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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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삶에서 겪는 수많은 고난들을 극복해도, 궁극적 고난인 죽음만큼은 극복할 수 없다. 극복할 수 없음은 곧 수용 외엔 길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 자체를 피할 수 없어도, 그 죽음 앞에 당당할 수는 있다.

브릿마리는 63세의 여성으로 커트러리 서랍(싱크대 서랍) 안을 어떻게 정리하느냐를 비롯하여 얼마나 교양있게 행동하는지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잔소리꾼이다. 그녀는 남편 켄트의 외도로 인해 충격을 받고 살던 집을 떠나 일자리를 구하러 보르도라는 외딴 마을로 떠나게 된다.

보르도에서 브릿마리는 지금까지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로만 살아왔던 자신을 되돌아본다. 그녀는 남편도 자식도 없이 혼자 남겨진 자신이 혹시나 꼴사납게 죽는 것은 아닐까 걱정한다. 그녀가 불안할수록, 그녀는 청소를 하고 주변을 정리한다. 그것만이 그녀의 일인 듯이.

 

남편에게서 도망치듯 떠나온 그녀는 지금까지 남편의 일이라고 여겼던 일들에 도전한다. 운전과 커피 내리기, 일자리 구하기 등 남편에게 의존하는 게 너무 익숙해져서 지금까지 못해왔던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며 바닥을 쳤던 그녀의 자존감도 점차 회복되어 간다.

그런 그녀에게 마지막 과제처럼 남겨진 일이 있으니, 바로 이케아 가구 조립하기다. , 이케아! 지금까지 수많은 남성들을 절망에 빠트린 그 조립 가구를 63세의 브릿마리 혼자서 조립하려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무서운 건지 그녀는 조립을 차일피일 미룬다.

그녀가 가구 조립에 실제로 착수한 것은, 보르도에 오고 나서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다. 그녀는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고 아이들을 돌보고, 스스로를 구속하던 몇 가지 편견들을 이겨낸 후에야 드디어 이케아 가구를 조립한다. 마치 밀림의 성인식에서 들짐승을 때려잡는 것처럼.

 

브릿마리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는 축구의 힘이 개입한다. 공과 공터, 그리고 사람들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쉬운 놀이, 축구. 가지고 놀게 공 밖에 없는 경제적으로 쇠락한 동네인 보르도에선 모든 아이들이 축구를 한다. 물론, 그 실력은 형편이 없지만 말이다.

작중에서 브릿마리와 축구의 인연은 아이들이 날린 축구공에 그녀의 머리를 맞아 기절하면서 시작된다. 처음엔 도대체 왜 저들이 공이면 환장을 못하는지 이해 못하던 브릿마리는 아이들의 순수함과 열정에 설득당한 그녀가 그들의 코치직을 맡으면서 점차 두터워진다.

고집스럽고 자신의 기준이 명확하던 브릿마리는 아이들이 자신의 몸이 다치면서도 축구 경기에 임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언제 저렇게 열정을 가져봤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언니의 교통사고, 부모의 방치, 그리고 자신을 잃어갔던 결혼 생활을 찬찬히 돌아보며 말이다.

 

브릿마리 여기 있다(BRITT-MARIE WAS HERE)는 계속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죽어가는 도시, 보르도. 언제 죽어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의 브릿마리. 그럼에도 우울하지 않은 건 일단 공을 차고 보는 축구에 대한 열정과 보르도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우정 때문이다.

브릿마리는 보르도의 아이들로부터 열정을 배우고, 보르도의 아이들은 그녀로부터 애정을 배운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는 관계를 맺고 그들은 자신의 인생에 직면할 실존적 용기를 얻는다. 무의미와 죽음에 대한 가장 강력한 처방, 바로 사랑을 나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죽음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내 존재의 소멸에도 불구하고 나를 기억해줄 사람들. 내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에 울어줄 사람들. 그 사람들과 나를 이어줄 인연의 끈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을 이 책에선 보여준다.

p.11 포크, 나이프, 스푼.
그 순서로.
브릿마리는 남을 평가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하지만 교양인이라면 커트러리 서랍을 커트러리 서랍에 맞지 않는 이상한 순서로 정리하는 건 상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동물이 아니지 않은가.

p.39 "내가 일을 하려는 이유는 악취로 이웃 주민들을 괴롭히는 건 본받을 만한 일이 못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아무라도 알아주었으면 하거든요."

p.149 우리가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는 본능적이기 때문이다. 공이 길거리를 굴러오면 발로 찰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가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는 사랑에 빠지는 이유와 같다.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p.382 몇 개의 순간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시간의 흐름을 놓아버리고 그 속으로 빠져들어 그 순간에 머물 찰나의 기회를 몇 번 누릴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를 격렬하게 살아할 기회를, 열정으로 폭발할 기회를 누릴 수 있다.
어쩌면 허락된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몇 번 그런 기회를 누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자신의 한계 너머에서 몇 번이나 숨을 쉴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순수한 감정으로 거리낌 없이 우렁차게 환호성을 지를 수 있을까? 얼마나 여러 번 기억상실이라는 축복을 누릴 수 있을까?
모든 열정은 어린애 같다. 진부하고 순수하다. 후천적으로 터득하는 게 아니라 본능적인 것이기에 우리를 압도한다. 우리를 뒤집어놓는다. 우리를 휩쓸고 간다. 다른 모든 감정은 이 땅의 소산이지만 열정은 우주에 거한다.
열정이 의미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게 우리에게 무엇을 주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요구하느냐, 그것이 관건이다. 인간으로서의 품위. 곤혹스러워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잘난 척 고개를 젓는 그들의 반응.

p.384 "축구할 땐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아요." ... "어떤 고통?" "모든 고통요."

p.393 어느 나이쯤 되면 인간의 자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p.431 "축구는 인생을 끌고 가는 힘이 있죠. 늘 새로운 경기가 있으니까요.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니까요. 모든 게 더 좋아질 거라는 꿈도 있고요. 경이로운 스포츠예요.

p.468 인간이라면 누구나 눈을 감으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린 결정을 모두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모두 남을 위한 결정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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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김성한 지음 / 새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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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달콤한 인생: 다 속여도 네 자신은 못 속여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특이점

특이점은 그 이전과 이후 완전히 달라지게 하는 지점이다. 예를 들면, 특이점을 넘어간 별은 블랙홀이 되고, 특이점을 넘어선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가 된다. 다시 말해, 특이점을 넘어간 존재는 그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도 이전과 이후에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지점들이 존재한다. 아이와 어른처럼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것이 있는 반면, 개인의 선택에 달린 것도 있다. 그것 중에 하나가 바로 범죄. ‘범죄자의 삶은 죄를 짓는 것을 기점으로 그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된다.

달콤할 줄 알았던 인생, 뒤통수를 맞다

범죄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그 사람의 똑똑함과 성실함과 상관없이 누구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보다도 범죄 현장을 많이 봐온 검사와 변호사 출신들이 결국 범죄의 유혹에 넘어가 철창 속에 갇히거나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를 더러 들었을 것이다.

소설 달콤한 인생의 주인공인 박상우는 변호사로 아름다운 아내와 잘 나가는 로펌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남자다. 행복이 끊이지 않을 줄 알았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난다. 우연히 붙은 시비로 인해 사람을 죽이게 된 것이다.

어떻게 죄 값을 치룰까 고민하던 찰나, 그는 지금의 행복을 잃고 싶지 않아진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관련된 증거를 숨기고 근처를 지나던 다운증후군 청년에게 죄를 뒤집어씌운다. 그러고 나선 무슨 배짱인지 그 청년의 변호를 맡는다. 자신의 완전범죄를 꿈꾸면서 말이다.

하지만 박상우 변호사는 계속적으로 진실이 드러나려는 위기에 봉착한다. 이를 은폐하기 위한 그의 선택은 바로 더 큰 범죄다. 그의 손과 정신은 점점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의 죄악으로 범벅이 된다. 그러면서 사건의 방향은 그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신마저 속일지라도 네 자신은 속일 수 없다

책을 읽으며 그리스 비극 중 하나인 오이디푸스가 떠올랐다. 기독교 신자인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신을 원망하지 않고 다만 이 비극적 운명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나리라 다짐한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이 그러하듯이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것이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운명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오히려 예언을 성취하듯, 박상우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오히려 그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 이는 결코 우연히 아니며 그가 여태까지 행해온 탐욕의 씨앗들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살인을 저지른 날까지만 해도 신을 찾던 그는, 오히려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신을 찾지 않는다. 신조차 저버린 그에게는 이제 고통과 절망의 영역만이 존재한다. 그는 그가 고통스럽다는 사실조차 부모, 아내, 친구 중 그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며 점점 더 고립되어 간다.

유대인들은 질병과 고통마저도 죄의 결과라고 믿었다. 소설의 박상우가 겪는 모든 고통과 고민들은 그 자체로 죄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보여준다. 세상에 모든 이들, 심지어 신까지 속인다고 할지라도 단 한 사람,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다.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삶의 중요성

한 편의 훌륭한 범죄 스릴러 소설이었다. 읽는 동안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다. 특히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일단 시작한 이상 계속적으로 죄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박상우의 심리 묘사가 뛰어난 책이다.

인간은 왜 만족을 모르고 권태라는 함정 속에 빠지는 것일까? ‘범죄자박상우의 삶을 통해 지금 내가 권태롭게 여기는 것들이 실은 정말 귀중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삶의 중요성을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p.8 ‘하나님, 이 모든 일들이 당신의 계획임을 알고 있습니다. 분명 제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테지요. 허나 제게 중요한 것은 지금 이곳에 당신과 나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p.171 "나는 범인이 지금 이 뉴스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잘 들어두세요.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도망갈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당신이 지금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있든, 그 계획은 실패하고 말 겁니다."

p.306 자신은 소중한 것들에 감사하는 법을 잊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만했다. 날카로웠던 죄책감은 빠르게 무뎌져 갔고 거짓말과 위선들로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방법을 터득했다.
행복은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지난날 꿈꾸고 바라던 것을 손에 쥐고 난 다음에도 그때의 간절함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p.334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매순간 내 곁을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어리석게도 밤하늘의 별들만큼이나 많았던 기회들을 단 하나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후회라는 감정은 미안해서라도 찾아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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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6 - 구부의 꿈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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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보다 위대한 왕

고구려의 왕 중에 가장 위대한 왕은 누구인가? 대부분은 뛰어난 정복군주였던 광개토대왕이라 답할 것이다. 한민족이 세웠던 그 어떤 나라들보다 넓었던 영토와 패기를 보여줬던 광개토대왕의 생애는 자주 드라마화 되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들에게 가장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광개토대왕이 그토록 활개 칠 수 있었던 배경엔 소수림왕이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아버지 고국원왕의 전사로 인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던 고구려의 기틀을 잡고 고구려가 대제국이 될 수 있도록 기틀을 닦았다.

()족 중심의 역사 패러다임을 깨다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독특하고 원대한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소설가 김진명은 고구려 6 : 구부의 꿈에서 그 중요성에 비해 조명을 못 받았던 소수림왕의 일대기를 재구성한다. 소설은 고구려가 백제에게 복수를 시작한 수곡성전투 앞뒤에 있었던 시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법을 제정하고, 교육기관인 태학을 설립한 뒤 불교까지 받아들여 민심을 하나라도 만든 소수림왕 고구부. 그는 5년 동안 국력을 기른 뒤, 신들린 전법과 계략으로 백제군을 패퇴시키고 고국원왕 사후 처음으로 백제에게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단순히 그의 꿈은 백제에게 복수하는 것에 있지 않았다. 공자가 역사를 조작하여 통해 만들어놓은 ()’족 중심의 세계관을 깨는 것. 수많은 이민족들이 중원을 차지했지만 결국 자신들의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한족에 동화되던 것에 문제의식을 느낀 것이다.

수곡성, 그리고 이어진 서어산에서의 전투는 앞으로 있을 요하를 두고 싸울 패권 경쟁에 앞서 백제를 든든한 동맹을 만들기 위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고구부의 패기를 두려워한 적대 세력의 방해와 몇 번의 불운이 겹치며 그의 큰 그림은 어그러지고야 만다.

고기능 소시오패스 고구부

저자에 의해서 묘사되는 소수림왕은 조선의 정조를 연상시키는 만국의 스승군주의 모습이다. 뛰어난 지식과 새로움의 추구, 그리고 결단력으로 나라를 이끌어 간다. 하지만 스스로를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리더가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학자로 본다.

책을 읽으면서, 영국드라마 <셜록>에서 셜록이 고기능 소시오패스라고 묘사된 것처럼, 소수림왕도 일반적인 인간관계에 딱히 흥미가 없이 계속 큰 그림만 그린다. 그 과정에서 굳이 다른 사람의 이해와 공감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후 그가 실패를 겪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사람을 위하고 백성들에게 더 좋은 미래를 주고자 하는 따뜻함을 지닌 군주이기도 하다. 그 누구보다도 백성을 위하고 신하들을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고민을 오로지 비구니 한 명에게 밖에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애처롭고 불쌍하기도 하다.

그의 애민(愛民) 정신과 큰 그림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바로, 근초고왕 부여수와의 담판 장면이다. 단순히 국경선이 오고 가는 일 따윈 관심 없다며, 결국 백성들이 법령과 예의라는 허례허식에서 벗어나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원한다는 그의 마음을 볼 수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소수림왕의 시대

이전까지 고구려 시리즈를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이 많았는데,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국사 정도의 지식이 있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오히려 이 박진감을 다시 느끼고자 1권부터 찾아서 다시 읽어볼 예정이다.

6권은 소수림왕의 371년부터 384년의 전체 치세 중에 1/3 지점인 376년에 끝이 난다. 역사적으로 백제와의 대결전, 거란의 침략, 소수림왕의 죽음 등 많은 사건들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나올 7권 이후가 더욱 기대가 되는 바다.

p.312 모든 상황을 정리하자 그는 문득 실소를 흘렸다. 완벽한 복안이었고 설계였건만. 무엇 하나 틀어질 일이 없는 그림이라 생각했건만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구부와 그들은 같은 곳에 있지 않았다. 너무나 높은 견지에서 그려낸 그림이기에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그 사실 자체가 바로 결점이었다. 고운이 그의 뜻을 알았더라면, 신하들이 그의 뜻을 알았떠라면 기꺼이 제 목숨, 제 자식의 목숨을 내던져 훗날의 고구려를 위해 기쁘게 죽음을 맞이했을 텐데. 백제를 잃을 일 따위 없었을 텐데. 신하들은 물론 고운도 잘못이 없었다. 미워할 필요가 없었다. 구부 스스로의 한계였다.

p.140 "말의 눈가리개란 제가 어떻게 부림당하는지,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세상에는 어떤 다른 것이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만드오. 이끄는 대로 달리는 일, 제 본분으로 지워진 일에 가장 충실하게 될 뿐이오. 나는 그 눈가리개를 벗기고 백성이 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만들 것이오."
"유학 따위 저들이 얼마든지 간직하도록 두겠소. 그러나 눈가리개를 벗어난 백성이 제 눈으로 똑똑히 세상을 보며 제 손으로 자유롭게 빚어낼 앞으로의 산물, 새로이 태어날 문물은 우리의 것이 되겠지. 자연스러운 수순이오. 내가 굳이 새로운 길을 열어줄 필요조차 없소."

p.139 "공자가 그 모든 일을 시작한 것이다, 한족을 천하의 주인으로 군림케 하고자, 세상의 모든 문물이 모두 주나라에서, 즉 한족에게서 나온 것으로 꾸며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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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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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 길들임과 행복해질 용기


참된 길들임이란 무엇인가


넌 아직도 나에게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너도 날 필요로 하지 않지.

난 너에게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난 너에게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거야.

- 생텍쥐페리,《어린 왕자》中


어린왕자에서 소행성 B612에서 온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 길들임에 대해 배운다. 길들인다는 것은 인내심을 가지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을 통해 상대방을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동시에 나 자신도 상대방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존재를 길들이고 또한 길들여지며 관계를 맺어간다. 하지만 정작 힘들고 외로운 순간 홀로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참된 길들임을 맺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저 필요와 상황에 휘둘리며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길들임은 책임이자 훈련이다


참된 길들임에 대해 배우기 위해선 어린 왕자가 여우를 만났듯, 좋은 스승이 필요하다.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는 애인의 바람, 집안의 파산, 일에 대한 회의감 등으로 불행해진 사라에게 고양이 시빌이 찾아와 그녀를 입양하여 길들이고 행복을 찾아주는 이야기다.


사라 레온은 스페인 출신으로, 영국에서 10년째 남자친구 호아킨과 동거중이다. 행복했던 것은 잠시, 일에선 즐거움을 못 느끼고 애인과는 서먹해진지 오래다. 누적된 스트레스에 그녀는 클라이언트와 미팅 중에 기절한다. 절망적인 그 순간, 고양이 시빌이 그녀에게 말을 건다.


시빌은 생각보단 감각, 상상보단 현실에 집중하는 삶을 사라에게 훈련시킨다. 그녀가 남자친구의 바람을 알아채고, 이사하고, 업무에 복귀하는 등 괴로워할 때마다 어떤 조건 없이 자신의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을 수 있도록 허락해준다. 그렇게 사라는 고통에 맞설 힘을 얻는다.


소설을 읽으며 길들임이 단순히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친해지는 과정 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빌이 사라에게 했듯, 길들이는 것은 상대방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어, 그를 책임지는 것이다. 그 사람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훈련시키고 고통을 나눠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행복해질 용기를 배우다


고양이 시빌사라를 훈련시키는 과정을 보며, 아들러의 심리학을 다룬 미움받을 용기가 떠올랐다. 시빌이 제시하는 행복을 위한 기술들이, 아들러가 열등감과 불안을 극복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말한 자기수용, 타자신뢰, 타자공헌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시빌은 사라에게 감각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그녀의 걱정과 염려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리고 자신을 속이고 한계 짓는 사람이 결국 자신임을 받아들이도록 한다. 이는 아들러가 말한 내면의 열등감과 자의식 과잉을 인정하는 자아수용의 단계다.


하지만 의식한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괴로운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타인에 대한 불신을 거두는 타자 신뢰가 중요하다. 사라는 시빌의 조언에 따라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른다.


행복을 배우기 위한 결단


절망 속에 고양이가 위로의 말을 걸고 행복 훈련을 시키는 건 한 번 쯤 해볼 만한 기분 좋은 상상이다. 하지만 그 고양이를 통해 이 책의 저자가 나누고자 하는 깨달음은 결국 행복은 서로를 길들이는 과정 끝에 얻어지는 것이고, 그것을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어린 왕자에겐 여우가 찾아왔고, 사라에겐 고양이가 찾아왔듯이 우리에게도 행복을 가르쳐줄 스승들이 찾아온다. 굳이 동물들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책 등 우리를 행복의 길로 이끌어 줄 존재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다. 결국 행복의 길로 들어갈 결단이 중요한 것이다.

p.52 "난 뭐가 중요한지 알아. 네 머리가 헤어볼처럼 완전히 헝클어진 채로 뭉쳐 있다는 것. 그리고 네 심장이 잊힌 채로 슬프게 시들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누가 봐도 알 수 있어."
"참 끔찍하지, 사라. 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야. 삶이란 너무나 환상적이고 마법과도 같이 기쁜 건데……."

p.99 "네 머릿속에 날뛰고 있는 생각이 전부인 게 아니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사실 네 머릿속에서 날뛰고 있는 생각들과는 상관없다고 해야 할까. 관찰을 해봐, 사라. 네 주변 공기의 냄새를 맡아봐. 네 피부를 느껴보라고, 귀 기울여 들어봐. 인생은 매순간 다시 태어나고 있어. 태초부터 그랬던 것처럼 항상 새롭게."

p.135 "지금 네 자신을 챙겨야 해. 사실 더 좋은 건 널 챙겨줄 사람을 찾는 거야. 여기서 나가자. 다른 안식처를 찾아보자고. 너를 사랑하고 지지해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낼 수 있는 곳으로. 우리 고양이들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독립적이 되지만 너희 인간들은 어딘가 개와 비슷한 면이 있지. 너희도 개처럼 무리가 필요해."

p.314 난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라고만 말하는 거울 속 형상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많이 놀고 더 적게 일하기 시작했다. 닫힌 방에서 바로 걸어 나갈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난 이미 밖으로 나갔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날개를 달고 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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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세계사 - 5000년 인류사를 단숨에 파악하는 여섯 번의 공간혁명
미야자키 마사카쓰 지음, 오근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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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세계사 / 미야자키 마사카쓰

1. 역사는 공간안에서 이루어졌다

역사는 대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열된다. ‘연도라는 훌륭한 도구를 사용해서, 기원전 몇 천 년, 기원후 몇 백 년 같은 식으로 나열되는 역사는, 별다른 설명 없어도 그 자체로 연결성을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사를 단순한 시간의 변화에 따른 사건의 나열로 인지했을 때의 문제 중 하나는, 마치 모든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날 때가 되어서 일어난 것 같은 착시효과를 준다는 점이다.

역사는 삼간(三間), 즉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이 교차하는 지점에 대한 기록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현대의 역사는 시간이라는 서사에만 몰두한 채, 정작 사건들이 상호작용을 일으켰던 물적 토대인 공간의 변화에 대해선 가벼이 넘어가곤 한다. 하지만 농업 혁명, 대항해시대, 산업 혁명 등의 세계사적 사건에 기반엔 항시 공간에 대한 재정의가 있어왔고 공간의 주인이 곧 역사의 주도권을 쥐었다.

2. 생동감 넘치는 공간의 역사

사건이 일어난 순서 그 자체에 집중하는 시간의 역사와는 달리, ‘공간의 역사는 변화하는 공간의 성질과 그에 따른 인간들(대개 국가)의 상호작용에 주목한다. 예를 들면, 어떻게 징기스칸은 그 넓은 유라시를 지배하는 제국을 세울 수 있었을까? 그건 을 통해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가로지르며 재빠르게 기병으로 초토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이 제공해주는 속도와 전투력이 세계의 판도를 바꾼 것이다.

징기스칸이 말의 제국을 세웠듯, 새로운 기술이 공간을 재편하는 동시에, 새로운 공간이 기술을 잉태하기도 한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그런 예다. 영국이 북아메리카, 인도, 아프리카 등 광활한 식민지를 가지게 되자, 자국의 모직물 산업이 크게 성장하게 된다. 그 결과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적 투자가 이루어지고, 이는 증기기관의 계발로 이어져, 증기선, 철도 등을 통해 또다시 공간을 변화시킨다.

3. 작은 세계 대륙 세력 VS 큰 세계 해양 세력

이 책의 저자인 미야자키 마사카쓰는, 칼 슈미트의 육지와 바다를 인용하며, 공간의 성질과 그것에 의존해서 형성된 나라들을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작은 세계와 큰 세계등의 대립각으로 설명한다. 유라시아 대륙을 바탕으로 성장한 몽골 제국, 오스만 투르크 등은 대륙 세력이자 작은 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고, 대서양을 통해 성장한 영국, 네덜란드 등은 해양 세력이자 큰 세계의 바탕을 두었다는 것이다.

이 두 세력들은 계속 대립해왔는데, 그 절정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양옆에 끼고 상업적 영역을 구축한 미국에 비해, 생산성은 떨어지지만 지하자원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비등비등하게 세력 다툼을 해왔던 소련의 모습은, 저자가 말하고자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간의 차이를 한 눈에 보여준다. 결국 역사의 승자는 미국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 자리를 중국이 물려받아 아웅다웅하고 있다.

4. 국가의 명운은 공간에 달렸다?

공간의 세계사를 읽다보면, 지금 떵떵 거리며 선진국 자리를 꿰차고 있는 유럽과 미국 등의 나라들이 그런 위치에 올라간 것이 채 수 백 년이 안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대의 4대 문명 중심지들은 모두 아시아에 있었고, 유럽은 버려진 땅이었고, 아메리카는 교류가 없는 땅이었다.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 이후 급격한 자본의 축적과 생산성의 개선이 지금 개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과의 격차를 벌린 것이다.

역사적으로 훈 족부터 시작해서, 게르만 족, 반달 족, 유목민, 이슬람 세력들에게 차례차례 국토를 점령당하고 쫓겨나 울분을 삭히던 선조들이 정착해 세운 나라인 에스파냐(스페인)가 맨 먼저 풍요로운 신대륙을 식민지 삼아 대서양을 호령하게 됐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일 것이다. 결국 공간 혁명의 흐름에 누가 먼저 탑승하고, 그 흐름을 활용하느냐가 국가의 명운이 달린 중요한 일이다.

5. 역사는 반복된다 : 한 번은 희극으로, 한 번은 비극으로

공산주의 사회를 목적으로 진보하는 시간적 역사관을 정립한 마르크스는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희극으로, 한 번은 비극으로.”라는 말을 남겼다. 공간 혁명은, 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생겨났을 때부터 말을 의존한 제국이 생기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인류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계속적으로 발생해왔다. 지금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전류와 전파로 전 세계가 연결되는 전자 공간의 시대가 왔다.

우리나라는 20세기 초에 식민지라는 비극을 이미 겪었다.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공간적으로만 보자면 그 당시 바다를 기반으로 한 열강 세력들의 각축전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어버린 것이다. 광복 후 60년이 넘게 지났다. 과연 전자 공간 이후의 또 다른 공간 혁명은 어디서 발생할지 주의를 기울여야하는 까닭은 그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희극적으로반복될 수 있는 민족적 비극을 막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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