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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보는 미래 과학
마티 조프슨 지음, 엄성수 옮김 / 동아엠앤비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어릴 적 바닥에 떨어진 음식 5초 안에 주워 먹으면 상관없다는 얘기를 많이 친구들과 놀면서 많이 들었던 거 같다. 이는 동네마다 달라서, 어디서는 3초, 어디서는 다섯 셀 때까지, 다양한 버전이 있긴 하지만, 맥락은 얼추 같다.
난 이게 우리나라에서만 하는 얘기로만 알고 있었는데, 서양에서도 5초 룰, 3초 를 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농담 같은 얘기를 직접 진짜 그런지 실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1초 간 떨어져 있어도 절대 주워 먹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바닥에 닿는 순간 바로 세균에 오염된다고 한다. 실험 결과를 보면, 특히 젖은 바닥에 떨어지면, 아예 미련을 버리고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앞으론 바닥에 떨어진 거 주워 먹으려 하면, 아이 때 놀리며 하던 말처럼, '얼레리 꼴레리, 땅그지래요' 하며 건강을 위해 절대 못 먹게 해야 하는 거다.
이런 뭔가 재미있기도 하고, 엉뚱한, 음식과 관련된 숨겨지거나 알지 못하고 지나왔던 과학 이야기를 다룬 책이 바로 '음식으로 보는 미래 과학'인 것이다. 흔히 음식 이야기라면, 요리사나 영양학 전공자가 책을 쓰는 것이 보통이겠으나, 이 책은 저자부터 색다르다. 산발한 머리로, 보는 것만으로도 괴짜스러운 모습을 한 생물학 박사, 마티 조프슨이다. 영국 BBC 방송 'The One Show'에 고정 출연하며 과학 관련 라이브 실험을 보여주고 있는 유명인이다.
책 속 첫 이야기는 요리에 필수 도구인 칼과 관련된 과학 이야기이다. 어떻게 칼이 요리 재료를 썰 수 있는지, 칼을 만들 때 사용되는 재료 물성 이야기, 칼날의 각도와 같은 것도 말하고 있고, 심지어 종이에 손이 베이면 왜 더 아픈지도 다룬다.
바늘이 가면, 실이 가듯이, 칼이 나왔으니, 도마도 당연히 나온다. 도마의 단단함에 관련된 메인 주제로 도마로 사용되는 각종 재료에 얽힌 이야기를 하면서, 모스 경도도 나오고, 도마의 세균 문제도 함께 나온다.
이렇게 간략히 요약한 것만 보면, '음식으로 보는 미래 과학'이라는 책은 무척 따분하고 지루한 공식과 화학식 등이 난무하는 재미없는 책일 거 같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저자의 개인적 경험 이야기도 들어 있고, 과학에 관련된 것들도, 누구나 부담 없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 맞춰 다루고 있다. 일종의 과학쇼를 보는 기분으로 볼 수 있는 책이다. 아마도 저자의 라이브 실험 방송 경력과 무관하지 않은 거 같다.
칼과 도마 외에 책에는 압력솥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 달걀 거품, 뻥튀기, 빵, 음식물과 몸에 관련된 세균 이야기도 나오고, 맛있는 고기의 비결인 마이야르 반응, 캐러멜화, 초콜릿 등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가 한가득이다.
특히 마지막 장에는 미래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중에 하나가 누구나 한 번쯤 상상했던 알약 음식이다. 알약 하나로 하루나 며칠 치 영양분을 섭취하는 그런 상상 말이다. 내가 지금은 엄청 먹어대고 있지만, 어렸을 때 항상 듣던 소리가 '제발 좀 밥 좀 먹어라'였다. 진짜 그때는 왜 그렇게 밥 먹기가 싫었나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했던 상상이 '그런 알약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였다.
그런데 책을 보니, 그런 상상은 많은 과학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 영양적으로 작은 알약 하나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알약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하루 200개 정도를 섭취해야 한다고 한다. 물리적으로 한 알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맛없는 알약을 200개 먹는 상상을 해봤는데, 지금도 하루에 영양제 몇 알 먹는 것도 힘든데, 200개는 먹는 거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그리고 설령 하나로 압축하는 기술이 나왔다 하더라도, 우리 체내 시스템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소화 기관에 문제가 생기고, 장내 미생물이 제어력을 상실해서 장 내벽이 분해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인류가 광합성하는 형태로 진화한다는 설정이 있는 만화 시도니아의 기사처럼 인간이 새롭게 진화가 되지 않는 한, 알약 한 알로 살았으면 하는 상상은 그저 망상일 뿐이다.
그 외에 '음식으로 보는 미래 과학'에서는 배양 고기, 미래 농사 방법, 식품 사기 막는 기술, 곤충 섭취 등 앞으로 사람들의 음식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도 생각해보고 있다.
'음식으로 보는 미래 과학'은 음식을 그저 살기 위한 에너지원 또는 식도락을 즐기는 대상 정도로 생각하는 좁고 단순한 시선을 과학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존재로 확장시켜 줍니다. 게다가 음식과 관련된 미래의 모습도 현실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해줍니다.
침대가 과학이라면, 음식도 확실히 과학입니다. 물론 세상에 과학이 안 들어간 물건은 없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