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제인 오스틴 지음, 김선형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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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런던이랑 옥스포드에서 몇년 공부하던 때가 있었는데요. 그때 제가 제일 자주 느낀 감정이 “영국은 말투에 계급이 숨어 있다”였어요. 같은 뜻인데도 어떤 사람은 단정하게, 어떤 사람은 한 박자 비틀어 농담처럼, 또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은근히 선을 긋는 식으로요.

한마디로 "영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재수 없게(=정확하게) 사람 마음을 찌를까”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주)엘리에서 나온 김선형 번역 『오만과 편견』을 펼치자마자,

“아 이거… 고전 독서가 아니라 영국식 대화 듣는 느낌인데?” 싶었습니다.

첫 문장부터 딱 그 공기를 가져오거든요. 시작부터 이미 게임 끝입니다.

온 세상이 인정하는 진리 하나는 …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p.9)

이 ‘~것이에요’ 말끝이 저는 좋았어요. 선언문처럼 딱 박는 게 아니라, 누가 옆에서 “있잖아…” 하고 수군수군 말 걸어오는 리듬이랄까. 고전이 갑자기 “지금 내 옆자리 이야기”처럼 가까워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번 판본’이 더 흥미로운 이유: 번역가가 진짜로 판을 새로 짰다

이번 출간이 재밌는 건 “새 번역”이라서만이 아니에요. 한국일보 기사에서 김선형 번역가는 오스틴 생일(12월 16일)에 맞춰 초판 발행일을 2025년 12월 16일로 못 박았다고 말해요. 그리고 오스틴 소설 6권을 매년 2권씩 순차 번역해 내는 계획(2026년 맨스필드 파크·에마, 2027년 노생거 애비·설득까지 날짜 확정)을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게다가 “오스틴 책은 무조건 예뻐야 했다”면서 책등이 잘 꺾이지 않게, 표지도 수입 고급지, 글자색도 조색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색”에 가깝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요.

이런 비하인드를 알고 책을 들면, 소장본 특유의 “괜히 기분 좋아지는 진지함”이 생깁니다.

(책을 읽기 전부터 이미 한 번 설렘이 깔려요.)


 


읽는 맛: “연애소설”보다 “대화극”에 가깝게 흘러간다

저는 『오만과 편견』을 “로맨스 고전”으로만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번역은 확실히 대화가 빨라요. 기사에서도 오스틴 문장이 “빠른 템포”이고, 영국의 연극적 전통이 오스틴 글쓰기에 영향을 줬다는 설명이 나오는데, 이 번역은 그 감각을 살리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다아시가 첫인상에서 엘리자베스를 ‘그냥’ 평가하는 게 아니라, 대놓고 선을 긋는 장면. 말투가 차갑게 꽂힙니다.

참아줄 만은 하군… 내 마음을 끌 만한 미모는 아니야.” (p.25)

이런 대목을 읽으면, 런던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거리감—예의는 완벽한데 온도는 차가운—그 감각이 떠올라요. (그리고 그 차가움이, 나중에 뒤집히니까 더 재밌죠.)


하이라이트는 역시 p.317: 고백인데, 예쁘게만 고백하지 않는다

제가 『오만과 편견』을 “지금도 재밌다”고 느끼는 건, 이 작품이 로맨스를 다루면서도 감정을 너무 포장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 유명한 고백도, 달달하기만 한 고백이 아니라 자존심과 계급 의식이 섞인 날 것에 가깝죠.

도저히 안 되겠어요. 제 감정이 억눌리질 않습니다.” (p.317)

여기서 저는 영국의 오래된 돌건물들, 조용한 도서관, 그리고 그 안에서 묘하게 팽팽했던 분위기가 겹쳐 보이더라고요. ‘점잖은 척’하는 세계에서,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는 순간이 얼마나 위험한지—그 긴장이 이 장면을 더 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마무리

엘리 김선형 번역의 『오만과 편견』은 “고전을 공부한다”기보다, 영국식 대화의 온도를 통째로 옮겨놓은 책처럼 읽혔습니다. 첫 문장(p.9)에서 이미 톤이 정해지고, p.25에서 첫인상의 얼음이 박히고, p.317에서 그 얼음이 깨지는 순간까지—이 흐름이 정말 빠르고, 재밌고, 무엇보다 인물들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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