 시작하더라. 그리고 그때부터는 나도 모르게 페이지가 빨라졌다. 스릴러처럼 잡아끄는데, 스릴러라고 단정하면 또 어긋나는 느낌. 그 애매한 결이 오히려 중독적이었다.

p.14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이 말, 너무 익숙해서 아팠다

(p.14)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그렇지 않다. 선택의 여지는 항상 있다.

“제가 이 여자를 죽여야 한다니까요!”

이 대목에서 나는 책을 잠깐 덮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 살면서 우리도 너무 자주 하니까. 일이든 관계든, 마음이든. 근데 바로 다음 문장이 그걸 부정하잖아. 선택은 항상 있다고. 이게 위로가 아니라 더 잔인한 진실이라서 마음에 꽂혔다. 다프네를 죽여줘는 이런 식이다. “괜찮아”라고 등을 두드려주기보단, “그럼에도 네가 고를 수 있는 게 하나는 남아”라고 말하는 쪽.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p.31 욕이 거친데, 그 거침이 ‘자기 고백’처럼 보일 때

(p.31) “나는 악녀고, 화냥년이고, 쌍년이고, 창녀다. 뭐라고 불러도 좋다.”

이 책, 확실히 표현이 세다. 욕도 많고, 선정적인(성적인) 표현도 종종 나온다. 그래서 가족 옆에서 읽을 땐 괜히 화면 가리는 사람처럼 책장을 슬쩍 가리게 되더라. 근데 p.31은 단순히 “거칠다”로 끝내기엔 묘하게 슬펐다. 누가 욕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그 말로 못 박아버리는 느낌. 그건 센 캐릭터가 아니라, 이미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사람이 마지막으로 방어하는 방식처럼 보였다. 다프네를 죽여줘가 가진 불편함은, 사실 그 불편함이 ‘진짜 같은 표정’이라서 더 오래 남는다.

p.44 “마지막 숨은 첫 울음보다…” 죽음이 아니라 ‘휴식’의 언어

(p.44) “절대 다시 태어나지 않기를 희망한다.

마지막 숨은 첫 울음보다 더 평화로울지니.....”

이 문장은 컨디션에 따라 꽤 세게 들어올 수 있다. 요즘 마음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여기서 숨 고르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걸 ‘죽고 싶다’는 선언이라기보다 ‘그냥 좀 쉬고 싶다’는 말로 읽었다. 살다 보면 죽음 자체를 원한다기보다, 지금의 소음과 통증이 멈추길 바랄 때가 있잖아. 다프네를 죽여줘는 그런 마음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고, 거칠게 툭 던져서 더 진하게 남긴다.

p.252 마지막 한 줄이, 의외로 현실적인 이유

(p.252) “사람들이 무너지는 이유는 인생을 자주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바보 같은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상하게 이 문장이 제일 오래 간다. 거창한 교훈이 아니라, 친구가 술자리에서 “야, 너 진짜 한번 바꿔봐”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나는 이걸 ‘인생을 자주 갈아엎어라’가 아니라, 최소한 하루의 방향을 조금이라도 틀어보라는 말로 받아들였다. 관계든, 루틴이든, 내 몸과 마음을 대하는 방식이든. 큰 결심 말고 작은 변화. 그 작은 변화가 무너지는 걸 막는다는 사실을, 이 소설이 끝에 남겨두는 방식이 꽤 영리했다.

읽기 팁: 호불호 포인트는 분명하다

정리하면, 다프네를 죽여줘는 “재미있게 읽히는 어둠”을 가진 책이다. 다만 욕설과 성적인 표현이 잦아서 불편할 수 있고, 등장인물들이 막 ‘호감형’으로만 가는 스타일도 아니다. 근데 그게 싫어서 덮을 사람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 까칠함 때문에 “진짜 사람 같다”고 느낄 사람도 있을 거다. 나는 후자였다. 웃기게 달리는데 마음 한구석이 찌릿한 책을 좋아한다면, 이 책은 꽤 잘 맞을 수 있다.

#다프네를죽여줘

#오팬하우스

#플로랑스멘데즈

#임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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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제인 오스틴 지음, 김선형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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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이랑 옥스포드에서 몇년 공부하던 때가 있었는데요. 그때 제가 제일 자주 느낀 감정이 “영국은 말투에 계급이 숨어 있다”였어요. 같은 뜻인데도 어떤 사람은 단정하게, 어떤 사람은 한 박자 비틀어 농담처럼, 또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은근히 선을 긋는 식으로요.

한마디로 "영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재수 없게(=정확하게) 사람 마음을 찌를까”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주)엘리에서 나온 김선형 번역 『오만과 편견』을 펼치자마자,

“아 이거… 고전 독서가 아니라 영국식 대화 듣는 느낌인데?” 싶었습니다.

첫 문장부터 딱 그 공기를 가져오거든요. 시작부터 이미 게임 끝입니다.

온 세상이 인정하는 진리 하나는 …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p.9)

이 ‘~것이에요’ 말끝이 저는 좋았어요. 선언문처럼 딱 박는 게 아니라, 누가 옆에서 “있잖아…” 하고 수군수군 말 걸어오는 리듬이랄까. 고전이 갑자기 “지금 내 옆자리 이야기”처럼 가까워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번 판본’이 더 흥미로운 이유: 번역가가 진짜로 판을 새로 짰다

이번 출간이 재밌는 건 “새 번역”이라서만이 아니에요. 한국일보 기사에서 김선형 번역가는 오스틴 생일(12월 16일)에 맞춰 초판 발행일을 2025년 12월 16일로 못 박았다고 말해요. 그리고 오스틴 소설 6권을 매년 2권씩 순차 번역해 내는 계획(2026년 맨스필드 파크·에마, 2027년 노생거 애비·설득까지 날짜 확정)을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게다가 “오스틴 책은 무조건 예뻐야 했다”면서 책등이 잘 꺾이지 않게, 표지도 수입 고급지, 글자색도 조색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색”에 가깝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요.

이런 비하인드를 알고 책을 들면, 소장본 특유의 “괜히 기분 좋아지는 진지함”이 생깁니다.

(책을 읽기 전부터 이미 한 번 설렘이 깔려요.)


 


읽는 맛: “연애소설”보다 “대화극”에 가깝게 흘러간다

저는 『오만과 편견』을 “로맨스 고전”으로만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번역은 확실히 대화가 빨라요. 기사에서도 오스틴 문장이 “빠른 템포”이고, 영국의 연극적 전통이 오스틴 글쓰기에 영향을 줬다는 설명이 나오는데, 이 번역은 그 감각을 살리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다아시가 첫인상에서 엘리자베스를 ‘그냥’ 평가하는 게 아니라, 대놓고 선을 긋는 장면. 말투가 차갑게 꽂힙니다.

참아줄 만은 하군… 내 마음을 끌 만한 미모는 아니야.” (p.25)

이런 대목을 읽으면, 런던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거리감—예의는 완벽한데 온도는 차가운—그 감각이 떠올라요. (그리고 그 차가움이, 나중에 뒤집히니까 더 재밌죠.)


하이라이트는 역시 p.317: 고백인데, 예쁘게만 고백하지 않는다

제가 『오만과 편견』을 “지금도 재밌다”고 느끼는 건, 이 작품이 로맨스를 다루면서도 감정을 너무 포장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 유명한 고백도, 달달하기만 한 고백이 아니라 자존심과 계급 의식이 섞인 날 것에 가깝죠.

도저히 안 되겠어요. 제 감정이 억눌리질 않습니다.” (p.317)

여기서 저는 영국의 오래된 돌건물들, 조용한 도서관, 그리고 그 안에서 묘하게 팽팽했던 분위기가 겹쳐 보이더라고요. ‘점잖은 척’하는 세계에서,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는 순간이 얼마나 위험한지—그 긴장이 이 장면을 더 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마무리

엘리 김선형 번역의 『오만과 편견』은 “고전을 공부한다”기보다, 영국식 대화의 온도를 통째로 옮겨놓은 책처럼 읽혔습니다. 첫 문장(p.9)에서 이미 톤이 정해지고, p.25에서 첫인상의 얼음이 박히고, p.317에서 그 얼음이 깨지는 순간까지—이 흐름이 정말 빠르고, 재밌고, 무엇보다 인물들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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