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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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 타인은 항상 내 상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채로운존재라는 사실을 나는 엄마를 통해 배웠다. 그렇게 엄마가 길러준 이해의 시선이 이후에 내가 엄마를 옹호할 토대가 되었을지 엄마는알았을까?
이성복 시인은 "모든 미친 것들에게, 미치지 않으면 안 될 사면 하나씩 찾아주는게 시"라고 했다. 나는 그 사연 하나를 덧붙이고 싶어서 쉽게 미쳤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사실을 말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자신의 삶을 고구마 줄기 캐듯이리저리 뽑아내는 최현숙 선생님처럼, 선생님이 만난 노인들, 내가 만난 엄마, 그리고 나처럼, 사람은 누구나 끝없이 이어져나오는 고구마줄기만큼의 이야기보따리를 안고 각자의 이유로나름의 선택을 하며 산다.
내 이야기를 쓰려고 앉았는데,만약 누군가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면 그 사람의 사연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럴 땐, 의미가 무엇이든 그 사람과 긴밀하게연결되어 있는 내 존재를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혐오시대‘라는 말에 실감하며 세상에 진저리쳐질 때면 나는 글을 읽는다. 타인의 존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다시 내 몫의 옹호를 쓴다. 엄마가 알려준 옹호의 쓰기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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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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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선생님이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들으면서 나는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의문에 답이 되는 실마리가 잡히는 느낌이었다. 글을 쓰고부터 나는 자주 엄마의 이야기를 썼다. 정확하게 말하면, 쓰게되었다. 내 삶에 영향을 미친 무수한 인연들 사이에서도 자꾸엄마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이유가 뭘까 궁금했는데, 내가 가장 용호하고 싶은 사람이 엄마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너무 쉽게심판당하는 사람. 심판대 앞에서 끝내 자신의 존재를 미안해하는 사람. 온종일 어두운 방에서 멍하니 누워 있던, 스스로 담배와 술도 사러 가지 못하던, 이혼한 뒤 형제들에게도 ‘쯧쯧‘ 소리를 듣게 된 엄마의 모습이 자꾸 내 머리채를 잡는다.
그렇다고 엄마가 언제나 내가 지켜줘야 할 약한 존재는 아니었다. 내가 자라는 동안 엄마가 들려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게 타인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조심스러운 태도를길러주었다. 중학생 무렵, 엄마가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는 지인의 사연을 들려준 적이 있다. 이야기 끝에 엄마는 내게 당부했다. "승은아,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나쁜 사람들이 아니야. 똑같이 평범하고 좋은 사람들이야. 그러진 않겠지만, 절대 이상하게 보고 그러면 안 돼. 알았지?" 어떤 사람을 함부로 불쌍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것, 학력이나 직업으로 사람을 평가해선 안 된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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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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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낯선 사람, 거리에서 나물 파는 할머니,
아파트 경비 아저씨와도 금세 친구가 되는 사람이었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분위기 메이커는 항상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스무살부터 집에서 육아와 돌봄 노동, 가사 노동으로만 시간을 보냈으니 엄마에게도 해소되지 않는 에너지를 풀 방법이 필•요한 건 당연했다. 아빠는 젊고 매력적인 엄마가 잠시라도 집 밖해나가는 걸 불안해했고, 다른 사람을 집에 초대하는 것도 싫어했다.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어두운 방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건 술취한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었다.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나는 엄마에게 담배와 술이 작은 위안이 되길 바랐다. 주로
"어머니‘의 낙은 가족을 돌보는 일이라고 하지만, 글쎄. 엄마에게 낙이 아빠나나, 동생이길 바라는 건 모성에 대한 지나친 환상이 아닐까 싶다.
잊고 있던 기억을 꺼내준 최현숙 선생님은 강연 끝에 이런이야기를 남겼다. "내 이야기를 쓰려고 하면 자꾸 나를 갉아먹는느낌이 들어서......, 몇 번 쓰려고 노력하다가 그만뒀어요. 그런•데 요양보호사를 하면서 만난 할머니들이 주절주절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가 자꾸 내 머리채를 잡는 거예요. 이 이야기들이 묻히면 안 된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기록해야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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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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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에 잊고 있었던 엄마의 은밀한 심부름이 불쑥 떠오른 것이다. 강연이 끝난 밤에 나는 엄마, 담배, 술, 심부름을 곱씹었다. 엄마는 새벽 1시에도 내가 수박이 먹고 싶다고 하면 망설임 없이 30분 거리의 24시간 마트에 다녀오는 사람이었다. 아침에 내가 동태찌개가 먹고 싶다고 하면 저녁 식탁에는 꼭 동태찌개가 나왔다. 가족들이 원하는 반찬, 간식, 가구, 옷은 무엇이건 자신의 발로 돌아다니며 기어코 마련해주었다. 그런 엄마가유일하게 스스로 사지 못했던 물건은 술과 담배였다. 만약 누군가 엄마가 내게 시킨 심부름을 들으면 역시 "쯧쯧" 소리가 나올지 모르겠다. 아마 그 시절 내가 느꼈던 감정도 쯧쯧, 정도였는지 모른다. 혀를 차는 소리 안에는 이런 말이 담겨 있겠지. 어떻게 엄마가 어린 딸에게 그런 심부름을 시켜? 아니, 그보다는 이런 의미일지 모른다.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술과 담배를 해?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나는 엄마와의 싸움에서 충분히 이길수 있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못 들은 척 안가면 그만이었다. 끝내 투덜대며 집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이유는 단지 등 떠밀려서가 아니라 엄마의 삶에 공감했기때문이었다. 열네 살 나에게도 낙이 없다는 엄마의 말은 무척 설득력 있게 들렸다. 엄마는에너지 넘치고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 가장밝게 빛나고, 무슨 일이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걸 좋아했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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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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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서 술이라도 마시고, 담배라도 피우고 싶은 건데 어떻게 그걸 이해해주지 않느냐고 한탄하는 엄마의 넋두리가 가슴을콕콕 찔렀다. 그래, 엄마가 이거라도 없으면 무슨 낙이 있겠어. 나는 죄책감을 한아름 안고 투덜대며 동네 슈퍼로 향했다. 아파트골목 사이에 있는 작은 슈퍼의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 가족과 잘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나는 교복을 입고도 어려움 없이 술과 담배를 구할 수 있었다. 어느 날엔가 슈퍼 아주머니가 왜 네가 이런걸 사가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볼멘 얼굴로 엄마가 시켰다고 털어놓았다. 그때 아주머니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소리를 냈다. "쯧쯧."
구술생애사 최현숙 선생님의 강연을 들었다. 선생님의 어린시절을 듣는데, 내 귀에 들어온 말. "초등학생 때 엄마가 저에게일수를 시켰어요." ‘어떻게 엄마가 어린 딸에게 일수를 시켜?‘ 역시 이런 반응이 나올 법했는데, 선생님은 그 기억을 요리조리 다양하게 해석해주었다. 다섯 남매를 키우느라 경제 활동을 도맡았던 엄마가 어느 날부터 몸이 아파지면서 일수를 직접 걷지 못•하는 날이 늘었고, 자신이 어릴 때부터 똑 부러지는 면이 있었기때문인지 엄마가 믿고 그 일을 시켰다고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돈을 알게 되면서 안 좋은 영향이 있었다고는 했지만, 선생님은그런 기억 모두가 자신의 일부라고 끌어안고 있었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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