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누이, 다경
서미애 지음 / 한끼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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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족이라는 안전지대에 ‘낯선 누이’가 들어오면

: 여우누이, 다경이 만든 균열

“설화 기반”이라고 해서, 뻔할 줄 알았거든

처음에 여우누이, 다경을 집어 들 때는 솔직히 ‘설화 변주면 분위기만 기괴하고 내용은 예상 가능하겠지’ 싶었어요. 근데 막상 읽어보니 이건 공포로 밀어붙이기보다, 가족이라는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아주 현실적인 말투로 보여주더라고요. 친구 부부의 사고 이후, 남겨진 아이 ‘다경’을 정환의 집으로 데려오면서 시작되는 설정 자체가 이미 “거절하기 어려운 선의”를 깔고 가잖아요. 그 선의가 칼날이 되는 순간이 이 소설의 재미였습니다.

첫 장부터 공기가 이상하다

저는 소설 첫 문장들이 “이 책을 계속 읽게 만들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여기선 초반부터 분위기가 묘합니다.

(p.9) “기척도 없이 문이 열렸다.”

별 문장 아닌 것 같은데, 이 한 줄이 딱 “내 영역이 침범당했다”는 감각을 먼저 심어줘요. 그래서 바로 이어지는 말도 더 날카롭게 들리고요.

(p.10) “아, 진짜 노크 좀 하라고!”

이거… 집에서 한 번쯤 튀어나오는 말인데, 왜 이렇게 심장이 철렁하죠. 그냥 사춘기 투정이 아니라, 이미 가족 안에 ‘경계선’이 그어져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어요.

다경이 무서운 건, ‘악’이라서가 아니라 ‘모호’해서

이 책의 좋았던 지점은, 다경을 처음부터 한 단어로 규정하게 두지 않는다는 거예요. 불쌍한 아이 같다가도, 순간순간 “어?” 하게 만들고, 그 “어?”가 쌓이면서 집 안의 온도가 바뀌죠. 그리고 그 온도 변화가 사건보다 더 무섭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특히 이런 문장, 전형적인 ‘불길함 예고’인데도 되게 생활감 있게 박힙니다.

(p.12) “표정이 심상치 않다. 뭔가 일이 있구나.”

저는 이 문장 읽으면서, 예전에 가족 모임에서 누군가의 표정 하나로 “오늘 뭔가 터지겠다” 감지되던 순간이 떠올랐어요. 별일 아닌 척 웃고 있는데, 공기만은 이미 알고 있는 그 느낌. 여우누이, 다경은 그 공기를 아주 잘 잡습니다.

시점이 바뀔수록, ‘진짜’가 더 흐려진다

목차를 보면 큰아들/둘째/엄마/아빠/누이(다경) 이렇게 시점이 계속 바뀌잖아요.

이게 읽는 재미를 확 올려요. 누구 한 명의 말이 정답이 아니라, 다들 각자의 이유로 진실을 비껴가거든요. 그래서 읽는 내내 “다경이 이상한 걸까, 아니면 이 집이 원래 금 가 있었던 걸까?” 이 질문이 계속 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심리 스릴러가 제일 무서워요. 귀신보다 ‘사람 마음’이 더 예측 불가능해서요.)

다 읽고 나면 남는 감정: 통쾌함보다 ‘찝찝함’

이 작품은 끝까지 가면 속도가 붙는 타입인데, 신기하게도 덮고 나서 마음이 개운하진 않더라고요. 오히려 “가족이면 다 안다”는 믿음이 얼마나 허술한지, 그 허술함 때문에 누가든 다칠 수 있다는 생각이 남아요. 실제로 책 소개/독자 반응에서도 ‘설화의 틀을 현대적으로 비틀면서, 소녀를 그저 연약한 피해자로만 두지 않는다’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저는 그 지점이 이 소설을 더 오래 붙잡게 만든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분께 추천

  • “사건”보다 관계의 균열이 무서운 심리 스릴러 좋아하는 분

  • 설화 모티프를 좋아하지만, 뻔한 권선징악 말고 현대적인 변주를 보고 싶은 분

  • 짧게 읽히는데, 읽고 나서 기분이 오래 남는 소설을 찾는 분

저는 여우누이, 다경을 ‘무서운 이야기’라기보다 ‘가족이 무너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어요. 그래서 더 현실 같고, 그래서 더 묘하게 소름 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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