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역자 노트 + 프랑스어 원문 + 영역판 수록)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어린왕자

p.30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새로운 친구에 관해 말할 때, 그들은 본질적인 문제에 관해선 결코 묻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어떠니? 좋아하는 게임은 뭐니? 나비를 수집하니?" 그들은 당신에게 묻는다. "몇 살이니? 형제가 몇이니? 몸무게가 어떻게 되니? 아버지 수입은 얼마나 되니?" 그러면 단지 그들은 그를 안다고 믿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어른들에게, "나는 아름다운 장밋빛 벽돌집을 보았어요. 창가에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집이 있는"이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그 집의 이미지에 다다르지 못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 그러면 그들은 소리칠 것이다. "정말 멋지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린왕자를 읽는다. 정치인도, 사업가도, 범죄자도 모두 어린왕자를 읽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들의 행보에 큰 영향을 준 것 같지는 않다. 집에 어떤 화분이 있는지, 페인트질은 어떻게 했는지, 벽돌재인지 시멘트인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집값만 중시하는 어른들의 속물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읽던 아이들은, 이후 그 사람의 성격은 어떠한지, 취미는 무엇인지보단 그 사람의 학벌과 연봉에 더 관심을 가지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고로 어린 시절 어린왕자를 읽는 것은 삶에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어른의 몸이 되어버렸지만 아직 아이의 감수성을 지닌 이십 대 때 이 책을 읽어야 한다.

p.51 "사실 나는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했던 거예요! 나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해야만 했어요. 그녀는 나를 향기롭게 하고 빛나게 했어요. 나는 결코 그녀로부터 달아나지 말았어야 해요. 나는 그녀의 가여운 속임수 뒤에 숨어 잇는 다정함을 꿰뚫어 봤어야 했어요. 꽃들은 그렇게 모순적이에요! 그러나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 법을 알기엔 너무 어렸어요."

이 문장만으로도 아이들이 완전히 어린왕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아이들은 까칠한 사랑의 존재를 모른다. 수용 받거나 거절 받는 극단적 양자택일의 사랑, 즉 부모의 사랑이 아니라, 서로 거리를 두며 가까워졌다 멀어짐을 반복하는 애인의 사랑에 대해 아이들은 모른다. 고로 이 문장, 사랑하는 방법을 알기엔 너무 어렸어요는 어린 왕자의 후회이자 동시에 정말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아이였던 자신에 대한 어른의 후회이기도 한 것이다. 굳이 성별과 상관없이, 우리 생애를 관통했던 수많은 그들을 이해하기엔 그들은 너무 모순적이었고 그들을 제대로 사랑하기엔 너무 어렸다.

p.109-110 "내 비밀은 말이야. 그건 매우 단순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봐야 잘 볼 수 있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네 장미를 그렇게 중요하게 만든 것은 네가 장미를 위해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고 있어." 여우가 말했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잊어서는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은 영원히 네 책임이 되는 거야.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어린왕자의 핵심 내용은 이 문장들에 축약된다. 어른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들이다. 그 결과, 정말 중요한 행복과 사랑, 희망들은 놓치기 일쑤다. 상대를 소중히 여기고 상대방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길들임의 과정이 지극한 노력의 결과물이지만, 그들은 어떻게든 그 노력을 줄이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 상대방에 대해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잃고 권태와 무기력에 시달린다. 그들은 책임을 져야하지만 그들은 책임을 질 의사가 없다. 스스로의 삶을 건사하는데 바빠서 그들이 같이 행복하고자 맹세했던 우정과 가정을 내팽개치곤 한다. 우리는 어린 왕자와 여우에게 배워야 한다. 어른이 된다고 해도 잊으면 안 되는, 그러한 작은 비밀들을 말이다.

p.113-114 그는 갈증을 진정시켜 주는 완벽한 약을 파는 상인이었다. 일주일에 한 알을 삼키면 더 이상 물 마실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너는 왜 그것들을 팔고 있니? "엄청난 시간을 절약해 주거든" "일주일 동안 53분을 절약한대." '내가' 어린 왕자가 자신에게 말했다. '만약 내게 53분의 여유가 있다면, 나는 아주 천천히 샘을 향해 걸을 거야……."

어린왕자갈증을 진정시키는 약은 소설 상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편의점에 들어가 삼각김밥을 구매하고 전자레인지 20초에 돌려 입 속에 구겨 넣어 허기를 진정시키는 우리의 모습은 갈증 없애는 약을 마시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스턴트 음식은 우리의 식사시간을 절약시켜준다. 하지만 절약한 시간으로 우리는 무엇을 하는 것일까? ‘정작 먹는 즐거움과 식사 시간의 따뜻함, 느긋함을 희생해서 원하는 것을 한다곤 하지만 대개는 TV와 스마트폰을 건드리는 게 다일 경우가 많다. 자신을 살리는 것, 자신에게 소중한 것에 대한 시간적 투자는 얼핏 비효율적이게 보일지라도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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