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야기에 잊고 있었던 엄마의 은밀한 심부름이 불쑥 떠오른 것이다. 강연이 끝난 밤에 나는 엄마, 담배, 술, 심부름을 곱씹었다. 엄마는 새벽 1시에도 내가 수박이 먹고 싶다고 하면 망설임 없이 30분 거리의 24시간 마트에 다녀오는 사람이었다. 아침에 내가 동태찌개가 먹고 싶다고 하면 저녁 식탁에는 꼭 동태찌개가 나왔다. 가족들이 원하는 반찬, 간식, 가구, 옷은 무엇이건 자신의 발로 돌아다니며 기어코 마련해주었다. 그런 엄마가유일하게 스스로 사지 못했던 물건은 술과 담배였다. 만약 누군가 엄마가 내게 시킨 심부름을 들으면 역시 "쯧쯧" 소리가 나올지 모르겠다. 아마 그 시절 내가 느꼈던 감정도 쯧쯧, 정도였는지 모른다. 혀를 차는 소리 안에는 이런 말이 담겨 있겠지. 어떻게 엄마가 어린 딸에게 그런 심부름을 시켜? 아니, 그보다는 이런 의미일지 모른다.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술과 담배를 해?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나는 엄마와의 싸움에서 충분히 이길수 있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못 들은 척 안가면 그만이었다. 끝내 투덜대며 집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이유는 단지 등 떠밀려서가 아니라 엄마의 삶에 공감했기때문이었다. 열네 살 나에게도 낙이 없다는 엄마의 말은 무척 설득력 있게 들렸다. 엄마는에너지 넘치고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 가장밝게 빛나고, 무슨 일이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걸 좋아했다. - 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