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의 한국사 X파일
김진명 지음, 박상철 그림 / 새움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진명의 한국사 X 파일 : 철저한 자료조사에 광활한 상상력

1. 엘리트적 꼰대주의 VS 아마추어적 상상력

근대 전까지 모든 학문은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귀족들의 아마추어적 탐구심이나 실용성에 초점을 맞춰 연구되어 왔다. 학문이 박사 학위를 마친 엘리트들에 의한 전유물이 된 것은 학문의 분업화와 고도화가 이루어진 20세기부터 일어난 현상이다.

지식 엘리트 그룹의 탄생은 학문 발전에 높은 기여를 했지만, 대신 대학을 정점으로 한 엘리트적 구조는 점차 경직성을 띠게 되었다. 다만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에서 엘리트적 꼰대주의가 득세하고 학위 하나 없는 아마추어들의 상상력은 근거 없는 헛소리로 일축된다.

2. 하인리히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과 김진명의 역사 발굴

가장 아마추어를 무시하는 학문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역사학계일 것이다. 역사의 시작이 아마추어 저술가 헤로토도스공자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시작된 것을 생각해보면 얼핏 이해가 안 간다. 하지만 역사라는 게 정권이 바뀌자마자 조선왕조실록이 수정됐던 것을 보듯, 패권을 쥔 사람들에 의해 쉽게 수정 되어왔고, 구체적 증거와 연구 없이 조작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분야라서 검증 되지 않은 사람들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아닐까? 아니면 결국 여기도 기득권층은 있을 수밖에 없고 새로운 해석이란 게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역사가가 역사계의 파란을 일으킨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사례는 바로 하인리히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이다. 물론, 그가 발견했던 것은 트로이가 아니었지만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신화가 아니라 실존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이후 고고학 붐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칭찬받을 만 하다. 그렇다면 당시 역사학계의 반응은? 하인리히 슐리만의 업적을 분석하기보단 사기꾼이라고 몰아갔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마추어 역사학자로 대차게 까이는(?) 분이 있는데 바로 소설가 김진명이다.

3. 왜 우리나라엔 댄 브라운이 나오면 안 되나?

김진명은 그의 책 한국사 X파일에서 이태까지 그가 추적해온 역사의 진실에 대해서 적고 있다. 200쪽이 조금 넘는 만화책으로 미용실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릴 때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개인적으론 한국사 X파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국사 전체를 다룰 것이라 기대했지만, 조선시대와 근현대사 위주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 아쉽다. 그래도 광개토대왕비에서 사라진 글자를 추적하는 부분이나, 명성황후의 시해 과정에서 있었던 천인공노할 일을 밝히는 부분이 충분히 흥미진진한 편이라 그가 썼던 소설의 뒷이야기를 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김진명 작가의 책을 읽으면 천사와 악마, 다빈치 코드등으로 유명한 댄 브라운이 떠오른다. 댄 브라운은 심지어 소설에서 예수를 건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극찬을 받았는데, 왜 김진명 작가에게는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까? 그가 하는 새로운 해석은 요새 거의 청춘물과 로맨스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트렌디 사극에 비해서는 온전한 편인데 말이다. 그의 저작이 헛소리만이 가득했다면 과연 독자들이 선택했을까? 그의 작품엔 철저한 자료조사에 덧붙여 광활한 상상력이 덧붙여졌음을 한국사 X파일은 보여주고 싶어 한다.

4.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근대까지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했던 랑케의 사관이 득세했다면, 현대에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말했던 E. H. 카의 사관이 자리를 잡았다. 소설가 김진명은 스스로가 소설가라는 지점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기성 역사학자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역사의 이면을 제시한다. 그가 내리는 해석이 언제나 옳다는 말은 아니다. 그래도 이 나라의 역사가 어디까지나 한반도에만 머물러 있다거나, 미국과 중국 등 열강에 의해서 휘둘려왔다는 해석보단 가끔은 세계사의 중심이 아닐까는 상상을 할 수 있는 유쾌함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대인의 대한민국 경제학 - 5천만 경제 호구를 위한
선대인 지음, 오종철 기획 / 다산북스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선대인의 대한민국 경제학 : 경제호구들을 위한 실전 경제 지침서

1. 카나리아와 카산드라

과거 광부들은 산소를 체크하기 위해 새장에 카나리아 한 마리를 넣어 갱으로 내려갔다. 산소의 농도가 떨어지면 그 어떤 생명체보다 산소에 민감한 카나리아는 세차게 울어대는 것을 활용한 것이다. 카나리아는 광부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참된 경고를 하는 존재다.

하지만 위기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항상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트로이의 공주이자 예언자였던 카산드라는, 오랜 전쟁 끝에 그리스인들이 퇴각하면서 남기고 간 목마가 함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로이인들은 믿지 않았고, 결국 그리스인들의 칼날에 목숨을 잃었다.

2. ‘한국의 닥터 둠선대인 박사, 대한민국 경제를 말하다

카나리아와 카산드라. 앞으로의 위기를 예언하는 자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두 가지 모습이다. 위기를 알려주는 카나리아에게 카산드라처럼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종종 냉혹해지기도 한다. 앞으로 위기가 올 것이라고 하는 학자들과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듣지 않고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자들을 주위에 두다가 패망한 지도자들의 예는 굳이 많다. 즉 우리 주위에 있는 비관론자와 위기론자들의 말을 일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주장의 근거와 실제 위기의 가능성에 대해서 따져보고 같이 토론해보아야 한다.

미국에 2008년 경제 위기를 예측해서 유명해진 비관론적인 경제학자 닥터 둠마크 파버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줄곧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 빠질 것이라 주장하는 한국산 닥터 둠선대인 소장이 있다. 2016년에 KBS 프로그램에 출연해 앞으로 부동산 시장이 폭락할 것이니 집 사지 말라는 주장을 했다가 강제 하차 당하기도 했던 선대인 소장의 모습에서 카산드라는 물론, 지도자에게 간언을 했다가 목이 날아간 충신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그는 강연과 방송에만 머무르지 않고 저서 활동도 활발하여 최근 선대인의 대한민국 경제학이란 책을 냈다.

3. ‘멘큐의 경제학선대인의 경제학

선대인 소장의 책 대한민국 경제학은 그 두께나 크기로 보아하야 경제학의 유명한 교과서 중 하나인 멘큐의 경제학을 연상시킨다. 다만 이론과 공식들로 채워져 있는 멘큐에 비해, 선대인 소장의 책은 실제 대한민국의 현실과 앞으로의 전망과 대안들에 대해 논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멘큐가 경제학도를 꿈꾸는 새내기들을 위해 만들어진 교과서라면 선대인 소장은 수천만의 경제 호구들이 경제적 지식을 갖추게 하기 위한 실용서를 썼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어쨌든 둘 다 읽어본 사람의 입장에선 대중서인 이 책이 훨씬 쉽고 이해가 잘 간다.

이 책에서 나오는 단어들은 그리 낯설지 않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던가, ‘수출 대기업 중심 경제 체제’, ‘저출산 고령화’, 그리고 요새의 화두인 ‘4차 산업혁명’, ‘트럼프 정권2017년 경제의 핵심 키워드가 되고 미래를 결정할 요소들에 대해 비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특히 이렇게 저성장이 지속된다면 더 이상 젊은이들이 집을 사지 않을 것이고, 또한 앞으로 어르신들이 집을 팔게 되는 시기가 오면 부동산이 폭락할 수밖에 없다는 그의 주장은 수출과 부동산 두 축으로 유지되는 한국 경제의 취약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고 생각한다.

4.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 비관론과 낙관론이란 두 날개

혹자들은 선대인 소장의 주장이 터무니없고 너무 부정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부동산 가격은 쉽게 낮아지지 않을 것이며, 세계의 경기가 호전된다면 오히려 계속 오를 가능성이 많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기억해야한다. 새는 한 쪽의 날개로만 날지 않는다. 낙관론으로만 운영되는 경제는 또다시 1997IMF2008년 서프프라임 모기지 사태 같은 경제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비관론과 낙관론, 두 날개로 잘 조정하여 앞으로의 위기를 줄이면서 동시에 성장동력을 찾는 관점이 필요함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논쟁! 철학 배틀
하타케야마 소우 지음, 이와모토 다쓰로 그림, 김경원 옮김 / 다산초당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논쟁! 철학배틀

1.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특정 현상에 이름을 붙이면서 우리의 지적 체계 안으로 편입시킨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세상을 지각하는 범위는 저 파랗고 멀리 있는 것하늘이라는 것을 알면서부터 점차 넓어져 점차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영역, 예를 들면 상대성 이론이나 빈부의 격차같은 것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이름 붙이기관계를 맺는 것이기도 한데, 시인 김춘수가 에서 당신이 나를 꽃이라고 불러줬을 때 나는 당신에게 가서 꽃이 된다는 시구는 언어로 관계를 맺는 과정을 보여준다.

2.

그렇다면 이 언어를 만드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우리에게 대개 철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민감한 감각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느끼거나 누구보다 뛰어난 관찰력으로 이 세상의 법칙을 모두 탐구하고자 노력했다.

역사책에 이름을 남긴 철학자들은 그들의 사상에 두 가지를 담았다. 하나는 진단이다. 지금 현재 이 세상의 본질은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왜 이렇게 문제들이 많은지에 대한 자신들만의 해석을 내놓는다. 다음은 대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 문제들을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대답들과 그것을 위한 실천 내역들이다. 예를 들면, 사르트르의 경우 인간이 불안하고 괴로운 이유에 대해 세상에 갑자기 던져진피투성(被投性)에서 찾았고, 인간 실존이 바로 서기 위해선 개인이 자유로우면서 동시에 타인과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3.

세상을 파악하는 방식인 언어’,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낸 철학자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괴로운 일이다. 그럴 때는 가벼운 입문서로 시작해보는 것이 좋다. 대논쟁! 철학배틀은 앞서 말한 철학자들 중 핵심적인 인물들의 사상들을 명확하고 쉽게 잘 정리해놓았다. 그리고 게임 역전재판의 일러스트를 맡았던 이와모토 다쓰로가 철학자들의 일러스트를 맡아서 생동감 있고 선이 굵은 캐릭터들을 만나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시작을 알린 소크라테스를 필두로, 37인의 철학자들이 벌이는 지식의 아레나(Arena)는 한 쪽 편이 우세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하게 전개된다. 흥미롭게도 가장 최대 출전 철학자는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인데, 역시 칸쇼니(칸트+쇼펜하우어+니체)’라고 불리는 18~19세기의 독일 사상사에 대한 깊은 일본인의 관심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이 책이 일본 책이다 보니, 우리나라에선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도 많다. 예를 들면, 소년에게 처벌대신 교화를 우선시 하는 소년법이라던가, 일본 평화헌법 상에 전쟁할 권리가 없는 등의 요소, 그리고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일본인 철학자에 대해선 한국 독자들은 의아할 것이다.

애초에 이 책 자체가 철학자나 교수가 쓴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로 치면 설민석이나 최진기 같은 학원 강사가 철학사를 간단하게 정리하여 쓴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어디까지 입문서라는 것. 하지만 이 정도만 읽어도 어디서 입 터는 데 지장은 없다.

4.

대논쟁! 철학 배틀은 내용도 쉽고 만화 덕분에 술술 읽히는 대신에, 뭔가 깊이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김용규의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를 추천한다. 전자는 다들 집에 한 권씩 꽂혀있을 거고, 철학카페에 경우, 철학을 어떤 식으로 삶의 서사를 읽는 데 적용할 것인가 통찰을 주는 책이다. 이걸로도 부족하다면 마이클 켈로그의 철학의 세 가지 질문이나 매트 로렌스의 철학 한 잔도 괜찮다. 지금 언급한 책들 모두 당신의 빈약한 철학적 체계를 한 걸음 진보하게 해줄 좋은 책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시
바바라 오코너 지음, 이은선 옮김 / 놀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위시


p.36-37 "앞으로는 이렇게 하자." "화가 나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 때마다 '파인애플'이라고 말해." "그게 진정하라는 암호 같은 역할을 할 거야."


소녀 찰리는 아버지의 구속과 어머니의 정신병으로 인해 이모 구스의 집에 맡겨진다. 그녀는 이모와 이모부의 애정 어린 관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사는 시골에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 자신이 원래 살던 도시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불같은 성격으로 인해 계속 학교 아이들과 문제를 일으키고, 그러던 그에게 하워드란 친구만이 먼저 다가와 준다. 하워드는 그녀에게 파인애플을 제안한다. 못 참을 것 같은 일이 있을 때 파인애플을 떠올리라고, 그것이 진정하라는 신호가 되어줄 거라고.


그 이후에도 찰리는 자신의 성질을 종종 참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파인애플을 되뇐다. , 자신의 화가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이런 걸 보면 분노도 습관이다. 어떤 이들은 남들에게 미움 받을 것이 두려워 쉽게 화를 내지 못한다. 반면, 작은 일에도 쉽게 흥분하는 사람들이 있다. 뭐든 중간이 좋다고, 합당한 상황에서만 화를 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파인애플은 찰리가 화에 대한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p.44-45 나는 나를 반겨주는 집이 없는 신세, 떠돌이 신세가 어떤 건지 알았다. 그리고 녀석은 싸움꾼이었다. 나랑 같았다. 그 개와 나는 공통점이 많았다. 문득 그 비쩍 마른 개에 대한 애정이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당장 엄숙하게 맹세하고 약속했다. 그 개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말이다.


p.129 "나는 개의 어떤 점을 제일 좋아하는지 알아?" "무조건 적으로 주인을 사랑하는 거."

"괴팍하고 잘난 척하고 뻔뻔하게 거짓말하는 사람들의 개도 자기 주인이 무슨 성인군자라도 되는 것처럼 사랑하잖아. 무슨 뜻인지 알지?"


겨우 적응의 물꼬를 튼 그녀에게, 떠돌이 검은 개 위시본이 나타난다. 그녀는 뿌리 없이 호수를 둥둥 떠다니는 부평초마냥 불안한 그녀의 심리를 위시본에게 투영한다. 그래서 그 개를 잡고 길들이기 위해 한동안 고생한다. 개가 그녀의 마음을 알아준 걸까? 처음엔 못마땅하던 위시본도 이내 찰리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같이 먹고, 같이 자는 생활엄마, 아빠, 언니 누구에게도 그토록 일방적이고 지속적인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찰리에게 개는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준다.


p.61-62 "우리 엄마가 천에다가 수를 놓아서 만든 액자가 있는데 거기 뭐라고 적혀 있는지 알아? '우리의 모든 고민을 빨랫줄에 널면 그 속에서 당신은 당신의 고민을, 나는 나의 고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사람들은 누구나 고민거리가 있고 너보다 심각한 고민거리를 가진 사람도 있다는 얘기야."


위시본과 친구가 되고, 하워드와 그의 가족들과 친하게 진해면서 도시 소녀였던 찰리도 시골의 풍경에 점차 일부분이 되어간다. 하지만 그녀의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골이 편해지면서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이곳에서 친구들과 계속 이모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충돌한다. 이런 배부른(?) 고민이 계속되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다. 그저, 몇 년 동안 계속 빌어 왔던 한 가지 소원에 매달릴 뿐이다.


p.265 실제로 그녀는 온갖 얘기를 했었다. 거스와 버서는 나를 공주 대하듯이 하고, 마음씨 좋은 오덤 가족은 나와 함께 저녁을 먹어서 감사하다고 기도를 드리지 않느냐고. 하워드만큼 좋은 친구가 또 어디 있느냐고. 아름다운 산과, 별이 보이는 조그만 베란다가 있지 않으냐고. 내가 지금까지 그 모든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소원을 비느라 바빠서 실상을 파악하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돌연변이라서 구하기 힘든 네잎클로버의 꽃말이 행운이라면, 흔한 토끼풀인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고 했다. 아무리 행복한 상황이라고 해도, 자신이 불만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면 언젠가 극복해야할 환경일 뿐인 것이다. 처음엔 불만과 분노밖에 몰랐던 찰리는 점차 주변 것들에 감사를 느끼기 시작한다. 하워드, 위시본, 이모 버서와 이모부 거스그녀가 그토록 찾아헤맸던 진정한 가족은 찰리의 두 부모와 언니가 다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그녀를 사랑해주는 사람들로 인해서 다시 구성됐음을 찰리가 깨닫는 데 왜 이리 오랜 시간이 걸린 걸까?


아마 우리도 우리 주변의 행복은 간과한 채 거대한 행운을 찾아 방랑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행복은 그 자리, 그 곳에서 우리가 알아차려주길 바라고 있을 테니까. 다만, 행복이 지쳐서 떠나지 않도록, 너무 늦지만 않으면 될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 왕자 (역자 노트 + 프랑스어 원문 + 영역판 수록)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어린왕자

p.30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새로운 친구에 관해 말할 때, 그들은 본질적인 문제에 관해선 결코 묻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어떠니? 좋아하는 게임은 뭐니? 나비를 수집하니?" 그들은 당신에게 묻는다. "몇 살이니? 형제가 몇이니? 몸무게가 어떻게 되니? 아버지 수입은 얼마나 되니?" 그러면 단지 그들은 그를 안다고 믿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어른들에게, "나는 아름다운 장밋빛 벽돌집을 보았어요. 창가에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집이 있는"이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그 집의 이미지에 다다르지 못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 그러면 그들은 소리칠 것이다. "정말 멋지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린왕자를 읽는다. 정치인도, 사업가도, 범죄자도 모두 어린왕자를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들의 행보에 큰 영향을 준 것 같지는 않다. 집에 어떤 화분이 있는지, 페인트질은 어떻게 했는지, 벽돌재인지 시멘트인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집값만 중시하는 어른들의 속물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읽던 아이들은, 이후 그 사람의 성격은 어떠한지, 취미는 무엇인지보단 그 사람의 학벌과 연봉에 더 관심을 가지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고로 어린 시절 어린왕자를 읽는 것은 삶에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어른의 몸이 되어버렸지만 아직 아이의 감수성을 지닌 이십 대 때 이 책을 읽어야 한다.

p.51 "사실 나는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했던 거예요! 나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해야만 했어요. 그녀는 나를 향기롭게 하고 빛나게 했어요. 나는 결코 그녀로부터 달아나지 말았어야 해요. 나는 그녀의 가여운 속임수 뒤에 숨어 잇는 다정함을 꿰뚫어 봤어야 했어요. 꽃들은 그렇게 모순적이에요! 그러나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 법을 알기엔 너무 어렸어요."

이 문장만으로도 아이들이 완전히 어린왕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아이들은 까칠한 사랑의 존재를 모른다. 수용 받거나 거절 받는 극단적 양자택일의 사랑, 즉 부모의 사랑이 아니라, 서로 거리를 두며 가까워졌다 멀어짐을 반복하는 애인의 사랑에 대해 아이들은 모른다. 고로 이 문장, 사랑하는 방법을 알기엔 너무 어렸어요는 어린 왕자의 후회이자 동시에 정말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아이였던 자신에 대한 어른의 후회이기도 한 것이다. 굳이 성별과 상관없이, 우리 생애를 관통했던 수많은 그들을 이해하기엔 그들은 너무 모순적이었고 그들을 제대로 사랑하기엔 너무 어렸다.

p.109-110 "내 비밀은 말이야. 그건 매우 단순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봐야 잘 볼 수 있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네 장미를 그렇게 중요하게 만든 것은 네가 장미를 위해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고 있어." 여우가 말했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잊어서는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은 영원히 네 책임이 되는 거야.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어린왕자의 핵심 내용은 이 문장들에 축약된다. 어른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들이다. 그 결과, 정말 중요한 행복과 사랑, 희망들은 놓치기 일쑤다. 상대를 소중히 여기고 상대방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길들임의 과정이 지극한 노력의 결과물이지만, 그들은 어떻게든 그 노력을 줄이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 상대방에 대해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잃고 권태와 무기력에 시달린다. 그들은 책임을 져야하지만 그들은 책임을 질 의사가 없다. 스스로의 삶을 건사하는데 바빠서 그들이 같이 행복하고자 맹세했던 우정과 가정을 내팽개치곤 한다. 우리는 어린 왕자와 여우에게 배워야 한다. 어른이 된다고 해도 잊으면 안 되는, 그러한 작은 비밀들을 말이다.

p.113-114 그는 갈증을 진정시켜 주는 완벽한 약을 파는 상인이었다. 일주일에 한 알을 삼키면 더 이상 물 마실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너는 왜 그것들을 팔고 있니? "엄청난 시간을 절약해 주거든" "일주일 동안 53분을 절약한대." '내가' 어린 왕자가 자신에게 말했다. '만약 내게 53분의 여유가 있다면, 나는 아주 천천히 샘을 향해 걸을 거야……."

어린왕자갈증을 진정시키는 약은 소설 상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편의점에 들어가 삼각김밥을 구매하고 전자레인지 20초에 돌려 입 속에 구겨 넣어 허기를 진정시키는 우리의 모습은 갈증 없애는 약을 마시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스턴트 음식은 우리의 식사시간을 절약시켜준다. 하지만 절약한 시간으로 우리는 무엇을 하는 것일까? ‘정작 먹는 즐거움과 식사 시간의 따뜻함, 느긋함을 희생해서 원하는 것을 한다곤 하지만 대개는 TV와 스마트폰을 건드리는 게 다일 경우가 많다. 자신을 살리는 것, 자신에게 소중한 것에 대한 시간적 투자는 얼핏 비효율적이게 보일지라도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